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주 토끼>는 10편의 단편소설집으로,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들에 각종 장르들이 버무려지며 색다른 이야기를 창조한다.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의 바탕에 왠지 이질적일 것 같은 호러와 SF, 판타지들과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하면서, 익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낯선 이야기들이 호기심과 자극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 이 소설에 담긴 10편의 이야기들에 있어서만큼은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다. 그저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따라가다 보면, 새롭게 추가된 장르로 인해 이야기가 한번 뒤틀리면서 색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만끽하면 된다.

 

이 이야기들의 결말은 대체로 씁쓸한 잔상과 끔찍한 결말, 혹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동반하는데,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나 이야기들은 그 이상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 권선징악, 제각각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사들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도 목도할 수 있는데, 그래서 새삼 위안과 희망을 갖게 되는 한편, 약간의 불안감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 미래에 다가올 또 다른 현실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있건 간에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인간의 삶에 있어 '삶' 그 자체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다양한 장르가 응집된 10편의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한번 손에 들면 순삭 할 만큼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10편 모두 매우 제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더 임팩트가 강하게 남은 이야기들 세 편을 골라 더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생각과 감정이 느껴지는지 떠올려보고,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심과 권선징악, 삶의 또 다른 모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좋겠다.

 

 

=====
간단하게 살펴보기
=====

 

■저주 토끼
가업으로 저주 용품을 만드는 한 집안에서 단 한 번의 예외로 만든 '저주 토끼'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머리
한 사람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머리'가 한 사람의 삶에 어던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마침내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가운 손가락
모호한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재창조될 수 있을 것 같다. 차 사고가 난 이 선생은 김 선생의 도움으로 겨우 습지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런데 갈수록 사고의 경위나 상황이 미궁 속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최 선생'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마치 암흑 속에 빠진듯한 이 이야기 속에서 과연 이 선생은 억울하게 죽은 최 선생일까? 아니면 남편과 바람난 옆 반 담임일까?

 

복수극이냐 아니면 자살에 대한 이야기냐는 독자들에게 달려있을 것 같다.

 

■몸 하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이야기로 색다른 관점에서 재탄생된 이야기다. 미래 새로운 약이 개발되었을 때, 피임약은 어쩌면 여성의 몸에 새로운 탄생 혹은 독을 야기하는 발화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안녕, 내 사랑
미래 곧 다가올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로, 어찌 보면 인공지능의 반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세계에서 인간의 목숨은 어쩌면 조금 하찮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덫
덫에 걸린 여우를 발견한 한 사람이 여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색의 금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덫은 곧 자신 삶 전체를 옭아매는 덫으로 자리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은 물론, 아내와 자식의 삶까지 파멸로 이끌게 된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참상에 대한 이야기다.

 

■흉터
동물에 재물로 바쳐진 한 소년이 성장하게 되면서 마침내 끔찍한 괴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유례없는 그 일로 인해 홀로 인간들이 머무는 마을에 입성하게 되지만 이내 누군가의 또 다른 효용가치로 활용되면서 몸까지 망가지게 된다.

 

또다시 탈출을 감행하게 된 청년은 배고픔에 한 오두막에 들어서게 되는데 거기에서 자신이 재물로 바쳐지게 된 원인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나서지만 결국 남은 건 황폐해진 마을과 자신뿐이다.

 

■즐거운 나의 집
편안하고 온전한 삶을 원했던 한 여성의 고군분투 과정이 그려진 이야기로, 여기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기 귀신'이 등장한다. 새로운 삶을 위해 조용한 마을에 빌라를 구매한 부부, 그리고 아내를 옆에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은 물론 경제적 능력도 없는 남편.

 

이들을 둘러싼 알지 못할 일들과 마침내 평안을 찾은 여성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욕심
욕심은 끝없는 욕심을 불러온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초원에서 자란 공주가 저주받은 왕자에게 시집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남편이 될 왕자의 눈이 보이지 않는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홀로 황금배의 주인을 찾아 나서지만 그에게 듣는 진실은 소문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공주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마침내 저주를 풀게 되고, 고난 끝에 다시 왕궁에 돌아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맞닥뜨린 것은 마녀로 의심받아 죽을 위기에 처한 현실이다.

 

이에 황금배의 주인은 그녀를 도와주게 되고 욕심으로 가득 찬 사막의 왕과 그들의 왕궁은 소멸하게 된다. 이후 함께 하기를 권하는 그에게 그녀는 인간으로 살기를 원한다며 거절하고, 죽음 이후의 삶을 기약한다.

 

■재회
이국의 폴란드에서 벌어지는 꿈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한 여성이 그곳에서 경험한 기이한 현상과 한 남자를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가 다시 폴란드를 방문하게 되면서 대면한 남자에 대해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
자세히 들여다보기
=====

 

<저주 토끼>

 

-----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9페이지 中
-----

 

우리 집안은 저주 용품을 대대로 만드는 집안으로, 저주 용품은 개인적인 용도로 만들어서는 안되며,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대대로 저주 용품을 만드는 우리 집안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것이 적용된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저주 토끼'다. 저주 토끼는 토끼 모양을 하고 있는 전등으로, 할아버지의 친구를 위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아무런 편견 없이 돌봐주고 보살펴준 친구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이 저주 토끼를 만들게 되는데, 어쩌면 너무 억울하게 일찍이 세상을 등진 친구를 위한 하나의 복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연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리 집안은 공식적으로는 '대장간'이었고, 진짜 본업은 저주 용품을 만드는 곳으로 이것에 대해 동네 사람들도, 동네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시대에는 '무속인'이나 시체 연습해 주는 사람은 모두 천민 취급을 받았는데, 우리 집안은 명확하게 천민 취급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매우 형편없었으며, 잘못 건드리면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돌아서 그냥 기피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유지와 같았던 술도가, 즉 양조장을 운영했던 그 친구는 동네에 떠도는 소문이나 남들의 수군거림, 그리고 호기심에 찬 이웃의 시선 모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아무런 편견 없이 할아버지를 평범한 친구처럼 대해주게 된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점차 또래 집단에도 친구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또 그 집 부모님도 역시 깨어있는 분들이라 돈 있고 힘 있다고 남한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허리 숙여 인사하고 경조사 있다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도와주었다.

 

양조장을 운영하게 있어서도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유능한 사업가이기도 해서 생산방식을 표준화하고 공정을 현대화해서 다른 지역으로 판매망을 늘리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에 고등학교 갓 졸업한 열아홉 살짜리 친구는 자기 집안 술맛으로 전국을 제패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했다.

 

이에 제동을 건 것은 정부의 식량정책으로 특정 종류의 술을 발효할 때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기술 개발에 성공하게 되지만 곧 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술을 만드는 데만 신경 썼기 때문으로, 뇌물이나 뒷거래가 제품과 기술보다 중요한 시대라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친구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해버린 술 시장을 넘보는 더 큰 회사가 있었는데 인맥과 연줄에 강하고 접대에 능한 회사였다. 그들은 앞으로는 정당하게 광고했지만, 뒤에서는 친구 회사의 술을 비방하고 다니면서 어느새 친구 회사는 매출이 뚝뚝 떨어지게 된다.

 

법적으로는 명예훼손의 근거가 없다고 판결 났고, 헛소문이 퍼져나간 경로도 알아내기 어려워지면서 친구는 사업과 소송 양쪽에서 막대한 빚만 짊어지게 되고 결국 삼십 대의 젊은 나이에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게 된다. 부인은 장례가 끝나고 얼마 안되어 남편을 따라 불귀의 객이 되면서 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평생을 바쳐 개발한 술 제조 비법 또한 경쟁사의 손에 넘어가 금고 깊숙한 곳에 파묻힘으로써 한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전통주의 현대화된 제조 비법은 그렇게 강제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저주의 토끼를 만들게 된 것이다.

 

토끼는 여러 경로를 거쳐 마침내 경쟁사 사장에게 선물로 전해지게 되고 본사의 회사 창고, 지사와 판매처 창고에까지 퍼지게 되면서 종이와 나무로 된 것은 모두 갉아놓고 똥 덩어리를 온통 흩뜨려놓는 일들이 삽시간에 퍼지게 된다.

 

이에 대대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벌어졌지만 결국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편 토끼 전등이 경쟁사 사장 손자의 눈에 띄면서 창고에서 사장의 아들 집으로 장소가 옮겨지게 되고, 토끼들은 계속 보이는 대로 갉아먹고 그러면서 계속 번식하게 된다.

 

손자는 전등을 켤 때나 끌 때나 하루에도 몇 번씩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토끼의 등을 만지면서 이제 더 이상 토끼는 종이를 갉아먹는 대신 다른 것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이후 건강했던 사장의 손자는 숙제나 준비물을 잊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선생님에게 짜증을 내거나 식사에 집착하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식탐과 히스테리가 늘면서 병원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지만, 대학병원에 다녀온 뒤로 아이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며 어느 날 숨을 거두게 된다.

 

토끼는 아이의 뇌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데없이 아들을 잃어버린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아꼈던 전등을 쓰다듬으며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한없이 통곡하지만, 이내 아이의 아버지 역시 토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발목과 팔이 부러지는 것은 물론 회복 중에 또다시 멀쩡했던 왼쪽 발목이 부러지고 엉치뼈가 골절되면서 나중에는 아예 손만 대면 뼈가 부러지는 상황에 도래하면서 병원에서는 내내 재우면서 안정을 취하게 한다.

 

삼 대 독자이자 회사의 유일한 후계자인 아들은 저 모양이 되었고, 손자는 죽었으며, 회사는 이미 쓰러져 남은 것이라고는 빚뿐인 상황이 된 것이다.

 

저주 토끼를 사용한 뒤에 할아버지는 어느 날 그냥 집 밖으로 나가서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
(...)
어둡고 적적한 밤이면 할아버지는 창가의 안락의자에 나타나 토끼 전등을 켜고, 이미 몇십 번이나 들려주었던 같은 이야기를 또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저주일까.
혹은, 축복일까?
32페이지 中
-----

 

그렇게 어느 시점에 머물게 된 할아버지는 자신이 저주 토끼를 사용하게 된 계기를 그렇게 몇십 번이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으로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손녀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들으며, 할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시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결국 꾹꾹 눌러 참는다.

 

할아버지가 기억을 떠올리고 사실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더 이상 그러한 자기 집안의 가업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
내가 저 창가의 안락의자에 앉게 될 때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자식도, 손자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이 뒤틀린 세상에서, 그것만이 내게 유일한 위안이다.
34페이지 中
-----

 

 


저주 용품을 만드는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슬픔과 허탈감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수없이 반복되는 이야기, 그리고 어느 시점에 갇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삶은 가업을 개인적인 용도로 쓰지 말라는 경고이자, 또 한편으로는 은혜에 대한 복수로 여겨져 복잡한 감정을 시사한다.

 

사실 관점에 따라 은혜 갚은 까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적용되기도 하는 이 이야기는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을 건드리는 상황과 사건들이 여럿 발견된다.

 

시대를 잃지 못하고 오로지 장인 정신으로 술 빚는 것에 올인했던 친구, 욕심에 눈이 멀어 경쟁사를 음해하고 헛소문을 퍼뜨려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했던 사장,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며 친구로서 보듬어 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삼대에 걸친 복수극, 그리고 할아버지가 벌인 단 하나의 예외로 인해 후대는 더 이상 남기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다짐 등을 통해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저주 토끼 하나로 빚어진 이 모든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이자 모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머리>

 

신체 기관을 거쳐 버려지는 내 안의 분비물들이 다시금 재창조 되는 이야기는 약간의 껄끄러운 느낌과 함께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된다. 무엇을 먹었는지, 나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또 어떤 형태로 버려지게 되는지 등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 한 가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무관심'을 꼽을 수 있는데, 나에게는 심각한 일이 타인에게는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면서 나에게 큰 타격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일이 결국 한 사람을 종말로 이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느 날 변기를 통해 쑤욱 올라온 '머리'하나, 그것은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며 계속해서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된다.

 

-----
"네 색깔이 변한 것은 내 몸의 상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냐?
"머리"는 대답했다.
"어머니의 몸의 상태는 모두 제 모습에 직접 반영됩니다. 이것은 저의 전 존재가 어머니께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0페이지 中
-----

 

그리고 희끄무레한 머리가 나타날 때면 그녀는 물을 내려 보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머리가 나타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그녀의 변비는 점점 심해졌고 방광염도 생기면서 결국 회사도 그만두게 만다.

 

이 정도까지 되자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다. 그저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뒤로 가족들은 결혼을 권유하게 되고, 선을 보고 결혼을 하면서 얼마 후 아이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머리'가 다시 또 나타나게 된다.

 

-----
"어머니의 배설물은 또한 저의 일부이기도 하므로 어머니께서 어디에 계시든 저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그 아이와 태어난 경로는 다르지만, 저 역시 어머니의 피조물입니다."
44페이지 中
-----

 

그녀는 끝도 없이 나타나는 '머리'를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지만, 배설물은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다며 그녀의 피조물로서 자신은 어디든 있든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머리는 한 번 나타나자 끈질기게 다시 출몰하기 시작하고 화장실을 기피하게 된 그녀는 다시 변비와 방광염이 재발하게 된다. 이제는 무엇보다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하면서 '머리'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변기에 나타난 '머리'를 움켜쥐고 변기 안에서 뽑아내서 비닐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린 그녀는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그녀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또 한 번 무시를 당하게 된다.

 

-----
"뭐, 그냥 내버려 둬요. 별것도 아니잖아?"
48페이지 中
-----

 

그렇게 한번 말려 죽이려 한 뒤로 '머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머리'가 등장하는 악몽도 꾸지 않게 되면서 서서히 기억에서 잊히게 된다.

 

그러나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 딸앞에 '머리'가 나타나게 되고 이에 딸은 엄마에게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말라며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새 딸은 대학생이 되고 그녀는 주름살과 거칠어진 피부를 가진 노년이 되면서 '머리'가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머리'는 젊은 시절 자신의 윤곽을 그대로 빼닮은 모습이었다.

 

비록 자궁과 탯줄이 아닌 대장과 배설물로 태어났지만, 어쨌거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어엿한 성체를 이룬 존재를 말이다.

 

'머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라며 입고 있던 옷을 벗어달라는 부탁을 하며 죽는 날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겠다는 말로 그녀를 설득한다.

 

지겹게 자신을 괴롭혔지만 이제 떠나겠다는 그 존재를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건네주고 이내 그녀가 화장실을 벗어나려던 때 '머리'는 그녀를 막아서며 네가 갈 곳은 그곳이 아니라며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게 된다.

 

이에 항의하는 그녀에게 '머리'는 지금 너에게 남은 것은 늙은 몸뚱어리뿐이라며 이제 누릴 만큼 누렸으니 네가 이 변기 안으로 들어갈 차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이제부터는 그녀가 누리던 것을 이어받아 자신이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늙은 그녀를 변기에 쑤셔 넣은 '머리'는 변기의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려버린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왠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배설물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넘겨버린 가족들과 남편,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결국엔 그러한 '별거 아닌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조금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어쩌면 중간에 그 '머리'를 말려 죽이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곡히 말하는 '머리'의 말에 사람들은 조용히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다시 되돌려 놓음으로써 끝내 결말에 이르게 만든다.

 

자신보다 더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자신의 또 다른 분신(혹은 배설물의 조합)은 이후 그녀를 대신해 그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

 

판타지 장르가 더해져 우리 일상에 흔하게 있는 물건과 생리적인 활동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독특한 이야기였다.

 

 


<몸 하다>
몸 하다: 월경이 나오다. 월경을 치르다

 

피가 멈추지 않은지 20일이 넘어서자 조금씩 어지럼증과 피곤함으로 인해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결심하고 산부인과를 찾는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호르몬에 이상이 생겨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3주 먹고 1주 쉬는 형태로 두세 달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피임약을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달 먹고 약을 끊은 그녀가 이틀 만에 시작된 생리가 이번에도 열흘이 넘도록 멎지 않으면서 다시 약을 먹게 되고, 그렇게 6개월이나 피임약을 먹은 뒤에야 월경이 정상적으로 닷새 만에 그치면서 그녀는 쾌재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눈앞이 핑 돌아 주저앉게 된 날 온종일 헛구역질과 어지럼증으로 종합병원에 가서 제대로 건강검진을 받기로 한다.

 

검진 후 담당 의사는 임신으로 판정하고 같은 병원 산부인과 진료를 하게 되면서 임신 6주 진단을 받게 된다. 성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피임약을 오래 먹은 부작용으로 임신이 되는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과 처방을 따르지 않은 자신을 탓하는 말에 그녀는 낙담하게 된다.

 

-----
"남용하다 부작용 생긴 건 본인 잘못이죠."
88페이지 中
-----

 

빨리 애 아빠를 찾으라며 안 그러면 정말 안 좋아질 거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후 그녀는 일단 학교는 쉬고, 아이의 아빠를 찾아 선을 보게 된다.

 

이는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선이라고 보아 아이 아버지가 되어줄 사람을 찾으라는 가족들의 중론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선을 마음처럼 쉽지 않았고 그중에 그나마 처음 맞선을 본 사람이 가장 괜찮았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으면서 결국 그녀는 아빠 없는 아이를 낳게 된다.

 

그런데 출산한 아이의 모습은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닌, 그저 거대한 핏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 핏덩어리는 혈액으로 와해되고 만다.

 

뒤늦게 그녀의 아이 아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분만실에 들어선 처음 맞선봤던 그 남자는 이미 형태가 사라져 핏물이 그득한 현장만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끝내 아이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을 증명해 주는 월경, 그러나 월경이 멎지 않는 것은 여성들에게 있어 큰 곤욕이자 괴로움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몸의 이상 증세를 말하는 것이며, 실질적으로 매우 큰 부담감과 불편함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월경에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를 심어 성 경험이 없어도 과도한 피임약으로 인해 오히려 임신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은 조금 파격적이면서 어쩐지 어릴 적 한 번쯤 해봤음직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임신을 막기 위한 약이, 되려 임신을 하게 만든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게 다가온다. 현대 과학기술로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아서, 미래 어느 시점에는 왠지 개발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몸서리가 쳐진다.

 

그리고 오로지 이것이 아이 엄마의 문제이며, 현실적인 문제들 또한 홀로 방법을 찾는 것은 물론 여기에 더해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의료기관의 태도는 난데없이 당한 여자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월경이 멈추기를, 자신의 몸 상태가 좋아지기를 바라며 먹은 피임약이 생각보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나 홀로 고군분투하며 지켜낸 막달, 그리고 출산과 동시에 사라진 아이를 지켜보며 그 여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마지막에 그녀가 그토록 처절하게 운 이유는 아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꽤 복잡한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여성들은 월경을 할 때마다 내심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생명을 잉태하고 열 달을 소중히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엄마들에게 부디 이런 원치 않은 임신과 불합리한 사회시스템이 적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마친다.

 

 

일상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재미요소가 한 방울씩 첨가되어 있어, 읽는 내내 궁금증을 자아냈던 <저주 토끼>의 소설들은 내심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동화나 우화를 읽는 듯하다가도 불현듯 나타나는 색다른 요소들이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오랫동안 이 소설책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면 장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통해 상상을 구현해 보고,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대입해 보면 조금 더 생동감 넘치는 소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열 편의 소설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을 꼽아보며 토론을 해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이 될 것 같다.

 

지금 가장 와닿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