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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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에 관한 책이라 조금은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모성'은 어딘가 날카롭고 충격적이며 집착 가득한 이기심처럼 보였다. 

 

기본적으로 여성이 자신의 아이에 대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본능적 성질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새삼 그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 뉴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끔찍한 사건사고들만 봐도 본능적 성질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나 학습된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삼대에 걸친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어머니의 고백'과 '딸의 독백'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신부님께 고하는 어머니의 고백과 딸의 독백은 어쩐지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수위를 넘나들며, 위험하고 위태로운 속마음을 고스란히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여자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다가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는 삶은 어떻게 보면 일상적이고 보통의 삶이다. 그러나 이 삶 속에 존재하는 '나'와 '딸아이'는 그렇지 못하다. 아니 어쩌면 삼대에 걸친 모두가 그렇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비뚤어진 욕망과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그 외에는 가치로 보지 않는 흑백논리의 시선은 어쩐지 외줄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모습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진작 끊어냈어야 할 애정에 대한 갈급이 결혼을 하고, 자신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을 갈구하게 만들었을까? 충만한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에게서 왜 독립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애정을 바라왔던 것일까?

 

이런 질문들이 봇물 터지듯 터지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모성'보다 '미성숙한' 한 인간에 대한 삶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았다. 몸만 자란 어른이 가지는 위험한 발상과 가치관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여기에 모성이 어떻게 작용하고 자식에게 전가되는지.

 

이 책은 세 개의 화자로 구성되어 전개되는데, '모성에 관하여', '어머니의 고백', '딸의 독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모성에 관하여'는 제3자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서술처럼 보이나 마지막 7장 '모성에 관하여' 페이지를 통해 성장하여 어른이 된 딸아이가 과거를 되돌아보며 서술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모성에 관하여'는 이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 있어 뼈대이며, 모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담고 있는 페이지이기도 하다.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자살 사건, 그리고 그 아이의 어머니가 내뱉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이렇게 된 게 믿기지 않는다”라는 말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트리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갈구하던 딸, 그러나 외면과 무시로 돌아온 홀대 속에서 자란 자신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른이 되어 되새겨봐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끝끝내 쇼윈도적 내리사랑을 보여준 어머니를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음이지 않을까?

 

◆◆◆

 

시점을 '나'로 잡고 스토리를 대략 살펴보면 이렇다. 외할머니는 온전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랑을 한껏 받으면서도 어머니는 늘 그런 외할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외할머니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림, 작문, 읽기, 쓰기, 공부, 운동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외할머니가 기뻐하고 칭찬해 주길 바라며 노력해왔다.

 

삶의 모든 부분을 외할머니의 시선에 맞추며 살다 보니 결혼도 외할머니가 지지하는 사람과 하게 되었고, 실제로 칙칙하거나 어두워서 좋아하지 않는 그림도 외할머니가 좋다고 말하면 어느새 180도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결혼하게 된 것이 나의 아버지 타로코로 사토시였고, 그렇게 내가 태어나게 된다.

 

외할머니와 아버지는 비슷한 취향과 시각을 가졌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릴케의 시와 아버지의 그림에 대한 둘의 안목이었다. 이런 외할머니의 안목과 지지 덕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데이트를 하게 되고, 세 번째 만남에 프러포즈를 받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좋아하는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 틀에 아버지인 사토시를 끼워 넣기 시작했고 마침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감정까지 느끼게 되면서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현상까지 경험하게 된다.

 

외할머니의 지지와 바램에 힘입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 후 언덕 위 그림 같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사는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꿈같은 시간이다. 시댁과 멀고, 친정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덕에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여러 핑계를 대며 외할머니 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를 통해 친밀한 모녀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의 외할머니를 향한 사랑의 갈급은 결혼 후에도 여전했고, 남편과 시댁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마저도 외할머니를 통해 채워나갔다.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외할머니의 말 한마디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으며 만족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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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의 생명체를 소중히 품는 행위는 그림을 그리거나 꽃을 돌보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애정을 담아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요.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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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서도 나에 대한 애정은 눈꼽만큼도 없음을 어머니의 고백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단순히 외할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만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산할 때도 마치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기만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부르는 '엄마'라는 호칭에서도 어머니는 여러모로 못마땅해 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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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똑같이 '아빠,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문득 그게 싫다는 생각이 들더라군요. 엄마라고 부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게 있어 '엄마'라는 말은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위해서만 존재하니까요. 그걸 아무렇게나 가져다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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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낳은 딸에게 마저 질투를 하는 어머니의 이런 비뚤어진 모성을 나는 일찍이 은연중에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독박 육아를 하며 나에게 모유 수유를 시도했지만 모유는 거부하고 우유를 먹었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이런 행위마저도 자신을 거부한 거라 취급하곤 했다.

 

※모성: 여성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지키고 길러내려고 하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적 성질

 

그럼에도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어머니는 나를 위해 앨범과 옷을 직접 만들어주며 겉으로는 한없이 사랑받는 아이처럼 보였다. 또래 아래들보다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던 나는 일찍이 철이 들었고 덕분에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향해 가르치는 예의와 교육을 익히면서 서서히 주변을 많이 신경 쓰는 아이로 자라났다. 특히 어른들의 반응에 민감했는데,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실제로는 사랑받지 못함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에 그것은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예의 바르고 똑똑한 아이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이것은 서서히 또래 사이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바름을 지적하는 나의 행동에 친구들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고등학교 때 사귄 남자친구인 토오루는 이것에 대해 '옳은 말인데 정감이 없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조금이라도 옳지 못한 행동을 하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내면 깊숙이 깔려있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용서받는다=사랑받는다.

 

라고 내 머릿속에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을지언정 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기 위해 늘 애썼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애지중지할지언정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준 건 외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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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미도 많이 사랑한단다."

그 말을 들으면 온몸 구석구석까지 기쁨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외할머니와 손을 맞잡고 과자를 사러 가고 종이접기를 함께 한 기억은 행복으로 잔뜩 남아 있다. 외할머니에게 받았던 건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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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내 존재란 어머니가 꿈꾸는 행복이라는 그림에서 극히 일부분, '소품'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덕 위의 꿈같은 집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일요일이면 '타도코로 식당'이라 칭하며 아버지가 만들어주던 간단한 요리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너무나도 좋았던 밤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 건 너무 갑작스러운 일 때문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던 그날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면서부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외할머니의 극단적인 자살로 인해 나는 살 수 있었고, 이 일로 내 인생도, 그리고 부모님의 인생도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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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싫어. 난 엄마를 구하고 싶어. 자식은 또 낳으면 되잖아."

제가 뭔가 잘못된 이야기를 적고 있는 걸까요?

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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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을 잃어 미처 듣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고백을 통해 확인해 보면, 어머니가 나와 외할머니를 어떤 존재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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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낳아서, 엄마는 정말로 행복했어. 정말 고맙다. 네 사랑을 이번엔 이 아이에게 주렴. 애지중지 아끼면서, 모든 걸 바쳐서 키워주렴!"

어머니가 제게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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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외할머니의 이 마지막 말이 아니었다면, 희생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과연 살아있을 수는 있을지. 다시 한번 어머니의 모성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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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딸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던 건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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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여학생의 자살 소동과 이를 두고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건 어쩌면, 이런 내 어머니의 행위와 연관되어 있던 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성을 빙자한 외할머니의 유언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의지가 떠올라서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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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발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숨죽이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귀에는 제가 내는 소리만 들렸기 때문입니다.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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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집이 불타고 소실되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살게 된 친할머니 댁에서의 삶은 어머니와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혼자 짊어졌으며,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워 무조건 어머니 편이 되고자 나섰던 일들은 어머니를 더 괴롭히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무관심과 방조를 일삼는 아버지는 항상 상황을 피하기 바빴고, 어쩐지 세상에 엄마 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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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머리카락에 아주 살짝 닿은 순간 끔찍한 무언가를 뿌리치려는 것처럼요.
(...)
무의식중에 엄마의 손을 거부한 것이지요. 그때 제가 느낀 절망감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103페이지 中 (어머니 입장에서 스킨십에 대해 서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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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딸아이를 만지기는커녕 그 아이가 저를 만지는 것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은 한겨울에도 손난로처럼 따뜻했습니다.

'나한테는 어머니가 없는데, 이 아이에겐 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대답해 주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이 아이에겐 있고 나한테는 없는 걸까? 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어머니를 잃은 내 마음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걸까?'

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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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 하나 없었고, 심지어 어머니와 나는 작은 스킨십하나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는데, 그럼에도 어쩐지 어머니의 작은 칭찬이 고픈 건 여전했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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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 한 가지 바람은 엄마가 상냥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다. '열심히 노력했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랐다. 그런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까 엄마, 이 손을 놓지 말아줘!'

147페이지 中 (딸의 입장에서 스킨십에 대해 서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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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에 관한 사항은 엄마의 고백과 딸의 독백에서 서술되는 내용이 완전히 다른데, 이로써 얼마나 편협된 시선으로 어머니가 딸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어머니는 온갖 집안 일과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할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어쩌면 외할머니에게 배운 것들을 착한 아이가 칭찬받듯 할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건 나를 향한 미움과 잘못을 떠넘기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원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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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들을 드디어 인정받은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걸 몰라 주었던 건 딸아이 때문이 아닐까? 딸아이가 시어머니에게 말대답 같은 건 하지 않고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짓는 아이였다면 시어머니가 나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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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댁에서 사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유산, 돈을 노리고 접근한 이웃집의 사기 행각, 고모의 가출, 노리코 고모와 그의 아들의 방문, 할아버지의 사망, 할머니의 치매 증상 등 이 중에서 가장 정점을 찍은 것은 역시 내가 자살시도를 하기 직전에 알게 된 사실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불륜, 그리고 그 불륜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닌 외할머니 집에서 세를 살고 있던 히토미 씨였다는 점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히토미씨는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결혼시키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난 시민문화센터의 회화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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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르누아르>로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이런 말을 꺼내더군요.

"사토시랑 결혼하면 틀림없이 고생할 테니까 그만두는 편이 나아요"

히토미 씨와 타도코로는 학교 동창이고 집도 서로 가까워서 타도코로 본인에 대해서나 그 가족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타도코로와 사귄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었지만요.

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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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결혼 전 어머니를 불러다 이런 맥락 없는 이야기를 다짜고짜 꺼낸 건 히토미씨 마음속에 아버지가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아버지와의 불륜이 들킨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외할머니의 죽음이 나로 인해 벌어진 자살이었다는 것을 당당히 이야기함으로써 나의 없던 자존감마저 무너뜨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나를 칭찬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그저 포근히 안아주기를 바랐던 어머니였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가 나의 목을 조르는 것을 경험하고는 죄책감에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 생각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어머니가 외할머니 대신으로 생각했던 정원에 있는 수양벚나무에서 목을 매는 것이었다. 이미 어머니가 낸 손자국이 목에 붉게 나있었기 때문에 손목을 긋는 것으로는 위장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내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사야카'라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욕구는 충족되었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바라는 것이 크게 없어서 이것만으로 되었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각자만의 사정이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 일기를 통해, 그리고 추후 다시 돌아와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를 직접 가져보니 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과연 어머니가 가졌던 모성이 무엇이었는지, 사랑을 갈구하는 내 아이를 외면하고 자신의 사랑만을 절절하게 갈구하는 것이 진짜 사랑인지.

 

온전한 사랑을 주었던 외할머니의 사랑 안에서 왜 어머니는 그토록 완전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왜 그토록 미숙한 애어른으로 성장한 것일까? 어쩌면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을 외할머니는 왜 그냥 내버려 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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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일을 해주고 싶다.
(...)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가 딸이며, 자신이 갈구했던 것을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모성 아닐까?

3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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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의아하면서 궁금증이 일었던 인물은 바로 어머니이다. 왜 그토록 외할머니의 사랑에 갈급증을 느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한편 외할머니의 가스라이팅도 의심스럽다. '모든 걸 바쳐서', '애지중지'와 같은 말들을 자주 썼던 외할머니가 은연중에 휘두르는 단어나 조종하는 행위에 오랫동안 잠식 당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살을 할 만큼 꼭 극단적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했을까 싶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녀딸을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선택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손녀에게는 아무런 조건 없는 충만한 사랑을 주었던 분이기에 알쏭달쏭한 면이 있다.

 

오로지 자신의 사랑만이 중요했던 어머니. 그의 딸이 어머니가 되고 느낀 건 어머니와 같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갈구했던 사랑을 내 딸에게도 오롯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딸의 입장에서는 그런 어머니가 더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론을 이렇게 내려봤다.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미성숙한 어른의 잘못된 선택은 후대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고. 자식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가식으로 모성을 포장하려 해도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에 숨기거나 감추기보다 차라리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고 양해를 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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