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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때론 동화책에서 생각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쉽고 단순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보이는 것이 어쩌면 동화책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동화책은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은 특정 연령대가 본다는 느낌보다는 다양한 관점의 내용과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동화책이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든다. 그리고 책을 읽는 대상에 따라 동일 내용의 도서로 아동용, 성인용으로 구분하여 출간하는 경우도 있어 경계선이 더 옅어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앞서 읽은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을 통해 알게 된 책으로 엄마들이 함께 읽고 토론한 책 중에 꼭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위시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동화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이점과 엄마들이 나눈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참여한다는 느낌으로 읽어보고 싶어 바로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그림 70%에 글 30%를 차지하는 그림 동화책보다 아동문학 도서라고 분류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라고 할 만큼 글 밥이 꽤 있다.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는 그림들은 서정적 느낌을 가득 담고 있어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주인공들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는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의 모습
2. 바깥세상에서 처음 바라보는 노을 진 자연의 모습과 또 다른 코뿔소 무리를 바라보는 노든의 모습
3. 버려진 펭귄 알을 품기로 한 윔보와 치쿠
4. 불타는 동물원을 벗어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치쿠와 노든, 그들의 여정에는 버려진 알도 함께였다.
여기 등장하는 이들의 삶은 모두 '기적'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되는데, 각기 다른 동물들의 인생 여정을 포함한 그들의 공생과 연대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한편, 남모를 고통과 아픔을 짊어진 인생사를 다루고 있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가볍게 보자면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모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 바위 코뿔소의 모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동물원 펭귄 우리 속에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나'의 모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읽는 사람이나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삶을 재조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처받거나 버려진 코끼리들이 인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머무는 코끼리 고아원의 모습, 그리고 그 무리 속에서 유일한 흰 바위 코뿔소 노든, 떠날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 결정하는 그들의 선택과 삶, 야생에서 만난 새로운 도전과 모험, 자신과 동일한 흰 바위 코뿔소를 만나 가족을 만들고 행복을 누리는 삶의 소중함과 행복감, 가족을 잃고 강제적으로 갇히게 된 동물원에서의 삶, 버려진 알을 자신의 알처럼 품어주며 목숨을 위협당하는 순간마저도 지키려 애쓰는 마음, 동족 여부를 떠나 하나의 가족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긴긴밤을 함께 다정한 위로와 애정으로 품어주는 삶,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긴 여정을 두말하지 않고 함께 걸어주며 그의 꿈을 응원해 주는 동료이자 가족의 마음, 더불어 긴 여정 속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죽음과 고통은 어쩌면 우리 인생과도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라는 책의 토론 내용 중에서도 아이와 엄마의 감상 포인트가 다르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처럼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이 책은 다른 의미와 해석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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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생의 의미를 사색했다면 아이는 모험 이야기를 재미있어 했어요.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137~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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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든의 삶에서 시작해 이름 모를 알로 태어나 어엿한 펭귄이 되기까지의 여정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는데, 그 일정이 이 책의 제목처럼 '긴긴밤'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기쁨, 행복, 짜릿함, 슬픔, 고뇌, 고통, 두려움 등 수만 가지 감정들을 느끼며 성장하고, 배우며 어두운 터널을 건너가듯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이처럼 인생의 모든 과정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각기 다른 동물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연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데, 이는 우리가 사는 각자의 삶의 방식이나 생존방식과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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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스스로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코끼리들의 지혜였다. 노든은 현명한 코끼리들이 좋았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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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속될수록 누군가는 상처 입고, 죽고, 헤어지기 마련이다. 늘 좋은 날 행복한 날만 이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살아간다는 것 이상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삶 전반이 같은 부류 혹은 같은 종족을 떠나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지향함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코끼리 무리에서 사는 유일한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이라던가, 버려진 알을 품는 두 아빠 펭귄의 도움으로 부화하게 된 펭귄이라던가,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어린 펭귄을 끝까지 책임지며 바다까지 이끌어주고 동행해 주는 노든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기적이며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들의 여정 속 긴긴밤은 때론 악몽으로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정하고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이자 삶을 버티게 해주는 반짝이는 추억으로 남겨져 오랫동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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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 되었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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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 안아 줄게. 그리고 이야기를 해 줄게. 오늘 밤 내내 말이야. 오늘 밤은 길거든."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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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1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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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성장하면서 겪는 수많은 질문과 다양한 감정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긴긴밤>은 동화책이지만, 그저 흘려버릴만한 책이 아님은 분명한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과 그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눈물과 노력, 고통과 애정, 배려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오랫동안 자양분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고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들은 누가 있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제 몫을 다하는 '나'의 모습은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를 거쳐 미래를 만들고 삶을 지속시킬 것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긴긴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수없이 애쓴 이들의 노력과 애정, 연대가 있음을 잊지 말자. 나의 곁에서 함께해 주는 이들에게 오늘, 다정한 인사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