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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산 - 똑같은 산, 똑같은 사람
최태영 지음 / 좋은땅 / 2023년 11월
평점 :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를 최선의 선택으로, 다시 한번 운전대를 쥐어 잡을 시간이다."
처음에 제목이 똑산(똑같은 산, 똑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평행이론이나 쌍둥이 같은 소재를 생각했는데, 비슷하지만 좀 다른 성격의 이야기였다. 더불어 어떻게 보면 이 스토리에 아주 잘 맞는, 찰떡같은 제목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똑산! 그리고 평소 대칭의 모습을 하고 있던 똑산이 비대칭이 되는 순간 주인공 정후의 시간이 부딪히며 세대에 걸쳐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똑산의 변화와 시간의 뒤틀림을 소재로, 정후가 만들어가는 고군분투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데, 이러한 정후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로맨스, 추리물, 판타지 등 온갖 장르를 섭렵할 수 있다.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읽고 보면 이 책은 전체적인 구조에 있어 1편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후가 똑산을 이용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 왜 그런 목표를 가지게 되었는지, 어떠한 과정으로 똑산이 관련이 있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 담겨있는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똑산 말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정후가 어릴 때부터 써 온 '일기'로, 이것은 핵심적인 단서이자 문제를 풀어가는데 아주 좋은 힌트가 된다.
마치 자기 복제처럼 나이대별 다양한 정후를 동시다발적으로 만나면서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일기인데, 그들은 하나이지만 또 서로 다른 '나'로 존재하게 되면서 각자의 일기를 쓰며 그날 그날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또 다른 '나'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게 된다.
같은 '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미래가 그려지는 정후의 선택들을 지켜보며, 내가 만약 정후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하나의 재미요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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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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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산은 정후가 가장 좋아하는 산으로, 벤치 앞 저수지에 큰 산이 하나 비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똑같은 산 2개를 위아래로 붙여놓은 것만 같아 산에게 자신만의 별명을 붙여 '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똑산은 정후에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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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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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는 일기를 통해 잊고 살았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는 한편, 중요한 힌트가 되는 정보도 얻는다. 또 일기를 통해 사건이 일어난 일들을 분석해 마침내 원하던 사실에 다다르기에 이른다.
이외에도 일기는 정후가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의 모순과 잘못을 파악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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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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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정후는 현재 서른여섯으로, 투자 분석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현정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딸 영주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 잠시 들린 옛 동네의 골목길에서 아내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급발진하게 되면서 아내 현정이 죽게 된다. 이로 인해 그녀를 그리워하던 정후는 우연히 시간의 교차점에서 과거의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 정후는 그저 닮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너무 닮아있는 상황들에 문득 '설마'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에 본격적으로 상황을 추리하기 시작하면서, 똑산의 원칙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아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아내 현정을 살려내는 것이다. 딸은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오로지 아내를 살리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서 정후는 어릴 때부터 써왔던 일기를 통해 잊힌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물론, 힌트가 될만한 정보들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내 꼬맹이 정후, 중학생 정후, 고등학생 정후, 그리고 성인이 된 다양한 모습의 정후를 맞닥뜨리게 되면서 그는 똑산에 얽힌 비밀들도 하나씩 풀어가게 된다.
그 속에서 정후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삶의 교훈이 되는 이야기와,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추억, 단서가 되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면서 마침내 긴 인내의 시간을 통해 현정을 살릴 수 있는 단 네 번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노력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똑산의 원칙' 완성본과 숨겨진 진실, 그리고 그토록 바랬던 현정의 죽음을 과연 막을 수 있는지, 또 숨겨진 변칙이 정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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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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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산을 읽다 보면 마음 깊이 와닿는 인생 문장들이 눈에 띈다. 살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진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만나보며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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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구의 잘못도 없어. 그저 정후가 생각한 숫자와 아빠가 생각한 숫자가 다를 뿐이지. (...) 그저 정후의 생각과 아빠의 생각이 다를 뿐,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아저씨께서 정후의 생각을 이해해 주시지 않았더라도, 정후는 전혀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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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타인과 나의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 상해 할 때가 있다. 정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아저씨의 행동에 마음이 토라져 있었는데, 이에 아버지가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각자의 생각이 다를 뿐이라며 정후의 눈높이에 맞게 예를 들어 설명해 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어쩌면 우리는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을 쓰며,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생각이 다를 뿐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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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쉽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각한다면 규율이 나오고,
목표를 '쉽게' 달성하기 위해 생각한다면 편법이 나온다.
정후야, 규율과 편법을 확실하게 구분하자.
일기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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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는 약간의 꾀가 나서 처음에는 쉽게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편법을 쓴다. 그러다가 스스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면서 일기에 그런 자신의 목표와 깨달음을 글로 남기며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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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게 싫은 게 아니여. 아픈 게 싫은 거지. 긍께... 지금 니 속에 있는 아픔은 버리고, 목숨은 간직 혀. 알겄냐??
2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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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려 했던 정후를 말리며 노숙자 형님(=성님)이 건네는 말로,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또 하나의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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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를 없애는 방법 따위는 이 세상에 없어. 우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니까. 하지만! 이 후회들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는 있다. 그 다른 것이 뭐냐, 바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야.
(...)
그러니 중요한 것은, 과거의 너희들이 아닌 미래의 너희들이라는 거야! 과거의 후회들을 최선의 선택으로 바꾸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의 너희들 자신이니까. 참 신기하지 않아? 과거의 것을 바꾸기 위해, 미래가 바뀌어야 한다니 말이야."
256~2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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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하는 과거의 후회들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현재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에 절대 바꿀 수 없다.
단지 미래에 똑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현재 최선의 선택으로 미래를 바꾸는 것이 최선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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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서로를 이해 못 한 우리들은 오해를 풀어 갈 대화 한번 나누어 보지 못했고, 결국 후회로 가득 찬 인생만 남게 되었지.
(...)
그렇다. 우리는 서로를 다그칠 필요도, 서로에게서 도망갈 필요도, 서로를 묶거나,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단 한 번,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믿어 주는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이해가 아닌 분석을 하려 했던 것이다.
319~3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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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이대의 수많은 나를 만나지만 정작 정후는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불신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이것이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면서, 정후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고 이해해 주게 된다. 덕분에 자신과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 문장을 통해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를 놓치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타인이 건네는 믿음과 이해에 기대어 정작 가장 중요한 스스로 갖는 믿음과 이해를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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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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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정후가 과거의 정후를 만나며 이야기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나타난 미래의 정후는 정후 자신에게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흐름은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아내를 다시금 살리기 위한 정후의 노력에 맞춰져 있지만, 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정후 자신에 대한 이야기 임을 알 수 있다.
16살 아직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가 되면서 홀로 남게 된 정후는 아픔을 홀로 감내하며 아픔을 숨기기 위해 괜찮은 척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모순을 숨기는 삶을 이어나가게 된 것이다.
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서른여섯의 성인 남자 정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장난스럽고 애정 넘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내색하거나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저 속으로 셈을 새고, 좋아하며, 아내를 골려줄 생각에 혼자 즐거워한다. 그렇게 홀로 아내에 대한 애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게 되면서 평소 자신이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후회로 돌아온다.
이후 아내를 다시 살리겠다는 목적 하나에서 시작된 과거의 여러 정후들과의 만남과 일기를 통해 과거를 되짚어 보는 시간, 그리고 엄청난 인내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마침내 스스로의 모순과 잘못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믿음이 없었던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후회하는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때론 예측 못할 변수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후는 자신의 삶을 방치하거나 타인의 손에 넘기는 행동은 이제 하지 않기로 한다. 후회를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연결될 2부에서는 앞서 똑산에서 궁금증으로 남겨둔 이야기들이 제대로 펼쳐질 예정이다. '작가의 말'에서 맛보기로 살짝 구성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어쩌면 본격적인 이야기는 2부에서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더 나은 내일을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거나 후회로 점철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정후의 삶을 자신의 삶에 대입해 보자. 어쩌면 그 속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