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닿고 싶다는 말 - 공허한 마음에 관한 관찰보고서
전새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평점 :
살면서 겪는 수많은 감정들은 때론 독이 되기도, 때론 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깊이 더 깊이 감정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그 감정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후자의 경우로 가족들의 애정과 관심, 사랑을 통해 잘 극복하고 현재는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삶을 보다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던 일련의 감정 상태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이것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무겁지 않게 서술되어 있어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때는 뿌리 깊은 애정결핍 위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자기혐오, 자기 연민 사이에서 방황하던 저자가 그것들을 모두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인생의 진짜 중요한 가치와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건강한 삶의 태도와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극복 과정을 지켜보며 가족의 의미와 접촉(닿는다는 것)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과 위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각종 SNS 활동을 통해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문장들이 꽤 많았다. 타인에게 받는 인정과 관심 욕구,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얻는 좌절감과 우울증, 애정결핍, 심하면 공황장애까지 겪는 현대인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마음가짐과 다정한 인사말같이 건네는 위로와 용기는 사는 게 바쁘다고 미뤄두거나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
인생은 살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결론을 내기 위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 가만히 있지 말고 타인을 향해 손을 뻗자. 물론 그 행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의 모든 문장에는 진정 당신께 그 용기가 생기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55페이지 中
=====
저자가 인생은 살만하다고, 용기를 내어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 책에는 흔한 '힘내'라는 말조차 담겨있지 않지만,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살만한 용기가 생긴다.
왜 그렇게 우울해했을까? 왜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을까?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적절한 조건들은 정작 그런 것들이 아니었는데 엉뚱한 것에 힘을 쏟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
우울하다는 건 그런 거였다. 몸 안에 눈물이 쌓인 상태, 그래서 눅눅하고 곰팡곰팡한 상태, 마음에서 악취가 날 지경인 상태. 그렇다면 할 일이 명확하다. 나를 활짝 열고 볕 속에 두는 것, 그저 볕이 치유하게 두는 것, 그 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
239페이지 中
=====
우울한 상태를 이토록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눅눅하고 곰팡곰팡한 상태. 마음에서 악취가 날 지경인 상태. 상태와 원인을 알면 치료방법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마음을 활짝 열어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내 안에 들여오는 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는데 어쩌면 잊고 살았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익숙하지만 낯선 문장들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들을 읽고 당장은 마음에 새기지만, 또 잊히거나 마음 저 한편에 미뤄둘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매번 또 꺼내서 다짐하고 되새기면 된다.
=====
이제는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 초승달이니 그믐달이니 하는 것. 고작 우리의 시선 문제라는 것을. 달은 언제나 보름달이라는 것을. 뭐라고 불리든 달은 언제나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
이름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
여자, 남자, 노인, 청년, 장애인, 비장애인 이렇게 나누지 말고 그냥 사람이라고 불렀으면 어땠을까?
(...)
이 모든 게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가끔은 언어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해. 그럴 땐 음악을 들어. 언어의 잔혹성이 완전히 배제된, 아무런 가사가 없는 연주음악을 말이야.
92페이지 中
=====
어쩌면 완전한 형태의 무엇을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데로, 규정짓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으로 명명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어떨까?
=====
끊임없는 성장, 그게 가능한 얘길까요(...)
사회든 개인이든, 어떻게 무한 성장을 할 수 있겠어요.
(...)
물론 성장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성장이 목표인 것과 그걸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
성장이 목표가 되면 자기 착취적인 행동에 빠지는 것 같아요.
104페이지 中
=====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우가 많다. 성장해야 해! 발전해야 해!라는 끊임없는 자기 주문을 외우며 끝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언젠가 끝은 있기 마련이다. 쉽게 지치지 않으려면, 즐거이 무언가를 이루려면 성장을 목적으로 두기보다 수단으로 두자.
=====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잖아요. 실패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105페이지 中
=====
때때로 인간이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 1회차를 사는데 어떻게 완전할 수 있을까? 인간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하기에 성장이 아름답고 성취의 즐거움을 알 수 있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 좀 더 실패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
화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1음과 2음 사이의 거리다. 둘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의 소리는 밝다. 메이저 코드다. 간격이 좁아지면 슬퍼진다. 이건 마이너 코드. 아주 좁아지면 짜증 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걸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109페이지 中
=====
화음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아름답고 밝은 소리를 낼 수 있듯이, 사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옆에 있는 사람과의 사이가 편하지 않다면 조금 거리를 둬 보는 건 어떨까?
=====
사랑하기 좋은 때는 혼자 있어도 괜찮을 때다. 혼자서도 평온한 상태일 때 타인과 조화를 누릴 수 있다. 불안하고 심히 외로운 상태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을 그저 이용할 소지가 높다.
110페이지 中
=====
사람들은 외로워서 누군가를 옆에 두려고 한다. 그런데 외로움은 외로움을 불러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 마음이 평온해야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
삶이라는 덧없이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버는 것,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 인연이 닿은 것들과 손을 잡는 것,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 그렇게 힘이 필요한 곳에 힘을 보내고 힘껏 연대하는 것, 인생에 너무 미련 남기지 않고 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6페이지 中
=====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크거나 위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당하게 벌고 적당히 책임지며 가까운 사람과 오순도순 잘 지내는 것. 그리고 생이 다하는 날 미련 없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 제목 '닿고 싶다는 말'처럼 담겨있는 내용 또한 다정하고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초반에는 어딘가 애처롭고 안쓰러움이 들었는데, 서서히 자신만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곰팡곰팡한 우울증마저 경쾌하게 보인다. 격한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나열된 글들은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고 단단해진 마음만큼이나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참 잘 살았다. 잘 견디었다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밑바닥을 경험해 보았기에 더 이상 두려울 것도 견디지 못할 것도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읽는 독자도 그 용기와 에너지를 한껏 받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