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의 비밀
오가와 이토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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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정감 있었던 그녀의 전작들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품들 중 하나다. 소재 자체도 그렇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이야기에 담겨 있는 내용들에서 추억과 그리움, 온기가 그려져 더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들은 막 만들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떠오르게 한다.

 

한동안 이런저런 다양한 책을 읽는다고 잠시 잊고 살았는데, 모처럼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이 샘솟는다. 더불어 한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궁금증이 인다. 이번에는 어떤 소재를 가지고 돌아왔을까?

 

이번 신작은 독일 베를린에서 살면서 기록한 1년 동안의 일기 내용을 담은 책으로,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환경에서 혼자 보내는(아니 반려견 유리에와 함께 보내는)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 다른 음식, 다른 문화, 다른 언어 속에 담긴 일상은 다르지만 비슷했고, 또 한편으로는 특별했지만 평범했는데, 사계절을 맞이하며 보낸 일 년의 기록들을 통해 유쾌함과 행복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맛있게 즐겨 먹었던 음식이나 자주 해 먹었던 일본 음식, 다양한 나라로의 여행, 어학공부 등을 통해 그녀가 베를린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세세히 엿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소하게 벌어지는 일상 이야기 속에서 현지 문화를 새로이 알게 되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직접 담근 일본식 집 된장과 손수 만든 한 끼 식사에서는 일본 감성을,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찾게 된 에피소드에서는 슬픔과 즐거움을, 동물보호단체에 대한 글에서는 안타까움과 부러움을, 잠시 홈스테이를 맡게 된 아이와 지내는 일상에서는 남편의 귀여운 질투를, 독일의 청소도구에서는 효율성을, 그 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독일문화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현지 문화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남녀 혼탕 문화, 크리스마스 이후 길거리에 트리를 버리는 문화, 섣달 그믐날에는 밤새 불꽃놀이를 즐기는 문화, 전기 요금 지불 방식이 월단위가 아니라 년 단위로 지불한다는 점은 특이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유튜브에서도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이라 더 그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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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끝났다'라는 느낌으로, 그날이 지나면 다들 집에 장식해뒀던 크리스마스트리를 길가에 내버린다. 그 폐기 방식이 대답한데, 길바닥에 그냥 내던진다.

 

올바른 폐기법은 가로수가 심겨 있는 흙 위에 두는 것이지만, 개중에는 아파트 창문에서 그대로 아래로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상당히 거칠다.

 

위에서 뭐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하다.

14페이지 中 (독일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처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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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매일, 매 순간이 항상 즐겁고 행복할 순 없는데, 그녀의 일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발랄함과 경쾌함만 남는다. 아마도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가치관에서 비롯된 그녀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져서 그런듯하다. 좋지 않은 일도 그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가벼이 넘기는 모습에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일 년간의 일기장 속 배경은 다채로운데, 사계절을 넘어 다양한 나라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해 프랑스 파리, 폴란드, 남프랑스, 오세르, 카우나스,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비아워비에자 숲, 교토, 야마가타, 홋카이도, 신슈, 한국 등 일과 여행 등의 일정으로 수없이 많은 곳을 오간다.

 

여기에는 그녀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던 나라에 대한 에피소드도 담고 있는데, 바로 '남프랑스'를 여행하며 살짝 그 일화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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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프랑스는 추억의 땅이다.

 

벌써 20년도 더 전에 니콘 카메라 F3을 들고 홀로 여행한 곳도 남프랑스였고, 그 뒤 펭귄(=남편 애칭)과 지금 돌이켜보면 혼전 여행 같은 느낌으로 함께 돌아다닌 곳도 남프랑스였다.
(...)
20년 전 혼자 여행할 때도 노선버스를 갈아타며 그런 마을을 찾아다녔다. 그 시절부터 나는 니스나 칸 같은 대도시보다 작은 마을을 더 좋아했다.
(...)
그리고 일상생활 자체를 여유롭게 꾸려나가려 하는 프랑스인의 자세에 자극을 받았다. 그 여행은 어떤 면에서 나에게 커다란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나는 회사에 소속되어 누군가의 밑에서 일한 적이 없다.

 

어렴풋한 다짐이긴 했지만,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자'라는 조그만 불빛을 가슴에 밝힌 여행이었다.

 


그녀가 작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에 대한 일화
(50~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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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일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만약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읽으면 조금 더 그 맛이 산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에 쩔쩔매며 어학원을 다니는 모습, 가볍게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는 산책길의 풍경, 독일에서 생활하지만 한국식 떡볶이와 김치, 찌개 등을 만들어 먹는 모습, 때때로 주변 유럽 나라들을 여행하며 새롭게 경험하는 일상, 그러다 때때로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무언가를 잃어버린 일로 하루를 동동거리며 보내는 모습들이 절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 2년 살다 보면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그러려니' 하며 넘기는 일상을 보내며 현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지내는 스스로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오가와 이토의 베를린 일기를 읽으며,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일상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언가를 정성껏 손수 만들어 먹는다는 것,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것,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작은 보탬이 되는 것, 주변에 늘 존재하는 사물과 물건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나'의 의지와 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일기를 통해 이토록 발랄함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은 결국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그러하고, 일상 속에 그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시간을 살아도 누군가는 흑백영화처럼 무심히 지나쳐가는 풍경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기억에 남는 풍경일 수 있는 것처럼.

 

오늘, 그녀의 일기처럼 소박하지만 따뜻한 집밥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가까운 산책길을 거닐며, 다가올 여름휴가를 미리 계획하며 에너지를 쌓아보면 어떨까? 어쩌면 몽글몽글하고, 다정한, 멋진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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