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독
이기원 지음 / 페퍼민트오리지널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바이러스 창궐과 기후변화 등으로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주제인 지구 멸망과 생존. 여기에 무한 상상력을 더해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죽음을 넘어선 이후의 삶을 담고 있는 <쥐독>은 우리가 그리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의 삶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 너머의 삶에서 무엇을 보고 경험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코로나19 이후 수차례의 국가 존속 위기를 이겨내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한민국!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표지에서부터 확인되는 항아리 모양의 인상적인 '독' 그림은 책 제목인 <쥐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의 자유와 행복을 무한 보장하는 '뉴소울 시티'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의 터전 <쥐독>. 바이러스와 전쟁, 국가 존폐 위기와 같은 어마어마한 일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토록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이 사는 구역인 쥐독이 생겨난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죽고 사는 문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토록 권력과 독점, 소유하려는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보면서 과거, 현재와 다를 바 없는 반복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분명히 만들 수 있음에도 나만 잘 살겠다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 마침내 영생을 빌미로 극과 극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쥐독>안에서의 삶은 비참함과 비통함이 가득하다.

 

디스토피아를 꿈꾸지만, 사실 이것은 일부 극소수 한정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자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히 치솟는 세금을 감당하며, 기계처럼 매일 하루를 쉴 틈 없이 일하며 배급되는 돈(분각)과 밀키트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정도다. 여기에 각성효과가 있는 카푸치노는 어느새 삶에서 필수품이 되어버리고 마침내는 중독 증상과 두통과 속 쓰림, 극심한 피로와 무력감 등과 같은 부작용을 겪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시대적 배경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서울 연대기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시 서울. 서울의 역사는 곧 인류의 생존과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주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별도 배경색을 통해 표기해두었다.

 

코로나19 이후 2040년 다시 발병한 covid 219로 인해 세계 인구의 75% 사망. 치료 약과 백신 미개발, 그로부터 5년 뒤 2045년 제3차 세계대전 발발로 전 세계의 전쟁터화. 2049년 전쟁과 감염으로 전 세계 국가 소멸. 그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시가 대한민국 서울이었다.

 

유일무이한 생존 도시이며 생존자가 남아있는 도시 서울. 국가 시스템은 무너지고 이를 재건하기 위해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대기업 연합. 그렇게 2051년 뉴소울 시티가 출범하게 된다. 새로운 바이러스 covid 219가 나타난 이후 불가 약 10여 년이 지난 후였다.

 

22세기 인류의 마지막 생존 지역인 서울은 여태까지와는 다른 통치 시스템으로 대기업 연합이 운영, 통치하는 국가 시스템이다. 뉴소울 시티는 미래 서울의 또 다른 이름으로, 대기업 연합 중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대한 공헌을 한 아바리치아 기업을 필두로 운영된다. 그래서 연호도 아바리치아 원년으로 변경된다.

 

뉴소울 시티 초반 50년은 그야말로 태평성대였다. 기업인들이 운영하는 국가는 기업을 운영하듯 합리적이고 지혜로웠으며 과도한 육체노동이나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해방되었다. 모든 국민은 '고객'이었고 그들은 고객서비스 정신으로 시민을 대했다. 그리고 22세기 시작될 무렵 엄청난 과학적, 의학적 발전으로 인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영생'의 방법을 알게 된다. 신체는 물론 뇌와 생명에 대한 모든 구조를 알게 되면서 상용화되고 마침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또 한 번 변화를 맞게 되는데, 더 이상 종교가 무의미해지면서 없어지고 잊혀졌다. 그리고 대기업 연합인 전국기업인연합회(일명 전기련)의 운영 방침도 변화하게 된다. 자유와 행복을 지향하던 도시는 더 이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 이 혁명적인 테크놀로지의 혜택은 일부 극소수 특권층에게만 부여되었으며 나머지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계층별로 나뉜 '구역'이며, 시민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고객서비스팀'과 영생을 위해 착복식을 진행하는 '소도'가 생겨난다. 상류층 거주지 1구역과 일반 시민들의 2구역, 그리고 2구역에서 쫓겨난 낙오자, 해고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모인 3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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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나처럼 도시에서 도망쳐 갈 데 없고, 손이나 발이 없어서 도시에서 버려지고, 카푸치노에 찌들고, 생존을 위해 몸을 팔고, 썩은 통조림 하나를 갖기 위해 칼로 찌르는 곳이라니까. 그런데 이런 곳에서 무얼 가지고. 그것도 글을 가지고 무슨 해방이 되고, 신과 싸운단 말이야? 여긴 뉴소울 시티의 쓰레기통이고 우린 그 쓰레기를 먹고사는 쥐들일 뿐이라고 몇 번을 말해."

 

민준의 말에 순간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제3구역인 쥐독에 대해 가장 실감 나게 표현한 서술 부분_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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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초반은 2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민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매일이 쳇바퀴 굴러가듯 빠듯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우연히 출근한 공장에서 1구역 사람들만 섭취하는 비싼 루왁(각성제)를 옮기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순간 탐욕에 눈이 돌아 이것을 훔쳐 달아나게 된다. 그리고 전기련을 피해 쥐독에 숨어들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피로하고 무기력했던 그가 숨어진 쥐독은 그동안의 삶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매일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투쟁 그 자체였다. 특히 그가 훔쳐 달아난 루왁은 쥐독에 사는 폭력단에게도 눈독을 들일만한 가치 있는 물건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쥐독에 사는 이들에게 한순간에 타깃이 된다. 그때 도와준 사람이 55층 구역의 유일한 술집 '녹색선'의 주인인 최혁이었고 그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쥐독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 구역만의 생존전략을 최혁으로부터 듣게 된 민준은 55구역의 폭력단 중에 하나인 흑룡파의 림광석과 겨루게 되고 무자비한 결투 끝에 마침내 승자가 된다. 이후 쥐독에서 조금씩 생존을 위한 삶에 적응해가면서 단시간에 그는 쥐독 55구역의 범접할 수 없는 일인자가 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55구역을 침입한 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사다리 문장이 있는 검은색 반다나를 쓴 반자본청년연맹(혹은 반자연, 또는 연맹) 원들이었다. 그들은 뉴소울 시티의 고객서비스를 거부하며 통제되고 있는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과 자유,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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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표는 오직 자유였다. 잘못된 시스템인 뉴소울 시티를 붕괴시키고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신의 권력으로 자리한 전기련을 무너뜨려 2구역 사람들에게 씌워진 틀을 벗기고 자유롭게 운명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오직 그가 바라는 것이었다.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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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수장인 제이콥은 민준 일행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에 대해 설명하며 함께 하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수락한 민준 일행은 반자연과 함께 소도를 무너뜨리고, 뉴소울 시티의 수장인 류신을 없애기 위한 일생일대의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수많은 투쟁과 배신,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싸움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무한 반복되는 그들의 투쟁에 대한 결과는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

 

'죽음'이 없어진 사회에서 벌어지는 강력한 철권통치의 모습은 인간의 가장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가장 이기적이고 무서운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타락한 인간의 형상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권력과 돈, 직급을 나누어 사람을 '구역'으로 나누고, 사는 곳과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 죽음마저도 통제하며 자신 이외의 사람들은 쓰다 버리는 휴지조각보다 못한 취급하는 1구역 전기련의 행태는 잔혹함을 넘어 자신의 핏줄에게도 적용된다.

 

이들의 강력한 통치 아래 이것을 깨부수고 다시 평화와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구역 곳곳에서 나타나 뜻을 모으기 시작하며 벌어진 전기련과 반자연의 싸움은 과연 어떤 끝을 맺게 될까?

 

사실 그토록 강력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전기련과 맞서는 반자연의 싸움은 꽤 오래도록 이어져 왔는데, 그 처음을 살펴보면 우연히 발견된 책 한 권에서부터였다. 그것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그동안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을 겪어도 그저 감내해야 했던 이들이 이 책 한 권을 시작으로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들불처럼 번져나가게 된다. 책은 단순히 책이 아니었다. 권력자에 의해 제지당하고 통제 당하던 책 한 권은 지식이자 지혜이며, 사람들을 일깨우고 인식을 고취시키는 하나의 발단이 된다. 그래서 반자연의 중심에는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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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가 그렇게 반란을 일으켰던 이유는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너무 닳고 낡아서 처음엔 제목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제이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그것이 불씨가 되었고 별것 아닌 삼백 오십여 페이지에 걸쳐 적힌 글자가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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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련은 이 도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모든 지식을 독점하고 있죠. 그걸 위해 모든 책, 미디어, 개인용 전자기기까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매개체를 금지하고 파괴했어요. 지배자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지식을 갖게 되는 걸 막은 거죠. 유럽 중세 시대의 평민들처럼."

1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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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책을 통해서 인식을 깨우친 저항세력 속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인물들도 자리하고 있는데, 후반부에 소름 끼치는 반전을 꼭 확인해 보길 바란다. 더불어 중간중간 핵심이 되는 키를 암시하는 복선들도 눈여겨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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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석 테일러는 늘 웃는 상이었다. 류신은 그의 웃는 상이 왜인지 항상 의뭉스러웠다. 그건 아마 그의 전직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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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원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난잡한 시장이 되어버렸죠.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 과거를 되풀이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껍데기만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

"껍데기를 숭배하고 껍데기를 비난하고 껍데기를 가지려고 해요. 저들처럼."

3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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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권력의 핵심이자 모든 것을 가진 그들 사이에서도 완력 다툼은 여전하다는 점인데, 지금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서로에게 건네는 치열한 지리멸렬한 아귀다툼을 보며 웃음이 나는 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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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게 책상 위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야. 직접 현장에서 뛰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
지환에겐 사무직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샌님들. 인내와 용기라는 것을 모르는 유약한 놈들. 지환이 사무직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2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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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찝찝함과 꺼림칙함 그 사이. 무한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마지막에 유난히 오래 남았던 문장이 하나 있어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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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으니까 다른 이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죽지 않으니까 자신들이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는 편협한 우월감을 가지게 됐죠.
(...)
그러니 죽음. 그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진정으로 공평한 세상이 오는 겁니다.

4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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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원불멸하지 않은 인생이기에 우리가 갖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영생을 꿈꾸는 이들이 그리는 사회가 꼭 유토피아일 거라는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 '죽음'이 주는 희소가치와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지금의 현실을 보다 가치있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산업혁명 이후 급작스레 성장한 과학발전이 현대에 와서 꼭 긍정적인 면만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과학과 의학의 무한한 발전으로 인해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해서 꼭 반드시 행복할 것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쩌면 오만이자 오판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고나 유전적 질병으로 인한 이들을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것은 필요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권력이자 이기심을 위해 활용되거나 독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견제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수많은 악제를 딛고 일어선 유일무이한 세상 속에서 영원불멸한 삶까지 얻었지만,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는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모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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