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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살아야겠어
윤명주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6월
평점 :
죽음으로 향해 가는 여정 어디쯤에서는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되는 노화. 그리고 질병.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미 손쓸 수 없게 급격히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일찍이 비슷한 일을 겪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공감과 이해가 가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덤덤하게 풀어낸 현실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타인에게 말로써 풀어내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고스란히 잘 담겨있어 한편으로는 복잡한 것들이 착착 정리되는 느낌도 들었다.
저자가 평소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나 유가족을 인터뷰하며 기사를 써왔기에 익숙한 일일 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실상 직접 겪어본 환자 본인의 상황은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연한 기회에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되면서 별안간 암 진단을 받은 저자. 객관적 입장에서 암 환자들을 관찰하고 이를 대변하던 그녀가 당사자가 되면서 겪는 일련의 일들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저자의 암 발견부터 수술과 회복까지의 투병기와 죽음, 삶의 의미 등이 실려있다.
유방암 환자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여성의 몸, 우리의 몸, 암 환자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개인의 경험을 기준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객관적 이면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속내를 통해 투병에 대한 실질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죽음으로 향해가고 있는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무심했던 나의 몸에 대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방향에 대해, 삶이라는 것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는 자기만의 죽음 수용 단계를 구분 지어 이를 목차로 구성해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첫 번째는 알아채기, 두 번째는 해체하기, 세 번째는 받아들이기, 네 번째는 더불어 살기다. 이러한 목차 구분을 통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보다 개별적인 고통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자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수용단계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다.)
문득 살면서 '이걸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번씩 있다. 저자의 이 이야기는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즉흥적으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문득 탈의실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를 떨치고자 부유방 제거술을 할 결심을 하게 되고, 검사를 통해 유방암을 발견하게 된다. 검사 결과는 상피내암이지만 전절제가 불가피하고 그에 따라 재건술까지 해야 한다는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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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음이란 이토록 외로운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걸 받아들여야 할 사람도 나고, 함께 떨쳐내든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 할 사람도 결국 나뿐이라는 걸. 이렇게 중요한 것을, 살아가는 매 순간 선택이란 걸 할 때는 왜 잊었는지. 후회는 불가피했다.
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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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처음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로움'. 울고불고 하는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이라 혹자는 덤덤하다고 느낄지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깊은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리고 새삼 현실적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암의 발견과 수술, 그리고 회복 단계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조금은 시니컬하고 덤덤하게 담겨있는데,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던 대목은 그녀의 '변화'에 대해 기록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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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생이란 불확실함, 불완전함 투성이인 무엇이므로. 확실한 건 암 진단을 받은 전과 후의 나는 어딘가 달라졌단 사실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신체적인 변화는 예상했던 바다. (...) 정서적인 변화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다.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해지고 전에는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주변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스스로의 변화에 기뻐할 줄 알게 되었다.
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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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신체적인 변화는 예상 범주 안에 있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서적인 변화. 이 부분이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실상 큰일을 겪은 사람들이 삶의 터닝 포인트처럼 겪는 '변화'. 그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 역시도 단순히 불편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허망함보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에 대해 보다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자신의 몸에 대해 보다 자세히 생각하고 신경 쓰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몸의 인식 변화에 대해 고찰한 부분이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처음 몸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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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여부는 인식하고 있으나 이야깃거리는 아닌 대상, 그것이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전까지 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었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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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춘기 이후 갖게 된 몸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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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내게 금지된 숲이나 다름없었다. 거기 있는 걸 뻔히 알고 있지만,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해도 눈 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 곳. 다른 사람이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되는 곳. 알려고 하지도, 알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 되는 곳. 그렇게 오랫동안 몸은 주인인 내게 의해 억압되고 있었다.
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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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는 성에 대해 대체적으로 폐쇄적 형태였다. 성장에 있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몸의 변화에 대해 숨기기 급급했고, 통상적이고 일관적인 교육으로 대체되는 등 솔직하고 현실적인 해외 아동 성교육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교육이었다. 그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저자와 같은 몸의 인식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무의식에 가둬둔 채 살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흔히 여성성을 대표한다거나, 자존심이라고 말하는 가슴 조직을 제거하는 유방암 전절제 수술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삶의 바라보는 방향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저 덮어두고 모른척하며 살았던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서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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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제거 수술 후 상처가 아물고 느껴지던 통증이 가라앉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다른 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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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암 환자가 되어 수술하게 된 것은 인생이 준 크나큰 아이러니와도 같았다. 다른 사람에 비해 암 환자의 생활이나 치료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내게 같은 질문이 주어지자 결코 객관적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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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과 '외로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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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주사하고 나서 떨림이 멈추자 수술 부위의 아픔만이 남았다. 무서움은 지나가고 외로움이 남았다.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 아프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였구나. 이건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구나.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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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는 감정적이기 보다 이성적으로, 조금은 냉정하지만 현실을 빠르게 수용하면서 덤덤하게 적응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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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비교적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사라진 조직보다는 앞으로의 일상 복귀에 더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내가 잃은 것에 대해서는 애도하는 마음을 갖되 당장 내 앞에 놓인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런 태도가 일상 복귀를 더욱더 쉽게 해준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84~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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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생의 끝자락, 죽음에 대한 풍경도 그려보게 된다. 누구나 맞게 되는 죽음이지만 멀리하고 싶어 저 깊은 무의식에 멀리 떨어뜨려 둔 죽음을 가까이에서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게 된 것이다. 여느 장례식장이 아닌, 여느 한적한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 통곡소리도 향냄새도 국화꽃도 없지만 평온한 일상 속에서 고요히 맞이하는 죽음. 가까운 소수의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되어 그곳에 뿌려지는 마지막의 모습에는 조곤 거리는 대화와 정돈된 미소만 가득한 풍경.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 그들이 이따금 나를 떠올렸을 때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울거나 때론 웃어주면 기쁠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딘가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양한 환자와 유가족을 통해 알게 되었던 객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직접 암 환자가 되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외로움, 현실적 치료에 대한 의문점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다양한 치료 과정의 모습과 다양한 죽음의 모습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느낀 소회를 통해 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필요한 도움과 위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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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들은 상담실에서 뻔한 위로나 충고 말고 제대로 된 위안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 누구나 다 그럴 거라는 말이 내가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납작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듣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는 처음 겪는 고통이고 외로움이고 괴로움이어서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
1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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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흘려보내는 인생의 시간. 회피하고 모른척하고 있는 나의 몸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일찍이 이러한 것들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진다면, 보다 '나'를 위한 삶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는 동안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마냥 흘려버리기에는 길지 않은 것이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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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후 나름의 원칙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칙보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전보다 더, 나 혼자만 다른 번호를 선택하는 일이 잦아진 데에는 기준점 자체가 이동했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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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럼에도 다르다.
(...)
어찌 됐든 삶과 이어진 끈은 계속될 것이라는 걸. 알고 느낀다. 그러니 또 괜찮은 날에는 온종일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상을 살 것이다. 그런 게 인생인 것 같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하진 않아도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살아있다는 건 그런 것인가 보다.
1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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