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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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그림이나 전시회, 박물관 같은 곳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했는데, 읽는 동안 방 안에서 프랑스 유명 미술관 곳곳을 누비는 호사를 누리게 만들어 주었다. 방구석에서 편히 앉아 유명 화가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그에 얽힌 역사와 재미난 이야기들을 읽어보면서 마치 전세 낸듯한 기분으로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방문했던 미술관들에서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제대로 알지 못했던 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정보들을 채워 넣으면서 점점 더 궁금해졌는데,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유명 화가들의 당시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성향,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들에 대한 정보들을 알게 되면서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다른 관점으로 작품을 볼 수 있어 새롭게 다가왔다.

 

책의 전반적인 구성은 프랑스의 유명 미술관 4곳을 기준으로 꼭 봐야만 하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었는데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화가와 작품들을 포함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유명한 작품에 밀려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작품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는데 작품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당시의 심적 변화 등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있어 어렵지 않게 미술사를 접할 수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한 전문 도슨트가 함께 하는 기분이었는데, 내가 원하는 공간 어디에서든 나의 속도에 맞춰 편안하게 그림들을 마음껏 관람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실제 미술관을 방문해 보면 많은 사람들에 치이고 떠밀려 제대로 관람을 하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전용 미술관을 가진 기분이라 약간의 짜릿함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실제 원본을 현장에서 보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지만, 사전에 배경지식이나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알고 있는 상태로 현장 방문하여 보는 것과는 차이가 커서 사전 공부 겸 미리 보기 형태로 답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좋은 선생님을 만난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인드도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해당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작품이나 미술사를 구분 짓거나 단정 짓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 나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 진정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더 마음이 갔다. 한참 학창 시절 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다가왔던 미술사가 이제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으로 다가오는 것에는 이러한 다양한 관점과 개인의 기준을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관들을 돌아보며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인상주의 등 서양 미술사의 흐름과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이야기와 작품들을 소개하며 흥미로웠던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암굴의 성모>]


(좌) ver1 / (우) ver2

 

어딘가 비슷한 듯 다른 그림 두 점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을 떠나던 중 자신의 사촌인 세례 요한을 만나는 순간을 표현한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암굴의 성모> 두 가지 버전의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무염시태 신심회에서 주문한 것으로 성모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해달라는 정확한 요청 사항이 있었지만 실제 작품은 주문했던 내용과 다른 주제의 작품이 되어 신심회에서는 달가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다빈치가 그린 작품은 좌측에 있는 ver1 그림으로, 모든 장면이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모든 인물이 하나의 내러티브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으며 안정적인 구도를 위한 삼각형 배치, 원근법과 스푸마토 기법이 절정에 달해 있다. 단, 성모마리아는 눈에 띄지 않으며 오히려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일종의 상징물이라 말하는 도상도 생략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신심회 측에서는 추가 대금 지급 거절은 물론 다빈치를 고소하면서 결국 두 번째 버전이 만들어졌는데, ver2 그림은 ver1을 보완하고 신심회 측에서 요구한 내용을 일부 반영한 작품으로 확인된다.

 

ver2 그림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세례 요한을 가리키던 손이 사라지고 성모 마리아가 좀 더 부각되어 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로 연결되던 내러티브는 사라졌다. 문제가 되었던 도상들도 추가되었는데, 세례요한은 나무 지팡이와 낙타 가죽옷을 착용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머리 위에는 헤일로도 추가되었다.

 

여러 상황상 다빈치에게 이 작업은 그리 유쾌한 작업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 두 번째 버전은 다빈치가 전체적인 구조와 틀만 잡고 이후에는 함께 그림을 그린 암브로조 데프레디스와 그의 형제에게 맡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증거로 두 번째 버전에서의 식물들은 상상으로 그린 매발톱꽃 줄기와 잎이 그려져 있으며, 배경의 암석도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석회암이 어색하게 그려져 있는 것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일한 사람이 그린 두 가지 버전의 작품, 어떤 것이 더 마음에 와닿으시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안나와 성모자>]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위쪽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 그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 우측 하단은 아기 예수를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는 유독 성모마리아만 근심 섞인 미소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아기 예수 앞에 있는 어린양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린 양은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지금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고자 자신의 희생을 상징하는 어린 양, 즉 죽음의 십자가 길로 스스로 향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 순간 성모 마리아는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아들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염려스러움의 심정을 담고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만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주제로 그려진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빈치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성모마리아의 변화를 가져온 뒷이야기에 대한 내용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했던 다빈치는 어머니 카테리나가 세상을 떠난 뒤 작품 속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아들과 함께 있는 행복한 어머니'에서 '근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 혹은 '신의 뜻을 거스르더라도 아들을 위하는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쩌면 다빈치는 자신의 작품 속 성모마리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어머니상을 투영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이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유명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모나리자>라는 작품의 뒷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유명세 뒤에 숨겨진 이 작품의 탄생 배경과 이 초상화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


 

사실,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에 하나가 나폴레옹과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 위엄이 넘치는 영웅을 묘사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은 나폴레옹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그린 화가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한 묘사와 영웅적 서사, 위엄이 넘치고 당당해 보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시선을 압도한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서 이 작품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한참을 들여다봤던 기억이 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몇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세밀함과 압도감이 엄청났었다.

 

이 작품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는 권력을 등에 업은 기회주의자이자 권력 앞에서 환심을 사기 위한 그림을 그려 드높은 명성을 가졌던 인물이다.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 대상을 미화하여 살아있는 영웅으로 찬양한 작품을 탄생시키면서 유명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단순히 권력욕에 눈먼 화가로만 보기는 아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당시 회화 본질의 가치가 떨어져 버린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새로운 변혁을 이루어낸 것은 물론,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포착해 내는 화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면 이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외에도 마리 드 메디치 이야기, 밀레, 쿠르베, 알렉산드르 카바넬, 에드가 드가, 오귀스트 로댕 등 수많은 작품과 화가, 뒷이야기들이 담겨있었는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작품과 함께 만나 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근조근 들려주는 친절한 설명을 따라 조용하고 한적하게 즐기는 미술관 여정은 그렇게 한동안 여운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해도 좋다. 그저 내가 느끼는 감동을 따라, 나에게 울림을 주는 작품을 따라 그저 흘러가보자. 그것이 가장 좋은 작품이고 최고의 작품이다. 모처럼 머리와 가슴이 풍요로워지는 따뜻한 미술관 관람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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