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에서 인간으로 바꾸어준 책 한 권의 기적!"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답게 사는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제는 영화속에서나 볼법한 과거 소위 보릿고개 시절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만나보면서, 새삼 대한민국이 참 많이 발전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고아가 넘쳐나던 시절, 굶주림으로 거지와 도둑이 판치던 시절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도 한데, 그 속에서 쉽게 사는 방법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저자의 삶을 지켜보면서 현재의 나와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홀로 삶을 감당해야 했던 저자. 그래서인지 세상의 이치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도덕이나 배움에 무지했던 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앵벌이와 도둑질이 전부였다.
그러나 특별한 계기로 인해 배움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되면서, 홀로 독학하며 무수한 도전으로 이뤄낸 성과는 가히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결과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인생사 전반이 담겨있는 회고록이자 에세이집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이고, 또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 전하고 있다.
저자의 인생을 총 3부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1부 남대문 지하도의 유령들에서는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2부 펜보다 강했던 총칼에서는 제대로 살아보기로 마음먹으면서 출판사에 취직을 하고 이후 사회 속에서 저자가 새롭게 깨달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3부 작별과 환송회에서는 성질을 죽이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묵묵히 견뎌온 시간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얻은 인간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를 통해 15년간 함께 했던 출판사를 떠나기까지의 이야기와 이 책을 쓰게 된 과정을 짤막하게 만나볼 수 있다.
전쟁고아로 거리를 떠돌며 삶을 이어가던 그가 혼란하고 뜨거웠던 격동적인 시대까지 보내며, 마침내 인간승리를 이뤄낸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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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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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쁜 놈이라는 것, 이제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 내게는 그 두 가지 간절함이 있었다.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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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기억하는 아주 어릴 적 가족의 구성원은 이러했다. 청량리 시장에서 옷감 장사를 하던 아버지, 사진관을 운영하던 어머니, 큰형은 입대를 했고, 작은형은 집을 나갔다. 그리고 누나 둘과 자신, 그리고 젖먹이 남동생까지 총 6남매로 기억하고 있다. 저자는 새엄마가 데려온 아이로 형 혹은 누나들과 배다른 형제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불행의 시작은 어느 날 하얀 가운을 입은 아저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인 사람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되고 급격히 가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저자는 개천 주변 판잣집 중 한곳에 팔려가듯 맡겨지지만 이내 버려지게 되고 울면서 찾은 파출소에 아버지가 찾아오게 되면서 둘은 가동되지 않는 콩나물 공장 안에서 지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는 누워계시다가 그대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또다시 저자는 혼자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까지 잃게 되면서 저자는 남대문 지하도에서 앵벌이, 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한때 '고아들의 꿈'이라 불리는 5.8 보육원에 입소하기도 하지만 두 부대 간에 충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도망쳐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시작된 남대문 지하도의 앵벌이 생활을 하다 단속에 걸려 응암동에 있는 서울 시립 아동 보호소로 들어가게 되지만, 또다시 도망치게 된다. 그러다 다시 아동보호소로 잡혀 오게 되는데, 추운 날씨에 동상이 걸리고, 숨이 차서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면서 치료를 받게 되고, 그때 그곳에서 '만화'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된다.
그렇게 치료를 받은 후 병원에서 나온 뒤에 갈 곳이 없었던 저자는 결국 또 남대문 지하도로 돌아갔고, 남대문시장에서 들치기(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일)을 하는 사팔이, 까불이와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이 생활도 싫어져 홀로 을지 공원에 앉아 있던 그는 초티(초저녁 도둑질)를 보러 가는 10여 명의 도둑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일원이 되고 후에는 도둑질 잘하는 놈으로 유명해진다.
1964년 봄, 종로경찰서 형사들이 하숙집을 덮치면서 소년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다시 트럭에 올라 불광동 소년원으로 향하게 된다.
이렇게 입소와 출소를 밥 먹듯 반복하던 어느 날 만화책 이후로 접할 일 없을 것만 같았던 '책'과 1966년에 소년수들이 머무는 감방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이때는 독서 목록을 방마다 배포하고 보름에 세 권씩 책을 의무적으로 신청하게 하던 시기라 어디에나 책이 굴러다녔는데, 평소에는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가 영화로 본 적이 있는 칭기즈칸이 계림 문고의 '소년소녀 세계명작' 시리즈로 나온 게 눈에 들어와 읽게 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때부터 저자는 굴러다니는 책들, 특히 계림 문고판으로 나온 <나폴레옹>, <워싱턴>, <링컨>, <처칠> 등의 소설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치우게 된다.
어느 날은 발에 뭐가 툭 걸렸는데, <마음의 샘터>라는 책으로 파란색 표지에 길쭉하고 도톰한 양장본이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격언을 엮어놓은 책인 것 같았다.
당시에는 왠지 좋은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짧은 만남이 훗날 새 인간이 되는 계기가 될 줄을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1968년에는 포화상태였던 서울교도소에서 엿장수를 도와주게 되면서 그는 나름의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선물을 주고 싶어 했고, 그때 1966년 소년단에서 잠깐 들춰 봤다가 내려놓았던 <마음의 샘터>라는 책이 머릿속에 뜬금없이 떠올리게 된다.
예상치 못하게 딱 한 번 슬쩍 들여다본 그 책이 왜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불쑥 떠올랐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엿장수 어머님의 도움으로 당시 아나운서였던 임택근이 <새 마음의 샘터>라는 제목으로 다시 펴낸 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엿장수가 출소하고 난 뒤 단숨에 읽어나갔고, 그중 마음에 드는 명언에는 따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어 아침, 점심 식사 후, 잠들기 전 습관처럼 하루 세 번을 읽었다. 표시한 것이 적어도 80개 이상은 되었음에도 꾸준히 반복해서 읽어나가며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실패해서 다시 교도소로 들어올 때마다 그는 <새 마음의 샘터>를 읽으며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반성과 참회로 지난 삶을 씻어 내렸다.
그러다 <새 마음의 샘터>에서 본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의정부 교도소로 이감을 가면서부터로, 조장이 면박을 주거나 꼴사나운 위세를 떨 때, 혹은 일이 고될 때면 하루에도 수십 번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와 같은 <새 마음의 샘터> 속 글귀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공부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저자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변화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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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공부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갑작스럽게.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엄청난 사건이자 변화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스스로 기가 막혔다. 모든 게 <새 마음의 샘터> 때문인 것 같았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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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필을 멋있게 깎아 자신의 이름 '임승남' 석 자를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필을 깎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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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힘을 주지 말자.
종이와 친해지자.
연필과도 친해지자.
새삼 그런 노력부터 해야 했다.
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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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다시금 출소하는 날 교도관이 하는 말이 이번에는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 마음의 변화로 인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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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런 곳에서 만나지 말고 좋은 곳에서 만납시다."
서로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앞날을 빌어주었다. 기분이 묘했다. 전에는 사실 출소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
마음을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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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고 처음 시작한 일은 버스에서 책을 파는 일로, 처음에 한 권을 팔자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에게 한마디를 듣고 나자 얼이 빠져버리면서 그 뒤부터는 버스에 오를 수 없었다.
다음으로 평화시장에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구두 닦는 일도 해봤지만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 다시 도둑질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남의 집 담을 넘다 잡혀 영등포 구치소로 들어가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뭔가를 다시 깨닫기 위해선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구하겠다는 욕심에 나이를 속여 소년수 방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새 마음의 샘터>, <국어사전>, <영어 첫걸음>, <일본어 첫걸음>과 같은 방에 굴러다니는 책이란 책은 다 챙기게 된다.
이때쯤 저자는 자신의 태어난 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나이를 역산해 1949년 소띠라는 것을 알아냈고, 임승남이라는 이름 석 자의 한문을 스스로 짓게 된다.
이후 1년형을 받고 청주 교도소에 이감을 가면서 책 세 권만 허용되면서 <일반상식>, <영어 첫걸음>, <일본어 첫걸음>을 선택해 알파벳을 주로 익히면서 틈틈이 상식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열과 함께 기침이 심하게 나기 시작하면서 새빨간 피를 토하게 되는데, 엑스레이를 통해 결핵으로 판명 나면서 격리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출소와 입소 상황은 마치 격변기처럼 그간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허물어지는 생활이 반복되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는 몇 가지 각오를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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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남들을 가볍게 보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나보다 한살이라도 많은 사람에게는 깍듯이 윗사람 대우를 해주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또 돈을 가볍게 여기는 습관이 생긴 것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
나는 앞으로는 절대 잘난 척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는 삶의 새 각오 몇 가지를 정리했다. 그런 다음 종이에 적어서 책갈피로 끼워 넣었다.
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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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와 실패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와중에 저자는 틈틈이 문자와 상식들을 독학으로 익혀나갔으며, 또 인간이 되기 위해 스스로가 규칙을 정해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수시로 되돌아오는 야수성과 폭력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며 점검했고, 책이야말로 마음의 양식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부탁해 책을 꾸준히 읽어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건 없었다. 출소한지 6개월 만에 결국 또 남의 집 담을 넘고 있었는데, 잘할 수 있는 것이 도둑질뿐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후 결핵이 다시 재발했고, 교도소 내 병실에서 반성과 참회를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사실 이때 저자의 상태는 완치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이런저런 행운들이 겹치며 이곳을 출소할 때만큼은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아마도 그동안의 무모할 만큼 시도했던 수많은 도전들이 이제서야 빛을 발한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사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모든 걸 내려놓게 되는데 덕분에 오히려 병이 나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또 우연히 고대 사학과 3학년을 다니다가 들어온 정 형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저자를 만드는 과정의 시작이 된다. 이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삶에 큰 욕심이 없었기에 어쩌면 더 빠르게 상황의 반전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우연히 만난 <새 마음의 샘터>라는 책은 저자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무지하며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느니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 죽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큰 욕심 없는, 그저 보통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서 실패하면서도 계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교도소 인연으로 정 형 덕에 저자는 쉽게 갈 수 없는 인쇄 공장으로 출역 되게 되고, 덕분에 후에 인쇄 관련 업종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76년 8월 8일 다시 출소한 저자는 정 형을 찾아가게 되면서 출판사 취직 자리를 얻게 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출판사 일에 몸을 담그게 된다.
처음 월급 3만 원으로 시작한 영업 배본사원 업무를 시작으로 그는 평민사, 과학과 인간사 등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후에는 부장 직급과 30만 원의 월급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매일이 신나면서, 힘들 줄도 모르고 즐겁게 일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이런 실전 경험들을 통해 영업방식을 배우고 서점 사장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저자는 그들을 통해 세상살이의 또 다른 면모도 배우게 된다.
그렇게 3년째가 되면서 최인훈의 <광장>, 황석영의 <객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과 같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던 소설책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책 읽는 분야도 점차 넓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인문 사회 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인간쓰레기들은 자신처럼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부모의 사랑도 받고 교육도 정상적으로 받았지만 사람들을 노예나 머슴처럼 다루고 부려먹는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엄청난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 그는 허망함과 동시에 살아가는 보람과 긍지마저 사라졌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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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담장은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담장 자체가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더 큰 절망에 빠뜨렸다.
1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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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되고, 마침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도덕과 이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주민등록증도 만들고 사람다운 삶에 조금씩 더 근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쯤 박정희 대통령의 연임제, 군사정권과 반란 등 우리 사회가 대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도래하게 되면서 그는 수많은 고난과 고초를 겪게 된다.
그 와중에도 신기하게 인쇄소는 계속 돌아갔는데, 단순히 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폭발적으로 읽히는 책들도 생겨나게 된다. 아마 유일하게 서로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매체가 신문 혹은 책이 유일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와중에 노동 항거를 외치고 분신한 '전태일'의 이름을 듣게 되고, 후에 그는 <전태일 평전>을 내는 출판사 사장이 된다.
출판사를 통해 예민한 책들이 출간되고, 유명 인사들이 그와 얽히면서 국가기관에 여러 번 불려 다니며 고문을 당했던 그는 후에 간첩으로 몰려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해 '자전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인 <걸밥>의 출간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시대적으로 간첩으로 몰리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는데, 고아 출신에 교도소를 수십 번 드나들었던 그야말로 거기에 엮어 들어갈 위험이 매우 높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자신의 신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함정의 그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렇게 <걸밥>은 전쟁고아 양아치, 전과 7범 인문사회과학 돌베개 출판사 사장 임승남, 인간승리!라는 타이틀로 신문에도 소개된다.
겨우 그렇게 상황을 모면하고 또다시 닥친 위기 속에서 이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자진해서 마지막 구치소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구치소 생활을 끝내고 나오면서 그는 두 가지를 꼭 하기로 결심한다.
첫째, 글을 쓴다.
둘째, 돌베개 출판사를 떠나야 한다.
이제 정상적인 궤도에서 수익이 잘 나오고 있는 출판사를 돌연 그만두겠다고 하는 그의 말에 오히려 주변에서 저지하지만, 그는 굳건히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인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4월 돌베개 출판사를 떠나게 된다.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아직 젖먹이 막내가 있었지만, 신념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끙끙 거리면서도 글을 써 내려갔고, 마침내 이 책이 출간되게 된다. 가정에도 더 충실하게 되었으며, 부모님의 제사도 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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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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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섯 살 때 전쟁고아로 홀로 내던져진 작은 아이가, 어느새 이만큼 자라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어엿한 출판사의 사장님이 되어 주변을 챙기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까?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배움도 얻지 못해 그저 앵벌이와 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당시의 상황은 어쩌면 무지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는 '책 한 권'을 계기로 스스로 변화하기를 선택했고, 노력했으며, 수없는 도전을 통해 마침내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원래 살던 방식대로 사는,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일찍이 책이 주는 깨우침과 사람답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독학으로 한글과 한자, 영어를 깨우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책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되돌아보며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본 바탕에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여유가 생겼을 때는 여전히 어려운 주변 사람들과 감방에서 만난 지인조차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데, 후에 이것에 대해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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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는 내가 신부나 스님, 목사 같은 부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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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아내는 이제야 알았냐며 말하는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기분에 휩싸였는데, 어쩌면 이런 면모가 바로 저자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사람답게 사는 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먹었음에도 그저 생각만으로 그치는 경우도 부지기순데, 저자는 끝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병실에서도, 실패를 거듭해도 끈을 놓지 않고 무한 반복의 굴레 속에서 마침내 성공을 이뤄낸다.
이를 통해 새삼 책 한 권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자신을 무식한데다가 폭력성을 갖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나운 짐승이라고 칭했는데, 이때의 저자는 무지했던 본능만 앞섰던 상태의 존재였다.
그러다 이내 한 권의 책을 통해 각성하게 되면서, 문자를 배우고, 세상의 이치에 눈을 뜨게 되면서 문명사회의 일원이 된다. 이 밖에도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결혼을 통해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다운 삶으로 향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야생에 버려져 늑대 속에서 산 소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그러면서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이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인간다움'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앞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부모의 사랑도 받고 교육도 정상적으로 받았어도 태도나 행동이 쓰레기 같다면, 과연 그 사람을 '인간다운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한때 저자는 인간의 길을 걷다가 그렇게 죽는 것도 보람 있다고 생각할 만큼 절실함과 맹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그를 사람답게 사는 것에 집착하게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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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답게 사는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도전하는 정신이야 말로 본능대로 살아가는 야수와 다른,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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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삼 물질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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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리는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고 나면 사물도, 세상도 다시 밝게 보이기 마련인데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는 삶에 묶여 살고 있다. 그런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자연스레 내게 밀려온다.
2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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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인간다움이란 무엇이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어쩌면 아주 시의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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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내가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을 바꾸었듯이 독자들의 인생도 바뀔 것이라 믿고 싶다.
2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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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저자가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듯, 많은 사람들 역시 새해에는 다양한 책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