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많은 나라, 아일랜드. 이 책은 그곳에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 클레어 키건의 국내 초역 작품으로, <말 없는 소녀>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어 올해 5월 말 개봉한 작품이기도 하다.

 

도서는 약 100페이지 정도로 길지 않으며,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단편 1~2편이 실려있는 것으로 오해했으나, 실상은 한 스토리에 생략된 부분이 많아 체감하는 느낌은 그 이상처럼 느껴진다.

 

처음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꽤 오랫동안 도서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어 자주 눈에 띄어 주목하게 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제목이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버려진' 것도 아니고 '맡겨진'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대략적인 스토리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 여름의 어느 날, 엄마의 출산을 앞두고 친척 집에 한동안 맡겨지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낯설지만 따뜻한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평소 무심하고 관심 없는 아버지, 늘 집안 일과 육아에 지친 어머니 사이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라던 소녀는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상황과 감정들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느껴지만, 이내 서서히 적응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적응이 되어갈 때쯤 또 불현듯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데, 내심 자신의 부모를 보며 느끼는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통해 새삼 타인인 자신을 잘 보살펴 준 킨셀라 부부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스토리의 전개는 소녀의 관점에서 서술되는데, 아이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어른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내용상 서술되는 구구절절한 설명은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래서 더 시선에서 머무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깊이 공감하고 통찰할 수 있다.

 

타인에게 지나친 정도로 관심을 두는 어른들, 자신의 아이에게 타인보다 못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기본적인 예의도 갖출 줄 모르는 어머니. 아이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런 어른들의 무심하고, 차갑고, 폭력적인 상황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진짜 어른으로 판단되는 이들은 킨셀라 부부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해야 할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고, 아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관심과 애정을 주며, 적절한 교육과 예의를 가르친다. 불안감에 도착한 첫날 침대에 오줌을 싼 것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별다른 체벌 없이 넘어간다.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부모와 떨어져 낯선 이들의 집에서 머물게 된 아이의 불안함과 걱정을 알아챈 것이다. 이날도 아버지는 자신의 볼일이 끝나고 배를 채우자마자 떠났고, 아이는 이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그저 난감하기만 하다. 

 

=====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17페이지 中
=====

 

싸 들고 온 짐도 내려두지 않고 가버린 무심한 아버지로 인해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는 꾀죄죄한 소녀를 이 낯선 부부는 따스이 맞아주며 어디선가 갈아입을 옷도 내어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편안한 잠자리도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첫날밤에 축축이 젖어버린 침대를 발견한 에드나 부인은 습한 방에 재운 자기 잘못이라며 서둘러 빨아서 햇볕에 말려주고 더 이상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는다. 이때도 소녀는 체벌이나 혹은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지리라 짐작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에 오히려 머쓱함을 느낀다.

 

이후로도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제대로 대답하는 방법을 교육하며 아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알겠지?"
"에."
"'에'가 아니야. '네'라고 해야지. 뭐라고?"
"'네'라고 해야 돼요."

27페이지 中
=====

 

아이는 이후에도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에'라는 대답 뒤에 '네'라고 대답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에." 내가 말한다 "네."

38페이지 中
=====

 

아이는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을 도와야 할지 늘 항상 조심스러워하고 걱정하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별다른 체벌이나 책망 없이 그냥 넘어간다.

 

=====
나는 의자에 앉아서 얼어붙은 채 훨씬 더 심한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지만 킨셀라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51페이지 中
=====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원래 지내던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고, 가난한 집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며 폭력과 체벌이 심하게 가해 졌음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옷을 사 입고 돌아오던 길 우연히 초상집에 들렀다가 잠시 들린 이웃집 주민의 값싼 입을 통해 킨셀라 부부의 비밀스러운 아픔에 대해 알게 된다. 한동안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이 죽은 이 부부의 아들 옷이며, 자신이 머물던 방의 벽지에 그려진 남자애가 바로 그 아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 키우던 늙은 사냥개를 따라서 거름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빠져 죽었음을 알게 되면서 말 못 한 이들의 슬픔을 알게 된다.

 

=====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죠. 이런 애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요." 아저씨가 말한다.

67페이지 中
=====

 

이 대화를 통해 밀드러드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이내 서둘러 아이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미 밀드러드가 소녀에게 불필요한 말을 했음을 짐작했고, 이를 지적하는 말이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소녀는 이 일을 계기로 킨셀라 부부의 아이에 대한 절망과 사랑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하룻밤 만에 하얗게 센 머리를 통해 얼마나 이들이 시름에 젖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고, 죽은 아이의 옷과 방을 그대로 둔 것, 아이를 죽인 개를 차마 죽이지 못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을 보고 남다른 애정과 슬픔을 알아챘을 것이다.

 

소녀는 그렇게 자신의 친부모와 대비되는 애정과 사랑을 대신해서 받으며 새삼 제 부모와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69~70페이지 中
=====

 

후반부로 갈수록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가족의 모습은 더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그래서인지 더 애틋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 느껴야 했을 온기와 사랑을 타인에게 먼저 맛보고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또 떠나보내야 했을 소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편 갑작스레 잃은 아들을 대신해서 갑자기 맞이한 소녀를 먹고, 입히고, 씻기며 정성스레 돌본 킨셀라 부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어머니의 출산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애정 없는 부모, 예의 없는 부모를 마주한 현실에 다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무례한 말에 재빨리 자리를 떠나는 킨셀라 부부의 뒷모습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킨셀라 부부가 집을 나선 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어머니는 불현듯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그치기 시작하고,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는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함구할 생각이다.

 

=====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96페이지 中
=====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었지만, 아마 소녀가 함구하고자 하는 것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킨셀라 부인을 위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다 사고로 빠져 죽을뻔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 일로 두 번이나 아이를 잃을뻔했던 킨셀라 부부는 아버지의 무례한 말을 핑계로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애정을 꾹꾹 마음속에 담아두고 서둘러 자리를 떠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소녀는 어머니의 다그침을 뒤로하고 서둘러 킨셀라 부부를 쫓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차가 대문에 다다랐을 때 소녀는 마침내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뛰어든다. 그리고 아저씨의 품에서 어깨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굳세게 다가오는 아버지를.

 

=====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98페이지 中
=====

 

소녀는 그렇게 세상 처음으로 자신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준 이들을 떠나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을 향해 달렸고, 아저씨의 품에서 아빠가 오고 있음을 경고함과 동시에, 아저씨를 향해 '아빠'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의 몫이다. 소녀는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기꺼이 품어주고 아껴주었던 킨셀라 부부와 다시 돌아갔을까? 아니면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볼 수 없었을까?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이고 바라는 형태의 이야기는 역시 해피엔딩으로, 현 상황에서 만약 내가 작가라면 소녀를 킨셀라 부부에게 입양시켜 양쪽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결말로 만들었을 것 같다. 가난하고 능력 없는 부모 밑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부대끼며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이며 사는 건 이미 애정의 맛을 본 아이의 입장에서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두 번 아이를 잃을뻔한 경험을 한 킨셀라 부부가 소녀를 딸로 입양한다면 더없는 충만한 애정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런 부부의 밑에서 소녀는 반듯하고 아름답게 성장할 것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몬 개도 추후에는 이름으로 불러줄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찬 그림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종 한 명의 아이를 먼 친척에게 보내기는 하지만 그 덕에 소녀의 부모는 약간의 곡식과 재물을 얻어 당장의 먹고 살 걱정은 좀 덜 수 있으니 자식에 대한 애정도 관심도 없는 부모로서의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상상이자 바람이다. 추후의 이야기는 독자가 그리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수많은 생략과 공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사실 우물에 빠진 것도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 디테일한 묘사와 상황을 통해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짧지만 길게 느껴지고, 또 단조롭지만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생략과 공백 속에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고 추가할지 오로지 독자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맡겨진 소녀>를 통해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상상과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문득 궁금해진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수만 가지의 곁가지와 이야기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