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한국추리문학선 17
황정은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 뉴스에서 흔하게 들려오는 가족 내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따져 묻던 시기를 넘어 이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과 극으로 치닫는 감정의 흉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한다.

 

나와 가장 가까웠던 가족, 감정을 교류하던 핏줄에 의해 무방비하게 당하는 불행은 그래서 더 집요하고, 잔인성을 더 한다. 이 책에 담긴 네 편의 이야기들 역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미처 공개되지 않았던 숨겨진 가족사는 물론 여러 가족 해체를 불러온 요소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가정사라는 이유만으로 폐쇄적으로 숨겨왔던 일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현대사회의 '가족'을 해체시키는 원인과 갈등을 오마주 형태로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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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란?
예술과 문학에서는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원작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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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들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사건의 면모를 살펴보면서 과연 진실은 무엇이고, 이들이 말하는 가족의 정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더불어 내가 만약 가족의 일원 중 한 명이라면 혹은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사 중 한 명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다.

 

각기 다른 네 개의 끔찍한 살인사건에는 나름 살인의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지만, 어떤 한편에서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하지만 과연 여기까지 와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우리 주변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어쩌면 겪고 있을지도 모를 갈등과 욕망이 나쁜 형태로 발현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올지를 살펴보고, 비극으로 치달은 가족들이 저마다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가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확인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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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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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들려온 53세 모친 차영순의 사망 소식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은 다시 모이게 된다. 자필 유서와 함께 농약을 먹고 사망한 엄마를 발견하고 신고한 아들 도진명은 구급차에 동승하는 것은 물론 혼자 오롯이 화장까지 마친 후 아버지 도민기(55세)와 누나 도선화(28세)를 불러 산골장을 치른다.

 

사실 이들 부부는 몇 년 전 이미 이혼한 상태로, 심각한 도박 중독자였던 아내 차영순으로 인해 가정경제가 파산한 것은 물론 남편에 대한 조롱과 멸시를 일삼으며, 남편이 죽기를 바라던 아내의 통화 소리를 듣게 되면서 이들의 가정도 끝을 맺게 된다.

 

이때 심신이 허약하고 엄마의 치마꼬리에 매달려서 자랐던 아들 도민기만이 엄마의 곁에 남고, 자신과 딸은 빈털터리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렇게 딸은 회사 기숙사로, 도민기 자신은 고시원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그리고 몇 년 후 들린 소식이 바로 차영순의 음독자살로 도박중독으로 시작해 농약중독으로 끝나는 삶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농약 중독 사건이 일단락될 때쯤인 약 1년이 지난 후 무산시 별리동의 오피스텔에서 도선화(29세)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엄마와 똑같은 음독자살로 판명 난다.

 

전혀 자살의 증후가 없었던 그녀였기에 1년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딸이 똑같이 변사한 것은 괴이함과 수상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경찰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하며 이들의 과거 행적과 가정사를 파헤치면서 모친 차영순의 도박에 빠져 빚이 많았고, 이로 인해 가족 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와 더불어 차영순과 딸 도선화 모두 보험이 가입되어 있어 각각 2억 원씩 수령이 가능하며 수령자는 남동생 도진명으로 확인된다. 엄마 차영순이 농약중독으로 사망한 것은 무난하게 넘어갔으나 딸 도선화의 죽음에서는 그녀가 커피 중독임을 알고 있는 면식범이 커피에 복어 독, 즉 테트로도톡신을 이용해 사망케 했음이 부검을 통해 밝혀진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 아버지 도민기마저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사유는 테트로도톡신 중독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되면서 도진명이 범인이 아닐까에 대한 무게감이 실리게 된다.

 

여기에는 도진명의 외삼촌이자 차영순의 남동생인 차영준의 진술도 한몫했는데, 어릴 적부터 누나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며 전해 들은 조카에 대한 평판이 한몫했다.

 

이때 외삼촌인 차영준에게 의미심장한 통화를 마지막으로 도진명이 빌라 5층에서 투신자살하게 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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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저 때문에 누나와 아빠가 죽었어요. 누나와 아빠에게 사죄하고 싶어요. 흑흑흑... 외삼촌, 부탁이 있어요. 제 빌라 전세금을 외삼촌께 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도와주신 외삼촌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요.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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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미심장한 마지막 메시지 덕분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마침내 이 모든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다. 

 

심신이 허약했던 아들을 가스라이팅 하고 남편의 재산에 눈독 들이며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 전부를 살해하면서까지 도박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던 어머니 차영순.

 

그녀를 이토록 망가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외항 선원으로 일을 하느라 집에 자주 들리지 못했던 남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이라고 하기에는 남편을 향한 혐오감과 비하 발언 수위가 이미 도를 넘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자라주어 특별히 문제 삼을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욕망과 돈에 눈이 먼 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비극이 아니었을까? 심약한 아들을 이용하고, 딸과 남편을 죽이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돈. 그 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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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순, 당신 꼴을 봐. 당신 곁에 누가 남았는지 보라고. 결국, 아무도 없다고!"

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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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마저 죽음으로 내몰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신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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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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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군인 특성상 자주 부임지가 바뀌었던 아버지 때문에 적응하지 못했던 엄마와는 일찍이 이혼을 하게 되고 이후 아빠는 오빠와 해지의 친권과 양육권을 얻으면서 세 식구가 함께 살게 된다. 이후 엄마는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가 재작년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해지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중학생 시절 오빠는 우울과 강박을 호소하면서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 입시에도 재수, 삼수를 하며 실패하고 이후 군 복무도 정신병이 심해져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서 이제는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일찌감치 조현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되었다.

 

해지 자신은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아빠에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는 것 먹는 것을 포함한 생활비에 용돈까지 모두 아빠가 마련해 주고 있었다. 대학 입시에 연달아 두 번 실패하고 도피성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이 역시 유학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며 오빠와 단둘이 독립하면서는 오히려 오빠의 병이 더 심해지는 양상을 띠면서 아무 취업자리를 얻어 나오기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대령으로 예편한 뒤 경비 용역회사를 차린 아빠는 회사일과 집안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에서 재혼을 결심하게 되고, 입사 때부터 사장을 흠모했다는 노처녀 여직원의 청혼을 받아들여 12살 연하의 여직원과 재혼하게 되지만 사실 경제적 부유함을 노린 가면에 불과했음이 금방 드러난다.

 

이로 인해 아빠는 새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사소한 것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 새엄마가 대놓고 회사 총무부장과 불륜 관계를 이어 나가면서 아빠는 지탱하던 끈이 끊어지게 된다. 이렇게 정신과 육체가 무너지면서 건강이 악화된 아빠가 어느 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15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아빠의 자살에 의구심을 품은 딸 해지의 부검 요청으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추악함을 넘어 끔찍하게 다가온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자식들, 여기에 더해 재산과 연금이 탐났던 여직원의 횡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무자비한 살인 앞에는 모두 이기심과 돈을 향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정신과 육체가 무너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누구 하나 내 편이 없었던 가족, 그렇다고 버릴 수도 내칠 수도 없었던 심정이 오죽했을까?

 

이들의 가족사를 살펴보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해도 불행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나이 마흔이 되어도 무능력한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범이 결국 밝혀지지만, 깊게 파고들수록 이 가족 모두는 잠재적 살인자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듯하다. 가까이에 있던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챙겨주는 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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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살인사건_행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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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형태의 문자를 받은 이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는 이상한 변사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들.

 

처음에는 고진 시 마석동의 공터에서 칼에 찔려 죽은 남자 시체가 발견되었고, 이후에는 대수동 주택가 골목에서 칼에 가슴을 찔려 살해당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 사건은 연쇄살인사건으로 연결되어 수사본부가 설치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는 '가' 혹은 '나'로 시작되는 지명에 거주하는 '가' 혹은 '나'씨 7명에게 행운의 편지를 보내라는 메시지를 가나다로부터 받았다는 점이고, 둘째는 머리를 강하게 맞고 가슴을 칼에 깊게 찔렸다는 점이다.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둘의 관계와 사건을 파헤쳐 가던 이들은 제보를 통해 마지막 세 번째 예고장을 받은 이의 신고로 수사를 이어가면서 마침내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다.

 

중국 다롄 공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피의 복수의 전말은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안겨주는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어렵사리 목숨을 보전한 윤상호를 끝까지 죽음으로 내몰면서 결국 끝을 본 진범들의 대화를 통해 '신념'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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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거지. 가나다 살인사건·····. 꽤 멋지지 않아?"

2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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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긍정적 시너지를 주는 신념이라 할지라도 그 생각에 매몰되면 결국 끝은 파멸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였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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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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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울고 웃는 우리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에는 딸과 엄마가 돈에 묶여 철저한 주종 관계로 표현된다. 

 

친정에서 물려받은 유산에 더해 타고난 재테크 능력으로 많은 재산을 소유한 엄마 안영희는 시가 40억 원이 넘는 60평 아파트에 두 채의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받았으며, 상당한 액수의 주식과 예금을 보유한 한마디로 다 쓰고 죽지 못할 정도의 재산을 가진 여자였다.

 

이 때문인지 돈을 앞세워 집에서 왕처럼 군림했으며, 오로지 자신의 건강만을 염려하는 이기적이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에게도 돈을 아끼느라 방치하는 것은 물론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게 하여 마침내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만든다.

 

이후 약 한 달쯤 지난 3년 전의 어느 날 희정을 돈을 미끼로 집으로 들임으로써 딸을 마치 하녀처럼 부리게 된다. 덕분에 예순다섯 살인 엄마는 피둥피둥 살찐 암퇘지처럼 날이 갈수록 넓어졌고, 마흔도 안 된 나이에 기미로 뒤덮인 희정은 점점 더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실 희정은 친정엄마와 합치기 전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결혼 후 홀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사사건건 맞부딪히는 와중에 치매까지 겹쳐 딸 예지를 8개월 만에 미숙아로 낳게 되었고, 그 때문에 실제 예지는 또래 친구들보다 심하게 왜소한 신체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시어머니의 죽음으로 그 상황을 겨우 탈출하는듯했으나 남편의 실직으로 경제 상황은 더 어려워졌고, 유일하게 마음으로 보듬어주던 아빠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는 엄마의 말 때문에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온갖 궂은 집안일은 물론 비서, 운전기사 역할은 물론이고 모욕과 인신공격도 참아내며 주종 관계를 참고 또 참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여느 때와 같이 자주 들리던 한 병원에서 또다시 시작된 심한 모멸감과 인신공격을 견디던 중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에 살의가 깃드는 일이 발생한다.

 

이후 어느 날 엄마는 아무도 집에 없던 오전 11시. 65세 남편의 반신마비를 비관해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하게 된다. 3년이 지난 65세가 된 아내가 같은 방법으로 남편의 뒤를 따른 것이다.

 

결국 안영희의 극단적 선택은 자살로 판명이 났지만, 어딘가 꺼림직했던 지 형사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변 탐색과 그녀를 몰래 주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사실 이 일의 전말은 직접 '사건의 이면' 페이지를 통해 밝혀진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처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숨겨진 또 하나의 사건에 대한 전말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한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게 한 처참한 대가 혹은 말로를 끔찍한 상황으로 되돌려 받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더불어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사람이 사람임을 포기했을 때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스토리의 제목인 '우리만의 식사'는 그래서 더 끔찍하게 다가온다. 우리만의 식사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락함과는 대조적으로 다가오는 섬뜩함이 이 이야기의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에 담긴 네 가지 이야기에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 이외에 '사람'으로 대우할 만한 인간적인 품성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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