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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조배성 외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2년 11월
평점 :
살면서 누군가에게 안녕을 말하는 것이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해 무심코 넘기지만, 후에 생각해 보면 때를 놓친 인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될 때가 있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그 인사는 다시 되돌릴 수도 없기에 그저 후회로만 남는다.
요즘은 '안녕'을 말하기엔 어려운 시기이지만, 그래도 나중에 후회로 남기기보다 지금 '안녕'을 말해보면 어떨까? 이 책에는 다섯 시인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각자의 '안녕'을 다양한 방법으로 담고 있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물과 풍경들에 마음을 담아 그리움, 고독, 슬픔, 후회, 위로, 추억, 외로움 등의 감정들을 풀어냈는데 이 시들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어봐도 좋을 것 같다.
문득 누군가가 그리울 때, 지는 노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 일상이 갑갑함으로 다가올 때, 공허함을 느낄 때 등등 살면서 감정들이 나를 휘감아 감당할 수 없을 때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시 한편 읽어보면 어떨까? 때론 공감을, 때론 위로를, 때론 힘을 얻으며 다시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을 읽으며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에서는 잠시 멈추어 본다. 반복해서 읽어본다. 그러다 잠시 그려본다. 그렇게 기억에 남았던 시구 몇 구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깊숙이 느껴지던 이야기들과 또렷이 그려지는 풍경들이 유독 선연하게 남았던 시구들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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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벽
발끝에도 벽
갑갑할 수도,
안락할 수도 있는 네모 안
나는 초점 흐린 눈으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본다
무늬 하나 없는 저 하얀 천장을 향해
한숨 섞인 연기를 쉴 새 없이 뿜어낸다
(...)
조배성 作 (고시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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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응집되어 표현되어 있었는데, 어딘가 공허함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요즘의 젊은 세대를 나타내는 표현 같아 한편으론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무기력함과 우울감마저 느껴지는 현실을 언제쯤 탈피할 수 있을지, 내일은 가능하기를 소원하는 염원이 느껴져 마음 아픈 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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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의 하늘은 잿빛이다
완전히 까맣지도,
그렇다고 하얗지도 않은 애매한 잿빛 세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괜히 나까지 울적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잿빛 하늘 아래 잿빛의 얼굴로 살아간다
나의 색이 원래 잿빛이었는지,
또 다른 색이었는지 모르는 채로
조배성 作 (잿빛 하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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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세상은 모두 잿빛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살기는 퍽퍽하고 넉넉한 인심은 옛말인 시대. 모두의 삶이 그러하니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하기 애매한 잿빛 하늘만 보고 살아온 이들에게는 오로지 잿빛 세상만이 전부일 테다. 무표정의 이도 저도 아닌 세상 속에서 개성은 사라지고 오직 잿빛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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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이었던 글자들은
여전히 시선마다 걸린다
소중히 여기던 마음에
눈에 밟힌다는 말조차
함부로 쓰지 못하고
매번 걸려 넘어진다
쓸린 마음을 쓰다듬다가
그대로 앉아 반가워하다
그리워하다 한다
한주안 作 (이름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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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자만으로도 가슴이 울렁, 울음이 복받쳐 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리움 한 스푼, 고마움 한 스푼 담고 또 담아 꾹꾹 눌러보아도 매번 가슴에 걸려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고맙다는 말로도, 미안하다는 말로도 부족해서 조용히 그 이름을 읊조려 보지만 한마디 내뱉기 무섭게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 가슴을 쓸어내려 본다. 추억을 그리며 반가워하다가도 또 그리움에 사무치는 감정들이 잘 드러난 시구인 것 같아 함께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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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질 무렵
구름이
색조화장을 했다
차암 곱다
늘 맨얼굴만 보이다
가끔가다 아름다운 것이
꼭 내 마누라를 닮았다
이성관 作 (꽃구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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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질 무렵의 풍경은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일몰의 풍경을 보고 색조화장을 한 아내를 떠올리며 시를 썼는데, 어딘가 모르게 상상이 되어 웃음이 배어 나온다. 한낮의 둥둥 떠다니는 말간 구름은 맨얼굴, 화사한 빛깔로 색을 입힌 구름은 화장한 아내의 모습이 단박에 떠올라 오늘은 어떤 색으로 곱게 단장했을지 내심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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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말
상대의 잘못
지금에 초점을 두고 비판하자
'이러니까 네가 그런 일을 당한 거야'라며
과거의 상처까지 끄집어내
불붙이는 일
김수림 作 (이러니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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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공감 가는 글이라 남겨본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누군가의 '말'은 때로 큰 상처와 시련을 준다. 피해자에게 가하는 2차 가해는 바로 이런 단어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자. 현재의 잘못은 현재로 끝내자. 더불어 내가 모르는 상대방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이러니까'라는 말은 내 마음속에 이미 상대를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이 담겨있어 나오는 말이다. 말조심, 마음 조심!
가끔은 시를 통해 마음을 담고 나눠봐도 좋을 것 같다. 끄적끄적 오늘의 나는 안녕한지,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없는지. 느껴지는 삶, 보이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 훗날 마음이 울적할 때, 그리움이 쌓였을 때, 가슴이 답답할 때, 즐거움이 필요한 날 그 글과 시를 읽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안을 얻어봐도 좋겠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이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