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평점 :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우리의 삶은 시급히 마무리할 성과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가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 궁금했던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표본 같은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물음이 늘 마음속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극소수이지만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은영 박사님처럼 유명한 사람 말고, 평범하지만 일상 속 교육현장에서 과연 이상처럼 말하는 것들을 진짜 실천하면서 행동하는 선생님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라는 부분은 은근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더불어 한편으론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고 혼자서 감당하기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대다수의 사람과 다른 양상을 띠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역차별을 당하는지 전반적인 사회 풍조를 통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이들은 실제로 보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현실 속에서 각자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한꺼번에 통제하면서 이상적인 대처 방법으로 모든 순간을 제어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이는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문제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선생님, 선생님과 학부모, 학교와 선생님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이기에 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용감하게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었다.
*입시관리를 위한 통제 중심학교 체제
*구조적으로 병든 선별 중심 교육 체제
*지옥 같은 교육현장
*스스로를 도구화하려는 관성
이러한 교육현장의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신념으로 아이들의 공감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는 '되는구나!'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이야기들이었다.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과 '어쩔 수 없다'라는 명목으로 넘기는 무수한 일들을 깊고 넓게 보아주고 들어주며 마주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바른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작은 몸짓, 말 한마디는 방향을 잃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신호등을 제시해 주었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목도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학창 시절과 수많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는데, 나에게 영향을 준 선생님과 교육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포인트에 자극을 받아 더 성장할 수 있었는지, 관계를 만들고 이어나가는 방식의 사회성을 어떤 식으로 배워나갔었는지 그리고 반대의 경우인 상처받거나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27년 차 음악교사이자 '따뜻한 시선이 행동을 변화시킨다'라고 믿는 저자 김선희 선생님의 일화는 그래서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왔다. 문장 곳곳에서는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에 대한 그녀의 배려가 돋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참 외롭고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아이들의 능력을 선별하여 규격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교육 현실에 종종 극도의 이질감을 느끼며 태양계를 이탈한 우주의 어느 지점에 홀로 선 듯 외롭게 얼어붙기도 했습니다.
5페이지 中
=====
책에 살짝 언급되어 있지만, 1대 다수로 맞서야 하는 상황들이 어디 그뿐이었을까? 놓아버리면 편해지는 것을 혼자 외줄 타듯 아이들을 생각하며 오롯이 버틴 시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선생님이 그러했듯 저자가 걷는 길도 참 외롭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먹먹한 감정도 들었다.
=====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확고한 신념을 지키며 교육의 본질을 지키려 했던 그 길이 때로 얼마나 외롭고 힘겨웠을까.
226페이지 中
=====
이미 청소년기를 지나 한참 전에 성인이 된 나도 잠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저자의 눈을 마주하고, 다정한 위로와 공감을 들어본다. 여러 상황들 중에는 직설적이고 때론 당황스러운 상황들도 보이는데 저자는 침착하고 온화하게 대응한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 잘못했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어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
"(...) 내겐 여전히 후진 관성이 있어. 그때마다 너희들 저마다가 지닌 놀라운 존재의 품격을 함께 끌어내리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해. 이렇게 잠시 나를 향한 예리한 시선을 거두면 다시 촌스러워지는 엄마를 견뎌내느라 십수 년간 힘든 순간이 얼마나 많았니? 생각날 때마다 오늘처럼 다 말해줄 수 있겠니? 일일이 사과하고 싶구나."
큰 아이가 내 눈을 깊이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제는 괜찮아."
"괜찮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지난 잘못을 모두 알 수 있다면 더 세심하고 다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
"내가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는 엄마가 완벽해졌다는 뜻이 아니야. 책 읽고, 강의 듣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걸 봐왔기 때문이야. 엄마가 앞으로도 깨달은 바를 잘 실천해갈 거라는 믿음이 들어."
7페이지 中
=====
타인에게는 예의와 정도를 잘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가족에게는 잘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데, 위의 일화를 통해 저자는 안팎으로 자신의 신념을 잘 지켜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심을 담아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신의 실수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상대방이 입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의 진심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
끝없이 비교우위를 요구하는 경쟁 구도에서 어른들은 어떻게 얘기하고 있는가? 가정은 '지지 말고 이기라'하고, 학교와 사회는 '협력하여 상생하라' 한다. 많은 아이가 마음을 제대로 깊이 들여다봐주는 어른 한 명 없이 이 모순된 세상에서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막막한 불안과 끝 모를 죄책감에 사로잡혀 주눅 들어가고 있다.
20페이지 中
=====
현실적인 부분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에 대한 언급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지금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러한 불안과 죄책감을 끌어안고 사는 아이들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봐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애꿎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10대'니 '중2병'이니 하는 무책임하고 일방적인 꼬리표를 달아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길 바란다. 아이들이 주변 사람과 협력하면서 잘 살아가도록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바로 그 어른이 아이 마음에 눈을 맞추고 어깨를 내밀어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이 먼저이다.
21페이지 中
=====
더불어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말이나 단어들, 무심코 흘리는 무책임한 꼬리표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런 말과 행동으로 어른들이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작은 변화에도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꼬리표를 달기보다 눈 맞춤이 먼저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이 시간 이후부터는 길동무가 되어보자.
저자의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공감하기 방식으로 나타난 변화들이 무수히 많은데, 아래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 일화를 통해 인생을 또 하나 배워본다.
=====
<예시 1>
위기를 감지한 내가 아이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묻고 들은 뒤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하자 아이는 일순간에 안정감을 되찾은 것이다. 공감은 그 어떤 충고나 조언과 맞바꿀 수 없는 정확한 처방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32페이지 中
=====
=====
<예시 2>
신영이의 사례로 본 예시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상황은 다음과 같다.
평소 수업 도중 맥락을 끊듯 갑작스레 질문을 하는 신영이를 좋지 않게 보던 친구들이었는데, 그날 수업에선 어딘가 위축된 상황에서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때 가장 먼저 성큼 첫발을 뗀 신영이의 질문은 과도한 긴장감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이 일을 통해 아이들의 눈빛과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이후 아이들과 신영이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가고 갈등 요인이 공감으로 바뀌어 가면서 어떤 반보다 역동적인 공동체 성장 과정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창피를 주지 않고, 각자를 존중해 주며 토론과 대화를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과 변화들은 놀라움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필요할 때는 비공개 방식의 대화를 통한 지지와 마음을 알아주고, 선생님이 많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타인을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방식은 비단 학교에서만 필요한 소통 방식은 아닌듯하다. 직장과 사회 전반에 이러한 소통 방식을 적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
호기심은 배움의 원동력이다. 아이의 질문을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수업이나 어른의 삶이 빠듯하다면, 하던 일의 양을 대폭 줄여서라도 되도록 질문을 반기며 응답하기 바란다.
231페이지 中
=====
책에는 아이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얻은 변화와 그 변화를 가져온 힘의 원천을 바탕으로 자신이 바라던 신념을 꿋꿋이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신뢰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소외된 아이에서 한 선생님을 통해 소중한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주변인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친구들과 연결되기까지의 소중한 경험은 아마 그 어떤 보석보다 가치 있는 인생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의 내용의 기반이 되고, 또 아무리 힘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중복으로 거론되는 단어들로 키포인트를 몇 가지 꼽을 수 있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데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은 이것들이 아닐까 싶다.
=====
자기 존엄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
한 아이 한 아이 스스로 자기 존엄을 철통같이 지켜내도록 길러내는 것만이 살 만한 세상, 안전한 세상으로 성큼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120페이지 中
=====
=====
존중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험에서 시작해 점차 주변으로 확대되어 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건강한 이타심과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길러주고 싶다면 자기감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44페이지 中
=====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가지는 것! 그리고 차이에 대해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 이것이 가장 근본이자 기본이 아닐까?
=====
아이들은 이유 없는 분노를 품지도, 이유 없는 반항을 하지도 않는다. 반항하는 아이가 도리어 더 정직하다.
153페이지 中
=====
때론 어른도 아이에게 사과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솔직하게 마음을 다한 사과는 상대방에게 그 진심이 전해지기 마련이다. 설사 용서받지 못한다고 해도 사과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반드시 사과하자. 저자는 이러한 순간에도 피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부딪혔다.
=====
서로의 욕구나 의견이 상충하는 경우 힘겨루기를 통해 한쪽이 좌절하거나 양쪽 모두 소진하기도 하죠. 지금처럼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묻고 들으며 조화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그야말로 삶을 위한 공부예요.
236페이지 中
=====
=====
누군가를 이겨서 얻은 용기는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용기만이 평화롭게 지속 가능한 진짜 용기라 할 수 있다.
241페이지 中
=====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라는 제목보다 어쩐지, '어른도 배워야 할 청소년의 세계'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책이었다. 솔직하게 다가가면 솔직하게 다가오는 아이들과 달리, 어딘가 다른 마음을 품고 의심하며 사는 어른들의 복잡한 세계는 과연 무엇을 위한 삶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공감의 힘, 존중의 힘, 경청의 힘, 올바른 교육관의 힘, 솔직함의 힘, 예쁜 말씨의 힘 등 유치원에서부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내내 듣고 배우는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힘'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판치는 세상에서 저자가 행한 일들은 어쩌면 모두가 내심 바라고 원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은 아니었을까?그래서 잠깐 꿈을 꿔본다. 저자와 같은 선생님들로 가득한 학교, 그 속에서 보고 배우며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왔을 때 모습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