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듀얼 - 전건우 장편소설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요즘 각종 매체와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살해 협박과 묻지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가 참 안전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연달아 터지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보며 안전 불감증에 빠진 이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스스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현 우리 사회의 불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개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살인의 천재라 불리는 한 연쇄살인마와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악인의 모습과 그런 악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지르는 묻지 마 범죄, 그리고 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악마가 남긴 흔적을 따라 범인을 쫓는 프로파일러의 고된 일정을 통해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결말에 다다르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더 이상은 벌어지지 않기를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점점 더 빈번해진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무차별한 공격과 살인에 관련된 소식이 아닌, 건강하고 밝은 뉴스들을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감 있는 연쇄살인범의 스토리에 약간의 미스터리와 판타지 한 방울이 들어간 어딘가 있을법한 이야기로, 빠른 전개와 어디로 이어질지 모를 반전의 연속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끈다.
사실 이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을 만큼 흥미진진한 내용과 궁금증을 야기하는 스토리 전개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마침내 마주한 순간, 갑자기 번개를 맞고 죽음을 마주한 둘. 이후 바로 이어진 환생. 그리고 다른 입장에서 다시 시작되는 2차전은 또 다른 사건이 맞물리며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박진감을 선사한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 환생이 웬 말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스토리 상에 환생은 또 다른 긴장감과 미처 끝내지 못한 마지막 결투를 이어가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마저 연쇄살인범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프로파일러의 사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결말에 도달했는지, 또 그들은 왜 갑자기 환생을 하게 되었는지 그 사유를 찾아보기를 바란다.
=====
연쇄살인마 리퍼(본명: 조영재)
=====
■살인의 천재라 불리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과시형 범죄자이며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셔츠에 넥타이 차림이라 얼핏 은행원 같아 보인다.
■리퍼의 실제 직업은 엔지니어
■30대에서 40대 사이의 혼자 사는 남성이며 고학력자로 추측
■이과 계열을 전공했거나 관련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마른 체형에 가깝고 겉으로는 얌전하고 섬세하며 세심해 보이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고집이 세다고 증언할 것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 성향과 소시오패스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할 것으로 추측되며, 단독주택에 살거나 교외에 자신 소유의 별장, 혹은 건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경찰이자 프로파일러(최승재 경위)
=====
■본청 수사과에 근무 중인 프로파일러
■리퍼를 쫓던 중 아내 이수진과 딸 최지혜도 리퍼의 손에 죽임을 당함
■기억력이 탁월해 한 번 본 것은 하나의 파일처럼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언제든 불러내 복기 가능
=====
우필호
=====
■28세
■직업: 일식 요리사
■홍대 유명 초밥 체인점에서 근무
■주거지: 상암동
■동거인: 여동생 우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사망
■전과 없음
■범죄 전력 역시 없음
■독극물에 의해 살해당한 후 부검을 앞두고 최승재 경위가 우필호의 몸에서 환생하게 됨
=====
유상천 경위
====
■강력 범죄 수사대 소속 팀장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우필호에 의해 머리를 맞고 병원에서 죽을뻔하다 리퍼로 환생함
■우필호의 여동생 우지희의 사망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이다.
최승재 경위를 포함한 다섯 명의 프로파일러와 세 명의 범죄심리학자가 공통적으로 추려낸 범인의 특징은 위와(리퍼 프로필) 같다. 그러나 여전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이 사는 지역, 성별, 연령대, 살인방법까지 다양해 접점이 확인되지 않아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그나마 유일한 공통점은 피해자들 모두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며 천천히 죽어갔다는 점인데 평범한 사고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살해 방식이 유일하다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오로지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선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그 행각이야말로 일련의 사건들이 연쇄살인임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
악마.
리퍼를 설명하는 데 그것만큼 적확한 단어는 없었다.
12페이지 中
-----
최승재 경위를 비롯해 사람들이 범인을 처음 마주한 것은 리퍼가 방송국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부터인데, 이때는 이미 열여섯 번째 사건이 터진 후였다.
-----
"나는 리퍼, 추수하는 자야."
15페이지 中
-----
이후에도 리퍼의 잔혹한 살인은 끝나지 않았는데, 최승재 경위는 리퍼를 알게 된 후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이따금 현실에서도 튀어나오면서 점차 리퍼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집착 덕에 리퍼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마주한 둘이 마침내 인천 연안 부두 등대 앞에서 결전의 마지막을 앞두던 차 번쩍하는 반짝임과 함께 둘은 번개를 맞고 사망하게 된다.
자신이 체포되는 순간마저도 여유로웠던 리퍼는 최승재 경위의 아내와 딸을 볼모로 삼아 또 다른 살인기계를 작동시키고 있었고 이를 막지 못한 채 둘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린 최승재 경위는 의외의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서늘한 느낌이 온몸을 뒤덮는 영안실 안이었다. 깨어난 자신을 마주하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진 부검의,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에게서 벗어난 후 파악한 현실은 자신이 누군가의 몸에서 환생을 했고 그 사람은 바로 부검을 앞둔 우필호라는 이름을 가진 살인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최승재 경위는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느끼고 강남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조우리 경사를 찾아간다. 자신만이 아는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자신이 리퍼를 잡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전하고 도움을 구한다.
한편, 번개에 맞아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된 두 구의 시체를 두고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각자 다른 사람의 몸에서 환생하게 되면서 이들의 2차전은 다시 시작된다.
앞서 '프로파일러 vs 연쇄살인범'의 대결이었다면, 이번에는 '살인자(의 탈을 쓴 프로파일러) vs 경찰(의 탈을 쓴 연쇄살인범)'의 대결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각자 환생한 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더해지며 또 한 겹의 사건과도 마주하게 된다.
1차전에서는 홀로 외로이 사건을 파헤쳤다면, 2차전에서는 조우리 경사를 비롯한 든든한 조력자가 몇몇 등장하는데, 무엇보다 숨겨진 사건을 파헤치는데 가장 큰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온통 흑백으로 보이는 '꿈'이다.
자신과 함께 환생한 리퍼, 그리고 그들이 환생한 몸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며 점차 그들은 진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앞서 최승재 경위가 리퍼를 잡기 위해 시도한 새로운 관점도 포함되었는데, 이를 통해 리퍼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렇게 좁혀진 그에 관한 신상을 십분 활용해 끝까지 추격전을 이어나가며 마침내 끝을 향해 나아간다.
-----
리퍼가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를 고민하자 사건이 다른 각도로 보이기 시작했다.
73페이지 中
-----
도면에 꼼꼼히 남겨둔 살인 기계장치의 설계도와 살인 아이디어가 담긴 살인 노트를 통해 통해 점점 진화해 가는 살인의 형태와 끝나지 않을 살인을 예측하고 끝까지 리퍼를 추격해 나가며 그를 궁지로 몰아가기 시작하는 최승재 경위.
마치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우필호가 죽기 전 남겨놓은 마지막 히든카드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리퍼를 몰아간 최승재 경위의 연쇄살인마를 향한 집념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죄를 짓고도 권력과 돈 뒤에서 자신을 숨기고 떵떵 거리며 살아가는 이들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간 누군가의 원한마저 속시원히 풀어주며 숨 막히는 전개를 이어나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결말 뒤에 또 어디에서 이들이 다른 모습으로 만날지 두려움과 기대가 샘솟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통쾌했던 장면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장면이었는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긴박한 추격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덤덤히 전하고 이를 믿어 묵묵히 들어주며 사건의 핵심 장소로 이동하는 장면은 그동안 몇몇 소수만 알고 있던 사실을 마침내 세상에 공표하는 장면이라 유난히 더 기억에 남았다.
-----
이 싸움은 누가 이기는가 보다 누가 지지 않는가가 더 중요했다. 적어도 나는 대결에서 지지 않았다. 물러서지도 않았고,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282페이지 中
-----
끝없는 두뇌싸움과 체력적 한계를 넘어서는 이들의 대결은 지지 않아야 비로소 이기는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환생을 통해 입장이 바뀌어도, 기존의 자아와 약간 다르게 반응하는 신체의 한계도 뛰어넘어야만 쟁취할 수 있는 승리였다.
-----
나는 이 작업들을 통해 어떤 악인들은 거의 자연재해처럼 '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저자는 이 작품을 써 내려가며 살인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어떤 악인들은 거의 자연재해처럼 임하는 걸 알게 되었다'라고 하는데 요즘의 우리 사회 모습 또한 이것과 닮아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좀처럼 예측이 되지 않는 범죄, 그리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들여다보면, 과거처럼 원한이나 특정 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정신병이나 기분에 따라 순식간에 예고 없이 벌어져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는 이내 사라지는 걸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 악인을 대변하는 악마의 화신이 곧 리퍼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왜 하필 '환생'일까 궁금했는데, 어쩌면 갑작스럽게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끝까지 추격하는 도구로 '환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는 연쇄살인자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시신마저 발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잊혀 간다.
만약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이 있다면, 이 책에서처럼 누군가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날지라도 환생을 통해 이 억울함을 밝히고 끝까지 범인을 색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지 않을까?
그래서 '환생'은 누군가의 염원이나 바램을 담은, 결말로 이어주는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듀얼은 '하나의 소프트웨어(자아)와 두 개의 하드웨어(인체)' 혹은 '두 번의 삶'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