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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평점 :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철학자 스피노자-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가끔 그런 삶의 소중함을 잊거나 무한한 삶인 듯 살아갈 때가 있다. 마치 무한 반복 재생되는 테이프처럼 삶을 지루하게 느껴 허투루 하루하루를 쓴다거나,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면서 죽음만을 바라며 어떤 것에도 가치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때가 있다. 늘 행복하고 기대되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삶은 유한하고 소중하다는 점인데,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전하는 유한한 삶의 가치와 하루의 소중함,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종말을 바라는 희망이, 그리고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은 실제로 안녕한지, 어떤 소중한 가치를 품고 있는지, 진짜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같이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중학생 희망이를 통해서 바라본 세상의 다채로운 모습도 함께 엿보며 공감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고희망이라는 중학생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희망이는 중학생 여자아이다. 3대가 한 건물에 함께 살고 있으며, 할머니가 운영하는 국밥집에서 아빠와 엄마는 함께 일을 돕고 있고, 같은 건물의 위층에 각각 할머니, 삼촌, 그리고 부모님과 희망이가 함께 살고 있다. 이사 온 이후부터 동네 친구로, 영혼의 단짝처럼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 도하와 같은 반 친구인 베스트 프렌드 지수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의 친구들이다.
어릴 적 동생 소망이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희망이네 가족은 웃음도 잃고, 마음의 문도 닫은 상태로 오랫동안 가족의 형태만 유지한 채 긴 시간을 보내왔다. 소망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엄마는 종종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었고, 아빠는 속마음을 도통 알 수 없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부모님 그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희망이는 어느 순간부터 종말을 바라게 되었고, 그런 감정들을 종말을 그리는 소설에 담아내면서 감정을 풀어내곤 했다.
함께 사는 가족 중에는 그나마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삼촌이 있어 의지하고 살아가던 희망이에게 어느 날 산책하던 골목길에서 우연히 삼촌의 비밀을 목격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로에게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던 삼촌에게 자신이 몰랐던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 것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움과 충격을 받았지만, 점차 삼촌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희망이는 적극적으로 삼촌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된다.
희망이는 종종 지수가 알려준 사이트를 통해 종말과 관련된 소설을 업데이트하곤 했는데, 이 소설에는 사춘기에 누구나 한 번쯤 겪을법한 심리묘사가 특히 두드러지게 잘 나타난다. 가까이에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이야기나 감정들도 소설 속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J는 지수를, D는 도하를 대신한 인물들이다.
어릴 적 동생 소망이의 죽음이 불러온 파장은 생각보다 깊고 컸는데 누구도 나서서 이를 보듬거나 치유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늘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채, 그저 꾹꾹 눌러 담고 참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으로 대신했다. 희망이에게 동생의 죽음은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가족의 무관심이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칼 같은 엄마와 국밥 같은 아빠 안에 자신의 편이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엄마는 약물치료를 받으며, 종종 죽은 동생을 대신해 희망이에게 예민하고 날카롭게 굴곤 했다. 그 속에서 아빠는 희망이와 엄마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그저 묵묵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직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희망이는 그래서 더 종말을 바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종말주의자 고희망.
소설 속에는 이처럼 대비되는 이름이나 상황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대비를 통해 더 감각적으로 스토리와 내면의 감정들이 깊숙이 느껴진다. 몇 가지 예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 어디쯤에 자리한 희망이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는 현실과 종말을 그리는 소설 속 내용의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고, 어른인 듯 성숙한 면모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중학생 나이 또래에서 보일법한 모습을 보이는 희망이의 심리를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이름과 상황적 묘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름이 희망인 것에 비해 희망이가 바라는 것은 종말이다. 그리고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요한 삼촌. 그래서 이름도 요한인 삼촌이 가진 비밀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세 번째 외면과 내면의 대비되는 상황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나주 국밥집의 손녀인 고희망은 용돈도 넉넉히 받고 건물 주인 할머니와 더불어 3대가 함께 사는 흔치 않는 가족 구성원의 일원 중 한 명이다. 더불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도 잘해서 전교 1등을 할 만큼 수재이다. 이런 조건들만 봤을 때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나, 실상 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가방을 들고 다니고, 친구는 도하와 지수뿐이며, 전교 1등을 해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기는 흔치 않은 중학생이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풍족해 보이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메마르고 사랑에 목말라 있는 아이의 모습이 대비를 이루면서 희망이의 상황과 내면을 더없이 잘 드러내주고 있다.
희망이가 쓰는 소설이 후반부에 다가갈수록, 희망이네 가족이 마음을 터놓고 상처를 어루만지기 시작하면서 '종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희망이가 전하는 문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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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음과 종말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2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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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될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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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종말이 어차피 오는 거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그냥 해도 된다고 말이야. 어차피 세상은 망할 거니까
1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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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well-dying)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사실 건강한 거야. 너무 그 생각에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누구나 죽음을 준비할 필요는 있으니까
1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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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너무 일찍 동생 소망이의 죽음을 통해 세상을 알아버린 희망이는 죽음을, 삶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끊임없이 죽음과 종말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죄책감에 짓눌려 아무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희망이가, 그리고 가족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하며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을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어쩌면 살짝 유치할 수도 있었던 사춘기의 치기 어린 행동들이 사실은 속 깊고 성숙한,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한 중학생 아이의 상처와 삶에 대한 고민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한때 겪었던 서러움, 답답함, 슬픔, 미안함, 미움, 사랑받고 싶은 감정들이 밀물처럼 다가오는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답답한 울타리를 벗어난 날 현실을 직시한 순간 느낀 두려움과 불안함, 공포는 캄캄한 어둠만큼이나 막막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금 소중한 가족의 품 안에 들어서는 순간 느낀 안정감, 따뜻함, 포근함, 고마움, 사랑받는 느낌들은 희망이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감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성장해가는 과정을 함께 목도하면서 나의 삶도, 세상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물리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희망이네 부모님이, 할머니가, 삼촌이 심리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되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듯이 어쩌면 갑작스레 죽은 소망이의 죽음이 삶에 대한 경각심과 소중함을 말해주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죽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 유한한 삶을 인지하고 힘껏 살아가는 것,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보자.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그것을 꿈꾸고 실천할 것인지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살아가는 동안 담대하게, 즐겁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