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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는 내내 모아둔 사진첩을 들여다보던 그 어느 날의 내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나의 성장 앨범을 비롯해,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학창 시절, 사진기를 잡기 시작한 때부터 눈에 담기는 대부분의 곳을 사진에 박아두던 당시의 기분과 느낌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Lost time is never found again"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찾을 수 없다)
저자는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흑백/컬러사진들은 모아 이 사진집을 발간했는데, 살펴보면서 그의 삶과 생각,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제약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떠올라 향수에 젖는 한편,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들었다.
사진이 주는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회한처럼 남아있는 시간들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그땐 그랬지'라는 마음과,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총 3부를 통해 자신의 인생과 세상의 모습, 미래의 바람을 담고 있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당시의 세계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또 중간중간 삽입된 저자의 글을 통해 당시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최근의 MZ 세대들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울과 뉴욕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얼마나 큰 변화와 성장을 이뤄냈는지, 또 현재와 닮은 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추천한다.
또 현재는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져 카메라에 대한 수요가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카메라 마니아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필름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그때 그 당시의 모습을 엿보며, 필름 카메라 만이 주는 느낌과 감각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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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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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으로 가수, 사진작가, 저술가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30여 년, 뉴욕에서 40여 년을 살았으며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늘상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 컷 한 컷 세상을 담았다.
이 사진집에는 세상을 여행하며 40여 년 동안 찍은 필름 사진과 미공개 희귀 흑백, 컬러 사진 100여 점 수록되어 있다.
1960년 대 말 뉴욕과 서울을 찍은 희귀한 흑백 사진들과 함께 뉴욕, 모스크바, 파리, 탕헤르, 바르셀로나, 스위스, 쾰른, 모스크바, 태국, 몽골, 베이징, 상하이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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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공부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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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을 진지하게 공부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중퇴였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학교에 들어가 수의학을 공부했는데 내가 너무나도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들 천지였고, 나는 그냥 대학을 중퇴해버렸다. 2학년 때!
그러고는 사진학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학교에서 말이다. 그리고 내게 사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 반려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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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한 푼도 벌 수 없었을 때, 사진은 나를 먹여 살렸다.
프롤로그(1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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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권유로 전공한 수의학은 저자와는 너무도 맞지 않는 분야였다. 덕분에 '사진'이라는 학문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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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순간 포착이다."
사진같이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없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사진을 온갖 기술적인 재주로 찍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 솔직하게 찍어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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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사진을 찍어온 저자가 사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요즘 각종 앱과 포토샵 등의 기술로 왜곡되거나 변형되어 퍼뜨려지는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문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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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포착한 순간들과 그의 인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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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대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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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돌아볼 때, 1960년대 말이 가장 아름다웠고 기억에 남는다. 그때 나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이었고, 가장 에너지 넘치고 낭만적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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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과 1974년 사이, 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우리는 음악과 예술과 지식으로 아이로니컬하고 잘못된 사회를 고치고자 했다. 전 지구인이 평화 속에서 사랑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외쳤다. 아름다운 봄의 꿈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한 번 더 외쳐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18~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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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중퇴하고 사진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니 가족들 반응이 차가웠다. 할아버지는 "사진이 무슨 학문이야?"라고 했고, 아버지는 "사진은 취미 생활이지 직업이 될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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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평판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다. 학문으로써 공부하겠다는 아들과 손자에게 가족들의 반응은 차가움 그 이상이었다.
2. 1960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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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교를 중퇴하고 뉴욕 히피의 소굴, 이스트 빌리지에 살고 있을 때, 외삼촌이 나를 방문했다. 재벌 사업가가 된 삼촌은 내 아파트를 보고 기겁했다. 삼촌은 귀국하자마자, "누님, 대수 큰일 났소. 완전 히피 마약 소굴에 살고 있으니 당장 데려와야 됩니다." 하고 호소했다.
엄마는 내가 일곱 살 때 재혼하고, 나와 헤어졌는데, 삼촌의 말에 어머니 편지가 매주 오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대수야. 제발 한국에 와라. 내가 너 대학교 졸업시켜주고 장가도 좋은 여자한테 보내줄게. 집도 이미 마련해 놓았다. 빨리 온나"
그래서 나는 돌아왔다. 니코매트 카메라를 메고, 고야 기타를 하나 들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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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한국에서, 어떻게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크림, 마리화나를 이해하겠는가? 나는 세시봉에서 연주하고 TBC TV에도 출연했다. 기타 치고 하모니카 불고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나의 자유분방한 생활에 결국 엄마가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 언덕 위의 달동네로 쫓겨났다. 미래가 안 보였고, 돈도 없고, 음악도 희망이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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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음악과 사진을 선택했더니 결국 남은 것은 가족들의 포기와 현실적인 어려움이 다가왔다. 당시 그에겐 돈도, 희망도 안 보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3. TV 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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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당시 가요계에 영향력이 대단했던 이백천 씨의 도움을 받아 텔레비전에 출연하게 되었다.
첫 출연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관객들은 어이없어 했다. 할 말도, 생각도 잊은 듯 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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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내가 맨 처음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기뻐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였다.
어머니는 내게 음악 활동을 그만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별 수 없이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그 뒤로 TV 출연 제의가 더 많이 들어왔고 여러 가수들과 함께 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누구와도,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자리와 음악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노래를 하긴 했지만 화성에 있는 것 같았다. 관객들도 나를 화성인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관객들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긴 머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그렇게 무한한 고독과 소외감에 싸여 있었다.
130~1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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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길 위에서 바라본 시선 ① :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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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는 백만장자가 제일 많은 도시로, 부동산이 가장 비싼 지상의 수도다. 그 외에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이 또 있는데 바로 홈리스다. 맨해튼 중심가인 30번가에서 50번가 사이에만 해도 수천 명이 있고, 전 뉴욕시를 따지면 수만 명의 홈리스가 있다.
문제는 이들의 심리적 피폐함인데, 대부분 혼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고독이라는 병균에 감염되어 정신병 초기 상태에 들어서 있다.
공무원들의 관점은 절망적으로 "홈리스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 자신들이 인간 사회에서 탈퇴하여 낙오자 생활을 선택한 것이니 아무리 돈을 써도 낭비이다. 결국 그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마약과 알코올로 나을 채울 것이다. 구체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홈리스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비단 뉴욕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1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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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풍경을 담고 있는 사진 속 주제는 '고독'으로 그 첫 번째는 '홈리스'다. 가장 부자가 많은 도시에 집이 없는 홈리스 역시 가장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들은 국가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늘상 고독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이는 비단 뉴욕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으로,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큰 사회적 문제다. 그렇기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고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5. 길 위에서 바라본 시선 ② : 거리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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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음악은 신과의 대화이다.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영혼에게는 무한하다.
음악가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 속에서 기쁨을 느낄 뿐이다. 나는 타고난 예민함과 음악성 때문에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크나큰 고통만 불러오는 이 길로 오게 되었다. 나 자신도 지겹고 음악적 열망도 지겹지만,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사랑이 마약이라면, 음악은 마약 중에서도 으뜸이며 거울 속의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게 한다. 음악 때문일까. 거리의 악사를 보면 늘 나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거리 악사가 가장 많은 곳은 맨해튼의 거대한 지하철역이다. 대부분의 거리의 악사들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많은 훌륭한 음악인들이 거리에 있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적고, 그것은 내 마음을 더욱 고독하게 한다.
186~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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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등 해외를 나가보면 유난히 거리의 악사들을 자주 마주치곤 하는데, 그들은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찾기 위해, 대중과 만나기 위해 거리를 전전한다. 아니 어쩌면 마약 같은 음악을 하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며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노고와 고생을 알기에 어쩌면 저자는 그들을 보며 고독한 마음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6. 세상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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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주위의 사건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클래식 음악과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존 레논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항상 고통 속에 있다.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아무도 삶의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답을 주진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웃들에게 더욱더 깊은 고통을 주도록 강요하는 삶이라는 이름의 틀에 갇혀 있다. 삶이란 진실로 아이러니하고, 나 자신 또한 아이러니이다.
200~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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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뿐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주위의 사건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나름의 고통을 짊어지며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삶=고난'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답을 찾을 수 없는 진실을 찾아 허우적거리며 끝없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혼자서 걸어가야 하기에 인생은 고독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7. 다음 세대를 위한 그의 바람은, 오로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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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인간의 악한 행위는 끝을 모른다. 이것을 'Catch-22'라고 한다. 악을 강한 악으로 대응하고, 강한 악을 더욱 강한 악으로 대응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보복의 연속이다. 돌고 도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는 결국 바닥을 치고 '멸망의 밤'을 초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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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인류가 일어나야 한다. 더 이상 학살은 안된다고, 더 이상 폭력은 안된다고, 더 이상 종교 분쟁은 안된다고, 더 이상 인종 차별은 안 된다고,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고, 손을 들고 평화의 구호를 외쳐야 한다.
276~2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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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다음 세대인 딸 양호를 생각하며 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계 각국의 전쟁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No War"는 언제쯤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오랜만에 필름 사진들을 보며 더하거나 변형되지 않은 날것을 통해 사진이 전하는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도시와 거리의 모습이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날것의 모습이 어떠한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순간 느껴지는 약간의 이질감 혹은 새로움, 그리고 필름 카메라만이 주는 날것의 느낌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나 풍경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그리움과 반가움 등의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어쩌면 이는 사진이 주는 고유의 감성이 우리의 추억을 소환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던 1960년대이지만 푸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던 사진폴더를 조만간 다시 한번 열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마음속 저장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하나하나 풀어보며 오늘의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로이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