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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날까지 - 세계적 명상가 홍신자의 인생 수업
홍신자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9월
평점 :
우리는 매일 자유로워지길 꿈꾸고, 마음껏 삶을 즐기기를 바라지만, 실상 현실은 여러 조건들에 갇혀 어느 것 하나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은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빠듯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반복되는 일상에 그저 내 몸을 내맡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은 하늘을 찌를 듯 짙지만 실천력에서만큼은 늘 꽝을 자랑하기에 언제부터인가 진짜 원하는 자유로움은 무엇인지, 자유로움이라는 것의 가치는 무엇인지, 정작 그것의 핵심은 잊어버린 듯하다.
그렇게 자유로움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풀지 못한 숙제처럼 가라앉아 어딘가 찜찜함과 껄끄러움을 늘 담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인생에 충만함을 느끼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과 꿈이 있지만, 실상은 현실에 안주하는 면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단지, 이 현실을 탈피하는 것만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은 아닌데, 스스럼없이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 또한 자유로운 삶인데 너무 하나의 고정관념에만 매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했다.
83세,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나이에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써 내려간 그녀의 삶에서 우리가 겪어온, 앞으로 겪어나가야 할, 찾아야 할 우리의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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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서도 영문학을 계속 공부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막상 도착하고 나니 이미 그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단 한가지만이 분명했다.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내가 가진 유일한 명제였다.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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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과 압박이 심했던 집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떠난 미국, 처음에는 그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다는 명제 하나로 방황하며 지냈다. 그러다 현대 무용의 대가였던 알윈 니콜라이의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숙명처럼 춤이 다가왔고 '저것이다!'하는 깨우침이 순간적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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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엎드린 채로 꼼짝 않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춤을 출 것이다. 모든 것을 터뜨리고 분출하는 춤을 출 것이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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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으로 건너간 지 꼭 일 년 만의 일이었고, 그때 나이 만 스물일곱이었다. 늦은 나이였기에 시작 역시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온몸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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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잘못짚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용이다. 이것뿐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마음먹지 않았던가. 포기하진 말자.
(...)
나는 꼭 성공하고 싶다. 성공해야 한다.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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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8년 동안 무용가라기보다는 '운동선수'로 살면서 근육을 찢었고, 덕분에 '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절실히 느끼고 발견할 수 있었던,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와중에도 경제적으로 궁핍했기에 각종 아르바이트와 허드렛일을 병행하며 니콜라이 무용 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 무용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치고 뉴욕 예술 학교에서 안무 공부까지 마치게 된다.
저자는 춤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거나 울부짖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살아온 인생 깊숙한 내면에 허무의 씨앗이 단단히 뿌리내렸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전쟁의 한가운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시절을 넘어 해방을 맞은 후 남쪽으로 내려왔음에도 죽기보다 더 힘들었던 세월, 그 외에도 심장병을 얻어 10년 가까이 병석에 누워있다 세상을 떠난 언니의 일 등이 차곡차곡 쌓여 울분이 되고 허무가 되지 않았을까?
무용 수업이 끝나고 마침내 저자가 나만의 작품을 만들게 되었을 때 탄생한 춤이 바로 <제례>인데, 이는 무용으로 언니의 못다 핀 생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만들게 된 춤이다.
이 춤을 1973년 3월 신인 안무가를 선발하는 뉴욕 '댄스 시어터 워크숍'에 올리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는데, <뉴욕 타임즈>와 무용 전문지 <댄스 매거진>이 크게 다루어줌으로써 주목받게 된다.
또 같은 해 9월에는 황병기 선생의 주선으로 한국에서도 <제례>를 올리게 되는데, 그 공연은 저자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제례>는 이처럼 무용가로서의 그녀의 인생을 바꿔준 것은 물론 당시 서울대 2학년생이었던 철학과 교수의 인생도 바꿔놓았는데, 그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죽음을 깊이 느끼게 되면서 결국 전공을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바꾸었다는 일화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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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렇게 <제례>를 보고 인생의 행로를 바꿨듯, 내가 인도로 떠나게 된 것도,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모두 <제례>와 무관하지 않으니 이 작품이 나의 행로도 바꿔놓은 셈이다.
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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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제례>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성공을 이루었지만 이후 춤이란 것이 점점 알 듯 모를 듯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영원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내 춤 속에 무엇을 담고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어렴풋하기만 할 뿐 도무지 그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언제고 한계가 찾아오리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문득 찾아온 이 회의감은 어쩌면 너무 앞뒤 안 가리고 맹렬히 질주한 탓에 생겨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결국 저자는 나의 삶 하나를 끝내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인도로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특히 인도로 떠나는 것에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힌 건 1975년 인도 문화부 초청으로 방문하면서였는데, 이제 춤 이상으로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춤을 시작했듯이 자유롭게 그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될지라도 결코 후회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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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미국 생활 동안 나는 자유를 누렸다고 생각했었다.
(...)
그러나 성취해야 할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허탈감과 함께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이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
왜 사는가, 그리고 왜 죽는가.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위태롭게 서 있는 허술한 집 한 채에 불과했다.
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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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미국 생활을 하며 앞을 향해 나아갔던 모든 순간이 와르르 허탈감으로 다가오면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렇게 인도에 도착한 그녀는 처음에 도를 깨우쳐 보겠다는 엄청난 욕심을 품고 도통에 좋다는 고행이란 고행은 다 경험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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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앓고 있는 심각한 '병자'였다. 그러나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마음과 깊은 대화를 해보지도 않고 오로지 머리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춤이란 무슨 물건처럼 홀가분하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처럼, 내게는 움직이고 싶은 욕구와 본능이 있음을 자각했다. 때로는 격렬하게 이는 몸의 율동이 나를 걷잡을 수 없이 취하게 만들었다. 다시 춤을 출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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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마침내 자신이 오로지 머리로만 판단한 판단 착오였음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금 춤을 추기를 열망한다.
어느 날은 길가의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소리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몸이 조금씩 들먹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것은 춤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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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춤을 저버릴 수 없고,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하리라는 것을 천천히 예감하고 있었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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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춤을 저버릴 수 없음을 깨달을 때쯤 인도에서 첫 번째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오쇼 라즈니시로 저자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1976년 7월 저자는 그의 산야신(제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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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타고난 무용가다. 결코 무용을 중단해선 안 된다. 계속해라. 너에겐 춤이 곧 구도의 길이 될 것이다. 너는 그 길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가야 한다."
(...)
그가 해준 말은 짧았지만 그 순간의 커다란 깨우침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춤을 추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춤을 보이지만 춤추는 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보는 자의 영혼에만 가닿을 뿐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 춤이 내 것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 스스로를 내세운다면 그전에 춤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춤은 증명하거나 제시하기 위해 추는 것이 아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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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춤은 완전한 '자기 없음'이 되어야 했다. 관객을 의식해서도, 나를 의식해서도 안된다. 오직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만이 몸에 실려 저 영원의 율동으로 남게 해야 한다. 그것은 곧 무아의 상태다.
(...)
춤추는 자와 보는 자 사이에 말없이 흐르는 감동은, 자기를 완전히 놓아버린 사람의 자유의 희열을 교감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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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시가 전한 깨달음을 통해 저자는 마침내 춤을 통해 감동과 희열, 자유를 느끼게 되고 무아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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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에 대한 자세를 완전히 바꾸었다. 확고한 의식이 생기자 회의나 갈등 같은 것은 사라졌다. 나는 드디어 춤과 자유롭게 만나게 되었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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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춤과 새롭게 만나게 되면서 자유를 얻게 된 저자는 라즈니시와 함께 한 2년을 통해 에고를 부수고 죽이는 연습의 기간을 보내면서 1979년 고결해진 영혼과 귀중한 깨달음을 안고서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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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춤의 정의는 다시 조금 달라졌다. 춤은 나를 비워줄 뿐만 아니라, 80대가 된 지금의 나에게는 하나의 자유로운 놀이와 같다.
(...)
춤은 현재 나에게 지극히 당연한 생활의 일부다.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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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제 춤이라는 것은 의무감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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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변화는 지금의 저자에게 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져다주었는데, 나를 비우는 행위, 지극히 자유로운 놀이와 더불어 생활의 일부가 된다. 어쩌면 춤을 추는 행위가 '자유' 그 자체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언제든 어디로든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물론, 미련도 없고 그저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희망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장소도 영원하지 않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짐도 많이 줄어 최소한만 챙기고도 언제든 이동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웃는 것은 물론 자잘한 억압들이 맞물리며 커다란 구속을 느끼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덕분에 항상 미련 없이 떠날 생각을 하는 것은 물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실컷 웃는 것'이 꼭 하고 싶은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포부를 당시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도라는 나라에서 마침내 풀 수 있었는데, 바로 인도 '웃는 명상'을 통해 실현이 된 것이다. 덕분에 이후로 다시는 웃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런 미련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왠지 한 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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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해 웃어버렸던 그 시간은 고통도 번민도 없는 무아의 순간이었다.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텅 비어버린 순간 내가 느꼈던 크나큰 희열을 자유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그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는 자유를 경험했다. 그 지독했던 웃음을 통해 나의 병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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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병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는데, 어쩌면 이것은 감정을 억누름으로써 생긴 마음의 병이 아닐까 짐작게 한다. 앞서 읽은 내용에서 확인했듯이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든 시기도 보내고, 웃는 것조차 억압당하며 살다 보니 속으로 삭히는 것이 더 습관이 되지 않았을까?
다행히 춤을 통해 이것을 발산하면서 응어리도 풀고 병의 차도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서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낸 내용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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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바치는 슬픔의 한풀이였던 그 무대를 위해 소리를 연습하기도 했다. 즉 우는 연습이었다. 얽매여 있던 감정들이 부서진 댐에서 솟구치는 물처럼 자연적으로 폭발하듯이 튀어나왔다. 나의 첫 무대이자, 첫 울음 연습이었다.
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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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의 뒤를 이어 1975년에 국립극장에서 <미궁>이라는 작품을 올리게 되었을 때 나는 감정의 껍질을 한 겹 더 벗겨냈다. <미궁>은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과 함께한 작품으로 <제례>가 슬픔과 울음을 표현했다면 <미궁>은 웃음과 울음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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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슬픔과 울음을 표현했던 <제례>와 웃음과 울음을 표현한 <미궁>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제례>의 경우 더 잘 울기 위한 연습이 필요했는데, 이 작품 덕분에 언니에 대한 슬픔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한 춤을 선보였는지를 짐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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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례>와 <미궁>을 통해 감정적으로 치유되고 자유로워졌다. 그때 내가 가진 슬픔과 웃음을, 아낌없이 최선을 다해 몰아 썼다. 눈물은 참으면 병이 된다. 울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라도 실컷 울어야 한다. 웃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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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무언가가 쌓이지 않도록.
감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삶에 어떠한 고통도 없을 것이다.
77~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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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울음과 웃음을 번갈아가며 방출함으로써 그녀는 자유로워지고자 했고, 실제로 자유로워졌다. 감정의 치유가 일어났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온통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감정이 멋대로 풀어지도록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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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순간에 그대는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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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수행하던 시절 만났던 또 다른 스승인 니사르가다타는 이렇게 묻고 대답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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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불행하다의 느낌조차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이따금 꿈이 피어올라 스스로 행복하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느끼겠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뿐이다. 너는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꿈을 꾸듯이, 그렇게 살면 된다. 인생은 환영이기 때문이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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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환영이라는 말은 어떤 것에도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어떤 일에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갑작스레 떠난 인도였지만, 어쩌면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은듯하다. 춤을 추는 데 있어 진짜 중요한 가치와 삶을 사는 데 있어 가져야 할 도전의식! 무엇이든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사는 것과 같은 삶의 진정한 진리를 얻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후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의 이야기에는 마흔의 뒤늦은 나이에 한 결혼과 뉴욕 빈민가의 허름한 아파트 6층 꼭대기 방에서 신방을 차리고 산 7~8년의 세월에 대한 이야기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치열한 전쟁 같은 순간과 따뜻한 평화가 공존하는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또 다른 현실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혼자 지내야 하는 기질을 벗어난 결혼생활은 괴로웠고, 출산으로 더 어려워진 경제적 상황은 최악을 향해 치달았다. 그러다 결국 6개월쯤 딸 희를 서울 시부모님댁으로 보내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에 몸부림치며 견디는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렇게 흘러온 삶의 흔적들을 지금 되돌아보면 자유로워지고자 애썼던 흉터들로 어쩌면 우리 역시 경험의 특정 부분에 남기고 있는 자잘하고 큰 삶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남편과는 이혼을 하고 아이와는 떨어져 지내며 다시금 춤을 추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이는 너무 어린 시절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고 적응을 하지 못하면서 그대로 시부모님댁에서 자라게 된다.
그렇게 지난 회환을 돌아본 후 저자는 시간을 현재로 되돌리면서 무르익은 현재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어쩐지 편안함과 자유로운 모습이 느껴져 문득 나의 노년의 삶도 이렇게 물들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한 번의 이혼과 한 번의 재혼을 거치며 아무런 욕심 없이 시작한 사랑. 그리고 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던 것이 만들어낸 지금의 모습. 70대에 결혼을 하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인 것 같다고 느끼게 해준 지금의 남편 베르너 사세와의 재혼은 어쩌면 앞선 일들을 겪었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닐까 싶다.
그와 재혼한 지 12년이 된 지금, 각자 아무 구속 없이 생활하다가 식사할 때, 잠잘 때 다시 만나고 서로 동행하면서 사는 삶은 어찌 보면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행복하고 편안한 노년의 또 다른 삶을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그녀의 삶을 복귀해 보면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한때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고자 미국행을 택했던 순간, 춤으로 성공하고자 앞만 보고 보냈던 열망 가득했던 순간, 그리고 회의감이 들어 돌연 인도로 향했던 순간, 결혼과 육아로 전쟁 같은 날을 보냈던 순간들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한 단편들이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흉터 같은 순간들과 같은 시간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끊임없이 겪어내며 마침내 83세가 된 지금 그녀 모습은 어쩐지 가볍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절망과 열정, 회의, 열망에 사로잡힌 우리들은 그녀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나요?"라고.
그녀가 주는 해답은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 그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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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늘 열려 있어야 인생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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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특별함과 이상함은 내 안에서 비롯된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에서 생겨나는 것들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자유로운 선택과 놀이일 뿐이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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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늘 열려있는 오픈 마인드를 꼽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생겨나는 특별함과 이상함은 제쳐두고 그저 자유로운 선택과 놀이를 즐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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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사랑을 하나씩 찾자.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는 공부를 하자. 사랑을 베푸는 것이 권력이나 돈을 베푸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성현들은 가르쳤다. 우리 생명의 근원은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질 역시 바로 사랑이다. 사랑으로 비로소 충만해졌을 때 남에게도 베풀자.
1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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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생활 속에서 사랑을 하나씩 찾고 나누라고 말한다. 생명은 사랑에서 시작되었기에 우리의 본질 역시 사랑이므로 이것을 베푸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내 안이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베푸는 사랑 역시 어렵지 않게 실천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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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도 사랑에도 정년은 없다. 80, 내 인생은 여전히 꽃 피고 있음을 나는 손끝으로 느낀다.
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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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한국 사람들은 나이로 판단하고, 선을 긋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의 삶을 통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증명했다. 그저 매 순간 꽃 피고 있음을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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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길었던 인도의 고행길에서 내가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은 모든 존재를 향한 자비심이었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로 때때로 이 지구의 모든 인간을 한꺼번에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나 자신을 자비롭게 여기는 마음도 커졌다.
1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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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자비심을 이제는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 자신을 포함해 타인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자비심을 길러보자. 이것을 위해 저자가 이웃들과 나누었던 포옹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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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지금'이 좋다. 나는 '지금'을 살고 '지금'을 사랑하고 '지금'에 대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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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보다, 지금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는 현재의 내가 훨씬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습관적 행동은 멀리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려 한다.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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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람들은 늘 '지금'보다 '미래'나 '과거'를 보며 살아간다. 과거를 통해 뒤늦은 후회를 하고, 미래를 향해 덧없는 희망을 꿈꾼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을 사랑하고, '지금'을 제대로 누려보는 것이 아닐까?
지금을 누리면서 안정감과 충만함, 자유로움을 느껴보자. 생각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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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좋은 점은 이처럼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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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이유도 붙이지 않은 채로 그 감정을 거기에 그대로 두고 나는 오늘을 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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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생각의 끈을 늘이지 않고 끊어내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중요한 법이니 자꾸 과거의 끈만을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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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리 길도 첫걸음부터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유를 찾아보자.
1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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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가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성장하듯, 나이가 들면 '왜'라는 물음보다 그냥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생각을 끈을 끊어낼 줄 아는 단호함,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눈,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아는 미덕이 바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또 다른 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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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와 명상은 생활화되어야 한다.
식사 명상은 식사 중에 하는 일종의 운동이다. 천천히 먹는 동안 머릿속을 투명하게 비우고 씹고 호흡하고 맛을 느끼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식사 명상을 위해서는 좋지 않은 음식을 끊어야 한다.
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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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와 명상을 생활화하는 것, 나이가 들면서 자유로워지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생활습관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식사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식사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식사에 집중하며 머릿속을 비우는 생활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또 다른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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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헌 옷을 떠나 큼직한 옷. 그런 옷 속에서는 살갗의 숨구멍들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고 바람과 공기의 온도까지도 직접 느낄 수 있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한 신발은 20년이 넘도록 신었다.
(...)
한번 신어보았더니 안이 널찍해서 발이 잘 놀았다.
1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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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움이라는 단어에는 내 몸을 풀어주는 의미도 포함된다. 이제 꽉 끼는 옷과 신발에서 벗어나 살갗의 숨구멍들이 숨 쉴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자. 큼직한 옷과 널찍한 신발은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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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연히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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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는 박해라고 해봐야 고작 따가운 눈총 정도가 전부이니, 굳이 뜻을 굽힐 이유가 없다. 눈총이 무서워 타협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고 허무를 느낄 것이다. 모두가 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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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생각을 가진 자만이 깜깜한 험로를 벗어나 빛이 있는 대로에 들어선 수행자라 할 수 있다.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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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고정관념을 깨는 것.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 가진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일이니까.
182~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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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나를 박해하고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과 관념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내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더 이상의 허무함을 용납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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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앞만 보고 달리던 젊은 시절의 내가 지니고 있던 고독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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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들을 겪는다. 이중 부정적인 감정들은 때로 두려움을 동반해 벗어나려 발버둥 치곤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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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별것이 없다. 결국 모든 일은 나에게서 시작하고 나에게서 끝이 난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지금을 누리는 가장 자유로운 방식이다. 고독하다는 것과 외롭다는 것과 쓸쓸하다는 것의 맛과 느낌과 질감을 느끼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들여다보고, 그 시간을 누리는 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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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별거냐 하면 어떤 이들은 별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별거 없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해 나에게서 끝난다. 그게 인생이다. 어떤 선택으로 지금의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인지는 결국 내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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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혼자일 때 생겨난다. 먹고 싸고 태어나고 죽는 모든 육감의 체험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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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정직한 속도에 맞춰 정직하게 진행됨을 바라보아야 한다.
2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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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혼자인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는 그나마 혼행, 혼밥, 혼술 등이 유행하여 덜하지만 과거에는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혼자인 시간들은 매우 중요한데, 그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또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종종 혼자의 시간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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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은 자기 전에 머릿속을 비우는 일과 똑같다. 그저 조금 더 오래 자는 것일 뿐이다.
2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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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죽음을 알면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게만 느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꼭 수행을 하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최근에는 죽음을 체험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간접경험을 할 수 있으니 '죽음'을 멀리만 두지 말고 가까이에 두고 살펴보자.
죽음을 알면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고,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곧 삶을 더 가치있게 산다는 것임을 의미하기에 삶을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살펴보면서 생각보다 낯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흘려버린 해답들이기 때문이다.
비켜가거나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현실을 마주 보며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나의 고독을 마주 보는 것,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것,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현재를 사는 것 모두 나의 결정과 선택에 달린 문제들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방법들일 수 있는 이것들은 스스로 용기를 내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나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용기를 내보자. 거기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