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렇게 귀엽게 늙으면 좋겠어
최승연 지음 / 더블:엔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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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뭔가 훌훌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사는 나에게 이방인으로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늘 궁금증 그 이상이었다. 그건 아마도 좁은 울타리 안에서 한정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너른 세상에서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찍이 이방인의 삶을 살며 60세에는 뉴욕에서 환갑을 맞이할 멋진 계획을 세우고 있는 저자의 삶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결혼과 출산 후에도 여전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 최승연, 혹은 옐로우덕이라 불리는 그녀. 아트 디렉터, 연극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노마드의 삶을 살았고, 현재도 글과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며 사는 이방인의 삶에서 오랜 고민과 남다른 여유, 자유로움이 한껏 느껴졌다.

 

더불어 삶을 살면서 우리 모두가 치열하게 생각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공통된 의문을 비롯해 정착하지 않고 떠돌며 사는 삶에서 느껴지는 남다른 그녀만의 고민과 경험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는 이방인이란 무엇이고, 이방인으로서 사는 삶에 대한 여러 고찰을 담았는데, 이방인에 대한 여러 문장들을 읽으며 한곳에 정착하고 산다는 것과는 별개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정착하고 사는 이들조차'이방인'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떠돌아다닌 길 위의 삶에 관한 일지이자 현재와 미래의 다짐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으로, 여행자로서 겪은 일련의 경험들을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들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현재 나이가 50세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열정과 삶에 대한 고찰이 엿보이는 것은 물론, 꾸준히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는데, 그녀의 바람처럼 후에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바라는 삶이지만, 현실이 되는 순간 매 순간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 당할 수도 있는 떠도는 삶을 이제는 은연중에 즐기는 것처럼 보이던 저자의 삶을 엿보면서 색다른 문화와 경험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다문화 가정, 여행자의 삶,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과 색다름, 여행하며 만난 여러 인생들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짧게 여행하는 것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오랜 시간 여행자로서 산 자만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현재는 네덜란드의 작고 예쁜 도시 덴 보스에서 6세 연하 남편 네덜란드 남자 카밀, 딸 미루와 잠시 정착 중이라는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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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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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저자)
-1973년생으로 무대 디자인 전공.
-옐로우덕이란 별명으로 글과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카밀(남편)
-1979년생으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소설과 시를 쓴다.

 

■미루(딸)
-2013년생으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오랫동안 부모를 따라 노마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카밀과 승연은 2009년 말부터 독립적 자원봉사 세계 여행 '채리티 트래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근 14년간 노마드, 즉 여행자의 삶을 살았다.

 

팬데믹으로 공황이 봉쇄되어 태국에서 5개월을 지내고 2020년 여름, 네덜란드로 이동하게 되면서 지금은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소도시 덴 보스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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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한국인이고,
여전히 여성이며,
여전히 키가 작고,
여전히 남편과 딸아이와 살며,
여전히 곱창을 좋아하지만 없어서 못 먹는 73년생 최승연이라고.
.
.
.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
여전히 이방인이라고.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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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많은 나라와 도시를 떠돌며 겪은 문화, 사람, 풍경들이 가득하다. 이는 그녀가 직접 그리고 찍은 사진들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모습들과 달리 깊숙이 들여다볼수록 왠지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모든 것들은 저자의 생활상 속에 녹아든 풍경이 아니라 오롯이 관찰자로서 담고 있는 듯해 보여 더 그렇게 느껴지는데, 그녀가 말하는 '이방인'과도 어쩐지 맞닿아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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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정착을 거부하고 떠돌아다닌 내게 '이방인'은 나를 규정하는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 단어를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
문득, 아니 종종, 타인에 의해 느끼기도 하고 오히려 자발적으로 되기도 한다.
(...)
우선 '이방인'이란 답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며 정리하고 싶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란 사전적 정의 외에 무엇이 날 이방인으로 만드는지 본질을 사유하고 싶다. 그러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금의 절박함과 조급함이 그저 한낮 아줌마가 부리는 히스테리가 아닌 창작의 동력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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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자발적 선택에 의해 정착이 아닌 떠돌이 생활로 살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면에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절박함과 조급함이 내재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있어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방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답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어쩌면 이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 다른 네덜란드의 시댁 문화라던가, 여전히 이민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문서와 절차, 여행자는 알 수 없는 이중적 잣대의 문화 등은 그래서 이 책에서는 조금 부수적으로 다가온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삶과 죽음과 더불어 저자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씩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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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는 또 다른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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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관광지보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더 매력을 느꼈다. 치안이 불안한 곳도 있지만 거리를 지날 때 느끼는 인생의 활기는 여유와 나른함으로 가득한 다른 지역과는 성격이 확실히 달랐다. 고요한 리스본을 그나마 뛰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민자들이다. 재미나게도 난 리스본 외 다른 도시에서도 이민자 지역을 즐겨 찾았다.
(...)
아마 동질감이었을 거다. 어딜 가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떠난 자의 죄책감을 짊어지고 억척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이민자야말로 한 도시의 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

56~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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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느 도시를 가도 이민자 지역을 즐겨 찾는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동질감에서 비롯한 떠난 자의 죄책감과 억척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더불어 저자는 이민자야말로 한 도시의 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절박한 만큼 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에너지가 도시를 매력적이게 만들고 활기를 띠도록 만들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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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국 앞에 작아지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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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권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내게 '이민'이란 단어는 에베레스트를 능가하는 아주 높은 산이다. 복잡한 서류는 물론이고,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태도만은 고압적인 이민국 지원 앞에서 싱거운 변죽을 부릴 때마다 나는 상상 이상으로 작아진다.
(...)
지금 나는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아이'의 부모

 

내 모든 정체성이 '이민자'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지는 순간들

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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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네덜란드에 정착하며 사는 동안 그녀의 신분은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아이'의 부모다. 그리고 그렇기에 머무를 수 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그녀는 '이방인'이다. 친절한 미소 뒤에 언제든 이민국의 변죽에 나가떨어질 수 있는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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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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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해?"란 질문에 "잡초 뽑아!"란 대답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까.

현재 내 활동은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체류권을 획득했으니 네덜란드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지만 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언어가 가로막고 텃세가 가로막고 팬데믹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나는 평소 하던 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요즘 뭐해?" 하면 " 하던 거 해" 한다. 지금의 내 일은 잡초 뽑기와 같을까. 훗날 필 꽃을 위해 열심히 그 길을 닦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조급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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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는 초라한 답변밖에 할 수 없지만, 이방인의 삶에서 인내는 필수다. 현재 활동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평소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조급하지 않고 당당해질 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길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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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너머의 사람=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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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에 얇은 선으로 그려진 국경은 나와 타인을 가르는 모든 걸 생각하게 한다. 어렸을 때 내 또래는 교실 책상 가운데에 선을 긋고 짝꿍에게 여기 넘어오면 죽는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자랐다. 운동장의 모든 땅따먹기는 선을 그으면서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은 선 넘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했고, 민속촌의 줄타기 꾼은 오늘도 아슬아슬 몸의 균형을 맞추며 선을 걷는다.

 

나와 타인을 가르는 그 모든 선, 그게 성별이든 국적이든 인종이든 나이든, 언어, 지역, 성적 취향, 학벌, 계급, 통장 잔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 무엇이든 간에, 그 선 사이로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상황에 심심한 입맛을 다신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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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개념을 넘어 어쩌면 나와 타인을 가르는 그 선이야말로 너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선 너머의 사람=이방인'이라는 공식은 나와 다른 어떤 의견, 취향, 인종, 문화 모든 것에 해당된다. 어쩐지 입안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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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을 넘어선 자 또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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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크리스 도퍼다. 그는 이 세상에 없다. 2019년 8월 25일 밤 11시 10분에 만 47세의 나이로 다시 오지 못할 레테의 강을 건넜으니, 불러도 대답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 된 지 벌써 3년 반이 흘렀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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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자신이야말로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라 말하던 그 옆에서 친구랍시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그의 고독을 다독이지 못했던 철없는 내가 아쉬울 뿐이다.

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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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룸메이트가 되면서 절친이 된 크리스 도퍼는 그야말로 평생이 '생존'이었다. '낭성 섬유종'으로 평균 수명이 20세 아래라는 학설을 넘기고 살아남았으며, 이식 과정 중 '간암'과 '대장암'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 오토바이가 SUV와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겪었음에도 살아남았다.

 

이후 야속하게도 폐암을 겪으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영원한 이방인'이 되었지만, 그는 그토록 수많은 죽음을 맞닥뜨리고 생존하는 무수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라 말했다.

 

어쩌면 매 순간이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패턴이 다른 스스로가 '이방인'처럼 느껴져서는 아니었을까? 더불어 결국 저자는 이 세상에 없는 그를 '영원한 이방인'이라 말함으로써 이방인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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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밖에서 행복한 자,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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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모임을 다녀온 후 꽤 오랫동안 상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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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동화될 수 없던 난 서서히 그 속에서도 이방인이 되었다. 주변에서 겉돌며 자기 검열에 들어갈 즈음, 나는 상념을 멈추고 결심했다. 어떤 부류로 날 규정하지 않겠다고. 그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방법이 다를 뿐, 그들을 그들대로 표현할 것이고, 난 '히피'란 카테고리가 아닌 나로서 표현할 거라고.

 

손사래 치며 규정되는 걸 거부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했던 카테고리는 있다. 난 내가 '연극인', 혹은 '여행자'로 불릴 때 편했다. 그 단어에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연극 작업을 하지 않으니' 연극인'도 아니요, 여행하지 않으니 '여행자'도 아니다.
(...)
내 주변엔 한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 단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지키기 위해 투쟁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에는 카테고리 안에서 행복한 사람과 카테고리 밖에서 행복한 사람, 두 부류가 있나 보다. 난 후자다.

153~1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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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이방인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어떤 부류로 규정짓거나 특정 소속에 머무르고자 애를 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나를 속이며 행복하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스스로 행복하다 느낀다면 세상이 정한 규율이나 카테고리, 집단에 스스로를 굳이 구겨 넣을 필요는 없다. 그저 이방인으로서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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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라는 꼬리표에 집중하느라 정작 진실을 보지 못한 무지함에 대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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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도시에선 딱히 '이민자', 혹은 '이방인'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을지도 몰라. 모두가 이방인일 테니까.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길거리의 인파 속에서 튀지 않고 자연스레 섞일 수 있는 물리적 자유는 덤이었다. 최소 3개의 인종과 언어, 문화가 한곳에 어울려 산다는 사실은 이상하리만큼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언젠가는 떠날 여행자'가 가지는 얄팍한 관찰력과 순진함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역시 난 무지하고 무식했다.

1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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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렀던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일화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바라는 대로 보이고, 들렸던 꿈같은 시간들은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이민자 혹은 이방인이라는 꼬리표에 집중하느라 결국 제대로 된 진실을 보지 못한 무지함과 같은 일화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살아가면서 어쩌면 쓸데없는 것에 너무 집중하느라 진짜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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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들마저 문득 먼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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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게 등을 돌리고 있는 카밀이 한없이 먼 이방인으로 느껴졌다. 난 과연 그의 말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이 나라에서 애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밀이 한국에서 관계를 지속한 한국인이 없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문득 카밀과 내가 한국어도 네덜란드어도 아닌 영어로 소통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1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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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가까운 이들이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물며 국제결혼을 하고 다른 나라말을 쓰는 부부가 그런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다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한국어도 네덜란드어도 아닌 영어로 소통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서 어쩌면 제3국 언어인 영어는 그들에게 있어 중립국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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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추구하는 나는 언제 어디서든 이방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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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욕망이 함축되어 있는 집으로부터 과감히 자유롭고 싶다. 지금까지 쓴 글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 나는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것 같다. 
(...)
난 내가 머무는 모든 장소를 내 집으로 만든다고, 어디서 살든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이라고 배포 있게 말한다.
(...)
난 언제 어디서든 이방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구나. '이방인'이란 정체성이 주는 수많은 현타와 불안과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내 깊은 무의식 근본에서는 이미 이방인이 될 계획을 세우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다 계획이 있었구나.

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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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면서 이방인에 대한 다양한 정의, 새로운 관점들을 하나씩 발견한다. 그리고 이내 자신은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를 추구하고 있으며,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이라고 배포 있게 말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언제 어디서든 이방인이 될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깨달으며, 수없이 많은 불안과 현타에도 무의식 근본에는 이방인이 될 계획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떠도는 삶이 머무르는 삶보다 무조건 좋다 아니다를 판별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확고히 옳은 것임은 알 수 있었다. 설사 그것이 두렵고 불완전할지라도 말이다.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면, 저자가 찾아 나서는 이방인의 삶에서 그 해답을 조금은 얻을 수 있었기를 바란다. 여행을 통해 수없이 많은 나라와 여러 인생,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서 항상 관찰자로 지켜보았지만, 결국 저자가 내린 결론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안에 해답이 있었다.

 

다시 말해 내 삶을 규정짓고 정의 내리는 것은 타인도, 외부의 환경도 아닌 결국 '나'였다.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불안과 절박함을 그저 묻어두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그것을 동력으로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해 보자.

 

현실의 어떤 조건(나이, 사는 곳 등)에 살고 있던지 결국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또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고 그 방향과 속도로 전진한다면 보다 씩씩하고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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