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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평점 :
관심은 있지만 섣불리 다가서기엔 먼 당신이 '철학'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든다. 더불어 저자의 수업을 직접 들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도 인다. 어설프게 남들이 해석한 철학자들의 문장이나 늘어놓는 여타 책이나 수업과는 다른, 철학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나와 우리 사회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일찍이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괜한 상상에 아쉬움이 들어 더 궁금증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와 사회, 삶과 철학의 균형이 잘 맞춰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았나 싶다.
'철학'이라고 하면 다소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데, 그런 철학 사이사이에 저자의 어릴 적 이야기는 물론, 가족 이야기와 현실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철학의 시선과 잘 버무려져 딱딱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삶과 그가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은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것이 어느 한곳에 쏠려있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어 '나'와' 우리 사회'에 대해서 올곧은 시선으로 다시금 깊이 있게 생각하게 했다.
내가 오로지 나로서 사는 것은 무엇이고, 노자와 장자 철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는 어떤지, 진짜 중요한 것의 가치는 무엇이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담아내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뿌듯함마저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철학적 사고를 지녔던 저자의 일화를 통해 저자가 얼마나 철학에 마음을 두고 있었는지, 또 심도 있는 고민들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정도면 타고난 철학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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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들어가서 1학년 때까지는 멀쩡했다. 그런데 2학년 올라가면서부터 공부를 안 하게 되었다.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나는 공부를 하는 대신에 공부하는 내 모습을 관찰하였다. '공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왜 공부를 할까?' 그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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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장자와 노자는 물론 공자의 문장들을 인용하며 올바른 해석과 함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과 우리 사회 속 정치와 이념들에 대해서도 담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참고하면 좋을 문장들이 많아 인생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살펴봤던 것 같다.
먼저 나 자신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문장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반성하고, 나를 잃지 않으며, 스스로 원하는 것을 알고 스스로 별이 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안에 '나'를 두지 말고 '나'가 모여 '우리'가 되는 양상을 해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데, 00화 되는 양상을 멀리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문장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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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져가는 나의 반짝거림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중간 고리가 있다. '반성'이다. 어떤 가치도 지속적인 반성이 따르지 않으면 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별똥별보다 더 짧은 순간을 사는 인간이 영원한 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부정, 반성, 의심이 필요하다.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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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역사적 책임성이 가지면 자본이 되고, 부자가 역사적 책임성을 가지면 자본가가 된다. 또한 국민이 역사적 책임성을 가지면 시민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자기가 별이 되어야 한다. 시민으로서 역사적 책임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왕의 그림자로 사는 백성이 아니라 별처럼 사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37~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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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는 것은 '기대한다' '바란다'하고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기대하고 바란다'에 자기 영혼이 참여하는 정도보다, '원한다'에 자기 영혼이 참여하는 정도가 훨씬 커 보인다. '원한다'에는 자기 전체가 다 참여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거기에 맞춰서 모든 일이 질서를 가진다.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들이 명료하게 순서를 갖는다.
(...)
'별처럼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내가 나로 빛난다'는 뜻이다. 내가 나로 빛나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원하는 것'이다.
39~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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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 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쉽게 '우리' 속에 용해되어버린다 '나'들의 연합으로 '우리'가 구성되어야 사회가 건강하다. 정해진 '우리' 속으로 들어가서 '나'가 용해되어버리면 그 사회는 쉽게 이념화되거나 진영으로 나뉘어 분열하기 쉽다.
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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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영감은 없다. 성공도 없고 행복도 없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보다는 더 놀랍고 슬픈 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신에게 묻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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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치지 않고 마음껏 펼쳐 나갈 힘을 주는 것이 영감이다. 영감은 무엇인가를 강하게 원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선물이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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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나'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삶, 인생 가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한계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분석 및 진단하여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담고 있는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점검하고 실천해 보면 좋겠다. 나라 안팎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여러모로 와닿았던 문장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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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 -장자 <지북유>-
인생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극단적인 허무에 도달한 한 인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토록 극단적인 허무에 도달한 사람이 또 무한 변화를 우주적 크기로 완수하는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무와 무한 확장은 이렇게 하나로 연결된다.
(...)
우주는 원래 허무하다. 허무하게 생긴 우주의 존재 형식을 노자나 장자는 '도'라고 불렀다. 이런 도의 이치를 온전히 깨닫고, 그 이치를 자기화해서 구현할 능력까지 겸비하면, '득도'했다고 말한다. 우주적 삶을 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단계에 오른 자가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일을 잘 수행한다면, '도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궁극적 사명은 득도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08~1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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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허무하지만, 삶이 유한하기에 사람들은 무한한 크기의 역동성과 자기발전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저자는 우주에 빗대어 노자와 장자가 이야기한 철학과도 결부하여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궁극적 사명이란 '득도' 하는 것이며 이것을 위한 자기성찰과 자각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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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는데, 이미 한번 성공을 거둔 전적이 있는 사람일 경우 '성공의 기억'에 갇혀 그 성공의 기억으로 다루려 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기억은 과거이고, 한번 더 해야 할 성공의 결정적 순간은 이미 과거를 벗어나 있다고 말하며 문제는 새로운 조건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한다.
노자는 우리가 성공의 기억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라고 다음과 같이 권한다.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
-노자-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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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 흔하게 빠지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일 수 없고, 과거는 과거로만 남겨두어야 함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오만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경계하라는 문장으로 해석된다.
남들이 만들어 둔 것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따르는 수동적인 삶을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는 철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이야기였다. 타인이 만든 이론을 따라가는 종이 될 것인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인도하는 주인이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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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철학화하지 못하고, 정해진 철학을 이념화해서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쉽게 이념이나 신념에 빠진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해서 해결하려는 야성을 잃고, 남이 정해준 정답을 찾아 얌전히 적용하려고만 한다.
(...)
세련되고 정밀한 이론은 그들을 매혹시킨다. 그래서 절절한 마음으로 기꺼이 그것의 충실한 종이 된다.
1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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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지켜야 할 그것을 자신이 만들지도 않았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인도하는 모순적 상황은 내면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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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념을 신념처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을 모두 참과 거짓이나 선과 악으로 따지기 좋아한다.
1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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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마음' 즉 틀에 갇힌 사고방식에 대해서 언급하는 문장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것이 지닌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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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마음'에 지배되는 상태가 되면 그 사람의 온 마음과 행동이 '정해진 마음'의 변주에 불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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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마음'은 한 사람을 과거에 묶어두고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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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염치가 없어진다. '정해진 마음'이 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정해진 마음'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자 진실을 지키는 일로 바뀐다. 그래서 아무리 크고 중한 일이라도 그것이 '정해진 마음'을 발취하는 데 방해가 되면 바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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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한 논리를 사용하는 것도 자신을 자신의 존엄 위에 세우지 못하고 '정해진 마음'위에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불행하게도 염치를 잃어버린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209~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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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마음'은 자존감이나 품격이나 진실성은 사라진다. 오직 '정해진 마음'들의 굳건한 연대만 남는다. 참 무섭고 슬픈 일이다. 이처럼 무섭고 슬픈 풍경 안에서 아무도 몰래 비효율은 두터워진다. 우리가 '정해진 마음'에 좌우되는 감정을 극복하고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정해진 마음'에 갇힌 자기를 장례 지내라.
-장자-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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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이후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멈춰있는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타인의 것을 모방하거나 이미 생산된 것을 습득하는 것에서 벗어나 생산되는 과정을 배워 '우리만의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특정 기술을 전수할 수 있지만 그 경험과 도전만큼은 누구에게도 전수할 수 없기에 그것을 위한 시간 투자와 모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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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모험과 도전의 결과다. 지식 생산에는 반드시 모험과 도전이라는 비밀스러운 덕목이 작용한다. 지식 생산국에 가서는 생산된 결과를 습득하기보다는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을 배울 일이다. '생산된 결과'는 보이고 들린다.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모험과 도전 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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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일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비밀을 접촉하는 일에서 시작되지, 그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활동을 해서 낳은 결과를 배우는 것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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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글을 배우는 것으로는 자유를 획득하지 못한다. '모험'이나 '도전'으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글'이나 '말'은 전수할 수 있어도 '모험'이나 '도전'은 전수할 수 없다. '모험'과 '도전'은 오직 한 사람의 고유한 욕망으로만 세상에 드러나지, 전수하고 못 하고의 차원에 있지 않다.
226~2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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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공감 가는 이야기 중 하나였는데, 이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더불어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대답'에서 '질문'으로 습관을 바꾸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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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얼마나 크게 하는지에 큰 문명을 살 것인지 아니면 작은 문명을 살 것인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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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서 우물 밖을 꿈꾸는 상상력을 발동할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지적 활동이 바로 '질문'이다. 반면에, 자신이 머무는 우물 안으로만 시선이 향해 있을 때의 지적 활동은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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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던 습관을 '질문'하는 습관으로 바꿀 수 있으냐 없으냐 하는 점이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우물 밖을 향해 튀어 나가는 도전을 할 것이냐 하는 점이기도 하다.
230~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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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한테는 자기가 사는 우물이 자기 경험과 인식의 전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이상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생각과 관념이 확장되고 더 나아가 더 넓은 우주관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이자 반드시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페이지마다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이 가득 담겨있어, 사실 한번 읽고 넘길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삶과 가치,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되짚어보며 '삶의 목적'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다시금 되짚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