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수업
백혜선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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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이 책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왜 하필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일까 궁금했는데, 읽다보니 한 명의 연주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좌절과 불안, 슬럼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라고 지은것 같다는 짐작을 해본다.

 

최근 피아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작년 역대 최연소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우승한 임윤찬이다. 코로나 이후 한동안 주춤했던 예술부분에서 한국인이 우승했다는 소식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를 통해 피아노와 연주곡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평소 듣지 않던 연주곡을 유튜브를 통해 찾아 듣는다거나, 이름이 거론되는 이들의 연주곡을 비교해 가며 듣는 색다른 즐거움도 맛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스페셜리스트인 백혜선님의 연주도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50년이상을 연주자로써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겪었던 좌절과 극복의 경험을 먼저 들여다봐서인지 그저 아름다운 연주라기보다는 삶을 담은 백혜선만의 연주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빛깔을 담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짝이는 연주가 결과라면, 이 책에는 결과보다는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과 혹독한 연습과정이 주로 담겨 있었는데, 어찌보면 숨겨진 무대 뒷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것 같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한 네살때부터 피아노와 함께 한 50년의 인생을 가감없이 담으면서, 연주자로써 겪은 좌절과 실패, 불안 그리고 다시금 일어나 끊임없이 부딪히고 성장하며 겪어낸 삶을 무겁지 않은 문체로 경쾌하게 풀어냈다.

 

여기에는 연주자로써의 삶은 물론, 엄마 백혜선, 교육자 백혜선, 제자 백혜선 등 다양한 그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녀만이 가진 삶의 지혜와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에세이를 들여다보면 그녀는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어릴적 한때 수영을 하면서 남들보다 재능이 있다고 믿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더 능력있는 이들을 만나고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잘 할수 있는것, 칭찬과 인정에 집착하지 않도고 내가 기꺼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피아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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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할 수 있는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라서 할 수 있는것'을 추구하다보면 언젠가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 내가 오십년간 피아노를 하면서 갖게 된 믿음이다.

28~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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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현재까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저자에게 또다른 믿음으로 남아있으며 현재도 ing 중이다. 특출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모든것들이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으로 이뤄낸 성과들이기에 더 격려와 응원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고, 보통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지만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삶의 이면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솔직하고 담백하게 인생을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반짝이는 한 순간을 지나면 드러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컴컴한 현실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연습은 당연한 일상처럼 느껴져 안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더불어 무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피나는 노력만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기에 스승님의 조언에 따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삶속에서 연습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그토록 목숨걸듯이 피아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피아노를 반대했던 아버지의 역할이 한 몫 했는데, 장장 이십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의심하고 바보 취급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저자를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리고 미국엄마이자 스승님인 변화경 선생님과 그녀의 남편이자 독설로써 그녀를 이끌어준 또 다른 스승인 러셀 셔먼 선생님의 교육은 그녀가 연주자로써 끝까지 성장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데, 이들 덕분에 연주하는 것을 오랜시간 좋아하는 일로, 나를 표현하는 일로 사랑하며 함께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나이에 미국까지 건너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지만, 때론 부딪힌 벽에 좌절하기도 하고, 내 길이 아닌것 같아 포기하려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저자는 이것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간다. 그럼에도 시련은 지속적으로 다가온다. 무명에서 겨우 인정을 받을때쯤에 남들은 부러워 하는 교육자의 길에서 고민과 자책을 하기도 하고, 안정적인 삶에서 나아가 연주자로써의 삶을 선택하게 되면서 이혼과 무직의 상태가 되면서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나 다시금 용기를 내어 도전한다. 이혼후 미국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때에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생계형 피아니스트로써 마음을 다잡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탄탄히 다져나가기 시작한다.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패턴, 연주를 하기전에 들이는 노력들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룰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들을 겪어나가면서 이제는 떳떳하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 성장하는 이들에게 불안과 좌절, 걱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이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겨나가야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당당하게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라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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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반복은 완전무결한 결과를 넘어 자유화된 표현으로까지 나아간다. 연습과 연마의 끝에는 표현을 내 뜻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자유가 찾아온다. 

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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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듣는 사람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고, 마음과 영혼, 두뇌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어쩌면 본인이 누군가에게 그런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더 열심히 연습과 연마를 반복하는 지도 모르겠다. 스승인 러셀 셔먼 선생님의 연주를 통해 마음을 울리는 연주를 경험해본 자이기에 그 절실함은 더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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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을 두고, 듣는 사람의 귀를 자극하여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라 정의 내리곤 한다.

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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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소리라는 언어로 듣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 두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연주자 본인이 자기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 여기서 이해란 대개 언어로 하는 것이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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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과거 30년 전만해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괄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은 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았을 그 길을 먼저 걸으며 연주자로써 버텨온 시간은 어느새 탄탄한 갑옷이 되어 백혜선이라는 피아니스트를 만들어냈다. 수없이 겪은 좌절은 또하나의 경험으로 쌓이면서 인생수업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임윤찬뿐만 아니라 신수정, 손열음 등 젊고 유능한 천재 연주자가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전히 연주자로써 가야할 길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그녀의 행보는 그래서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책을 읽는내내 마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저자가 겪은 수많은 좌절은 아마도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던 흔적이자 영광의 상처일것이다. 어디서도 구할수 없는 귀한 경험의 산물인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는 그렇게 자신만의 연주를 만들어나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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