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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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부터 자꾸만 호기심을 자극했던 스토리 덕에 밥을 먹거나 다른 일을 하는 순간에도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래서 이따금, 아니 꽤 자주 책을 펴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휘몰아치는 전개에 깜빡 정신을 놓으면 새로운 장소로 데려다 놓는 통에 잠시 혼란에 빠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꽤 즐거운 여행을 한 듯한 기분도 든다.​


무채색의 회색빛 런던 도시 풍경을 시작으로, 해변 휴양도시 브라이튼에서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이상한 기운과 함께 운명처럼 떠밀려 불현듯 떠나게 된 튀르키예로의 여행은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선사했는데, 믿기지 않은 우연과 운명을 맞닥뜨리면서 감동과 아픔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안갯속을 헤매듯 무작정 떠난 여정 속에서 연결고리가 하나씩 맞춰지듯 이어지는 우연들은 앨리스를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소용돌이 속의 정점으로 이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앨리스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데, 커리어는 물론 잃어버렸던 사람과 관계마저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앨리스가 미처 몰랐던 '기다리고 있던 삶'에 비로소 접근하게 된 것이다.


평생 꿈꿔보지도, 알지도 못했을 이 운명 같은 만남과 여정은 그래서 더 색다르게 다가오는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갔을 수도 있을 아주 작고 사소했을 점쟁이의 말 한마디가 큰 폭풍이 되어 앨리스의 인생과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때로 오롯이 혼자 버텨내야 하는 고독으로 가슴 한구석이 휑할 때도 있었지만, 모르고 살았으면 또 그런대로 살았을 런던에서의 삶. 그렇게 굳게 믿고 있던 신념 같던 삶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가려진 진실위에 쌓인 또 다른 제2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엔 이미 인생의 방향은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엉뚱한 생각과 방향에서 튀어 갑자기 생뚱맞게 떠나게 된 여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읽고 나서보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운명'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문득 몇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것에 대한 정답은 이 책을 읽은 또 다른 독자와 함께 풀어나가고 싶어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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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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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까지 왜 앨리스는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일관했던 것일까?
■이후 약사 부부를 만나면서 왜 갑자기 말이 트이게 된 것이며 낯선 이 부부에게 호의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런던으로 돌아간 이후 기억을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점쟁이가 말한 중요한 남자가 방금 뒤로 지나갔다는 말에서 말한 그 남자가 과연 '그'가 맞았을까?
■브라이튼의 점쟁이가 야야의 언니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중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잘 짜인 사기극이거나 한편의 꿈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순간, 마치 준비된 것처럼 우연같이 누군가가 나타나고 진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나타나는 행태가 한편의 대 사기극이 아니면 악몽을 꾸는 앨리스의 반전 스토리일 것이라고. 하지만 마지막까지 숨 가쁘게 달려가고 보니 이 모든 것은 나의 망상 혹은 내가 쓴 또 다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찜찜함이 남는 부분은 있다. 이 모든 찜찜함을 해결해 줄 유일한 방법은 달드리씨의 속마음을 상세하게 기록한 외전인데, 어떤 형태로든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결같이 친절했던 칸, 그리고 이상한 여행을 경비까지 대주면서 제안한 달드리씨,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카디쾨이의 늙은 교사, 앨리스에게 조향사로서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불러일으킨 이스탄불의 향수 장인, 그 외에도 처음 보는 앨리스를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고 품어준 수많은 사람들.


​점쟁이의 예언에는 여섯 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 이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에 앨리스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삶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마침내 찾은 진실을 잠시 두고 정리를 위해 다시 찾은 런던 원룸에서는 또 다른 숨겨진 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반전은 직접 책을 통해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줄거리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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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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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아누슈 펜델버리
▷직업: 조향사
▷가족관계: 외동딸
▷아버지는 약사,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일했으며 부모님의 관심 속에 유복하게 자랐다.
▷매우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들장미 수'의 성공으로 정기적인 수입이 발생된다.
▷특징: 후각이 보통 사람보다 발달해 있어서 아주 희미한 냄새도 구별해낼 뿐만 아니라 한번 맡은 냄새는 영원히 기억할 수 있다.
▷참고사항: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든 달드리
▷직업: 풍경 화가
▷주로 교차로를 그린다.
▷가족관계: 부모님, 형과 누나
▷가족 간의 사이가 좋지 않고, 아버지를 미워했다.
▷앨리스의 튀르키예 여정에 함께 하는 것은 물론 경비까지 부담했는데, 여기에는 남다른 속 사정이 있었다.


■칸
▷직업: 가이드이자 통역사
▷삼십 대 초반으로 예상된다.
▷금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와 둥근 안경 너머의 눈매가 부리부리하다.
▷베이욜루의 언덕 마을에 산다.
▷앨리스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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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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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모님과 사랑받는 외동딸로 자라던 앨리스는 1941년 9월 어느 금요일 저녁,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대피하던 중 폭격으로 인해 집이 불에 타면서 한순간에 부모님 두 분을 잃게 된다. 홀로 살아남은 그녀는 와이트 섬에 있는 대고모님 댁에서 약 2년을 보내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다.​


그 일 이후 그녀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해 준 친구들이 있는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이자 해링턴 앤 손스 서점에서 일하는 샘,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이자 목공일을 하는 앤턴, 첼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캐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에디까지 다섯 명이 종종 모여 일상을 나눈다.


그렇게 조금은 헛헛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던 중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해변 휴양도시 브라이튼에 가자는 에디의 제안에 다섯 명은 함께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돌아오기 직전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점쟁이를 만나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앨리스는 점을 본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노파의 손이 닿는 순간, 묘한 부드러움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앨리스는 오랫동안 가져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노파는 앨리스에게 네가 전혀 모르는 역사가 네 안에 있다고 말하면서 앨리스에게 들러붙어서 잠 못 이루게 하는 고독은 자신과의 만남에 상관이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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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오래전부터 네가 찾고 있는 남자, 그 남자가 방금 전에 바로 네 뒤를 지나갔어."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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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 남자에게 이르려면 여섯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며 아름다운 여행을 하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흘려들으려고 해보지만 돌아온 이후 앨리스는 노파가 한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아 어딘가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같은 층 맞은편 집에 사는 달드리씨와는 벽이 얇아 이런저런 소동으로 자꾸 마주치게 되면서 어느새 아침을 함께 먹거나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등 편한 사이가 된다. 그렇게 점쟁이와의 일을 듣게 된 달드리씨는 찜찜함을 없애기 위해 다시 한번 그곳에 가보자며 그녀를 설득하고 이내 다시 한번 그 점쟁이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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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디로 가라는 거예요"?
"네가 온 곳으로, 너의 역사를 향해."
(...)
"내 말은 네가 태어난 땅으로 가라는 거야."
(...)
"너는 더 먼 남쪽에서 태어났고, 점쟁이가 아니라도 그건 알 수 있어. 네 이목구비가 증명해 주거든."
(...)
"네 부모님은 오리엔트 태생이야.
(...)
네 몸속에 흐르는 피의 원천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어딘가에 있고, 거울을 잘 보렴. 네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야."

57~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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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가면 너를 다음 단계로 인도해 줄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하지만 절대 잊지 마, 끝까지 찾아다니다 보면 네가 아는 사실은 남지 않게 된다는 걸."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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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함을 없애기 위해 다시 찾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방문은 앞선 이야기보다 더 구체적이었지만, 예상이 불가능한 이야기들은 심란한 마음만 더 가중시킨다. 그렇게 점쟁이를 만나고 온 후 앨리스는 악몽이 시작되고 점차 잠자는 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이 악몽 속의 내용은 앨리스가 그동안 잊고 살던 과거의 조각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올라 꿈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아무 기억도 하지 못하던 앨리스에게는 처참한 악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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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고독에 사무쳐 있어. 넌 대단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걸 너무 두려워해.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종속된다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니까.
(...)
여행을 떠나. 가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직접 찾으라고. 설사 그 남자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확인은 했으니 마음은 홀가분하겠지. 미련 따위는 없을 테고."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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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앨리스의 사정을 알고 있던 다섯 친구 중 하나인 캐럴은 앨리스에게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기를 권유한다. 무엇이든 부딪히고 경험한 후 미련을 없애라면서, 부모님의 죽음 이후 항상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에 소극적이었던 앨리스의 등을 떠민다.


그러던 중 점쟁이의 일로 더욱더 가까워진 달드리씨는 갑작스레 사이가 좋지 않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재산 상속을 일부 배분 받으면서 이 돈으로 함께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나자고 설득한다. 자신이 마치 그 여섯 명 가운데 첫 번째 사람으로서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며 모든 여행 준비는 물론 경비까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떠날 준비를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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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용기를 내봐요. 겁먹은 아이처럼 밤을 두려워하면서 집 안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부딪쳐보라고요! 여행 갑시다! 준비는 내가 다 할 거고, 우리는 일주일 이내에 런던을 떠날 수 있어요."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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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떠나기로 마음먹자 어쩐지 행복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첫 시작은 흥미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경유한 파리에서는 이색적인 방식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경험하며 다시없는 둘만의 추억도 쌓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이스탄불은 낯설지 않게 느껴졌는데, 그녀가 내딛는 여정 역시 순탄하게 흘러간다. 머무르는 호텔에서 만난 가이드이자 통역사인 칸이 그러했고, 영사를 만나 과거 부모님의 행적을 찾아가는 여정과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이 그러했다.


그 모든 과정 중 하나만 삐끗했어도 이르지 못했을 결론은 그렇게 결국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주 극적인 순간마저 그러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도 그녀의 이러한 행보를 응원하는 듯 보였다.


​지한기르에 살고 있는 향수 장인을 만나면서는 비즈니스적으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숨겨진 과거와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달드리씨가 먼저 런던으로 돌아간 후 앨리스와 주고받는 편지와 친구인 앤턴에게 쓰는 편지에서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는 그녀가 꾸는 악몽도 관련이 되어 있는데, 그녀가 실제 튀르키예 곳곳을 찾아헤매며 느끼는 감정과 진실을 향해 가는 장소에서 후각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들이 더해지며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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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너머로 아른거리는 비석과 무덤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유 없이 이 땅에 속해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 이스탄불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내 안에서 사랑이 차오르고 있어.

206페이지 中 (앤턴에게 쓴 편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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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삶의 매 순간을 그런 특별한 냄새로 기억해둔다는 걸. 냄새는 나의 언어였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지난 시간들의 냄새를 추적할 수 있어. 수십 개의 냄새를 종류별로 구분할 수 있거든.

2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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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튀르키예로의 여행을 망설였던 것이 무색할 만큼 시간이 갈수록 앨리스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되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침내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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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해요. 달드리. 정말 행복해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움을 느껴요. 이런 자유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요.

3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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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살면서 경험하는 순간들. 이 소소한 순간들이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행복을 안겨줘요.

3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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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의 진실에 가장 근접하는 순간에는 비극적인 사건과 마주하게 되는데, 실제 세계대전 중 일어났던 아르메니아 출신들에 대한 대학살과 이에 얽힌 부모님의 슬픈 사연도 알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는 그녀의 뇌리에 깊게 박혀있던 향이 되살아나며 이를 증명해 주었는데,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녀만의 특별한 방식이었음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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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절반을 그늘로 뒤덮은 큰 보리수를 스쳐 지나가다 나는 또 그 향기를 맡았고 그제야 내가 이곳에 처음 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3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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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냄새를 맡았어. 물건을 받을지 거부할지를 선택하는 너만의 특별한 방식이었지."

3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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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파헤치고 그로 인해 드러나는 또 다른 진실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면서 마지막에 다다른 순간, 또다시 인연은 우연처럼 슬며시 다가와 그녀를 감싸 안아 준다. 그렇게 불확실성은 점차 확신이 되고, 현재에 이르게 된다.


​알고 있던 진실이 지워지면서 그 자리를 메우는 새로운 진실들은 마치 회색빛 런던이 오색찬란한 이스탄불로 배경이 옮겨가듯 다채롭게 채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꽉꽉 채워진 앨리스는 과거의 앨리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앨리스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런던에서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금 런던의 원룸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주한 현실은 또 다른 반전을 숨기고 있는데, 마주한 달드리씨와 그녀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숨죽이고 지켜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서 나의 질문들도 함께 풀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하면 떠오르는 세상 모든 감정과 경험을 체험한 듯한 기분이 들어 어쩐지 버라이어티 한 모험담을 그린 영화 한 편을 본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해 조금 이상하지만 우연을 가장한 뿌리 찾기의 여정은 한 사람의 여정을 바꿔놓을 만큼 충격적이고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향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고, 이를 통해 다시금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설정은 조향사라는 그녀의 직업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한번 맡은 향은 영원히 기억한다'는 앨리스의 특별한 후각을 부각시킨다.


​덕분에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맡는 향과 즐겨 하는 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추억하게 한다. 이는 앨리스가 지한기르에 살고 있는 향수 장인을 만난 후 언급되는 장면에서 유독 더 도드라지는데, 런던에서는 그저 그런 조향사로 보였다면, 튀르키예에서 만난 조향사 엘리스는 새로운 꿈을 꾸는 또 다른 조향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후각을 활용해 자신처럼 기억에서 사라진 순간들을 되살리고 싶다는 꿈은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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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서 사라진 순간들을 되살리고, 잠든 장소들을 깨어나게 하고 싶어요.

2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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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침내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이 가진 직업에 대한 만족감도 느끼게 되는데, 그동안 잃어버린 조각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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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에서 처음으로 위안을 받는 느낌이에요.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2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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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타이밍에 수많은 우연과 우연히 만나 찾게 된 진실, 그럼에도 다시는 확인할 수 없는 진실들을 바라보며 문득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는 게 좋다는 칸의 고모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궁금증과 의문은 그저 과거에 묻어두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의 제목이 '앨리스의 이상한 여행'이 아닌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인 점이다.


​이는 책의 극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 여행의 여정이 '앨리스'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달드리씨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과 생각지 못한 반전, 그리고 중간중간 이들의 대화에서 발견되는 복선은 재미를 위해 생략할 예정이다.


​앨리스와 달드리씨를 따라 세상 신비롭고 이상한 여행을 떠나보자. 하나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운명의 시작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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