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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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구분 없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름이나 단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내 취향이거나 자주 접해서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해당 작가나 작품, 문장이나 단어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자주 언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책은 후자에 속한다.

 

그렇게 궁금한 마음에 나의 읽어봐야 할 도서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고, 이번에 드디어 읽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시를 직접 접한 느낌은 굉장히 밝고 경쾌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모든 시가 밝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선집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팬이 되었다. 그녀의 사상이나 삶을 대하는 방식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록에는 이 책에 담긴 그녀의 시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시와, 그녀의 간단한 이력, 그리고 그녀라는 '사람'에 대해 간단히 기록해 보고자 한다. (처음 그녀의 시를 접하는 이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가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그녀의 시를 그냥 각자 느끼는 감정 그대로 느껴보았으면 해서 판본 소개에 담긴 복잡한 시에 대한 해설이나 해석들은 담지 않으려 한다.

 


이 책에는 시인이 남긴 1,800여 편의 시 가운데 디킨슨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것들만 엄선해서 실었다고 한다.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재들을 통해 표현한 그녀의 사고와 감정들을 시를 통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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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간단한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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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 에드워드 디킨슨과 에밀리 노크로스 디킨슨 사이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매사추세츠 하원과 상원을 역임했고, 어머니는 1850년대 중반부터 1882년 사망할 때까지 병석에 누워 있어 30여 년간 디킨슨이 간호했다.

 

자녀 교육에 열심이었던 아버지는 아들뿐 아니라 두 딸까지 애머스트 아카데미에 보내, 이들은 이곳에서 7년간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애머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마운트 홀리 요크 여성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0개월 뒤 집으로 돌아온 후 결혼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며 평생을 보냈다.

 

디킨슨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당대의 명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통의 서신과 편지를 통해 시를 보내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시간에 갇힌 인간 의식의 한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역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1886년 그녀가 죽은 후에 디킨슨의 여동생인 라비니아가 1800여 편의 시를 발견하고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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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제목을 숫자로 표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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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비로소 토머스 H. 존슨이 시 전집을 출판해 독자들은 그녀의 시 전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 이 번역본에서 제목을 대신해 붙인 숫자는 존슨이 붙인 숫자를 따르고 있다.

 

신기한 것은 단 하나, '눈송이'만 유일하게 제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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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녀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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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디킨슨이 사망한 후 처음 90년 동안 그녀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수줍음이 심하고 하얀 옷을 입고 집을 떠나지 않는 괴팍한 여자였다.

 

그러나 1970년대 디킨슨 학자 리처드 B. 시웰의 전기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재평가로 디킨슨의 대한 견해가 바뀌기 시작했다.

 

디킨슨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 재능 있는 시인으로 재평가 받고 있으며, 신중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은둔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녀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이며, 시는 관습을 벗어난 독특한 리듬과 구두법을 사용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사고를 표현하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지상의 하루하루는 새로운 기대와 기쁨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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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이 시집을 번역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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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이 시집을 번역하게 된 첫 번째 의도는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 세계의 핵심이 지상의 기쁨이었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디킨슨은 기쁨과 향유의 시인이었고, 그녀의 선택은 초월이나 천국이 아니라 늘 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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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시'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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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들은 간결하면서 추상적이고 여러 구체적인 사물들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바다, 벌, 나비, 시냇물, 산들바람, 새 등의 자연의 소재를 많이 활용했고 여기에 더해 추상적인 느낌들이 더해지며 그녀가 느끼고,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을 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밝고 희망에 찬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지만, 시간의 한계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또 유머러스함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녀의 시를 통해 우리 삶을 사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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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벌은 날 겁내지 않고
나비도 잘 안다.
어여쁜 숲속 사람들이
다정하게 나를 맞이한다 -

 

내가 다가가면 시냇물은 더 크게 웃고 -
산들바람은 더 신나게 장난치는데,
오 여름날이여, 어디서
그대의 은빛 안개를 볼 수 있을까?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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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주는 경쾌함을 엿볼 수 있는 시다. 벌과 나비 외에도 숲속에 자리한 많은 것들이 나를 다정하게 맞이해준다. 시냇물은 더 크게 웃어주고, 산들바람은 더 신나게 장난을 친다.

 

그저 읽는 순간 청량감과 리듬감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지는 시다. '은빛 안개'는 어떤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보이는데 해석하기 나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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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나 강은 당신을 향해 달려가요-
푸른 바다여! 날 환영해 줄래요?
나는 답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오, 바다여 -다정하게 봐 주세요-
그늘진 아늑한 구석에 있던
시냇물도 데려갈게요-
말하세요 -바다여- 날 받아준다고!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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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느낌이 느껴지는 시다. 당신을 향해 달려가고, 답을 기다리고 있고, 다정하게 봐달라는 애교 섞인 말까지.

 

마지막에 날 받아준다고 말하라는 시구에서 확실하게 쐐기를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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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영혼에 앉아-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 -끝없이 이어진다-

 

폭풍이 휘몰아쳐 힘들고-
당황스러울 텐데도 작은 새는
강풍 속에서도 -가장 달콤한 노래를 불러-
여러 사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혹한이 몰아치는 동토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그 새는, 극한 상황에서도,
내게 -결코 빵 부스러기 한 쪽도 요구하지 않았다.
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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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가지고 있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시로 보인다. 희망은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 폭풍과 강풍 속에서도 달콤하게 위로해 사람들을 위로해 준다. 또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희망이라는 새!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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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언제 고난이 -끝날지 정해 주세요-
그래야 사람들이 견딜 수 있어요!
얼마나 피를 흘려야 하는지- 정해 주세요!
생명의 주홍 - 핏방울을 얼마나 - 많이 - 흘려야 하는지-
수학을 다루듯이
영혼을 다루어 주세요!

 

얼마나 많은 시대를 견뎌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래야 - 불만 없이 - 고통을 견딜 거예요 -
해가 질 시간을 시시각각 표시하는-
노동자처럼 -고통스러워도- 노래를 부를 거예요!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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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고통의 시간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한편, 이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견뎌야 하는지, 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지 제발 알려달라 몸부림치는 모습이 선연하게 느껴지는 시다.

 

살면서 어느 순간 시련이 다가왔을 때 끝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외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공감이 많이 가는 시다.

 

그런 한편 한계점에 임박한 모습도 엿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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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환희는 -마음속에 있어요-
신성한 포도주처럼
멋지게 취해 버리는
포도주는 밖에 없는걸요

 

영혼 - 자신이 - 포도주를 -
마시거나 아니면
방문자 용이나 - 성찬용으로 - 남겨두죠 -
물론 주일 예배를 위한 건 아니고요

 

라인 포도주를 수없이
벽장 속에 감추어 놓은
사람을 자극할 수 있는 - 최고의 방법은
당신 포도주를 기쁘게 내놓는 거예요.
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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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품고 있는 '환희'를 포도주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시로,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기쁨, 즐거움 등의 긍정적인 기운을 감추기 보다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놓아 나누고 베풀라는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로 보인다.

 

여기에서 '물론 주일 예배를 위한 건 아니고요'로 표현되는 부분에서는 시인의 위트와 유머러스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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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살아있는 것은 -힘이다 -
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충분히 -전지전능하다-

 

살아 있고 -희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더라도-
창조주인 -신만큼-
유능하다!
1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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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만으로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는 시로, 유능하지 않아도, 유한한 존재이더라도 우리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해주고 있다.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스스로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 때 읽어보면 좋을 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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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3

 

책은 어떤 군함보다
우리를 먼 나라로 데려가고
질주하는 시 한 쪽은-
어떤 준마보다 빨리 달린다-
가장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이 마차를 탈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마차 삯은 얼마나 싼지.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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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주는 중요성과 이점에 대해 논하고 있는 시로 보인다. 책을 읽는 가장 값싼 시간 투자만으로도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며 책이 주는 여러 장점들을 다양한 비유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시를 읽고 보니 어쩐지 더 많은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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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

 

너무 행복한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고통은 날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하는지-
2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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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고통의 시간은 느리고 무겁게 지나감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시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고통의 시간을 적절한 비유를 들어 전하고 있어 가슴 깊이 공감이 간다.

 

팔랑팔랑 무엇이 그리 바빠 행복한 시간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고, 고통의 시간은 무게 추라도 단것인지 더디게 흘러가는 것일까? 고통이라는 시간에게는 새 날개를, 행복이라는 시간에게는 멈춤을 선물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감정이나 느낌,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페이지를 펴 들면 그대로 훅훅 넘어간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이며 행동지향적인 저자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렇게 따라 하고 싶어지는 이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강해,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는 시 조차도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흔하게 접하는 자연의 소재와 추상적인 사고체계가 합쳐지면서 간결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받을 수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편 읽고 하루를 마무리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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