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
금봉 지음 / 좋은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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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 '광'은 무엇이고, '모서리를 닮은 여자'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했다. 대부분의 여성을 비유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흔치 않는 표현이었고, 모서리가 주는 느낌들이 뾰족함, 날카로움, 각진 등의 느낌들이 연상되어 특히 더 호기심을 자아냈다. 더불어 '광'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책은 대략 5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꽤 두꺼운 분량을 자랑했는데, 스토리가 눈에 익지 않았던 초반을 제외하고는 페이지가 금방금방 넘어갈 만큼 흡입력 있고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소설이다 보니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겪는 이름이나 상황적인 부분이 헷갈려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는다는 점은 꽤 오랜만에 접하는 편안함이었다.

 

<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는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모서리를 닮은 여자, 윤설휘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로, 그녀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그녀의 남자 '광'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물여덟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 시작된 그녀의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만남과 일상들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닮아있어 더 친근하게 다가왔는데, 퇴근길 들리게 되는 편의점이라던가, 직장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직장동료와의 모습,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보게 되는 길거리 풍경이나 식당의 모습들이 너무 익숙한 모습들이라 읽는 순간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졸업, 취업, 퇴사, 그리고 또 입사. 월세에서 전세로, 지역을 옮기며 이사를 하는 직장인 삶의 패턴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던 평범한 그녀 윤설휘의 삶이 조금씩 특별함으로 채워진 것은 어쩌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이웃으로 만난 한시소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변기가 막혀 애를 먹던 시소를 도와주면서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시소와 설휘의 만남은 이후 점점 더 친밀하고 다정하게 발전했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웃사촌의 정을 두 사람을 보면서 흠뻑 만끽할 수 있었다. 시간이 될 때면 식당 '오든지'를 운영하는 시소를 돕는 설휘, 술을 먹고 뻗어있는 설휘의 해장을 매번 챙겨주는 시소,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위로해 주고 챙겨주며 한결같이 곁에 있어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위로와 정이 느껴졌다.

 

시소와의 그런 인연은 어느새 설휘의 유일무이한 연인 운와 이어지게 되고, 세 번째 얻은 직장에서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동료 김하영과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어느새 절친 혹은 친한 동료 이상의 사이가 된다. 이들의 이런 만남과 인연들은 점차 확대되어 또 다른 인연들과 엮이게 되고 그러면서 점차 설휘와 운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와 상황들이 몰입도 있게 전개된다.

 

여기에는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이웃들과의 일상적 관계들이 퇴사, 결혼, 이혼, 가족 간 불화, 연인 간의 일들이 겹쳐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개되는데 우리네 이야기이기에 더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다. 

 

더불어 이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남다른 유머와 패기, 배려, 공감 등에서 삶의 지혜와 성장을 엿볼 수 있었는데,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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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살면서 당황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자꾸 발갛게 대응할 거야? 우체통이냐?"

유머러스함을 만나볼 수 있었던 페이지 (2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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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 있던 '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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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주 1회 아이를 만나던 시소가 이민으로 인해 오랫동안 아이를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전 연인으로 인해 갑자기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이즈)에 걸리게 된다면 나는 어땠을까, 연인이 갑작스레 HIV에 걸리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혼을 결심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이들은 갈등과 사랑, 포용, 이해, 수용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선택한 길과 방식들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들의 끈끈한 정에 매료되고, 성숙한 삶의 자세에 대해 존경심도 들었다. 흔히 말하는 행복의 중심을 제대로 실천하고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이들의 모습에서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쉽게 이해하고 포용하기 어려운 허물이나 결점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방식도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 연인을 사랑하는 방법,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운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인들이 알게 되면서 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과정이었는데, 주변인들이 으레 처음 겪게 되는 갈등이나 감정 변화의 묘사가 디테일하게 잘 그려졌고, 이후 이를 상황적인 면이나 감정적인 면에서 매우 잘 헤쳐나가는 점에 있어서 성숙한 면모가 돋보였다. 또한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모습은 지는 노을만큼이나 아름답게 그려져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설휘와 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이들 주변에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저자는 결코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똑같은 일상인 듯 매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물론, 감정적 갈등과 관계성에서 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촘촘히 엮어 마치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듯이 전개해 준다. 그래서 이들이 마치 나인 듯,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자꾸 대입해 보게 된다.

 

다 읽고 난 후에 처음 든 생각은 '일상이 이렇게 풍요로워질 수도 있구나'라는 점이었다. 미숙하게 대응했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도 떠오르고, 유쾌하지만 성숙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서 그리움과 행복함도 느낄 수 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이 계절, 어느 날 문득 집 밥이 그리울 때 생각나는 따뜻한 시골밥상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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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빛나는 운의 얼굴, 그리고 피부의 광채
광과 같았던 운.

428~4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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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아직도 운을 보았을 때 노란 꽃의 이름을 모른다.
내게 그 꽃은 광이었다.

 

나만의 반짝이는 빛을 담은 꽃, 운.

474~4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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