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낡고 해진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목이 존재한다. 쓰레기로 가득한 길가, 음산한 분위기, 거기에 더해 수없이 눈에 띄는 벌레들까지. 그래서 그런 골목들은 이따금씩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굳이 가로지르려 하지 않는다.
동네의 한곳만 살펴봐도 이처럼 깨끗한 골목과 해진 골목이 존재하는데,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로 그 범위를 더 확장해 보면 이제 동네 단위로 그 구분이 명확해진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종종 부유한 동네, 가난한 동네로 구분 지어 부르기도 하는데, 대부분 경제적인 부분을 기준으로 나누곤 한다.
반면 외국에서는 낡고 해진 동네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로 오히려 우대받는 경우가 많다. 오래 지켜온 만큼 더 오랫동안 보존하여 후대에까지 전해주려는 시도들이 이어져 유명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 역시 낡고 해진 동네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저 재개발이든 리모델링이든 어떤 형태로든 깔끔하게 변화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왜냐하면 깨끗해져야 그곳이 더 이상 더러워지지(분위기든, 실질적 깨끗함이든)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는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인식 때문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더러운 곳에서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려도 양심에 크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이미 더러운 곳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쉽게 양심을 저버린다. 반면 깨끗한 곳에서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쉽게 쓰레기를 버리거나 더럽히지 않는다. 이와 같은 속성 때문에 더러운 곳이 깨끗하게 탈바꿈하기를 소원했다.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한 골목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데, 큰 길가에서 바로 한 블록 안쪽에 자리했던 골목이 한때는 온갖 쓰레기들이 줄을 지어 나열되어 있던 음침하고 더러워 흉흉한 분위기를 뽐내던 곳이었다. 깨끗하고 큰 길가와 너무 대조되는 그 골목길은 여름이면 악취와 벌레로 더 심한 몸살을 앓곤 했다.
하지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점차 그곳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쭈욱 늘어서 있던 쓰레기들이 치워지기 시작하면서, 음침하고 더러웠던 골목은 어느새 말끔한 형태로 변모해 나갔다. 그리고 그 주위에 서서히 하나씩 대단지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과거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누구나 살고 싶은 곳이 되었다.
덕분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놀이터와 공원으로 새롭게 자리한 말끔해진 모습에 이제는 흉흉 분위기는커녕 큰 두려움이나 어려움 없이 그곳을 지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정부 차원의 새로운 정비는 필요하다 느꼈고, 오래되고 낡은 집이나 동네를 변모시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 더럽고 낡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하고, 못생긴 외양만을 보고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도 사실 한때는 논밭으로 뒤덮인 시골이자 달동네가 흔하게 존재했던 하나의 지역이었을 뿐인데, 과거의 그 모습은 어느새 잊히고 너무 새것만 쫓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저자는 낡고, 긁히고, 부서진 허물어질 것 같은 도시의 못생긴 부분들을 직접 걷고 찍으며 곳곳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제대로 살펴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쫓겨난 그 진짜 주인들의 행방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 동네의 모습을 전한다. 심지어 수년이 지났음에도 애초에 계획했던 도시보전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과정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도 함께 전한다.
이를 통해 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화했는지, 또 그 정 많던 동네가 허물어졌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정부 사업에 내쫓기듯 사라진 이들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삶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음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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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무 살이 되면 새 출발선에 서는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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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가 넘어서면 '죽은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동네. 어쩌면 우리는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동네를 살펴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다.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방의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버려진 집을 무료 혹은 아주 싼 가격에 내어주고 젊은 층을 유입하여 다시금 활기찬 마을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고 있었다.
이처럼 단지 낡고, 긁히고, 부서졌다는 이유로 그대로 마을 전체를 사장시키거나 완전히 새롭게 건설하기보다 집 각각의 개성을 살리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한 소소한 변화를 통해 동네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사는 사람들에 의해 생동감 있게 순환하는 도시, 그리고 오래도록 동네가 가진 특성을 보존하고 지켜나가며, 누구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도시 건설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지향할 지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파고들었다.
일률적인 도시개발로 획일화되고 특성을 잃어버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흑색 도시 속에 잠재된 죽은 도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무한한 상상과 재미있는 도시 보존을 위해서는 어쩌면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것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발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는 백사마을과 창신동, 그리고 청계천을 따라 을지로에 있는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를 예로 들어 도시개발로 고유의 특성이 사라져 버린 동네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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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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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백사마을은 앞선 재개발 계획과는 다른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자는 목표로 백사마을 원주민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전승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백사마을 디자인 가이드라인> 채택하여 재개발의 추천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마을 전체가 지향하는 자원의 공유, 공간의 공유, 기회의 공유를 구현하는 계획을 한다"라는 문장을 담았다.
앞서 진행한 재개발이 과거의 모습은 완전히 지우고 원주민을 쫓아내는 형상이었다면 백사마을에서 진행하는 재개발에서는 주거지 보전사업을 통해 '원주민이 계속 살아가는 마을'을 자연스럽게 핵심과제로 삼아 진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거지 보전사업은 결국 패색이 완전한 상황이 되었고, 이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서 이루고자 했던 가치가 뒤로 밀리는 형상이 된다. 오로지 토지주의 비용을 더 절감하기 위한 분양주택 확대, 그리고 자산 가치를 더 높여줄 대단지 아파트로의 전환이 앞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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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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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은 근현대사에서 줄곧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고향을 떠나 서울(경성)에 올라온 가난한 농민 출신 노동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곳이다.
창신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달동네에서 해방 이후 판자촌으로, 산업화 이후 다시 빌라촌이라는 이름으로 변하게 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낡고 해진 곳을 재정비하는 재개발의 흐름에서 비껴갈 수 없는 곳 중 하나였다.
창신동의 재개발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면 재개발은 덩치를 키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살펴보며 다음과 같다.
예컨대, 새 아파트를 1400세대로 짓는다고 하면 이 중 1000세대를 원래 헌 집을 가졌던 주인들이 한 채씩 나눠 갖고, 나머지 400세대를 외지인들에게 분양해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새 아파트를 짓는데 들어간 건설비에서 이 분양금을 빼면 헌 집 1000세대 주인들이 대야 할 몫, 즉 분담금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모든 재개발은 되도록 덩치를 키우려고 한다.
내가 사는 집을 더 크고, 더 높은 아파트로 고쳐 지을수록 오히려 내가 내는 돈이 줄어드는 희한한 판이 바로 재개발인 셈인 것이다.
이러한 재개발의 아이러니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장 재개발해야 할 것 같은 허름하고 조그만 집들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복작복작 모여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부분 소유주가 아니라 세입자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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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 재정비 촉진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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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보기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의 풍경, 거기에는 그 나름의 복잡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공공의 책무는 그 맥락을 최대한 존중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지, 앞장서 맥락을 무시하고 파괴하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는 백지가 아닙니다.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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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곳곳을 둘러보다 보면, 이제 그만 헌집을 놓아주고 새 집을 지어야 할 것만 같은 풍경을 선사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새 집을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간혹 우리는 뉴스를 통해 몇몇 오래된 동네가 입주민들에 의해 새롭게 변모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하는데, '힙지로'가 그 좋은 예다. 낡은 것을 새로운 문화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면서 '낡은 것'이 아닌 '빈티지스러움'으로 인식시키고, 긍정적 생각을 심어주면서 사람들에게 공간의 재창조를 경험하게 한다.
이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것과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만 제2의 힙지로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남긴 말에서 깊은 공감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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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겠지만, 도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안에는 아름답지 않은, 못생긴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심지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곳이 서울에는 아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 못생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할 때,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조감도의 시선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경꾼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구경꾼은 이미 기울어진 쪽에 서서 기울기를 한층 더 가파르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입니다.
(...)
그럴 게 아니라 이제는 거리에 서야 합니다. 거리에서 조감도가 아닌 투시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펴야 합니다.
(...)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이런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보존할 대상은 천막이나 지붕 같은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삶입니다. 그 삶을 보존하는 일이 슬레이트 지붕이나 타이어 올린 천막을 지키는 일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공공의 책무입니다. 어쩌면 우리 도시에는 일정한 못생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때는 못생긴 도시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집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224~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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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시 속에 자리한 아름답지 않은, 못생긴 부분이 여전히 왜 필요하냐고 질문한다면, 살림살이에 비교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아무리 깨끗하고 예쁜 집을 유지하고 싶어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아름답지 않은, 때로 지저분해 보이는 살림살이들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단지 보기 흉하다는 관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집 안에서 투시도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관점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흉하다는 관점으로 봤기에 그저 관람하는 관람객이었고, 기울어지고 삐뚤어진 일면만 보았다. 하지만 거리에 서서 살펴보면 다양한 삶과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흉한지, 못생겼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얼마나 필요한 물건인지, 그런 삶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우선이라는 점이다.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때로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