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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평점 :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혹독한 불행을 겪고 난 후 어쩌면 가장 쉬웠을지도 모를 '죽음'이라는 선택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삶'에 대한 이야기.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가스라이팅, 우울증, 자살시도, 따돌림 등의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삶 속에서 어떠한 안락함이나 보호 없이 살아왔다. 살고자 애썼고, 가족이기에 돌보고자 노력했다. 어린 나이부터 받은 상처들은 서서히 곪아갔지만 못 본 척 무시하며 견뎌왔다. 그러던 어느 날 친동생의 '자살'소식은 큰 파도처럼 다가왔다.
26살, 누군가에겐 꽃다운 나이라고 불리는 그 시기에 저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죽은 동생과의 사별은 슬픔보다 원통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는데,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때 필사적으로 동생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며 죽은 이유를 살펴보지만 명확한 사유를 얻을 수 없었다.
살 이유보다 죽을 이유가 더 많았고, 무기력과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다양한 병을 앓는 와중에도 함께 살자고 울며 붙잡는 친구들 덕분에 어쩌면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를 내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살리고, 사랑할 용기를 낸 저자의 결심과 발걸음에 응원을 더하고 싶다.
덤덤하게 쓰인 기록과 문장들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고통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 자신을 둘러싼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는 과정들의 기록, 타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책을 읽으며 문득 과거 한 예능에 출연했던 이효리의 "아무거나 돼"라는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무엇이 되려고 억지로 노력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저자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것임을, 무엇이 되기보다 나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음을, 그러므로 함께 살자며 불행 울타리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는 저자의 위로와 다정한 메시지는 그래서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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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직접 끊어 낸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봤으니 세상 모든 일이 부질없었다. 심지어 밥을 먹는 일조차 무의미했다. 친구와 연락하며 사소한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 일도 잠깐일 뿐 다시 무료해졌고 재밌다는 영상을 봐도 짜증만 났다. 기껏 직장에 와 놓고 까르르 웃으며 쓸데없는 얘기만 하는 상사들이 한심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부럽다기보다 신기했다.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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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꼭 쥐고 구기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거야. 그나마 맺혀 있던 물기가 증발해 껍데기만 남아 간신히 나풀대는 사람이 됐다.
2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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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바싹 말라 바스러진 낙엽처럼 미래도 희망도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던 저자는 삶의 의미를 잃고 모든 것이 무기력했다. 싫은 기억이 떠오르는 장소는 그저 미워했는데, 제주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그 감정을 놓아주고 새로운 것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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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죄가 없다는 친구의 말을 곱씹으면 다홍빛으로 저무는 노을과 다양한 구름이 뻗어 나가는 새벽녘의 하늘이 보인다.
(...)
장소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더는 장소를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
귀인을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를 귀인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겼다.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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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죽음은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는데 트라우마가 발현되는 장소는 세 곳이었다. 부고를 듣고 졸아드는 심장을 메모장에 감정을 쏟아붓던 비행기 안, 층고가 낮고 면적이 좁은 원룸, 동생이 떠난 어두운 벽장. 처음에는 충격요법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현실에의 타협과 트라우마를 인정함으로써 서서히 무서워하는 횟수가 줄어갔다. 완벽하게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천천히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저자는 천천히 한 발 한 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저자가 삶을 향해 나아감에 속도를 내게 된 시기는 가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돌보기에도 벅찼던 나를 접어두고, 가족을 돌보며 더 지쳐갔던 저자는 가족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돌보는 법을,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법을, 살아갈 용기를 얻기 시작한다. 때때로 온갖 상념과 무의미한 생각들로 무너져 내릴 때도 있지만, 나를 지키는 방법들을 하나씩 고민해 가면서 생각의 관념을, 삶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얻은 깨달음이었고, 또 어떤 것들은 타인을 통해 얻은 위로이자 삶을 살아가게 하는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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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아프게 하는 가족을 되레 책임감으로 보살피는 사람에게 전한다.
당신이 자책감과 죄책감을 그만 뭉쳤으면 좋겠다. 집에 머물지 않고 집과 가까운 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은 우리 집이 굳건히 버텨 이웃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타인이 점점 무서워지지 않기 시작했다. 당신은 당신의 집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이고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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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못난 사람의 눈치를 보며 본인을 갉아먹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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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1인분의 그릇을 채워야 한다고 여기시나요. 혹시 쓸모 있는 사람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어른의 쓸모는 누가 결정하나요.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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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일이 닥쳤을 때, 그럴 줄 알았다는 속삭임을 바꾸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며 깜짝 놀라는 쪽으로. 후에 침착하게 대처법을 모색하면 된다. 시선을 과거로 돌리지 말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당신과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 우리의 다음 날은 지난날보다 맑으니까.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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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커다란 진심은 무겁다. 우리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 정도의 책임만 가지면 충분하다.
1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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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음악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죄송해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 살아 있잖아요."
멋들어진 위로보다 훨씬 위안이 되는 말. 현재 상황을 잊은 나에게 똑똑하게 짚어 주는 지금 살아 있다는 정확성. 비록 허울뿐인 삶이라 느껴져도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다는 칭찬. 당신은 살고 있군요. 당신은 무얼 하지 않아도 살고 있어요. 당신은 그 사실 하나로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겠지만 저에게는 충분하다고 느껴져요.
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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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정에 빠져, 나의 불행 울타리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이 메시지들은 살아갈 힘을, 살아갈 이유를 말해준다. 진짜 진실은 이것이라고, 진짜 필요한 삶의 가치는 여기에서 찾으라고. 비틀린 슬픔과 불행의 감정선을 바로잡아준다.
외로워도 괜찮아, 죄책감이나 자책감은 그만 내려놔, 못난 타인의 말은 한 귀로 흘려, 무엇이 되려고 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충분해, 불행한 일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마! 단,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침착하게 천천히 대응해 나가면 돼, 너무 커다란 진심은 No! 적당한 책임감이면 충분해!, 때론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면 충분해!
그럼에도 때로 내 아픔만 유독 색다르게 느껴질 때 저자가 속으로 읊조리는 말이 있는데, 참고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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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온 불행에 억지로 서사를 더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않을 것.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운이 없는 사람이라 확신하지 않고 마주친 상황 하나에만 잠시 좌절할 것. 고통뿐인 하루를 지나가는 과정 속 중간중간 마주치는 행복을 인지할 것. 어제는 불행을 느꼈지만 오늘은 행복에 도취하는 모든 모습이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 것. 타인이 겪는 아픔의 깊이가 내 것보다 얕으리라는 믿음을 버릴 것. 불행과 아픔, 슬픔이나 괴로움의 무게를 재지 않고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미룰 수 없이 찾아온 밤에 아파하다가도 다음 날 결국 삶 쪽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존재를 존경할 것.
1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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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는데 큰 역할을 한 또 하나의 극복 방법이 있다. 바로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짓는 억지웃음이 아니라, 웃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웃음, 진심을 담아 웃는 것! 웃음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만으로 불행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흔히 하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처럼, 웃음의 힘이 가져온 치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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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웃음을 마음껏 표출한 뒤부터 놀랍게도 자기 연민에 갇히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원할 때 웃을 수 있다는 주체성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 몰랐다. 진심을 담아 웃을 때면 지나간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직장 내 따돌림과 동생을 떠나보낸 언니라는 입장이 사라졌다. 그저 웃는 현재의 나만이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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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웃겨서 웃은 것뿐이다. 웃음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만으로 불행 울타리에서 한 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113~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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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잃고 자살 사별자로 무의미 시간을 보내던 저자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찾았던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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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갖 자료를 읽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 탐구했다. 그건 왜 죽으면 안 되냐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과 같았다.
(...)
그 답을 조심스레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
그러니 넌 존재만으로 아름다워.
네가 지닌 삶은 삶 자체로 완전해.
사랑하자고.
그 말을 해줬어야 했다.
237~2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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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내려오고 한 달 만에 죽은 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지막 이야기이자 스스로에게 전하는 이야기이며,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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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와 느낌표를 하나하나 놓아두고, 이제 저는 말간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며 바깥으로 향합니다.
밖에서 만나요, 우리.
오래도록.
246~2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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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론적, 철학적인 질문과 접근이 아닌 현실에 발 디디고 사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다가와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불행이 이토록 오랫동안 여러 겹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덤덤하게 쓰인 문장들은 한 발짝 떨어져 감정을 배제하고 관찰자로써 지켜보게 만든다.
삶=불행이라는 말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누구나 자신이 겪는 고통은 암흑이고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과 무기력을 동반한다. 해소할 곳도, 살아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여 끝내 불행의 울타리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자기 연민과 우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자는 진심을 다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의 울타리 속에서 나와, 밝은 내일로 함께 향하자고. 자신도 그러했으니 당신 또한 할 수 있다고 용기와 희망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