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버즈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9
전춘화 지음 / 호밀밭 / 202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니 소설이 그리워지던 찰나 만나게 된 <야버즈>.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이름도 뜻도 몰라, 더 궁금증을 자아냈던 이 소설집은 흔히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 동포가 쓴 소설책으로 단편소설 5개를 엮어 만든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유명세나 작가의 이력 등을 살펴보지 않고 오로지 스토리나 책의 내용으로만 만나보기 때문에 어떤 작가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작가의 독특한 이력과 스토리를 통해 조선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실 '조선족'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사건사고들을 매체를 통해서 많이 접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모여사는 지역이나 골목의 위험성과 폭력성 등이 부각되면서 으레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편견 어린 시선과 생각들이 조금 거리감을 두게 만들면서,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읽어보며 단순히 매체를 통한 편견 어린 시선 너머, 어쩌면 살아온 환경과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의 다름, 다른 역사적 관점이 그러한 격차를 더 불러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소설 뒷부분에 부록처럼 담겨있는 작가와 편집자가 나눈 <뒷이야기>를 통해서도 자세히 만나볼 수 있는데, 각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과 비주류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현실감 있게 살펴볼 수 있으니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다섯 가지의 단편들이 묶여있는 소설집은 앞서 읽었던 여타 소설들에 비해 굉장히 독특하고 이색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었는데, 일단 배경이 조선족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며, 중국과 한국의 양쪽 배경을 두루 포함하고 있어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는데, 제목이자 첫 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인 <야버즈>는 '오리 목 고기'를 뜻하는 것으로, 상상이 갈듯 가지 않는 <야버즈>의 뜻처럼, 이 책에 실린 다섯 가지의 단편들도 그러한 묘한 내용들을 품고 있었다.

 

특히 톡톡 튀는 독특한 정서와 배경들, 유머러스함이 적절히 어우러진 스토리는 흡입력 있게 다가왔다. 더불어 독특한 만큼 공감 가는 내용들도 많아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픽션과 논픽션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던 다섯 편의 소설들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 3편과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 2편, 그리고 각 소설은 각기 다른 연령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보다 다양한 정서와 풍부한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대략 30대, 20대, 50~60대, 그리고 10대의 이야기의 순으로 짐작되는데 그 나이대에 겪는 우리네 일상의 고민과 경험들과 비교해 봐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듯하다.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스토리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야버즈
우리가 모르는 조선족 사회의 일상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생각치 못했던 임신으로 인해 겪는 심리적 불안과 그들이 즐겨먹는 음식인 야버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낮과 밤
평범한 낮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밤의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작스레 걸려온 옛 친구의 전화는 또 다른 낮과 밤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죽기 싫어 도움을 요청하고자 무작정 전화한 이와 갑작스레 그런 전화를 받게 된 이의 첫 통화연결은 어색함과 귀찮음이 공존한다. 그러다 점차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상상이상의 우정을 길고 깊게 나누게 된다. 이로써 그들의 낮과 밤은 점차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의지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블링블링 오 여사
남들보다 늦게 한국행을 택한 조선족 여인의 한국살이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마음을 주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딸아이를 생각해 지속적으로 도전하며 서서히 현실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상처도 받지만, 자신만의 정서대로 성장해 나가며 생각보다 꽤 괜찮은 만남도 가지게 된다.

 

◆잠자리 잡이
동네에서 가장 부유하고 미스터리한 집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거미줄을 엮어 잠자리를 잡는 것에 능숙하다. 그는 이것을 잡아 닭에게 모이로 주기도 하고, 해부를 하며 놀기도 하는데 이것이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져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나는 잠자리 잡기는 그만두고 오히려 우리 집에 머무는 잠자리를 지켜주기에 이른다. 그때 그 시절, 잠자리 잡이 놀이는 그 이상의 무엇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베여있는 놀이였는데, 이것을 회상하며 쓰인 이야기다.

 

◆우물가의 아이들
오랜 시간 마을을 지키고 있던 용두레 우물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물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함에도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자주 우물가에 모여 뛰어놀거나 담소를 나누는 일이 잦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만남과 이별, 소소한 일상이 모두 이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점차 성장하면서 서서히 그 우물과는 멀어져 가지만, 다시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우물과 얽힌 추억을 담고 있는 스토리다.

 

 


다섯 편 중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많이 와닿았던 소설은 <낮과 밤>이었는데, 스토리 상에 언급되는 문장들에서 공감 가거나 가슴 깊이 와닿았던 문장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야버즈>는 굉장히 독특하고 이색적으로 다가왔는데, 미처 들어보지 못했던 독특한 조선족만의 다양한 음식들과 문화를 접해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한국살이의 고단함과 적응해가는 모습이 어쩐지 남 이야기 같지 않았던 <블링블링 오 여사>는 오 여사의 정감 어린 마음과 따뜻함이 느껴져 더없이 응원하고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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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살던 시골의 사람들은 배고픈 날, 서러운 날, 절망 가득한 날도 겪었지만 아무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
사계절의 성실함과 낮과 밤의 우직하고 단단한 기운을 가진 누군가가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며 아기 대하듯 아픈 상처에 입바람을 호호 불어 주고 등을 토닥여 주면 자꾸 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살아가야 하는 철학적인 이유는 딱히 모르지만 스스로 죽을 생각을 못 해 본 나 같은 사람은 두 할머니의 비좁은 허벅지 사이에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낮과 밤 中 (5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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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정서가 아닌가 싶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한국! 어쩌면 지금 우리는 할머니의 비좁은 허벅지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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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고 경직된 채 보내게 되는 낮 동안 나도 모르게 용기를 내거나 엉뚱함에 소소한 일을 벌여 놓고 나면 늦은 밤 자리에 누워서 하루를 떠올릴 때쯤 괜히 뿌듯해지더라. 백지 같은 하루에 가급적 알록달록 크레파스의 색깔들을 최대치로 동원해 밋밋하게 않게 그림을 그려 낸 것 같이 느껴져. 넌 오늘 뭐하고 보냈어?

낮과 밤 中 (6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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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새삼 아쉬움이 드는 날이다. 무채색의 일상에 소소하고 엉뚱한 생각 하나만 넣으면 이토록 즐거움과 행복감이 가득 느껴질 텐데. 당장 내일부터라도 용기를 내어 엉뚱하지만 소소한 일을 벌여보려 한다. 나의 일상을 알록달록 색칠해 보자. 하루하루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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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는 돈이 아니다."는 그녀의 명언을 잊을 수가 없다. 돈이라 생각하면 더 갈구하게 되는데 지폐라 생각하니 그날 노동의 결과물에 "참 잘했어요."라고 찍어 준 도장같이 느껴져서 수집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나도 매달 통장에 찍히는 돈을 감정 없이 쳐다봤는데 이제 보니 내가 수고한 결과물이고 그걸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내 일상에 응원봉 같은 거였다.

낮과 밤 中 (6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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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한 끗 차이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말해주는 문장이다. '돈'과 '지폐'. 같지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갈구하기보다 오늘 나의 노동에 잘했다는 도장을 꽝 찍어주자! 어린 시절 더 잘하기 위해 열심히 도장 받기에 앞장섰던 그때의 내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은 이런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져야 진짜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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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야, 죽기로 결심했을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뭐 다들 삶의 이유나 의미를 깊이 터득해서 살아 있는 줄 알았어. 헌데 정작 살기로 결심해 보니 그냥 이유 없이도 살 수가 있더라. 오히려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어떻게 살지더라. 너도 작가가 되는 일에 굳이 무슨 큰 이유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쓰는 거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면서 어떤 작가가 될지를 천천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

낮과 밤 中 (6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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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것, 그냥 하는 것, 하고 싶으면 하는 것! 이 세 개의 문장만으로도 그냥 정리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을 제일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 하고 싶은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해보자! 인생 별거 없다. 어떻게 살 거냐는 물음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살 거라고 당당히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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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씨가 그러더라. 가난이 오래가면 생각이 가난해지고, 생각이 가난해지면 다양한 경험을 할 엄두를 못 내게 되고, 경험마저 가난해지면 그 사람의 세계는 점점 협소해진다고. 그게 진짜 가난의 무서운 점이래. 그러니까 딸. 나는 한국에서 간병인이 돼서 우리 둘 다 김동리 씨처럼 블링블링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김동리 씨가 나 일 마무리하고 병원에서 나올 때 따님이랑 행복하게, 블링블링하게 잘 살라고 따뜻하게 인사하는데 코끝이 찡하더라."

블링블링 오 여사 中 (10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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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가난으로 인해 점점 협소해지는 생각과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블링블링하게 살자! 가난한 생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폭넓은 세상을 만나보자. 나도, 당신도 응원한다.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문장들을 담아서 정리해 보았다. 어쩌면 이 중에 당신의 마음속에도 깊이 와닿는 문장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색적인 스토리를 통해 당신의 삶에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담아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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