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 - 포기하지 못할 꿈의 기록들
한유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느낀 첫 소감은 궁금증이었다.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라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 건지, 시적 표현 같기도 하고, 남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더불어 '포기하지 못할 꿈의 기록들'이라는 서브타이틀은 더욱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에는 나의 관심사이자 흥미를 끄는 키워드들이 한몫했는데, '꿈', '기록'이라는 단어들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전부터 '꿈을 꾸는 자', '꿈을 가진 자'에 대한 남다른 믿음과 긍정의 영향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기록하는 것' 역시 오랜 시간 스스로 실천하고 있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과 눈길을 끌었던 서브타이틀의 이러한 키워드들은 이 책을 읽기 전 머릿속에서 나름의 이미지들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파란색 잉크를 톡 떨어뜨린 것 같은 새파란 표지가 거기에 더해 기대감을 높였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방향성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을 밝힌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더 가볍고 긍정적인 분위기의 밝고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이라 추측했었다. 책을 읽기 전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력과 추측에 불가한 기대감이었기에 옳고 그름, 좋고 나쁘고의 판단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것을 밝힌다.

 

어쨌든 이러한 나의 기대감과 상상력은 잠시 접어두고 저자가 품은 이야기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내려갔다. 총 6부 중 1부를 읽으면서는 사실 조금 당황했다. 뭔가 살짝 이해하기 어려운 맥락도 있었고, 1부안에 담겨있는 각 이야기들이 특정 주제로 묶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 에세이의 꼭지는 무엇일까?'에 중점을 맞추며 계속 읽어나갔다. 

 

그렇게 2부, 3부, 4부로 갈수록 '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는 맥락이 잡히기 시작했다.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와 더불어, 서브타이틀의 글귀도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는데, 이물감 없는 새파란 파랑을 머금고 있던 표지 속에는 생각보다 무겁고 중요한 사회 문제들과 진짜 현실이 반영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래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내용들이 많았다.

 

일단 저자의 상황부터 그 범주 속에 포함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과 사회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면면을 고스란히 남긴 기록 곳곳에서 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호받아야 할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정작 보호받지 못하고 내쳐지는 수많은 약자들의 이야기들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비정규직 들의 이야기는 비단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매 순간 불안과 폭력 속에 노출되는 여성들, 장애인이기에 기본적인 것들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비정규직이기에 하루살이처럼 어떤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들이 그저 가슴 아프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타인의 일로만, 3자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는 저자와 저자가 인터뷰한 장애 인권 운동가 김형수 씨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뭉클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특히 뉴스를 통해 자주 거론되는 여성 관련 성폭력과 살인, 성추행, 스토킹과 같은 이야기들과 맞물려 공감 가는 내용들도 많았는데, 진정한 문제의식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이해하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힘든 순간 우는 것조차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라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곳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결국 제목에 담긴 의미임을 알고 한껏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이나 의미들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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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순간에는 상상 속에서만 조금 울었다.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 한 방울이라도 몸 밖으로 내보내면 결국 나만 힘들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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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나의 블로그 '끄적끄적' 게시판에 끄적이는 일상의 기록들이 결국 그런 이야기들이겠구나 생각하니 쉽게 납득이 갔다. 타인은 이해하지 못할 문장이나 의미 모를 이야기들이 타인에게는 그저 느낌이나 감정적으로 '슬픈 일이 있구나', '기쁜 일이 있구나', '힘든 일이 있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한없이 머리를 처박고 땅으로 곤두박질 쳐지는 순간들에 대한 기록도 분명 담겨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태까지 살아있고, 살아남았으며,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남들에게 말해봤자 득보다 실이 많을 여러 질병들을 주렁주렁 달고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저자의 삶은 그렇게 희로애락을 담고 있었다.

 

저자의 삶을 찬찬히 바라보며 참 삶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들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는 헤어날 수 없고,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삶이 피폐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기 위해 매일을 쓰고 기록해야만 하는 삶을 사는 그녀에게 병원에서는 휴식과 입원을 권유하지만 살기 위해 쉴 수 없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병을 고치려면 쉬어야 하는데, 오늘 하루 입에 풀칠하기 위해 그 잠깐의 쉼마저 허락되지 않는 삶. 살기 위해 일해야 하고, 살기 위해 쉬어야 하는 이중적 고충. 그 와중에 겪은 의지했던 반려동물과의 이별과 사랑은 가슴에 묻어야 하는 걸까? 드러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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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래도 아직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우는 모습도 봐줄 만해서, 문자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하면 되지. 뭐든 다시 하면 돼. 자고 일어나자. 다시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내일 저녁엔 소면 삶아서 열무 겉절이랑 비벼 먹어야지. 참기름 넣어서. 콩고기 만두를 딱 세 개만 구워서 소면에 곁들여 먹을 거야. 꼭 그럴 거야.

2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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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다시 일어서려 노력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오늘'을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지금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포기하지 말자고, 다시 일어서자고 스스로 되뇐다.

 

그녀가 쓴 글 중에 특히 와닿았던 문장이 있는데, 어쩌면 너무 현실적인 문장이라 더 와닿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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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들은 분명 미래 세상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아직 미래가 안 왔다. 그가 느끼는 바는 다음과 같다. 돌봄 받는 경험은 역시 가족이나 연인, 돈이 있지 않으면 어렵구나. 나는 오롯이 내 몫이다. 끝까지 정신 차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그다음은 없다.

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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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감 혹은 현실감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기록 노동자라 칭하는 저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즐거운 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딘가 남겨진 글귀가, 기록들이 모두 좋은 일들에 대한 기록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부록에 담긴 김형수 장애 인권 운동가의 인터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기억에 남았던 몇 글귀들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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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분노를 에너지로 바꾸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내가 비장애인이 될 수는 없잖아요. 좋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차별받는 경험 한 번 있으면 존중받는 경험 백 번 있어야 사라져요. 일대일로 대응되면 참 좋겠는데 화나는 일이 하나 생기면 이걸 없애려면 좋은 경험이 백 개는 생겨야 해.

 

'내 인생이 왜 이래. 짜증 나' 이런 기분이 들더라도, '그래도 아프니까 이런 경험도 해보지' 그런 것들.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게 쌓여가지고 내 삶의 에너지가 되거든요. 그런 에너지를 충전해야 해요. 그래서 가끔 저는 힘들 때 친한 친구한테 "야, 내가 장애인이어서 좋은 점 얘기해 봐" 이래요.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와야 해요.

2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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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동아리 활동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저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동지로, 오빠, 형으로 보면서, 사회적인 역할이 생기는 거예요.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사회 경험들이 깨지기 시작했어요.


(...)
내가 좀 더 멋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적을 하는 거지. 그 사람들이 계속 지적하니까 저도 배우기 시작한 거죠.
내 애인이 남성성을 요구하잖아요? 그러면 그 요구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존중받았다고 느끼니까.


(...)
매너와 에티켓. 궁극적으로 장애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 관계 속에서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나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거죠. 그러다 실패해서 연애가 깨지면, 운 좋으면 몇 년 뒤에 만나서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왜 헤어졌는지 알려주기도 하고.

2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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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삶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인터뷰였다. 비단 이것들은 장애인, 비장애인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 배워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열등감, 분노를 에너지로 바꾸는 연습,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방법, 타인을 존중하는 법과 타인을 통해서 배우는 법, 이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핵심 포인트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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