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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와글와글, 시끌시끌 책 표지만으로도 부산스럽고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왠지 상상되는 '집으로 가는 길'. 표지만큼이나 책에 담긴 열 편의 이야기들은 사랑스러웠고, 활기찼으며,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즐거웠다. 본래 한참 혈기 왕성한 중학생 또래들의 일상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늘 새롭고 웃음꽃이 피는데, 그들의 매일이 새롭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도 '아이들이 매일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 마법이 있다'라고 말한 걸 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학창 시절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학교 안에서, 급식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서, 방 안에서, 수학여행지에서 나와 일상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그때의 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 세상에서 가장 큰일이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이 책에도 가득 담겨있었는데 어른들은 모를, 아이들만의 고민과 갈등이 때론 사소한 이야기로, 혹은 심각한 걱정거리로 꺼지기도 하고 부풀려지기도 하면서 그려져 있었다.
저자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지루한 책을 쓰지 않는 것이 단 하나의 목표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저자는 그 목표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교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의 일상이 어떻게 보면 단조로울 것 같지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예상외로 각양각색의 색을 띤다. 스쳐 지나가듯 무심코 넘겼던 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해서 쓴 것 같은 이 이야기들은 리얼해서 더 실감 나고, 더 와닿았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열 편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그 말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겉에서 보기엔 그저 친구들끼리 모여 장난을 치거나 사소한 어울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그들의 무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살펴보니 그 안에는 소우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지만 나름의 상처와 감동이 가득했던 '집으로 가는 길'.
열 개의 골목을 두고 펼쳐지는 그들의 일상은 매우 바빴는데, 코딱지에 관해 옥신각신하느라, 남들 주머니를 터느라, 스케이트보드를 타느라, 벌러덩 나자빠지느라, 용기를 끌어모으느라, 복잡한 악수를 수행하느라, 탈출 계획을 세우느라, 농담을 펼치느라, 로션을 바르느라, 위안을 찾느라 정말이지 너무 바빴다. 바쁜 사유가 너무 흥미로워 각 거리를 따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 봤더니 그 안에는 철학이, 유머가, 재치가, 감동이, 눈물이, 사랑이 가득했다.
■첫 번째 골목_마스턴가(물 코딱지 곰)
과자봉지를 통해 우정을 진하게 나누고 있는 TJ와 재스민의 이야기에서는 코딱지에 대한 그들만의 심오한 철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먼지로 남자를 만들었고, 인간의 몸은 거의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딱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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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는 티셔츠 앞자락을 뒤집어 콧구멍 입구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코딱지를 대충 파냈다. 티셔츠를 따라 늘어진 한 줄기 콧물이 인중으로 흘러내렸다.
15~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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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한 표현력으로 읽다 보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그래서 더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두 번째 골목_플레이서가(반삭파 작전 개시)
암 생존자 부모를 둔 무료 점심 대상자들의 모임인 반삭파. 암 투병을 하는 친구의 엄마를 웃게 하기 위해 기발한 발상으로 90센트를 9달러로, 짤짤이를 아이스크림 네 컵으로 탈바꿈시킨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 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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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치료 첫날은 어땠어?"
"아... 알잖니. 항암이 그렇지 뭐. 괜찮아."
(...)
"좀 메슥거리는 것뿐이야."
"그럴 줄 알고 아이스크림을 다발로 준비했지."
비트는 게임 쇼 진행자처럼 한 손을 펼쳐 아이스크림 네 컵을 자랑했다. (...)
잔머리의 귀재는 어느새 누군가의 아들로 탈바꿈했다. 두려움에 떠는 아들로,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로.
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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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단순한 장난으로 아이들의 잔돈을 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과 그 친구들의 속 깊은 사랑의 잔머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섯 번째 골목_체스트넛가(시므온과 켄지의 특별한 악수보다 쉬운 다섯 가지 일)
누군가에게는 두려워 꺼리는 거리가 이 아이들에게는 마음 편한 휴양지 같은 곳이다. 누구보다 큰 시므온과 작은 축에 속하는 켄지의 일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특별한 악수법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느끼는 둘만의 정서는 남다르고 매일 반복하는 하굣길의 다섯 가지 일은 일상이기에 그들의 특별한 악수보다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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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와 시므온에게 체스트넛가는 마치 휴양지 같았다. 전봇대는 야자수, 버스 정류장의 벤치는 해먹, 구멍가게는 오두막 같은 동네.
특유의 냄새가 났다. 피로와 고갈이 섞인 냄새. 음식이나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는 냄새.
특유의 느낌이 났다. 보이지 않는 시럽을 헤치며 나아가는 느낌. 끈덕진 삶의 느낌.
특유의 소리가 났다. 날카롭고 차가운 소리. 끝내주네와 어쩌라고가 뒤섞인, 세상의 비명과 속삭임이 만들어내는 교향곡. 아직 어린 켄지와 시므온의 목소리는 플루트처럼 풋풋하고 감미로웠다.
1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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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풍경과 대조되는 그들의 심리적 안정감은 기묘한 어울림을 선사한다. 누군가에게는 몸을 사리게 만드는 거리가 이들에게는 푸근하고 마음 편한 집이자 이웃이 머무르는 곳이다. 특유의 냄새, 느낌, 소리가 나는 거리는 어린 시므온과 켄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풋풋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우정을 나눌 뿐이다.
■아홉 번째 골목_로저스가(그 애의 불타는 입술)
샌드라를 좋아하는 그레고리. 그리고 그런 그레고리의 고백을 도와주려 갖은 애를 쓰는 친구들. 유독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는 그레고리의 전신이 반짝반짝 윤이 나게 로션을 발라주고, 악취를 없애주려 노력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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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내가 널 와우하게 해줬으니 걔가 우와할 차례야."
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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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멈추자 캔디스는 한 손에 로션을 가득 짜냈다. 보도블록을 미끄럼틀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듬뿍.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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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재미있는 언어유희가 많이 담겨있어 웃음이 절로 나는 부분이 많다. 악취가 난다고 해서 피하거나 놀리지 않고, 고백하려는 친구를 위해 손수 집에서 챙겨온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해 전신을 가꿔주는 모습은 어딘가 귀여운 느낌마저 든다. 가장 압권은 건조한 입술에 바른 감기약으로, 화끈거리는 입술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천진난만하게 고백하는 장면은 어수룩하지만 순수함이 엿보인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랄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길, 이 책과 함께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길이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