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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각종 온라인 서점 등에서 자주 보여 너무 궁금했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그래서 도서관에 대기를 걸어두고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읽을 수 있었다. 내 뒤로도 또 대기가 걸린 것을 보면 여전히 인기가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그 인기의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알 수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인기 요인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얼룩덜룩한 빨래를 깨끗하게 세탁해 햇빛에 바짝 말리면서 느끼는 개운함과 청명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둘째 미스터리하고 환상적인 시각적 포인트, 셋째 사연에 따라 따뜻한 시선으로 건네는 지은의 조언은 이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힐링 포인트로,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매력 포인트라 하겠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후회로 가득한 날들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책이기도 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지난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하고 있는 책이다. 처음에는 왜 <마음 세탁소>일까 조금 궁금했는데, 읽다 보면 너무 수긍이 가는 이름이기도 하다. 아니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말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마음 세탁소를 운영하는 지은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어쩐지 그녀의 사연 또한 후회와 상처로 가득하다. 우연히 들은 부모님의 이야기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지은은 부모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상태로 수많은 세기와 세계를 넘나들며 태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미움'이나 '아픔' 혹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늘 평화로운 마을을 떠나 부모님을 찾아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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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고,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오래도록 찾아 헤매야 한다. 그렇지만 시련을 극복하면 능력을 완전하게 갖추고 빛이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삶은 존경 받는 아름다운 삶이지만 외롭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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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른 뛰어난 능력을 두 가지나(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랐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는 삶을 이어나간지도 벌써 백만 번째.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마침내 이번을 마지막으로 죽을 결심을 하게 된 지은.
그렇게 만난 마지막 동네가 바로 메리골드였고, 어쩐지 지명이 마음에 들어 고르게 된다. 엄마가 좋아하던 꽃 이름과 같은 이름의 도시여서인지 내적 친밀감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지은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처를 치유해 줄 방법으로 마음 세탁소를 열기로 마음먹는데, 얼룩을 세탁해 깨끗하게 지우는 모습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줘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편안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룻밤 만에 신비로운 꽃잎을 통해 2층짜리 목재 집을 만든 그녀는 겉은 유럽식으로, 속은 한옥의 서까래를 넣어 안락하고 편안한 마음 세탁소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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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말이야. 마음이 아프면 꺼내서 얼룩을 지우고 햇볕에 널어 잘 말리면 돼. 다음 날이면 깨끗하게 마른 마음으로 편안해질 거야."
"마음을 꺼낼 수 있어?"
"꺼낼 수 없으면 이렇게 종이에 마음을 그리면 어떨까?"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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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곳에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하여 속 깊은 사연들을 풀어놓게 된다. 이들을 위해 지은은 매일 그들을 위해 마음에 안정을 주는 따뜻한 차를 준비하는데, 이 차를 마신 사람들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된다. 어떤 이는 아픈 날의 기억을 얼룩을 지우듯 지우고 홀가분하게 떠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가볍게 주름을 펴는 정도로 만족하고 가는 이도 있었으며, 또 어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씩 과거로 돌아가 후회되는 순간을 지워버리거나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비현실적이지만 지은이 운영하는 마음 세탁소는 그것을 얼룩진 티셔츠를 세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준다. 하지만 모든 얼룩을 제거해 주는 것은 아니며 얼룩을 제거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주면서 진짜 그 기억을 지워도 되는지, 그 기억이 지워지면 진짜 행복해질 수 있는지, 기억을 지움으로써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기억에 대해 괜찮은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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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서 좋은 마음이 있고, 간직해서 좋은 마음이 있으니 잘 판단해. 원래 내가 가지고 있을 땐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니까.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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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후회되는 행동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한데, 단순히 기억을 지우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특히 각양각색의 사연과 기억을 지우는 선택에 있어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을 통해 삶의 진짜 중요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에는 지은이 건네는 작은 위로의 말도 한몫하는데, 저마다 상처와 과거를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해가는 '마음'의 차이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듯하다.
가난에 시달려 꿈을 포기한 재하의 사연, 사랑했던 연인의 배신과 아픔에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연희의 사연,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삶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던 은별의 사연, 학교 폭력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숨어지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희 아저씨의 사연 등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어 어쩐지 마음을 울린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에서 오롯이 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단 한 명의 사람과 원하는 만큼의 마음의 얼룩을 깨끗하게 세탁해 주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묵혀둔 마음의 상처를 깨끗하게 털어주고 보듬어 준다.
지은은 벼랑 끝에 선 이들을 마주하며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수없이 반복한 끝에 백만 번째 생에 기어코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이를 통해 빛이 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그녀의 멈췄던 시간도 마침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 이 책은 이렇게 전한다. 이미 발생한 일을 되돌리려 하기 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도망치기보다 상처를 마주 보고 겪어냄으로써 경험의 나이테로 만들자고. 미리 걱정하기 보다 오늘을 사는 것에 충실하고,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라고. 그게 정답이라고 말한다.
너무 아파서, 마음이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울 때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들여다보자. 이곳에서 놓치고 있던 진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전한 삶의 가치와 조언을 통해 마음에 남은 얼룩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서 전하는 삶을 대하는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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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없는 인생은 없어. 인생에 문제가 생기면 극복해 나갈 뿐이야. 도망가고 해결하고 그런 게 극복이 아니고, 그 문제를 끝까지 피하지 않고 겪어내는 거. 그게 극복이야.
(...)
그렇게 겪어내고 난 뒤에 그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게 되는 거야. 마음의 얼룩도 그래. 자기 얼룩을 인정한 순간, 더 이상 얼룩이 얼룩이 아니라 마음의 나이테가 되듯이 말이야.
사는 거, 너무 두려워 하지마. 그날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장담할 수 없는 너무 먼 미래의 일도 생각하지 마. 미리 걱정하지 마. 그냥 오늘을 살면 돼. 오늘 하루 잘 살고, 또 오늘을 살고, 내일이 오면 또 오늘을 사는 거야, 그러면 돼."
69~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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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지 말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정답이라 믿으면 그게 정답이야.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그렇게 해도 괜찮아.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너한테 관심 없어."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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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못한 거 있음 사과하면 되고, 누가 잘못했음 사과받고 이해해 주면 되고, 회복이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받아들이면 돼. 사는 게 어떻게 언제나 완벽할 수 있겠어. 방황하고 흔들리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서고 중심 잡으려고 하고. 그러면 돼. 괜찮아."
114~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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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초록 불인 것 같아도 노란 불도 들어오고 빨간 불도 들어온다. 가끔 빨간불에만 정체되어 있는 듯해도 어김없이 초록불이 된다. 초록불 다음엔 다시 빨간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길을 걷고 신호등이 나오면 불빛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다. 지금 내게 맞는 신호가 없다면 기다리고, 언젠가 신호가 올 때 또 다시 걷는 일이 아닐까.
1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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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만드는 건 타인이 아닌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걸 연자는 오랜 시간을 지나 와서야 깨닫는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려고 그토록 긴 불행의 터널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한 모든 얼룩이 아름답다.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인생이 짧음을 아는 오늘을 살고 있음이 좋다.
1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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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열이라는 동그란 원으로 이어져 있다면 좋은 기억 하나가 안 좋은 기억 아홉 가지를 덮어준대요. 그래서 하나의 좋은 기억을 늘리는 게 중요하대요. 지나간 안 좋은 기억은 저 밑에 두고, 새로운 좋은 기억을 제일 위에 덮으면 어떨까요?
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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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법을 풀고 싶다면 닫힌 문을 여는 용기를 내야 한다. 아무리 힘껏 밀고 열고 두드려도 문이 잠겨 있을 수도 있고, 문을 여는 열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쩌면 열쇠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등 뒤에서 낮게 떠 있는 꽃잎들을 향해 지은이 중얼거린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나의 주머니, 혹은 당신의 주머니 안에 있는 열쇠를 꺼낼 수 있을까. 열어야 할 문을 밀어볼 용기를 낼 때는 언제일까.
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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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욕설을 퍼붓는다면, 받지 마세요. 택배도 수취 거부나 반품이 있듯이 나를 모욕한 그 감정이나 언행을 반품해 보세요. 물건을 주었는데 받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싫어하고 미워한다면 그 마음을 받아서 상처로 만들지 마시고 돌려주세요. 받지 않고 돌려주었으니 상처는 내 것이 아니고 상대의 것입니다. 마음의 천국을 방해하지 말고 수취 거부하세요. 그래도 됩니다.
2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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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내면의 빛이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이 아니라 마음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행복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어 살아갈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금 살고 있는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 한 걸음만 오른쪽으로 걸어도 이미 과거다. 한 걸음 앞으로 걸어도 미래가 아닌 현재다.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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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테다. 부족하고 실수하고 방황하고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얼룩을 제대로 흘려보내는 비법이 아닐까?
2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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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아야 얼룩이 남지 않고 마음의 나이테가 된다는 말,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 내게 맞는 신호가 없으면 기다리고 언젠가 신호가 오면 다시 걸으면 된다는 말,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며 살아있는 한 얼룩도 아름답다는 말,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상처를 줄 때 수취거부하라는 말, 오늘을 살아가라는 말. 이 중에서 어떤 말이 가장 가슴에 와닿나요?
상처에 소금을 뿌려 덧나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이런 다양한 방법들을 그럴 때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오늘, 용기를 내어 나의 상처를 마주 보고 얼룩을 말끔히 지워보면 어떨까? 아니면 얼룩마저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복 연습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방법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이제 그만 타인의 비난은 수취거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