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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랑 사는 건 너무 슬퍼
최은광 지음 / 좋은땅 / 2022년 12월
평점 :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릴 적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애완동물은 '개'였다. 그때는 반려견이라는 명칭보다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했고, '반려'라는 말은 동물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애완동물이라는 명칭보다 '반려'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며, 생각보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작고 어렸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함께 한 애완동물들이 꽤 있다. 키우던 개가 한 번에 여러 마리의 강아지를 낳는 바람에 늘 북적였던 뒷마당에는 수많은 강아지와 개, 그리고 병아리들이 늘 시끄럽게 각자의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쓰담아주며 예뻐했던 기억은 여전히 잔상처럼 남아있다.
그런데 과거 흔하게 키우던 개(혹은 강아지)와 병아리(혹은 닭) 외에 고양이를 집에서 '애완' 동물로써 키우는 이들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길거리를 배회하며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뒤지고, 기웃거려서 쫓아버리는 일이 많이 도둑고양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렸었다.
그랬던 고양이들이 언젠가부터 집안에서 가족으로 인식되며 함께 사는 경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고양이를 위한 용품이라던가, 음식, 그리고 새로운 용어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 책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라던가 다양한 종류의 사료들이 존재하지 않아 그들의 습성이나 지금만큼 친밀한 그들의 생활습관을 존중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반려묘가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오죽하면 사람 집에 고양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집에 사람이 산다고 해서 '집사'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는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한 고양이를 입양하면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성장담, 그리고 관계를 맺어가고 발전해 나가는 일련의 기록들을 담고 있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결혼을 통해 맺어진 새로운 가족, 그리고 그 속에서 고양이의 존재가 '애완동물'에서 '반려묘'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싹튼 애정과 감정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환경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던 시절, '나'를 감당하기도 벅찼던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입양하게 된 '빤이'와 서울대 인근의 좁디좁은 원룸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당시에는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을 뿐만 아니라, 고양이 용품이 널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그저 함께 지내는 것으로 그렇게 동거 생활을 이어나간다.
현실 속에서 오는 여러 어려움, 그리고 우울증 등의 기복을 타면서 저자는 빤이를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좁은 방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지냈고, 캣타워도 하나 없이 지냈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빤이는 늘 저자를 반겨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빤이가 네 살 되던 해 아내를 만나면서 보안상의 이유로 아내와 처제가 살던 서울대입구역의 집으로 먼저 이사하게 되고, 이때 빤이를 원래 살던 원룸에 혼자 두게 되는데 이는 처제의 털 알레르기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 어쩌면 이때까지도 빤이와의 관계나 고양이 습성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러다 마침내 빤이도 서울대입구역의 집으로 이사하게 되고 저자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면서, 이사한 지 한 달쯤 되었던 무렵 빤이에게 캣타워를 만들어줘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마침내 원목으로 어설픈 첫 캣타워를 만들게 된다. 이때가 빤이가 대략 다섯 살쯤 되었을 무렵이다.
이후 관악구에서 자양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빤이가 외로울 것을 염려해 앵이와 뽕이를 추가로 입양하게 된다. 아빠 바라기이자 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빤이와 언니를 따라 하기 바쁜 앵뽕이(=앵이와 뽕이)들과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는데, 저자의 우울증 악화로 인해 무기력증과 쏟아지는 잠에 취해 본인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날들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빤이는 여덟 살이던 2017년 10월 28일, 시한부의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게 된다. 저자는 그런 빤이를 위해 좋은 음식과 무한한 애정을 쏟으며, 심지어는 빤이 옆에서 함께 잠을 자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음식을 먹지 못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로 인해 응급실과 병원을 드나드는 일은 일상이 된다.
그런 상황들로 인해 앵뽕이들은 한동안 식구들의 관심에서 비켜나고, 갈수록 말라가는 빤이를 지켜보는 저자는 뒤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마음이 무거워져 간다. 그렇게 버티던 끝에 결국 빤이는 2018년 11월 5일 사망하게 된다.
이후 빤이가 숨을 거둔 지 정확히 한 달 만에 태어난 자두를 입양하게 되고, 지방의 유기 동물보호소에 있던 꿈이는 입양을 앞두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빤이를 추모하고 그리는 비망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탄생과 죽음을 담고 있는 인생을 그린 글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인연을 맺고, 가족이 되고, 울고 웃으며 관계를 맺으면서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고 마침내 안녕을 고하게 되는 삶을 그리고 있는 글인 것이다.
처음 사는 인생이기에 누구나 처음은 어설프고 서툴다. 그리고 그 서툶과 실수를 통해서 우리는 배워나간다. 비단 사람 사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반려묘와의 처음도 서툴고 낯설다. 어떻게 애정을 주고,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점차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면서 저자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사람도 똑같은 사람 없듯이 빤이, 앵이, 뽕이, 자두 모두 각자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녔지만 앞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어제보다 조금 성장한 오늘을 만들어가며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삶을 담은 글이기도 하면서 저자의 성장을 그린 글이기도 하다.
읽다 보면 각 고양이들을 입양하게 된 과정, 성향이나 상황들이 종종 언급되는데, '이렇게 가족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한편 그동안 유튜브에서 즐겨보던 고양이들의 건강하고 귀여운 모습과는 다르게 현실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어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감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면서, 관계 맺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저자의 자책과 후회가 묻어 있는 글이라 읽으면서 때때로 울컥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마지막에 남긴 빤이에게 전하는 글은 특히 더 그렇다.

살다가 문득 돌아보면, 후회와 자책이 묻어나는 일들이 한가득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또 다른 고양이들이 저자에게 기쁨인 것처럼, 그리고 그 기쁨을 부모님에게도 전해드린 것처럼 (또 다른 고양이 치즈와 곰이를 입양해 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자책과 후회를 발판으로 조금 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이것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듯, 고양이도 우울증에 걸리고 누구나 삶의 굴곡점은 있기 마련이니 너무 뒤만 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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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와 살아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이들이 누리는 삶의 속도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고양이를 사랑할 것이다. 앵이와 뽕이도, 그리고 자두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사랑이 있어 세상의 무게가 언제나처럼 똑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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