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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나태주 지음 / 더블북 / 2023년 5월
평점 :
알록달록 생명력으로 가득 찬 디자인의 표지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책!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불현듯 떠오르는 표지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울 우리의 삶.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고 안일하게 지나치느라 미처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일상의 행복과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삶의 정수를 담고 있는 책'.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몸소 느낀 진짜 삶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상실된 진짜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듣는 것 같아 내심 벅차오름을 느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충실하게 들을 수 있어서 새삼 가슴이 뜨거워졌다.
겉핥기 식으로 사는 삶, 그 저편에 우리는 어쩌면 허무함과 공허함을 늘 가슴 한편에 끼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에 있는 일상의 행복을 두고, 멀리서 찾는 행복의 씁쓸함을 확인하고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부터 마치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 스토리 안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저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시, 그림, 시를 가사로 붙인 악보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마치 농축된 알맹이를 꾹꾹 눌러 담은 액기스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는 그가 유명인이어서도 아니고, 나이 든 어른이어서도 아닌 죽음 끝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 때문이었다.
오 개월 이십 일, 약 반년 가까운 시간의 병상일기가 이토록 디테일한 것은 어쩌면 그가 까물대던 정신이 깨어난 이후부터 쭉 기록으로 남겨둔 세 권의 대학노트 덕이 아닐까 싶다.
반 년의 시간 동안 거쳐간 두 병원에서 마지막(을지대학병원에서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고,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암보다 탈출하기가 어려운 병이라 했다.)을 준비하라고 연거푸 말할 만큼 상태는 심각했고, 당시엔 이렇게 살아나 십육 년을 더 살 것이라고 감히 예상하지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기적을 몸소 경험했고 기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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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아파서야 배운 것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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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그 속에 있을 땐 모른다. 내 몸을 지나 기적이 갔다는 것을 인생을 두 번 살며 알게 됐다. 잠시 멈춰 마음을 우두커니 바라보면 그 기적이 보인다.
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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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일상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비경험자들이 쉽게 흘려버리는 '오늘'의 시간과 가치들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고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의 삶을 기쁨과 행복감으로 충만한 그들을 보면 어쩐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저자 역시 이전에는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뭐든 잘하려고 애쓰고,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삶의 중심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작스레 급성 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사흘밖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그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된다.
지금의 그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과 막냇동생과도 관계를 회복했고, 일상의 먹고 자는 사소한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비롯해, 하늘을 보고, 비가 내리는 일에 분별없이 기뻐하고, 딸아이가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는 그런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일들을 즐기게 되었다.
비로소 아파서야 배우게 된 삶의 가치와 기적은 어쩌면 다시없을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는 그 모든 순간의 기록을 이 책에 담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지금 삶에 어디 고장 난 데는 없는지 점검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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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가 맞이한 아침과 오늘 찾아온 아침은 전혀 다른 아침이다. 한 사람을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난다 할지라도 오늘 만나는 그 사람은 어제 만난 그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새로움과 신기함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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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일상의 반복에 지쳤다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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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행복.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은 없다. 일상의 행복은 의외로 우리가 무시하고 넘긴 사소한 것, 낡은 것,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 있게 마련이다. 되풀이되는 것들 가운데서 느껴지는 편안함도 일상의 행복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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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말자.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면 된다.
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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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가는 사람을 목표로 두고 애를 쓰며 사느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찾고 있는 행복이 사실은 가장 가까이에 웅크리고 있는데, 새롭고, 거창하고, 낯선 것만 찾느라 눈이 멀어버려 좋아하는 것을 손에 쥐고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뇌리에 깊숙이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높은 권력과, 부의 과시, 화려한 언변 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한 사람이 기억되는 건, 그 사람의 재산도, 외모도, 명예도 아닌 그 사람의 의미 있는 자취들 덕분이다. 사람은 결국 작아지고 고요해지고 초라해지고 무가치해진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남겨놓은 무언가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때 참 의미 있는 인생이 된다.
실패에 대해서도 우리는 관대하지 않다. 한 번의 실패가 곧 인생의 종말인 듯 굴며 매 허들마다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버틴다. 둘러싼 환경이,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한 번의 실패를 인생 실패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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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야말로 터닝포인트다. 터닝포인트는 다시 뒤로 돌아가는 유턴 같은 게 아니다. 지금까지 어렵게 온 길 다시 새로 가라는 소리도 아니다. 가던 길 고쳐서 좋은 길로 가는 게 터닝포인트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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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죽는 순간에는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깨닫는다는데, 아직 죽음을 앞두지 않아서인지 우리는 너무도 그걸 모르고 산다. 마냥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굳건히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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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깨닫는 것도 한 세월인데,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가 되면 사랑이 끝난다. 인생도 알 때가 되면 인생 역시 끝난다. 결국 사람은 사랑이 뭔지, 인생이 뭔지를 모를 때 출발해 그것을 알 때쯤이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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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얻고 알 만하면 능력을 빼앗고 수명을 가져가는 것이다.
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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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철이 들면 죽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는 아직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쩐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온갖 것들에 정의와 의미를 찾고 자기 계발을 통해 인생을 알아가려고 무수히 노력한다. 근데 사실 아무도 인생에 대한 정답은 내릴 수 없다. 그래서 모른 채로 그냥 살아간다. 맞는 길인지 틀린 길인지 정의 없이 그냥 일단 들어간다.
나중에 돌아보고 나서야 어떤 인생이었는지 작게나마 알 수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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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 사실 뭔지 모르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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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없이 그냥 들어가는, 그런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정의할 수 없는 인생, 그것에서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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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풀고 손바닥을 펴면 그 행복이 보인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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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에게는 연습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순간순간 행복해지는 연습, 행복도 연습이다. 행복도 학습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함께 할 이가 있다는 것. 그것을 연습하고 깨달을 때, 행복은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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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 건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꾸 젊은 쪽을 바라보고 '어떻게 저 아이들한테 도움을 줄까?, '저 아이들하고 공존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어른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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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춘을 바라보는 어른이 있을 때, 청춘은 비로소 어른을 바라볼 수 있다.
157~1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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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른이 되는 법에 대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꼬장꼬장, 고집불통의 캐릭터로 남기보다 먼저 손 내밀어 주는 포용과 함께 공존하기를 제안한다. 그럴 때 비로소 청춘에게도 어른이 어른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삶의 경계선을 오가는 순간에서도 제일로 하고 싶었던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 천상 시인인 그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본능처럼 삶의 기록들을 남기는 것은 어쩌면 살고자 하는 의지이자 에너지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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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는가? 마음의 기쁨을, 정신의 희열을 얻기 위해 산다. 때문에 나의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의 의미는 주어진다.
2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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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머금을 수 없었던 죽을 것 같던 삶의 고비를 넘기면서 저자는 이제 많은 것들에 감사와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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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감사는 또 형식이나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마음의 한 양식과 같은 것이다.
2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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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감사의 표현은 진실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 편하기 위해, 나의 의지와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래서 더 자주 전해야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형식이나 예의보다 앞선 마음의 건넴, 그것이 가장 필요한 순간, 서슴없이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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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람들은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삶의 의지와 지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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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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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한테 지면 죽는다. 자기를 포기하면 죽는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서 자기한테 자기가 지지 않을 필요가 있다. 대략 사람들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는 줄 알지만 사람이 죽음을 찾아가는 것이다.
289~2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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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떠한 순간, 어떠한 사람의 것이든 그것은 빛나는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며 지극한 축복이며 감사이며 행복이며 기쁨, 그 자체다. 아니 삶 그 스스로 그 자체, 자연, 우주 그 자체, 본질이다. 누구든 삶 앞에서 헛소리하지 말라. 죽지 못해서 산다. 죽고 싶다. 마지 못해서 산다. 그런 말 하지 말라. 이는 삶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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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실에 오셔서 죽어가는 아들을 두고 다급한 나머지 나에게 들려주신 우리 아버지 말씀대로 '이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아름답고 빛나는 세상'인 것이다.
293~2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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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은 저자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서슴없이 뱉어내는 죽음에 대한 말들, 거기에 삶의 의지와 지향은 없다. 삶의 끝자락에서 되돌아온 저자의 경험은 분명히 말한다. 살아내는 것이라고, 죽음을 찾아가지 않고 삶을 찾아왔노라고.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 말씀대로 '징글징글하도록 아름답고 빛나는 세상'을 축복하고 감사하며 그 순간 그 자체를 즐기며 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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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적의 사람이다. 기적은 당신 몸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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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적이고 당신이 또 기적이다. 우리들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일 년 365일이 하루같이 기적이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지금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것이다.
2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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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순간, 당신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것을 증명할 필요도 정의할 필요도 없다. 그저 매 순간 그 기적을 경험하고 실감하며 살아가보자. 우리는 무수한 기적으로 만들어졌고, 기적으로 뭉쳐진 사람들이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수간도 분명 좋아질 것이므로, 또 다른 기적을 불러올 것이기에, 기적을 경험한 저자는 삶을, 일상을 감사하고 집중하며 살아보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