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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
김동근 지음 / 부크럼 / 2023년 2월
평점 :
지난한 삶을 살고 있거나, 무기력 해지는 어느 날, 문득 삶에 회의감이 드는 날, 피로감이 줄줄 흐르는 출퇴근길 펼쳐들고 읽으면 좋을 책 한 권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적당한 위로, 적당한 토닥거림, 툭 던지듯 내뱉는 말이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시 같이 짤막하게 쓰인 글줄은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꺼내 읽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포켓북으로 안성맞춤이다.
총 3파트로 구성된 각 파트에는 나름의 주제가 있다. 1파트에는 달콤한 사랑의 말이, 2파트에는 다정하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 3파트에는 삶을 사색하는 말이 담겨 있는데 나의 취향은 2파트에 담겨있는 글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인상 깊었던 부분은 1파트 부분이었는데, 읽는 내내 꽃밭에 있는 느낌이 물씬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말들을 묶은 부분이라서인지, 몽글몽글 봄 내음 물씬 나는 글들로 인해 달콤한 향까지 느껴졌는데, 마치 거대한 화원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매서운 추위에 봄을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에 담긴 1파트의 글귀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봄의 기분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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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세계
이 말이 좋을까.
저 말이 좋을까.
이러면 기뻐할까.
저러면 행복할까.
너의 마음 얻으려.
나의 마음 전하려.
미로에 빠진 나를
너는 알려나.
파트1 사랑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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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행복이 가득 묻어나는 글귀다. 상대방을 향한 호감과 마음을 얻고자 고심하는 마음을 <미로의 세계>라는 제목에 담아냈다. 어쩐지 읽으면서 같이 그 마음에 동화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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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개화하기엔
아직 이른 꽃봉오리도
너만 보면
봄인 줄 착각하고 피더라.
파트1 사랑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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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귀다. 그래서 더 <개화>라는 말과도 찰떡궁합이다. 개화하는 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환한 미소가 그려지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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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유
어떤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야.
원래도 좋아했던 향인데
그 사람 때문에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
그런 게 바로 사랑이지.
파트1 사랑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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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말고. 이런 게 바로 사랑이지. 그냥 끄덕이게 되는 글귀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붙는다는 건 평범함에 특별함이라는 딱지가 하나 더 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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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
내 마음 안으로 날아온 홀씨가
네 웃음소리 한 음절에
기어이
꽃을 피워 내지, 뭐야.
파트1 사랑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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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바람에 가벼이 떠돌던 홀씨가 어딘가 안착하여 꽃을 피워낸 형상이 떠오르는 문구다.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혀 마침내 '사랑'이라는 어여쁜 꽃을 피워낸 감정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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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어떤 말들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게 된다.
휘발되지 않고 영원을 사는 것.
그게 바로 상처다.
파트2 위로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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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공감되었던 말. 시간이 지나도 휘발되지 않고 계속 멍울처럼 남아있는 말. 그것이 바로 상처다.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상처로 남을 말은 하지 않는 게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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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덜 외로울 것 같지. 아니야, 더 외로워져. 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더 이상 뭘 털어놓기가 힘들어지거든. 가끔은 숨기고 싶은 것도 있는데 혹시나 들키지는 않을까. 말을 더 아끼게 되고. 또 그 사람들의 하루에 나 때문에 먹구름이 끼면 어쩌나, 같이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더 웃어 보이게 되고. 그래서 가끔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몇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보다 더 편할 때가 있어.
파트2 위로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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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0% 되는 말.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 하나보다.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모두 각자의 쓰임이 있다. 가깝다고 꼭 위로받는 거 아니고, 멀다고 꼭 거리가 느껴지는 건 아니다. 때론 의외의 사람에게 더 깊은 애정과 위로를 느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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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닐 리 없는
간혹 있어.
타인의 아픔이 쉬운 사람들.
상처를 벌려 보고도 별거 아니라는 사람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세상에서 얻어진 아픔이
별거 아닐 리 없는데.
파트2 위로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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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픔에 둔감한 사람들이 있다. 마치 꼭 직접 겪어봐야 아는 사람들. 작은 상처도 내가 겪으면 세상 아프고, 큰 상처도 남이 겪으면 별거 아니게 되는 참 씁쓸하고 아이러니한 사람들. 어떤 것도 별거 아닌 일은 없다. '내'가 겪는 일은 모두 '별거'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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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감정
타인의 감정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자.
이 넓고 넓은 세상만큼이나
실제로 겪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파트2 위로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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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는 듯 타인이 정의 내리는 나의 감정은 세뇌 같기도 하고, 강요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학대일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남의 감정을 재단하지 말자. 새삼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꽃밭에서 1장을 보내다가, 2장을 읽으면서는 수없이 손뼉을 맞대며 마자마자를 외쳤다. 그러다가 3장에 이르러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려본다. 지난 인연, 삶, 관계, 감정, 후회와 반성 등 사느라 바빠서 놓치고 지나쳤던 것들을 되돌아본다. 그땐 최선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진짜 최선이었을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미 지나쳤기에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한 번쯤은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할 것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