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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ㅣ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평점 :
'녹색 갈증'은 제목만큼이나 살짝 어렵다 느껴지는 책이었다. 생각보다 긴 프롤로그와 3개의 소제목, 저자의 글과 해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전체 페이지는 일반 단행본에 비해 쪽수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오래 고민하고 진도를 뺄 수 없었던 건 모호한 경계선을 오고 가며 심리적 묘사들이 공간들과 맞물려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읽고 나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현실과 모호한 세계 속 '녹색 갈증'이 지칭하는 것은 무엇인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윤조'는 무엇인지, '산'이 의미하는 것과 관계 속에서 오는 허망함과 메마름에 대해 하나하나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지막 해설을 통해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부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꼭 모든 사람들에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등장한 인물이나 배경이 그 자체의 의미도 지니겠지만, 비유로써 또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기에 누군가에게는 삭제가 되는 부분도, 덧붙여지는 의미가 되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허망함' 혹은 '공허함'이 느껴진다. 빛도 들지 않는 모텔 방이라던가, 어딘가 소통이 되지 않는 가족들, 같은 이유로 사랑하는 이유도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헤어지는 이유가 되는 관계, 쉴 곳을 끊임없이 찾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어딘가 불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배경은 구체적이진 않지만 때를 지칭하는 문장을 통해 코로나 이후 언제쯤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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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1월 26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국가적 추모 차원에서의 기획 방송이 온 채널을 잠식했다. 코로나19가 도래한 이후 최대 규모의 사망자를 기록한 날이었다.
(...)
매년 1월 26일은 모두의 기일로 여겨졌다. 대기오염 문제가 제기되어 마스크와 낙엽을 태우는 추모 행위가 제지되었지만 그날은 어디서나 쉽게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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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내용을 살펴보면 '시차 없이 당도하는 불안에 대비하는, 조용히 무너져가는 세계에 대한 상상'이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인공의 심리와 맥락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나'는 어딘가 마음 둘 곳을 계속 찾아 헤맨다. 글을 쓰면서, 가족들에게서, 연인에게서, 혹은 산에서 찾으려 하지만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만 더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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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어쩌면 좋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해가 질 때까지 숲속을 헤매다가 외딴집 하나를 발견해서 그곳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이 마음은 결국 헤매는데 중점이 있는 게 아니라 쉴 곳을 만나고 싶은 것에 가까운가. 그렇다면 참 시시하다. 너는 참 시시하구나.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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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피의 욕망을 안고 글을 쓰면서 '나'는 '윤조'라는 인물을 탄생시키고 한때는 그 속에서 살아있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오로지 이 공간 안에 갇혀 아무것도 뒤돌아보지도, 살펴보지도 않아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은 물론 성적은 바닥을 치는 사태까지 벌어지곤 한다. 그 세계에 집중할수록 소설적 현실은 계속 확장되지만, 진짜 현실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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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내가 소설을 쓰기 때문에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밤에는 내가 소설을 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계절에는 내가 소설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일부러 우울해지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꿈에서는 내가 소설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걸 다 놓아버리지 않았냐는 말을 들었다.
모든 건 무얼 말하는 걸까. 이 말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한 말보다 내가 나에게 한 말이 더 많았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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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다르지 않은 엄마와 언니를 피해 따로 살고 있다가 안정감을 갖고 싶어 불현듯 다시 찾은 집은 여전히 갈증을 유발하는 상태 그대로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화장실만 찾게 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고부터 내내 '나'를 지배하는 감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 속에만 존재하던 '윤조'가 현실의 세계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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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답답할 정도로 결정이 느리면서, 나약해진 상태에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행동력이 강하고 의외로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역시 위험하고 지긋지긋하다는 면에서 우리 세 모녀는 닮았다. 자기 기분 속에 침잠해버리고, 괴로움을 해소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 키우고 키워 괴상한 방식으로 표출해버린다는 점이 그랬다.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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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가 '내'가 하지 못했던 '좋은 관계'를 자신의 가족과 스스럼없이 이어나가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허망함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윤조'가 아닌 '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해설에서는 녹색 갈증이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말한다. 비대면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재 우리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어딘가 닮아있어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나타내기엔 더없이 적합한 배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가족, 연인이지만 연인 같지 않은 '명'과의 관계, 스산하고 삭막한 분위기의 풍경은 개인의 결핍을 만들어내고 이는 욕망으로 발현된다.
이 소설에서 녹색 갈증을 느낀 이들이 찾아가는 장소로 '산'이 등장하는데, 표면적인 '녹색'의 갈증을 해소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개인의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엄마는 산에서 사랑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며, 203호의 할머니는 매번 산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산에 간다고 이야기한다. 진짜 산에 가는 것인지 산에 가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에게 산은 어렸을 때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한 장소로 찾는 곳이었고, 이후 헤어진 연인과 재회를 바라며 향한 곳이며, 엄마&언니&윤조와도 함께 올랐던 곳이다.
산은 실제 하는 산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심상화 과정을 통해 가만히 눈을 감고 눈 안쪽으로 그늘을 만들어보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내면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윤조를 포함한 가족들과 오른 산에서의 모습은 내면의 다양한 모습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그려진다.
윤조가 나오는 소설을 분명히 끝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불쑥 윤조가 다시 현실 세계에 나타난 것은 어쩌면 '나'의 불안과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싶은 언니&엄마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윤조를 통해, 모르는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윤조를 통해 말이다.
윤조를 없애는 일은 지금의 세계에 가까워 지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실'에 등장한 윤조는 그런 나의 내면이 반영된 또 다른 가상세계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에서는 현실로 그리고 있지만 자신의 의지처럼 잘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끝나지 않은 윤조의 삶을 다시 그리며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것을 상징한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이러한 상상은 보석함을 두고도 발휘되는데, 어떤 내용물이 안에 들어있을지 수십 가지 상상을 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윤조'를 소설 속에 혼자 두고 나왔던 것처럼, 불현듯 현실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욕망과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혹은 채우기 위해 그려나가는 상상 속 세계. '녹색 갈증'은 그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