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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의 퇴직을 괜찮은 척했다 - 퇴직은 처음이라 고민하는 가족들에게, 퇴직이 낯선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
김도영 지음 / 바른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순식간이었고, 새파랗게 젊은 세상 앞에 시커멓게 늙어만 가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이상 겪게 되는 퇴직.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면서 퇴직에 대한 개념이나 느낌이 많이 옅어졌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입사한 직장에서 10년, 20년 혹은 정년퇴임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 퇴직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막연하게만 인식하고 있는 퇴직을 우리 부모님이, 내가 가족구성원으로 겪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방송에서, 주변에서 들어서 퇴직준비는 미리 하는 게 좋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과연 얼마만큼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을까?
소위 말해 베이비붐 세대라 말하는 부모님 세대의 퇴직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세대의 자식들은 이제 막연하게 알고만 있던 퇴직을 몸소 현실에서 겪어나가야 한다. 먹고살기에 급급해 막상 자신의 노후준비에는 소홀했던 부모님, 그리고 각종 포기를(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인간관계 등등) 선언한 세대라 말하는 요즘 세대의 결혼과 독립이 늦어지는 만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여기에 부모님의 부모님까지 모셔야 하는 이중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게 어쩌면 퇴직을 앞둔 우리 부모님들의 현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88올림픽 이후 급성장한 대한민국,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세대별로 벌어진 격차. 세대 간 인식과 가치관의 차이는 어쩌면 어느 것보다 중요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 세대가 살아온 환경이며 몸소 익힌 경험이기에 이해시키거나 납득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구성원이 줄어든 만큼 한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사이클 안에서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군다나 위와 같은 현시대의 부모님 세대에게 있어 '퇴직'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가장의 변화이기에 가족 구성원에게도 여러 가지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며, 그렇기에 함께 고민해 보고 미리 준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중요 시점인 '퇴직'을 주제로 가족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들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퇴직을 앞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입장, 퇴직을 앞둔 당사자인 아버지의 입장, 옆에서 함께 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각자 허심탄회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갑작스럽게 맞게 된 아버지의 '퇴직'을 통해 그들 각자가 느낀 감정과 입장은 어떠했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미리 준비하고 어떤 부분에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더불어 중간중간 아버지에 대해 서술한 인용 글들과 세대별 변화와 격차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아들의 입장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은 그런 맥락을 담고 있어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는 비슷한 견해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이제 이 책에서 전하는 '퇴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이 책의 서두는 베이비붐 세대와 각 세대를 아우르는 특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라고 규정하고 뉴스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마케팅으로 자주 활용되는 이런 단어들이 내포하는 의미와 특징의 서술을 통해 각 세대별로 겪고 있는 어려움과 특성을 보다 면밀히 살펴본다. 이는 부모님 세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를 살았던 배경과 환경을 살펴보는 작업인데, 이를 통해 공통적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만의 공통점도 파악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산'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을 황제처럼 모시는 첫 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처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는 세대, 가족을 위해 밤새워 일했건만 자식들로부터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고 따돌림당하는 비운의 세대, 20여 년 월급쟁이 생활 끝에 길바닥으로 내몰린 구조조정 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때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 엇나가던 시절도 있었고,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비로소 아버지가 되는 일은 쉬워도, 아버지답게 되는 일은 어렵다는 말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저자. '퇴직'을 앞둔 자식의 입장에서 솔직한 소감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 퇴직에 대한 소감>
갑작스러움도 있었지만, 아직 혼자서 사회에 남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결정을 온전하게 응원해 주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아버지 퇴직 후 가장 아쉬웠던 점>
처음 아버지가 직장 퇴직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당황했다는 이유로 회피하려고 했던 나의 태도가 가장 아쉬웠다. (...) 괜히 말을 꺼내서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자식이 바라보는 퇴직준비에 대한 생각>
예고되거나 계획되지 않은, 즉 의도하지 않았던 급작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이후 부닥칠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실제로 내가 퇴직한 것도 아님에도 아버지가 퇴직한 후의 삶에 적응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갑작스럽게 겪은 아버지의 '퇴직'은 이를 겪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대처하는 데 있어 미숙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깊은 대화가 오가지 않은 상황이기에 상대방의 입장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짐작만으로 배려하느라 오히려 때를 놓쳐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퇴직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으로서 받은 타격과 충격으로 스스로를 감내하고 적응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평소에 퇴직에 대해 가볍게 생각만 했을 뿐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미래를 계획해 보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전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퇴직'을 통해 얻은 세 가지 깨달음을 전한다.
<퇴직 그 후,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세 가지>
첫 번째. 가족들과 솔직하게 감정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소한 행복했던 일, 고충부터 결혼, 퇴직, 노후생활 등 민감한 부분까지 어떤 주제든지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이는 곧 건강한 가족관계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두 번째. 미리 퇴직준비에 대한 책을 선물하여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었던가. 100% 같은 상황은 없겠지만 비슷한 상황이라도 미리 알아서 나쁠 건 없다. 책을 계기로 퇴직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세 번째.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퇴직은 경제적인 문제를 동반하고 노후생활은 경제적인 부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가족은 공동체이기에 서로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가족 간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소통인듯하다. 상호 간에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 민감한 부분에 대해 입장을 솔직하게 전하는 만큼 진심이 전달되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듯하다. 이를 통해 '퇴직'이라는 공통의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는 사전에 조금씩 가족의 경제 상황에 대해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이른 출가와 결혼으로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시대가 변화하는 만큼 이에 발맞춰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솔직하게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추후 도움이 많이 될듯하다.
저자는 아버지의 퇴직을 계기로 자신의 삶 또한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아버지가 물려준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아버지가 물려준 세 가지>
1.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상대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신뢰는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또한 단순히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나아가 스스로 한 약속에 대해서도 엄격해질 수 있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2. 뭐든지 배우려는 자세
아버지는 항상 문제가 생긴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고민하였고 동일한 물건이 있다면 비교해가며 수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아버지의 생활태도를 통해 내게 알려주고자 한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었고 나아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였음을 깨달았다.
3. 일을 시작했으면 결과물을 만들 때까지 노력하는 끈기
이는 직접적으로 알려준 적은 없지만 아버지를 지켜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 중 하나다. 36년간 한 직장 생활, 퇴근 후에도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무언가 적으면서 공부하는 모습 등을 보며 저자 역시도 정해진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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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켈트족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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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주로 자식 입장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퇴직'에 대한 소감을 담고 있지만, 중간중간 아버지 본인과 어머니가 느끼는 소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입장과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데, 각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견해의 차이나 가치로 두는 중점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안함으로 섣부르게 다가갈 수 없었던 아들, 퇴임식에 참석해 준 아들이 든든하고 고마웠던 어머니, 가족사진을 찍으며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온 것에 위로받는 느낌이었다는 아버지.
끝으로, 아버지가 퇴직과 재취업을 준비하며 느낀 소감을 남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먼저 인생을 산 인생 선배로써, 직장 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회생활의 선배로써 참고하면 좋을 내용이었다.
수많은 나날들이 우리들의 앞에 펼쳐지겠지만 '퇴직'이 아주 먼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조금 낯설지만 익숙해져야 할 '퇴직'에 대해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부모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으며,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접 먼저 겪은 아버지의 솔직한 의견은 많은 도움이 된다.
재취업을 준비하며 어려웠던 점, 퇴직 후 아쉬움이 남았던 점들, 퇴직을 앞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부분에 서술된 내용들은 현실적인 충고와 깨달음을 준다. 최소 2년의 시간을 두고 퇴직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과 회사를 위해 투자했던 자기개발이 사실 내 자산 가치를 위한 개발이 아니었다는 점. 회사로 나오고 나면 밖에서는 자기개발 투자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사람마다 세대 따라 100% 동일하게 적용되진 않겠지만, 요즘은 취미가 잡(Job)이 되기도 하는 시대인 만큼 자기개발에 있어서 다양한 부분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 작은 취미생활을 만들었으면 한다며 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 오래전부터 거론되어온 부분이기도 하다. 정년이 되어 갑작스레 변화한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는 취미만 한 것이 없다. 취미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의 삶은 매 순간이 새롭고 처음 사는 인생이다. 숫자로 표현되는 나이와 외모는 무르익어 가지만, 스스로 느끼는 삶은 매 순간이 낯설고 서툰 것들 투성이다. 그래서 먼저 삶을 산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미리 대비를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앞서 겪은 사람들과 동일시하여 똑같이 대입할 순 없지만, 적어도 삶의 패턴에 있어서는 누가 머라고 해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부모와 자식, 가족 간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삶의 모습들이 그것인데 무엇이 되었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최대한 만들지 말자.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지금 행하고,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