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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그리운 기분 - 나의 도쿄와 너의 서울을 말할 때면
갈매기 자매 지음 / 카멜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서울에 살고 있는 하나와 도쿄에 살고 있는 마키가 나누는 편지글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며, 제목처럼 어쩐지 이상하게 그리운 기분이 들었는데, 어쩌면 나의 10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편지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친구들과 수도 없이 주고받았던 편지 속에는 사소한 일상과 서로의 관심사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느새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래서인지 '편지'하면 그때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나곤 한다.
이 책에 담긴 편지글은 나의 학창 시절 나눈 그때 그것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는데, 그럼에도 하나와 마키 같은 인연을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어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여기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선을 지키며 서로 관심사를 나눈다는 부분이 컸는데, 어른이 된 이후 사귀는 친구들 사이에 오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어쩌면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무례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좋은 감정으로 서로를 솔직하게 대할 수 있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한국과 도쿄에 각각 머물며 서로의 나라에서 영감을 받고 서로의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국에 주고받은 이 편지글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오고 간 내용들을 묶은 책으로, 이들이 처음 인연을 맺은 사연과 더불어 '갈매기 자매'라는 이름으로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서로 서간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서간: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
서울에 사는 하나는 도쿄에서 머물렀던 기억과 매력들을 이야기하고, 도쿄에 사는 마키는 케이팝을 좋아하며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서로의 스펙을 보면 공통의 관심사가 없을 듯해 보이나, 이들이 나눈 글을 읽다 보면 서로의 나라에서 느끼고 좋아하는 관심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충분해 보인다.
하나는 미혼이며 한국에서 일본어 번역가 및 출판 편집자로 활동 중이고, 마키는 기혼으로 남편과 여덟 살 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일본에서 영상 디렉터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의 첫 만남은 십여 년 전 도쿄에서 한국어 선생님과 일본인 제자로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사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알게 된 시절보다 '갈매기 자매'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더 가까워졌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절로 이해가 된다.
이들의 편지글에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예의, 그리고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매력을 엿볼 수 있는데, 이들이 가진 차이점에서 느끼는 취향, 공통점에서 느끼는 감성들을 통해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들을 목도할 수 있다.
그 과정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일기 쓰듯 전하며 인상적인 장소는 사진으로 남기고 때론 상대방에게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일들을 요구하기도 한다.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는 인생을 사는 이야기를 비롯해, 현재의 고민거리, 일상의 에피소드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담긴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전하고 서서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이들의 대화가 지속될수록 잠시 멈춰 생각하게 하는 구간을 종종 만나게 된다.
나의 일상은 어떤지, 불안감이 드는 날은 어떻게 해소를 하는지, 나이가 들수록 변화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스며들듯 다가오는 문장들을 만나보며 서울과 도쿄의 생활은 물론 양국의 문화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갑작스레 다가와 전 세계가 멈춤으로 당황하던 시기, 나라와 문화를 넘어선 우정을 통해 느리지만 따뜻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들의 편지글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알아보고 미래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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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의 루틴을 바꾸면서 불안한 마음을 덜어 내고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책 읽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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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책 시간을 가지게 된 뒤로 크고 작은 불안들이 조금씩 누그러졌어요. 소소한 일이지만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수행한다는 것만으로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 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작은 일들이 결국 불안 속에서도 나에게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더군요.
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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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루틴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나에게 집중하는 단 몇 분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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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 불안이 뒤따르는 것이라면 밀어내려고 애쓰기보다 차라리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걸어가는 방법을 찾는 게 나은 듯합니다. 물론 어떤 방법을 써도 마음이 어두운 곳으로 파고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 말을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괜찮아. 흘러가는 대로 되게 되어 있어." 마치 주문처럼 말이지요.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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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처럼 스스로에게 주문 같은 말을 외면서 안정감을 주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듯하다. 불안을 무조건 밀어내기보다 사이좋은 친구처럼 함께 걸어가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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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건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 몫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거예요. 받아들여야 비로소 눈앞의 상황이 보이고, 머리도 몸도 톱니바퀴처럼 천천히 맞물려 움직이게 됩니다. 삶의 주도권만 내가 잘 잡고 있으면 되겠죠.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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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일단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의 주도하에 선택과 집중을 하자. 그러면 결국 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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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변화들이 있습니다. 옷도 생활도 인간관계도, 살아가는 방식과 사는 장소도 모두 그런 연장선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나에게 잘 맞는 것들을 통해 계속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는 과정 같습니다. 겨울에 비친 모습을 자꾸만 확인하듯이 말이에요.
152~1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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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회차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을 산다는 것은 나에게 잘 맞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어쩌면 이 과정은 꼭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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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꿈이 무엇인지 주변에서 자주 물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느새 아무도 꿈에 관해 묻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른이 되었는데도 터무니없이 꿈을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른에게야 말로 꿈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꿈 말이죠. 희망, 동경, 야심, 마음가짐 같은 것이 막연한 매일에 단단한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197~1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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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버티는 힘, 내일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어쩌면 우리가 꾸는 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왜 아이들만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꿈이 가장 필요한 이들은 정작 '어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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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권리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이죠. 그 꿈이 크건 작건 존중하고 응원하는 일, 끝내 이루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일이야말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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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에 감놔라 배놔라 하기 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존중'이 아닐까? 각자의 인생에 있어 주인공은 타인이 아니므로, 그저 응원하고 다독여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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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의 특별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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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우정은 다양성과 변화의 수용을 전제한 관계 일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여러 사정을 일일이 털어놓지 않아도 좋은 관계, 몇 년에 한 번 만나더라도 괜찮은 관계, 무엇보다 함께 일 때 즐거운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16~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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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는 아이의 우정과 어른의 우정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 없이 마음을 나누는 게 아이의 우정이라면, 어른의 우정은 절제와 타인의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었던 거리. 그리고 쉽게 누리던 일상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리는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덕분에 편안하게 누리던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미처 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나 대신~ 해줄래요?'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데, 갈 수 없기에 더 생각나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하나와 마키는 서로에게 대신해서 가달라며 부탁한다.
"나 대신 함박스테이크집에 가주지 않을래요?"
"언니도 나 대신 들깨칼국수를 먹으러 가주지 않을래요?"
또 이 책의 서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갈매기 자매의 '도쿄아트북페어'에 대한 내용을 읽다 보면 어쩐지 서로의 취향과 삶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북 페어 참가를 위해 만든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블로그가 그런 창구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그냥 지나쳐 갔을 수도 있을 인연이 코로나를 만나고, 교환 편지를 나누면서 갈매기 자매의 활동을 한지도 벌써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다는 이들의 우정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가길 응원한다. 더불어 소소한 이들의 일상과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여정도 쭉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나의 삶도 이들처럼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찾아나가고, 꿈을 꾸며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힘차게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