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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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에 관련된 책은 이번이 세번째로, 어쩐지 읽을수록 더욱 더 갈증이 일어 어느새 세번째 책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품 한 편과 그녀의 작업공간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어쩐지 알듯 모를듯 살짝 아리송함을 담고 있어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세번째 책을 통해 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게 되면서 궁금증으로 남아있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 

 

세번째 책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떨어뜨린 그녀에 대한 작은 힌트 조각을 수집해 나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는데, 하나하나 수집하면서 그녀의 삶과 작품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독특하고 새로워서 이제는 조금쯤 즐길 여유도 생긴듯 하다.

 

이번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을 읽고 정리하면서 새삼 의문이 가거나 궁금한 점들은 검색을 통해 채워넣는 시간을 가졌는데, 덕분에 생경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색다른 재미와 맛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이 책의 후반부에 담긴 해설이 한 몫을 했는데, 그녀가 살아온 삶과 이력을 정리한 연보, 단편들에 대한 해설을 통해 먼저 읽은 작품에 대한 느낌과 비교해 가며 확인해 볼 수 있었고, 또 놓치고 있는 포인트들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부분과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의 내용은 비슷한 부분도 또 다른 부분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건 어떤방식으로 받아들이던 그녀의 갇힘없는 표현력에 있어서만큼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는 점이다. 그것이 설사 장점이자 단점일지라도.

 

그녀의 그런 표현력, 문체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어렵거나 난해하게 느낄수도 있는데, 그래서 더 다채롭고 다양한 구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나의 특성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 책의 서평에는 단순히 책에 대한 리뷰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해 조사하고 정리한 삶도 함께 기록해 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삶을 두루 살펴보면서 작품에 대해 더 잘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처음이 만약 나의 서평이 된다면 그녀(혹은 그)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기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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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살펴보기 전,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대해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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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삶의 처음은 그녀의 부모님의 결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과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각자 이전의 결혼에서 태어난아이 한명과 세명의 자녀가 있었다. (총 4명)

 

그리고 둘 사이에서 새로 태어난 네 명의 자녀를 두게 되는데 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아드리안이 바로 그들이다. 이렇게 이들은 런던의 상류층이 거주하는 사우스 켄싱턴에서 아이 여덟, 하인, 애완견을 포함한 대가족을 이루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여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딸을 자신의 문학적 후계자로 길러냈다. 어머니 줄리아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인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신의 딸이 대학에서 교육받는 것을 원치 않아 가정교사를 통해 교육받는다.

 

헌신적인 어머니 상이었던 어머니 줄리아는 평생을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았는데, 그러다 울프가 열세살이 되던 1895년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화목했던 가정은 빛을 잃고 슬픔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타인에게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어머니가 정작 자신의 친딸은 간병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덕분에 울프는 어머니의 품에서 간병 한번 받지 못한 채 정신병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후 울프는 세 살 터울인 언니 바네사와 서로 의지하며 각자 작가와 화가의 꿈을 키우는데, 20세기 무렵 <타임스>지 문예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수십년간 지속되어 600여 편이 넘는 에세이를 남긴다.(추후 울프가 작품을 쓰는데 있어 작품을 '이야기 하듯' 쓰는게 아니라, '그리듯' 쓰는데는 화가인 언니 바네사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1904년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이 사망하고, 이복형제를 제외한 이들 자매와 남자형제는 보수적인 켄싱턴을 떠나 보헤미안적인 분위기의 블룸즈버리로 이사한다. 블룸즈버리는 진보적 지성과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장소로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서 울프와 바네사는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문학, 예술,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친목을 다졌는데, 이 모임이 유명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시작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모임에서 작가이자 정치 사상가인 레너드 울프와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첫 장편소설 <출항>을 출간했는데, 결혼과 첫 소설 출판이라는 커다란 일들이 원인이 되었는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질환이 심해진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남편 레너드는 아내의 건강을 위해 런던 교외의 리치몬드로 이사하고 책을 좋아하는 울프가 할 수 있는 단순노동 일거리를 찾아 인쇄용 자판 세트를 구입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일일이 손으로 책을 만들면서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고 이들이 살던 집 호가스 하우스의 이름을 따서 '호가스 출판사'라 명명한다. 이 출판사는 영국 최초로 프로이트 전집과 톨스토이와 도스도옙스키 등의 작품을 번역, 출판한 유서깊은 출판사로 지금도 건재하다.

 

이 출판사를 통해 그녀는 수십수백편의 작품을 출판하면서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여성작가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녀가 죽기 전 머물렀던 울프의 시골집인 서식스 해안가가 독일의 영국 본토 상륙지로 소문이 나면서 만일의 경우 둘이 함께 자살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유대인인 남편 레너드와 함께 나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홀로 이스트 서식스주 루이스의 자택을 나선 그녀는 주머니에 돌을 넣은채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갔고, 시신은 2주 후에야 발견된다. 그때 그녀 나이 60세였다.

 

<여기서 잠깐!>
그녀의 정신병에 대한 서술이 검색내용과는 다르게 서술되어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이 울프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이때부터 시작된 정신질환은 평생 울프를 괴롭혔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검색으로 찾아본 바에 따르면, 6살때부터 의붓오빠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면서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면서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극복하지 못한채 일상을 불행속에서 살았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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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업적과 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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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모더니즘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데, 특히 에세이와 비평, 소설 작품을 통해 여성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1929년에 나온 <자기만의 방>은 여성주의 비평과 문학 연구에 있어 고전 중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잠깐! 당시의 시대상은 어땠을까?>
당시 사회의 여성관은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며, 여성의 임무는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성을 추앙하던 시기다. 그래서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는 생각은 갖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 시기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의 수입"이 필요하다는 과감한 주장을 폈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추후 영국 여성문학상의 최우수상 상금은 3만 파운드로(500파운드가 현재 시세로 치면 3만 파운드임) 적용되었다.

 

▶울프는 작가가 되려 했을때 여성적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형식과 문체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여성작가들을 뒷받침해 줄 문학 전통을 발굴하고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지난한 삶을 재현해내는 작업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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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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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의 단편들은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도형으로 이야기 하자면 동그라미, 세모, 네모, 별, 기하학 등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몇 줄의 아주 짧은 단문으로 이루어진 글도 있고, 몇 페이지의 독특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도 섞여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종잡을 수가 없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듯도 하고,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관찰일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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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사진과 영화를 즐긴 첫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울프의 글이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보여주는" 장면을 구성하는 데 더 치중하는 듯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2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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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이 없기에 틀도 관념도 없다. 그저 상상하는데로 그려지고 그리듯이 써내려진 글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쓰여있지 않기 때문에 기승전결도 없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된다. 그래서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글을 보는것 같다.

 

모양을 특정할 수 없기에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고, 상상이 되지 않아 까다롭게 느껴질수도 있는데, 그냥 느끼는 그대로, 보여지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는것도 버지니아 울프 소설만의 맛인것 같다. 후반부의 해설에 쓰인 영문학자 손현주 박사의 글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비슷한 의견을 전하고 있다.

 

외국 문학을 읽으면서 느끼는 낯섦이나 다른 문화의 이질감은 때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행과 탐험을 하듯 그냥 그대로 전진해보는것도 문학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인것 같다. 내 느낌대로 읽어보고, 추후에 마음이 동할 때 해당 문화를 공부하고 다시 읽어보는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이번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의 18편 중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혹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3편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주관적 느낌과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더해 읽은 소감을 기준으로 작성해 보았다.

 

 

<과수원에서>

이 소설에 특별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한 소녀의 모습을 기준으로 높게, 더 높게, 더 더 높이올라 주변의 풍경을 담는다. 풍경은 그저 평화롭고 한적하다. 잠든 듯 보이는 소녀와 주변에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는 햇살에 반짝이는 사과나무, 살짝 불어오는 미풍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은 보는것만으로도 나른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4피트(약 1미트), 30피트(약 10미터), 200피트(약 60미터)로 높이 오를수록 아이들의 구구단 외우는 소리, 교회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찬송가 소리, 더 멀리에서는 여인들의 예배 소리와 목사님의 감사 기도 소리가 들려온다.

 

미소를 지으며 대지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 누워있는 미란다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대지가 여왕처럼 가뿐히 업은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가, 돌연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는 모습으로, 또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는 바닷가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상상은 이어진다.

 

계속 차 마시는 시간에 늦을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선뜻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미란다의 상상이 그녀의 상상인지, 울프의 상상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저 계속되는 재미있는 상상이 빙글빙글 이어질뿐이다.

 

점점 높이 올라가는 순간에는 마치 카메라 앵글이 땅에서 멀어지는 영상이 그려진다. 그러다 이내 휙휙 바뀌는 상상속 장면들은 색다른 여행지를 떠올리게 한다. 끝도 없는 상상의 세계로 안내받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

'뛰어난 인물이 아닌 사람의 삶은 기록될 가치가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로, 평범한 사람들의 군중 속 고독과 외로움, 무관심에 대해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뚜렷한 성취나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울프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의 전기를 어떻게 서술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 실험의 맥락으로 쓰게 된 소설이 바로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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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속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보다 더 외로운 순간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
V 양의 일을 겪고 난 지금 나는 그 말을 믿게 되었다.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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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양이라는 이름은 그녀와 그녀의 동생 두 사람을 동시에 지칭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자매의 이야기를 한 번에 포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더불어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동시에 런던이 아니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도로 문명화 된 도시에서 인간 생명에 대한 예우가 최소한도로 줄어드는 상황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주변인들로부터 잊혀져 간다. 각자도생. 바쁜 일상속 조금씩 조금씩 나의 자리가 사라져 간다. 평소에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살아가지만, 점차 그 그림자마저도 희미해져 존재자체가 지워져 버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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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모두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고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도, 소식지를 읽는 흔적이 없어도, 목사의 지시 사항이 지켜지지 않아도, 그것을 알아 차리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이들 집은 건너뛰기 시작하고, 가엷은 J양이나 V양은 삶이라는 촘촘한 사슬에서 떨어져 나가 영영 모두의 의식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86~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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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잊혀졌던 V양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지나치거나 스쳐 지나가며 2)빈번하게 마주치게 되면서 나중에는 이런 일들이 거의 습관적으로 느껴질 정도가 된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회색 그림자가 보여야 비로소 그 자리가 완전해진듯 한 느낌이 들때쯤 3)그녀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없어지면서 나는 뭔가 빠진 듯 허전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메리 V!" 라는 이름을 불현듯 부르며 깨어난 나는 그녀와 마주치고 그녀가 사라지는 4)모습을 보아야만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 메리 V의 집에 찾아가 보지만, 이미 그녀는 죽은 뒤였다.

 

그 집에 사는 하녀의 말에 따르면 전날 저녁,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잠에서 깨던 바로 그 시각, 지난 두 달 동안 아팠던 그녀가 죽었다고 했다.

 

회색 그림자료 표현된 V 양. 빈번하게 마주치지만 정작 이름은 떠올리지 못하는 나. 죽은 후에야 불현듯 이름을 떠올렸지만, 이미 V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우리는 군중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며 쓸쓸히 홀로 사라져 간다.

 

요즘 세상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인것 같아 왠지 모르게 깊이 와 닿았던 소설이었다.

 

 


<라핀과 라피노바>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날은 화요일이었고 오늘은 토요일이다. 로절린드는 여전히 자신이 어니스트 소어번의 아내라는 사실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토스트를 먹는 남편의 모습에서 토끼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면서 둘 만의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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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날이 오뚝하고 파란 눈, 야무진 입을 가진 말끔하고 늠름한 젊은 남자에게서 그렇게 작고 겁 많은 동물과의 유사성을 찾아낼 사람은 그녀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그런 상상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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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을 때 남편은 아주 살짝 코를 씰룩거렸는데, 로절린드가 애완용으로 기르는 토끼도 그랬다. 그 모습에 그녀는 나름의 결혼생활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토끼를 떠올리고 혼자 웃는 아내의 모습에 의아해 하던 남편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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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토끼 같아서요, 어니스트" 그녀가 말했다. "산토끼를 닮았어요." 그녀가 어니스트를 보며 말했다. "먹이를 사냥하는 토끼. 토끼들의 왕. 다른 모든 토끼를 위해 법을 만드는 토끼 말이에요."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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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둘에게 '토끼'는 서로의 애칭이자 그들만의 신호로 자리 잡는다. 로절린드 언젠가부터 남편을 향해 애칭으로 "토끼님", 프랑스어로 토끼를 뜻하는 "라펭", "버니"로로 불러 보았지만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고심하던 단어를 생각해 낸듯 "라핀!"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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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핀, 라핀, 라핀 왕." 로절린드는 계속 이렇게 되뇌었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왜냐고? 그 이유는 로절린드도 모른다.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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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생활동안 그는 토끼 '라핀왕'으로, 그녀는 암토끼 여왕 "라피노바"로써 소꿉놀이하듯 알콩달콩 생생하고 재미있는 현실을 만들어가며 보낸다. 그는 그녀의 그러한 상상에 언제든 응해주었고, 신혼의 단꿈은 젖어갔다. 그때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사실 현실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서로 반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세계는 맞닿아 있었다. 그들은 왕과 왕비였으니까. 타인은 아무도 짐작조차 못하는 그래서 모든것이 더 재미있는 이들의 돈독한 연대는 종종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사랑으로 키워나갔다.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건데, 만약 그 세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 겨울을 견딜 수 있었을까?

 

로절린드는 사실 시댁의 생활에 잘 섞여들지 못했는데, 마치 자신만이 녹지 않은 고드름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시부모님의 금혼식이 있던 날은 특히 더 끔찍했는데 저녁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실내 공기는 점점 습해졌고, 자신의 존재는 녹아내리고 퍼져서 아무것도 아닌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토끼'라는 마법의 주문으로 인해 로절린드는 다시 생기를 되찾게 되고, 남편 어니스트의 코가 씰룩거리는 것도 목격하게 되면서 소어번 가의 모습이 여태까지와는 다른 풍경으로 변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녀의 상상력이 다시금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러면서 답답하고 불편했던 시댁식구들의 캐릭터를 자신만의 상상속 인물로 대체하면서 혼자서 재미있는 상상을 이어나가게 된다.

 

음흉스러워 보이는 작은 체구의 시아버지는 밀렵꾼으로, 타인의 사소한 비밀을 염탄하고 다니는 딸 셀리아는 흰 족제비로, 그들의 대지주라 부르는 시어먼 폭군으로.

 

금혼식이 무사히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도 그들만의 마법주문으로 안전과 무사함을 챙긴다. 그렇게 일년, 이년, 그리고 레지널드 소어번 부인이(시어머니) 돌아가신 후의 어느 겨울날 몇 년전 금혼식 파티가 열린 바로 그 날짜의 밤. 그들의 달콤한 꿈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편 어니스트는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라핀 왕으로 변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다음날 저녁시간 라피노바도 역시 사라진다.

 

로절린드는 자신의 목덜미에 얹은 그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마침내 행복한 단꿈에서 깨어나는 사형 선고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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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려서 죽었어."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결혼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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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는 결혼생활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전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어쩌면 '토끼'라는 단어에 마법을 불어넣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행복한 단꿈에 젖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

 

세계 어디를 가도 공통적으로 시댁은 왠지 모두 불편함과 어려움의 표본인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건 비단 나뿐일까?어쩐지 오랫동안 혼자 애쓰며 노력했을 로절린드가 떠올라 안쓰러움과 위로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소설이다.

 

 


규정하지 않아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서 더 궁금해지는 소설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인것 같다. 아픈 몸과 마음을 이고지고 그녀는 창문 너머,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며 얼마나 많은 글을 썼던 걸까? 매일 빠짐없이 글을 썼던 그녀의 글쓰기 습관은 어쩌면 흘러넘쳤던 그녀의 상상력을 모두 모아 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여성작가와 여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열정을 기억하며, 또 새로운 그녀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봐야겠다. 어쩐지 그녀가 그린 또다른 재미있는 상상속 세계를 만날 기대감에 마음이 술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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