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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거북이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앞서 읽은 그림책에 이어 이번에 만나 본 그림책은 탄생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담고 있는 <태어난 아이>다. 살면서 한 번쯤 하게 되는 탄생에 대한 물음과 삶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는 그림책으로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흠뻑 느끼게 했다.
아이들 대상의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친 질감의 표현과 개성 넘치는 색감의 대비가 무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 그림에 대해서는 약간의 호불호가 나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담고 있는 메시지나 내용이 갖는 무게감이 상당해 한 번쯤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이가 갖는 의미와 어른이 느끼는 의미에 격차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아동과 성인 모두가 함께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잊고 있던 '태어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한편, 이 그림책에서는 재밌는 전제조건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만약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다. 이를 통해 '만일, 내가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이라는 주제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무얼 하고 싶은지 잠시 상상하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여정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만나보자!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세상 구경을 하며 돌아다닌다. 혼자였지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고,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또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영향도 받지 않았는데, 우주 한가운데에서 별 사이를 거닐어도,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내려와 또 다른 구경에 나서는데, 여기서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모든 것에 심드렁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이어나간다.
사자가 나타나도 무섭지 않았고, 모기가 물어도 가렵지 않았으며, 강아지가 핥아도 간지럽지 않았다. 심지어 배도 고프지 않아 먹지 않고 세상을 구경하며 떠돌아다닌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니 무얼 하든 공허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개에게 물린 여자아이를 따라갔다가 여자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엉덩이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을 보고 반창고가 붙이고 싶은 마음에 마침내 태어나기로 마음먹고 태어나게 된다.
그림책에서는 단 몇 줄로 단순히 자신도 반창고를 붙이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되는데, 사실은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소녀의 모습이 부러워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후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기 전에 아무 상관이 없던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 극적인 순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차이와 대비를 이루는지 극명하게 나뉘는 장면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살면서 '왜 태어났을까?' 혹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데, 여러 고찰과 철학적 사유들을 제쳐두고 가장 극적이면서 현실적인 '태어나야 함의 이유'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저런 사유로 삶에 대한 의미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놓치고 있다면 이 그림책을 통해 발견해 보기를 바란다. 실제 존재한다는 것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숭고하고 소중한 것인지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늘 누리고 있는 일상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최고의 가치'로 느끼게 될 것이다.
태어난 아이는 이제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배고픔과 아픔, 슬픔, 가려움, 즐거움 등의 모든 감정들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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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파"
태어난 아이는 팔과 다리가 아파서 울었습니다.
(...)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 오는 빵 냄새를 맡았습니다.
"배고파요, 엄마."
태어난 아이는 빵을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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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아파서 울기도 하고, 원하던 반창고도 붙였으며, 부드럽고 좋은 엄마 냄새를 느끼는 것은 물론 배고픔도 느끼게 된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할 생생한 감각들은 태어났기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로 우리는 불행이 닥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불현듯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와 같은 생각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태어났기에,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고, 이 모든 총천연색의 감정과 경험을 하는 것이다.
불행과 행복, 양 극단에 자신의 삶을 두지 말고, 살아있는 것 그 자체를 즐겨보면 어떨까? 태어난 아이가 배고픔과 아픔 등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간혹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부럽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걸림돌이 될 것도, 아무것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나 가치 역시 사라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는 마지막에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라고 말하는데, 행복하다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다가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태어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상 모든 것들을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임을 즉각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한, 삶은 피곤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세상 처음 사는 인생 1회차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경험들이다. 하지만, 태어났기에 경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태어났음에, 살아있음에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 내가 겪은 이 모든 일이 살아있기에 겪는 일이라는 따뜻한 토닥임과 삶의 의미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금 힘을 내게 된다.
불행을 겪어서, 아픔을 겪어서 삶의 의미와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면,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포용해 보면 어떨까? 오늘도 우리는 살아있음에 수만 가지 감정과 경험을 새로 맞닥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