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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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나이 60대 초반, 계급에 있어 거의 최하층이라고 말하는 영국 노동자 계급으로써 살아왔던 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긍지,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전작들에서도 밑바닥 사회/노동 계급에 대한 책을 여럿 썼다고 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아저씨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어 집필된 책인듯하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표지를 먼저 살펴보면, 투쟁을 떠올리게 하는 빨간색과 책등에 자리한 영국 국기는 '노동자 계급'을 표현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류는 베이비부머 세대(=해머타운의 아저씨 세대)의 이야기이며 이에 저자 역시 그들의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저자 본인은 영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일본 사람으로, 남편이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람이며, 남편의 친구들 역시 같은 노동자 계급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람들이다.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며 살아왔기에 저자 역시 그 세대의 사람들과 친밀성과 밀집성을 지닌다. 결혼한 와이프,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와도 자주 만나 취미생활과 사담을 나누는 등의 일상을 보내기에 서로가 서로의 내밀한 사정도 잘 알고 있어서인지 저자의 그들에 대한 애정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영국'하면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신사'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생각해 보면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었던 노동자들의 수고를 빠뜨릴 순 없다. 20세기와 21세기를 지나면서는 영국의 EU 탈퇴가 이슈가 되면서 '브렉시트'가 이슈화되기도 했었는데, 이후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조금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 책에는 영국의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이러한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와 더불어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살짝 실려있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 밖에도 사회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와 난민 등에 대한 생각도 알 수 있어 영국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사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왜 그들은 갑작스레 브렉시트를 외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난 이후 영국은 잘 살게 되었는지, 은근히 존재하는 계급과 세대별 차이와 갈등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와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인 레이, 레이첼, 스티브, 제프, 테리, 데이비드, 사이먼, 대니 등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자.

 

이야기는 마치 영국의 여느 일상을 그리고 있는 소설과 같이 평범한 이야기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 형태다. 그 속에는 친분이 있는 남편의 친구들, 해머 타운의 아저씨 세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그들은 과거 노동 계급의 사람들이며 동시간에 태어나 같은 세대를 살아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느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 사랑 이야기, 세대 간에 느끼는 차이와 그들만이 가지는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 불가능한 긍지들이 주로 다뤄지는데 읽다 보면 영국 속 그들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불쑥 들 때도 있었다.

 

1장은 주로 저자와 노동자 계급인 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장은 각 계급과 세대에 대한 특성과 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1장에 스토리라인이 실려있다면, 2장은 해석과 설명이 덧붙여진 형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2장에서 다루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도 흔히 알고 있는 Z세대, Y 세대, 밀레니엄 세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영국과 우리나라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큰 격차, 벌어진 가치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한 번쯤 살펴보면 좋을듯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이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생각과 긍지들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그들의 이념은 어떠한지 몇몇 문장들을 통해 그들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먼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나타내는 문장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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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우리 남편 세대는 영국이 아직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사회라고 불리던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해머 타운의 녀석들'은 반체제적인 불량소년들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국가라는 안전망이 있었다. 일자리를 잃으면 쉽게 실업보험이 나왔고,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NHS가 있으니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학비도 무료였으니 가려고만 하면 대학에도 갈 수 있었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했던 시절이니 지금과 비교해 노동자들의 태도도 드셌다.
(...)
"잉글랜드는 나를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
(...)
지금의 중. 노년층은 그런 사고가 통용되던 시대에 성인이 되었다.

78~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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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는 영국의 평등한 의료제도를 말한다. 영국은 소득, 인종, 사회 계층 등과 관계없이 누구든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평등한 의료제도를 70년 동안이나 유지해온 세련된 나라라고 생각했고 이에 자부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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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젊은이들은 조금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았다.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 경쟁, 경쟁 소리만 들리고, 경쟁에서 지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패자의 아름다움'이라는 풍류 같은 것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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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같은 낭만적인 것은 위쪽 계급 놈들이나 하는 거야"
레이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그야 확실히 그렇다. 그런 추상적인 것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으니까. 노동자는 일단 하부 구조다. 먹고살아야 한다.

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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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긍지를 나타내는 문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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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조심 '중화' 문신 이야기를 하자, 레이는 나의 문신은 나의 역사를 새긴 것이라며 재수 없게 말했다. 레이저로 제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그럼. 노동 계급은 간단하게 이것저것 지우거나 없었던 일로 하지 않지."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그들이 세대. 데어 제너레이션이리라, 베이비.

1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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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 타운의 아저씨 세대는 반대처 기풍이 강하다. 젊었을 때 파업과 시위로 맞섰던 무시무시하게 강력했던 적은 지금도 영국과 EU의 신자유주의 정책 가운데 살아있는 모양이다. 메이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대처에 빙의해 있다고 한다.

1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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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60대 초반이 된 현재의 그들의 모습을 서술한 장면도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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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초반의 아저씨들은 요즘 나이 이야기에 예민하다. 아니, 나이 이야기를 많이 하면 극단적으로 침울해지기도 한다. '유리 멘탈' 60대는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것이다.

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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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대가 바라본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인식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레이첼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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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일변도의 영국밖에는 모르는 세대다. 그러니 레이첼에게는 레이가 패기 없는 무능력한 아저씨로 보일 뿐이다.

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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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의 사례와도 비교해서 서술해 두었는데 다음의 문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아버지 세대와 현 세대 간의 차이점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서 비롯된 현격한 가치관과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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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키 유타카는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유리창을 깨고 다녀도 자기가 원한다면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경제 성장 시대의 젊은이였다. 반면에 취직 빙하기를 보며 자라고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은 없다. 세상은 자본주의에서 연착륙할 자리를 찾고 있다" 같은 축소 사회에 대한 언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유리창을 깨고 다니지 않는다.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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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인식 외에도 궁금하고 흥미로웠던 브렉시트에 대한 내용을 살짝 살펴보면 EU 탈퇴에 찬성했던 이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탈퇴에 찬성했던 이유는 EU를 탈퇴하면 영국이 EU에 지불하는 거액의 분담금을 NHS에 쓸 수 있다는 달콤한 유언비어를 듣고 찬성의 한 표를 행사했는데 결과적으로 EU 탈퇴 후 영국은 경제적으로 더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고 한다.

 

정부는 가장 먼저 취약계층 지원 사업에 지원을 줄여나갔다고 말한다. 한때 자부심을 가질 만큼 모든 사람이 무료로 제공받았던 NHS(평등한 의료제도), 탁아소, 아동 관련 사업 등의 긴축재정을 통해 취약계층이 더 살기 어려워진 상황에 놓여버린 것이다. 이로써 아파도 병원에 가서 의사 한번 만나는 게 힘들고 번거로워졌으며 웬만한 병명이나 통증으로는 병원을 찾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로써 젊은 세대들은 자유롭게 유럽을 오고 갈 수 있는 길을 베이비부머 세대가 끊어버림으로써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 생각했다고 이야기하며, 이 세대들을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다른 세대를 좋지 않게 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각 세대가 다른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서술한 부분의 한 예시를 2장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하기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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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를 의지가 약하고, 금방 부서져버리는 눈송이처럼 취약하다고 본다. 또 참을성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기보다는 SNS에 셀카를 찍어 올리는 일에만 열중하며 자기가 얼마나 유명해질지, 얼마나 높은 지우에 오를지에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욕심 많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를 완전히 부숴버리려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라 여긴다. 자기 집이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동산을 굴려 돈을 벌기 때문에 주택 가격과 임대료는 높아지기만 한다.

238~2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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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세대 요점정리>

 

복지사회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 불량소년들마저도 사회가 책임지고 개인의 삶을 책임져주는 시대를 살아왔다. 아프거나 일자리를 일어도 국가가 책임져주었고, 공부하고자 하면 학비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노동자 계급은 노동조합의 힘이 강했기에 떵떵거리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부동산을 굴려 재산을 증식시키며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때 유언비어에 속아 더 나은 삶을 위해 EU 탈퇴에 반대 표를 던졌으나 실제 경제 상황은 더 나빠졌고, 60대 초반이 된 지금은 나이 이야기에 예민하고 때론 극단적으로 침울해지기도 하는 등 유리 멘탈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자신이 속한 그룹 안의 가까운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친밀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인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을 바라보는 애정 깊은 시선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을 살펴보면 다음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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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룸 안에서 본 사진 속의 그들, 스팬다우 발레 같은 양복을 차려입은 젊고 맵시 있던 모습을 떠올리면 구겨진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칠칠치 못하게 엉덩이를 반쯤 내놓고 춤추는 아저씨들과는 간극이 너무 커서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전에 '인간이란 참 엄청나네' 싶었다. 사람은 이렇게 변하는구나. 아니, 이렇게 변하면서 몇 십 년, 어떤 경우에는 100년이나 계속해서 살아가는 생물이구나.

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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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맞고, 멍청한 일을 하고, 호되게 당하고, 엉덩이를 내놓으면서 아저씨들의 인생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당신들을 축복해야지, 베이비.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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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이민자로 영국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기에는 녹록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유럽은 특히 난민들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나라가 많아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가장 먼저 취약층의 복지제도에 긴축재정을 취했듯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이민자나 난민들에게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은 상상이었을 것이다. 책에도 잠깐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 역시 그러한 시선에서 비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도 오랜 시간 남편과 남편의 지인들, 베이비부머 세대 사이에서 오랜 친분을 나누며 그들이 가진 긍지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보듬으려 노력했기에 이 책을 집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통해 살짝 엿본 이야기지만, 영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야기는 별반 영국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사례로 언급했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도 세대별로 가지는 가치관과 이해도의 척도, 인식, 문화는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도 자주 언급되지만 긴축정책을 야기하는 경제적 어려움은 곧 이러한 세대갈등의 더 많은 불씨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현시대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 있음"의 상황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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