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
정유리 지음 / 부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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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나 여러 매체를 통해 들어보긴 했지만, 사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거나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 잘 먹어서, 식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더 많은 애를 쓰고 시간과 노력을 쓰기 때문이다. '잘 먹는다는 것',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 별건가라고 생각하며 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한 노력과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존에 필수적인 섭식. 이것은 정신질환이며 생각보다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질환의 시작과 증상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마른 몸에 대한 찬양과 외적인 것에 중심을 두고 사람을 판단하는 인식들이 공고히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간간이 발생하곤 했는데, 이 책에는 그러한 사회적 인식들이 섭식장애를 앓는 저자와 같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실려있다. 섭식, 잘 먹는 것이 왜 중요하고 섭식장애란 무엇이며, 이것이 살아가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 침투해 망가뜨리는지를 가감 없이 서술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마음이 더 쓰였다. 결코 짧지 않은 13년의 시간 속 얼마나 많은 상처와 좌절이 담겨있을까? 가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 병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보낸 많은 시간, 오르내리는 몸무게만큼이나 좌절과 도전을 번복하며 보내온 시간들,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음에 더 좌절하고 우울증에 빠지던 시간들을 거쳐 마침내 이겨내기로 마음먹고 하나씩 삶을 바꾸어 나가는 그녀의 용기와 도전에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

 

스스로 느끼는 낮은 자존감과 안정감을 가질 수 없는 환경, 먹는 것으로 자해를 하고 이를 통해 또다시 느끼는 죄책감과 자괴감의 반복 속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한 단락 한 단락 넘겨보며 섭식장애가 과연 한 개인의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특정 부위의 뼈를 거론하며 마른 몸을 칭송하고 우스갯소리처럼 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내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혼자 조용히 앓다가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러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그림자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불행한 가정사 속에서 싹튼 트라우마, 사랑과 관심에 대한 오래된 결핍, 몸에 대한 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더해지며 병들어가고 마침내 그 쉬운 밥 먹는 일조차도 못하는 상태. 그것을 우리는 섭식장애 혹은 거식증 등의 단어로 일축하며 쉽게 내뱉는다.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가볍게 넘겼던 섭식장애의 일면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있는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먹는 밥 한 끼조차 힘겹게 넘기는 사람들 안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있는지 저자의 꼼꼼한 관찰과 서술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가짐으로써 이겨내겠다 굳게 다짐하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글을 통해 고해성사에 가까운 고백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고, 글쓰기의 힘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것, 활자의 힘을 빌려 고백을 목격당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섭식장애라는 것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저자는 어떤 일을 겪었고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목격해 보자. 그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다 보면 우리가 찾고 있는 진실과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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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란 음식을 섭취하는 것에 현저한 장애를 가진 모든 정신 질환을 일컫는다.

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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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섭식장애를 정신질환으로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아래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혼자 있을 때 남들 모르게 하는 행동이기에 굳이 밝히지 않으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둘째. 자괴감이 들어 힘들 뿐이지 그 행동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회피하고 싶었고,
셋째. 섭식장애라는 병명 자체가 수치스러워 인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마른 몸을 강박적으로 선호하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자기 합리화를 거치며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질병을 병으로 보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숨기는 것에서 병은 더 깊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반복될수록 신체적 건강과 정신사회적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기본적인 먹는 것에 대한 욕구를 몸이 거부함으로써 일어나는 일들은 다른 여타 질병보다도 괴롭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정확한 진단명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었는데 핵심 증상은 다음과 같다.

 

*음식물 섭취를 지속적으로 제한하며 현저한 저체중 유발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한 지속적인 행동(이는 저체중일 때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신체와 체중에 대한 왜곡

 

섭식장애에도 다양한 증상과 병명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겪는 증상들 중에는 저체중을 유발하거나 우울증, 불안감,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왜곡 등을 꼽을 수 있다. 

 

13년 동안 겪은 거침없는 기록들에는 객관적인 시각에서의 장단점도 서술되어 있었는데 잃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으면 예민한 성격이 된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을 달고 살고,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함을 느낀다.
■추위를 심하게 탄다.
■어떤 자세를 해도 뼈에 눌려 고통스러워 앉거나 눕는 것도 힘들다.
■머리카락이 얇아지며 탈모가 오고, 다리에 힘이 풀려 매일 넘어지기 일쑤다.
■사회적 기능 역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다.
■심리적으로도 내 외모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며 늘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몸도 마음도 깊이 깊이 병들어 간다. 병이 깊을수록 수렁은 더 깊어지고, 빠져나오는 시간도 그만큼 더 길어진다.

 

거식증 환자로서 서러웠던 순간과 상처받았던 말들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무심코 했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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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면 내 다이어트에 도움이 돼"
"너랑 다니니 나까지 먹는 양이 줄어서 참 좋다"
"내 살이 다 너한테 가면 좋겠다"

노력 없이 내 몸을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절제해온 음식들을 다 먹어서 찌운 그들의 살이 거식증의 괴로움을 감내하며 사는 내게 덜컥 붙었으면 좋겠다는 무책임한 말에도 분노를 느낀다.

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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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의 경험 및 주변 거식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거식증의 심리적 원인에 대해 기록한 부분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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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양육 환경이나 외모로 인한 따돌림의 기억, 엄마와의 뿌리 깊은 갈등, 완벽주의자 부모의 과도한 통제, 성에 관련된 트라우마, 성장과 성숙에 대한 거부 등 다양하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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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역시도 가정에서 비롯한 트라우마에서 시작하여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심한 자기 학대를 감행하게 된다. 거식증의 가장 큰 부분은 심리적인 것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거식과 폭식, 먹토를 반복하면서도 저자의 살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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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왔다고, 여자가 고생했다고 무시당하기 싫었다. 공부도 일도 잘하는 예쁘고 싹싹한 사람이고 싶었다. 무엇 하나 모자란 것 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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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거식증 치료를 결심하고 나서 내게 용기를 주었던 말은, '먹어. 제발 먹어줘'가 아니라 '먹어도 돼, 먹어야 해'였다. 먹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안심, 먹는 게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깨달음, 비합리적 사고를 깨부수는 직언들이 나를 살려냈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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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로 마음먹은 저자는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기 덕분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데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거식 행동의 장단점을 표로 작성(113페이지 中)>


 

<식단 일기 쓰기(117페이지 中)>


 

 

저자는 무엇보다 변화 유지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문제 행동을 없애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른 행동을 더 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눈에 띄는 변화를 이루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세 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첫째. 수도 없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동기!
둘째. 무조건 먹기
셋째. 주위 사람들의 격려

 

어떤 것이든 스스로의 의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실제로 입원해 있는 동안 별 성과가 없던 것이 오히려 퇴원 후 동기를 가지면서 제대로 된 치료가 시작되었고, 먹는 양과 횟수를 늘려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죄책감 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고민했는데, 자가 치료를 위해 연구해서 찾은 안심하고 먹는 메뉴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누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다양한 자해행위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양한 치료방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지를 가지게 했다. 그리고 주변의 도움도 적극 구해 최대한 먹으려고 노력했다. 오랜 시간 앓아온 병이기에 벗어나는데 쉽지 않았고 현재진행형 중이지만, 오래 겪은 만큼 자신의 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해 위급상황에 대처하려고 나름의 매뉴얼도 만들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용기 있는 준비를 위해 도움이 되는것들에 힘을 쏟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무너졌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덮쳤을 때 똑같이 당하고만 있고 싶지 않아 만든 비상시 대처요령으로 삐뚤어진 내 마음도 바로잡아본다.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저자는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면서 방치하고 버려뒀던 자신의 몸과 상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상처에도 아프다 느끼지 못하고,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에 위할 줄 몰랐던 자신을 다시금 돌보고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상처를 마주하며 용기를 내어 변화를 위한 도전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주변을 채우는 사람이 되고자 굳게 마음을 먹는다. 쉽지 않은 도전이고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녀의 용기와 도전에 멀리서나마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뚱뚱함과 마름의 불분명한 외모 기준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나'로 봐줄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러나진 않지만 말 못 하는 상처는 누구나 한두 개쯤 가지고 있다. 그게 섭식장애라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끼거나 숨겨야 할 이유도 없고 공감 가는 아픔이라 하여 동정받을 이유도 없다. 그저 질병은 병으로 받아들여주면 어떨까?

 

건강한 사회는 구성원 한두 명 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의 인식이 건강해야 하고, 사회의 가장 소규모 집단인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쉬쉬해온 일들이 조금씩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다. 불온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트라우마를 지니거나 남모를 상처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높다. 이것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여 방치하기보다 국가의 소중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여 시스템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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