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특별판) - 시대의 지성 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판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3년 2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완전히 부합하는 이어령 선생의 인터뷰가 실려있는 이 책에는 우리 시대에 잃어버린 진짜 스승 내지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현실 속 진짜 어른의 부재가 새삼 더 크게 느껴지면서 인터뷰라는 기회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배움을 청할 수 있었던 저자가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한편, 내 인생에도 이런 가르침을 주고,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행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누구보다 박식했고, 많은 지식을 겸비했지만 겸손할 줄 알았고, 깊이 고뇌하면서 얻은 지식을 기꺼이 내어놓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지혜로운 답을 내어주려 노력했던 이어령 선생의 인터뷰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을 함께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남의 이야기며, 피하는 화제 중 하나다. 하지만 저자는 이어령 선생의 곁에서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고, 선생은 기꺼이 곁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선생은 우리들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음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듯, 삶 역시 죽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년에 걸쳐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궁극적으로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초반부터 선생은 자신이 새로 사귄 '죽음'이란 벗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딸을 앞세워 먼저 보내고, 자신 역시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하기보다 삶의 수용으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남은 불씨마저 생의 끝에 깨달은 지혜를 '선물'로 남기고자 애쓴 흔적들, 그것들이 모여 이 책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와 선생이 나누는 대화는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어진다. 또 저자는 궁금한 것들에 대해 가감 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해 선생은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답을 내어놓으며 보다 명징한 뜻과 의미를 전한다.

 

다소 변화무쌍하게 이어지지만, 유언의 레토릭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완연한 진리 앞에 서게 되면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고찰과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더 탄탄히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덕분에 흔들림 없이 이 마음 이대로 쭉 이어가면 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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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어령의 수업을 듣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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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먼저 이어령이라는 스승을 만난 것은 축복이라고 전한다. 선생님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이던 2년 전 가을, 저자는 이어령 선생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된다.

 

선생님은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당신의 지혜를 '선물'로 남겨주려 했고, 저자는 그의 곁에서 재앙이 아닌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은 이 둘은 매주 화요일,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의 독특한 과외가 시작된다. 이들은 사전에 대화의 디테일한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고, 그날그날 각자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상념을 꺼내놓는 형태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자는 마음껏 슬퍼했고 여한 없이 기뻐하면서, 한 번도 쓰지 못했던 감정의 근육과 지성의 근육이 자극받아 경련을 일으켰고,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고 전한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라고 말하며, 더불어 고백 건데 저자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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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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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이생에 마지막 수업이 될 테니,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다고 했다.
26~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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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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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체와 마음과 영혼, 삼원론으로 삶과 죽음을 설명할 참이야."
(...)
"이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고 가정해 보게나.
비어 있는 것, 그게 void라네. 그런데 비어 있으면 그 뚫린 바깥 면이 어디까지 이어지겠나? 끝도 없어. 우주까지 닿아. 그게 영혼이라네.
그런데 빈 컵에 물을 따랐어. 이 액체가 들어가서 비운 면을 채웠잖아. 이게 마인드라네. 우리 마음은 항상 욕망에 따라 바뀌지? 똑같은 육체인데도 한 번도 같지 않아.

 

그 마인드를 무엇이 지탱해 주고 있나? 컵이지. 컵 없으면 쏟아지고 흩어질 뿐이지.
(...)
여전히 내 몸은 액체로 채워져 있어. 마인드로 채워져 있는 거야. 그러니 화도 나고 환희도 느낀다네.
(...)
컵이 깨지면 차갑고 뜨겁던 물은 다 사라지지. 그러나 마인드로 채워지기 이전에 있던 컵 안의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웠던 영혼은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거라네."
(...)
스승은 풀피리 불 듯 말을 이었다.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리컵 안의 빈 공간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28~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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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마음, 영혼을 이처럼 찰떡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영혼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대화는 따로 또 같이 살펴보면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위의 대화를 바탕으로 간단히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덕분에 나를 더 이해하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는데,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몸인 육체, 그리고 나를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마인드(혹은 감정), 또 빈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영혼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형성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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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
빈 공간이 많을수록 영적인 공간이 커지는 거겠지요?"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아! 마인드로만 채우고 살았는지 영혼으로 채우고 살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깨지고 나면 알겠지. 대체로 정치가들의 바디에는 마인드만 꽉 차 있어. 깨지면 남는 게 없어. 빵, 돈 이런 것들만 남겠지. 시인, 화가, 종교인... 비어 있는 영혼의 세계를 이야기한 사람들은 영원히 가. 우주와도 통하니까."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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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자리한 잡념과 생각을 비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 문장 하나로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죽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말은 곧 후회로 점철된다.

 

후회하기보다 이제라도 마인드보다는 영혼으로 채울 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 보자.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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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뭐라고 설명하시겠어요?"
"물질과 마인드가 있었던 기억과 그것을 담을 수 있게 했던 void 그 자체.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고 하고 소크라테스는 이데아라고 했네. 영원불멸이야. 공허는 죽지 않아. 빅뱅 이전에 있었으니까"


"이 모든 게 어둠과 팔씨름을 해서 깨달은 거란 말씀이지요?"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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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과의 대화를 살펴보면,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공허'와 같은 단어를 살펴볼 수 있는데, 부정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짐을 확인할 수 있다.

 

천국에 대한 단어도 종교적 의미보다는 영적의 의미의 본질 혹은 근본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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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가 환하게 웃었다.
33~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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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오히려 더 겸손해진다는 말의 뜻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선생은 자신이 쓴 글이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았기에 매번 실패와 공허를 딛고 다시 글을 시작한다고 말한다.

 

다른 의미로 경이롭게 느껴지는 대화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나 위치와는 상관없이, 즐겨 하는 일이면서도 스스로 성공했다, 만족했다 자부할 수 없어 계속해서 쓴다며 웃으면서 말하는 이의 심정은 대체 어떤 것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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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틀에 갇히면 사고도 틀에 갇히겠군요?"
"어쩔 수 없이 그렇다네."
(...)
"자기 머리로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머리는 자기 것이지만 생각은 남의 것이니 문제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선왕께서 말하기를....'이야. 어쩌면 그래서 두 글자 언어, 사자숙어에서 못 벗어나는 거야. 윗세대의 말만 달달 외우다 끝이 나거든. 내 머리로 생각하면 전혀 다른 앵글이 나와."
45~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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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이 있으면 열 명, 백 명이 있으면 백 명, 1억 명이 있으면 1억 명의 각각 다른 생각이 있는 거야. 그게 정상이라네. 무엇이든 만장일치라면 그건 한 명과 다름없네."
(...)
"그럼 왜 민주주의를 하나? 민주주의의 평등은 생각하고 말하는 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거라네. 그 사람만의 생각, 그 사람만의 말은 그 사람만의 얼굴이고 지문이야. 용기를 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하네.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47~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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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 창의성이라는 말 이상의 관념을 재정립해 주는 대화였는데, '언어가 틀에 갇히면 사고도 틀에 갇힌다'라는 말은 특히 더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유일한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 그것을 부정하거나 보류하기보다 이제는 개별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지식조차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내 생각과 내 관념을 투영해서 바라보라는 선생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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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그 책이 법전인가?
(...)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
의무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말이네. 사람들도 친구 사귈 때,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사귀잖아.
(...)
책 많이 읽고 쓴다고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 같아? 아니야. 제 머리로 읽고 써야지."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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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발언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대개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어령 선생의 '그 책이 법전인가?'라는 말에 순간 빵하고 웃음이 터진다.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앞으로 나에게 맞는 책, 재미있는 책을 닳도록 읽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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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 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66~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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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약간 농담처럼 느껴졌는데, 문학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 촘촘히 세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학이 무엇이냐는 어쩌면 다소 방대한 질문에 이토록 디테일하고 세밀한 묘사라니, 이제는 '작가는 꿀벌이야'라고 말해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것 같다.


>>앞선 내용들을 바탕으로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에 대해 이어령 선생의 말을 정리해 보면,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
▷내 머리로 읽고 쓰는 것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찾아다니는 것

 

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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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섯 살 때부터 죽음을 느꼈어. 밤에 잘 때 어머니 코에 손을 대보곤 했지.
(...)
여섯 살짜리 아이가 죽음을 느낀 거야. 그늘까지 다 사라진 정오였네. 한낮이 되면 그림자가 싹 사라지잖아."
"왜 하필 정오였지요?"
"존재의 정상이잖아. 뭐든지 절정은 슬픈 거야."
(...)
"정오가 지나면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생긴다네. 상승과 하락의 숨 막히는 리미트지. 나는 알았던 거야.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는걸. 그게 대낮이라는걸."
69~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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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존재의 정상, 그리고 절정에서 맞보는 슬픔! 이후 맞이하는 죽음이라니. 우리의 삶과 인생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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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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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죽음을 아주 어릴 때부터 마주하며 살았다. 집에서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했기에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병원에서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기보다 덮어두기에 급급해졌다.

 

누구나 죽는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덮어두기보다 마주하며 삶을 더 가치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철학과 진리, 예술을 통해 죽음과 더 가까워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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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해야 합니까?"
"뜬소문에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1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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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깨어있는 자로 있기 위한 방법을 물으니 선생은 뜬소문에 속지 말고, 스스로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 노력하라고 일러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하며 세상을 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틀에 맞춰)로 보기보다 올곧고, 순수하게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단지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세상을 다 아는 듯 굴지 말자. 문득 쓸데없는 것을 묻는 이들이 어쩌면 더 깨어있는 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어령 선생 역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지고 거의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물음표와 느낌표의 거리가 40년이나 걸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오래 걸리더라도 끝끝내 놓치지 않고 느낌표가 물음표를 따라갔구나 싶다.

 

어쩌면 이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그는 죽음을 앞둔 순간조차 죽음과 팔씨름을 하며 이런 진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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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피지스), 법계(노모스), 기호계(세미오시스)처럼 범주를 구분해서 사고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기호 안에서도 정확한 개념을 토대로 사고해야 하고.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자연계, 법계에서는 그나마 고개를 끄덕여도 기호계까지는 못 넘어와. 기호계야 말로 놀라운 세계라네. 기호계에서 문학이 나오고 예술이 나오고 본격적인 철학이 나오거든."
"기호계에서 보는 시야가 그만큼 넓기 때문이겠지요?"
127~1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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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과 관점의 다양화(인간중심주의, 탈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대화하다 자연계, 법계 그리고 문학에까지 이르는 대화로, 더 넓은 시야와 관점을 갖기 위해 기호계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큰 힘이라며, 과학 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경제하는 사람 모두 문학을 가까이했으면 하는 소망을 내비친다.

 

더불어 인문학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필수 요소라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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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그런 세계에서는 사실 '사회성'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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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지막 말에 '야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 역시 이 말에 반색하며 자신같이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도 희망이 있겠냐며 묻는데 이에 대한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 속에 어우러지며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억압과 관습에 억눌려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섞여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보통 사회성을 기르고 그냥 녹아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철학자나 예술가들과 같은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중력 속의 세상에 거슬러 떠올라야만 시야가 넓어진다. 여기서 철학자나 예술가들을 선생은 '생각하는 자'라고 지칭한다.

 

앞선 창의성과도 연결되는 대목인데, 특정 분야에 심취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성보다는 자신만의 경력, 자신만의 세계에서 더 넓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모두 양면성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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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있어?"
(...)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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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우리'가 되기 전에, 유일한 '나'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군중의 한 사람으로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며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것이라고 전한다.

 

또 유일한 내가 존재해야 너와 나 사이에 '우리'가 존재하며 갈수록 더 '사이(inter)'가 중요해질 거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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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있으면 걷는 게 되고 목적이 없으면 춤이 되는 거라네. 걷는 것은 산문이고 춤추는 것은 시지. 인생을 춤으로 보면 자족할 수 있어. 목적이 자기 안에 있거든. 일상이 수단이 아니고 일상이 목적이 되는 것, 그게 춤이라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고 사는 것이 바로 나에게는 춤이 된다네."
1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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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어떤 것을 바라보고 살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로, 선생은 목표 지향적으로 사는 것보다 일상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을 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에게 있어 글을 쓰는 것은 바로 춤을 추는 것으로 일상이 목적이 되는 삶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지향점을 특정 목표로 찍어두고 매일이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삶을 사는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언젠가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는 목적을 향해 가기보다 지금 현재를 즐기는 삶을 선택해 보자. 그럼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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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꿈 깨면 죽는 거야.
(...)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
(...)
'존재했어?'라는 질문만큼이나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인중에도 땀이 고였다.
(...)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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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신념 속에 빠져 휴식을 취하기보다, 변화무쌍한 진짜 세계로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승객이 아닌 여행자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승객은 프로세스가 생략되어 있어 목표(신념)만 완성하면 끝이지만, 여행자는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으로 집에 정주하지 않고 끝없이 방황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꿈은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것이 아닌, 그걸 지속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꿈 깨는 순간 죽는 거라는 확고한 말로 우리를 깜짝 놀래킨다.

 

이건 선생의 유언의 레토릭 중 '존재했어?'라는 말과 더불어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는 말은 또 다른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말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 이제라도 현재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게 맞는지, 또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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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그렇다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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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는 방식에 대한 고견도 엿들을 수 있었는데,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삶 전체를 자기만이 생각과 무늬를 입혀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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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
"인생 그렇게 살면 노예 되는 거야. 노예는 사회주의에도 있고 자본주의에도 있어. 반대로 예술은 사회주의에서도 할 수 있고 자본주의에서도 할 수 있어. 단, 그러려면 자유의지가 있어야 하네. 길을 일탈해서 길 잃을 자유가 있어야 해. 그게 선이든 악이든 일단 나의 행위가 있어야 하는 거지."
(...)
"신은 자유의지를 가져도 실수를 안 하는데, 인간은 실수할 수 있어. 악도 선도 행한다네."
215~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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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선이든 악이든 나의 생각, 행위가 들어가 있는 자유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진짜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선생의 말에서 다시금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생의 노예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나의 자유의지로 내 삶을 살고 있는지 깊은 고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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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고통은 남이 절대 대신할 수 없어. 오롯이 자기 것이거든."
(...)
"그런데 타자의 고통을 체감할 수 있는 하나의 상황이 있어. 바로 추위지. 겨울날 거리에서 떨며 구걸하는 어린애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돈을 주든가 피해 가든가 하지. 그 아이가 배고픈지 아닌지를 몰라. 하지만 추위는 다르거든.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거야."

 

"굶주림은 그 아이의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이지만 추위는 내 피부로도 느껴지는 감각이니까요."

 

"그래, 인간은 다 다른 삶을 살고 있어. 그러나 추위처럼 모두가 느끼는 감각이 있네. 인류 공통의 아픔이 있으면 내 추위와 남의 추위의 공감이 일어나는 거야."
(...)
"그러나 추위로 확연하게 느껴지기 전까지는 오히려 '모른다'는 인정이 매우 중요하다네."
233~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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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통해 사고나 사건을 접할 때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추위'와 같은 인류 공통의 아픔을 겪게 되면 이때는 나와 타인의 아픔에 있어 공감이 일어난다. 이를 통해 직, 간접적으로 우리는 함께 그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섣불리 타인의 고통을 안다고 말하기보다 직접 겪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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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어. 인간이 그런 존재야.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하네. 그게 실존이야. '나는 혼자다'라는 걸 모르는 사람과는 얘기가 통하지 않아. 군중은 남이 이 말 하면 이리로 가고, 남이 저 말하면 저리로 가지. 휩쓸려 다녀. 자기가 없으니까 자꾸 변하는 거라네."
(...)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
남하고 관계없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를 동양에서는 군자라고 해.
(...)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고, 스스로 알고 깨닫는 자. 홀로 자족할 수밖에 없는자.... 그래서 군자는 필연적으로 외롭지."
(...)
"한편으론 군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거라네. 자족을 이룬 사람이 군자, 못 이룬 사람이 예술가라고나 할까. 시나 소설은 그렇게 고립된 예술가들이 에고이스트적인 힘으로, 인격적으로 결함을 가진 채 세상에 내놓은 말들이야. 완성된 말은 아닐세."
(...)
"군자는 상처가 없이 오로지 자기 배움으로 완성된 사람이고, 니체나 보들레르는 상처로 미쳐가면서 놀라운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281~2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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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에서는 두 가지가 눈길을 끈다. 첫 번째는 인간은 타인을 통해 배울 수도, 바뀔 수도 없으며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깨닫고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단락과, 두 번째는 자족을 이룬 사람이 군자, 못 이룬 사람이 예술가가 된다는 단락이다.

 

특히 첫 번째 배움에 대한 부분에서 군중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군자와 예술가와의 차이는 각자 나름대로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상처가 있으냐, 없느냐로 구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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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교환과 돈의 교환은 경계가 다른 건데, 돈의 교환으로 피의 교환을 하고 언어의 교환을 하려 들면 비극이 생겨. 3대 교환은 서로 제 갈 길이 있는 거야.
황금은 황금의 길, 피는 피의 길, 언어는 언어의 길. 제 각자의 길을 열어줘야 하네."
(...)
"피, 돈, 언어가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하는데, 현대사회는 돈이 가장 큰 힘으로 모든 길을 빨아들이니 큰일입니다."

"돈의 비극이 딴 게 아니야. 돈의 교환가치가 언어의 교환가치, 피의 교환가치를 침입할 때 이 3대 평행선이 부딪혀 충동할 때 비극이 생기는 거야.
(...)
중요한 건 다 단순해. 눈, 귀, 코.... 다 단음절인 것처럼 돈도 다음절이야. 복잡할수록 천한 거라네."
316~3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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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모순 혹은 현실을 꼬집는 대화로, 돈을 위한 정략혼과 같은 일은 결국 비극을 불러온다고 말하고 있다.

 

복잡한 것이 오히려 천한 것이라 말하는 선생의 말에서 어쩌면 우리는 천한 것에 시선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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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이 있지? 뽕도 따고 님도 보고. 이거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야.
(...)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거지.
(...)
한국인은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 원칙과 직관을 융합해버려. 그래서 조직도 오거나이즈가 잘 되는 시스템보다 비상시에 만드는 임시 조직이 더 잘 굴러가. 한국 사람이 위기에 강하다고 하는데, 위기에 강한 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강한 거라네."

 

"한국인들은 흐르듯이 상황에 맞춰 직관으로 반응한다는 거지요?"
(...)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아니라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인 상태. 함께 있되 거리를 두고,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그 '경계의 힘'. 그 사이에서 나온 막춤의 리듬이 디지로그이고, 바이러스의 발효가 생명자본이라고 했다.
326~3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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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특성을 예로 들어 융합, 합성의 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대화 부분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선생은 이것을 장점의 위치에 두고 이것도 저것도 모두 포용하는 힘에 대해 설명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과 바이러스의 발효인 '백신'에 대해 함께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한국인들의 특성을 살린 방식을 기업이나 조직에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것을 특성으로 키워 새로운 방식의 시스템을 만든다면 장점을 최대로 키운 또 하나의 우리만의 특허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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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351~3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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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삶은 수직의 중심점으로 가기 위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죽음이란 수평의 중심점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말은 뒤통수를 탁 때리는 깨달음을 준다.

 

생각해 보면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움직인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끊임없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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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야.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게 평등이지요."

 

"햇빛만 받아 울창한 나무는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에요.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지요. 또 하나. 살아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 죽잖아."
368~3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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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삶이 불공평하다 말하는데, 선생은 생명은 평등하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모두 다 다르고 세상에 유일하다는 점에서 평등점을 찾고, 두 번째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공평하게 죽는다는 것에서 평등하다 말한다.

 

이렇게 보니 정말 모든 생명은 평등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기준을 달리하니 완전히 다른 결론에 다다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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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3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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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 살지 말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잘못을, 희망을, 과거를, 어리석음을 등등 많은 것들을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마주하고, 피하기보다 맞서보자. 죽음은 가까이에 있고 스스로 변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순간은 찰나이며,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삶의 끝에서 이어령 선생이 죽음과 팔씨름하며 얻어낸 하루하루 값진 전리품을 가슴 깊이 새기며 하나하나 실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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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웃음)."
3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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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논할 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정말 죽음이 끝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믿기 때문에 두려운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선생은 자신이 3월에는 없을 거라고 단정하면서도 결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저 죽음이라는 벗을 사귀었다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이 문장이 그에 대한 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선생은 웃으며 떠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다 보면, 꽤 많은 분야와 주제들을 넘나드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고난, 행복, 사랑, 용서, 꿈, 돈, 종교, 죽음, 과학, 영성 등의 주제들에 어렵지 않게 노출된다.

 

또 비유와 은유 덕에 꽤 심오한 주제를 다룸에도 자꾸만 더 바짝 다가서서 듣게 되는 매직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에는 어떤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되고 호기심이 인다.

 

꽤 어릴 적부터 죽음을 마주하며 살았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물음표와 느낌표를 달고 살면서 끊임없이 세상을 탐구하며 알기 위해 노력한 스승님, 이어령!

 

마지막 잎새를 남겨두고 그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를 짜내고 짜내 액기스만을 이 책에 남기고 떠났다. 어쩌면 소멸되다시피한 진짜 어른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워지면 특유의 들큰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에게서는 달콤하고 고급스러운 캐러멜 향기가 풍겼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의 말대로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내년 3월이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거라며, 그때 책을 내라고, 살아있을 때 내면 자신이 멋쩍다는 이유를 드는 이어령 선생의 말은 어쩐지 귀엽게 느껴진다.

 

또 매주 화요일 항상 깔끔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이어령 선생의 모습이 보지 않았음에도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1년여 시간 동안 애정을 담아 나눈 그와의 인터뷰를 담은 저자의 노력이 깃들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터뷰 때마다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스승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던 저자의 모습을 짐작해 봤을 때, 그런 깊은 신뢰와 애정이 스며들어 이 책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내놓은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도 우리의 삶을 자신만의 의지와 이야기로 채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외로이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담담한 위로를, 또 자기만의 무늬와 색을 찾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그 밖에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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