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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라면 - 7인 7색 여자들의 라면 에세이
김예진 외 지음 / 새벽감성 / 2022년 6월
평점 :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라면! 7인 7색의 작가들이 전하는 라면에 얽힌 이야기들은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20대부터 5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이 전하는 이야기라 시대상도 반영이 되었는데 지금은 흔하고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라면이지만 과거에는 얼마나 귀한 재료였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어 흥미로웠다.
누군가에겐 밥 대신 주식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색다른 요리가 되기도 하는 라면. 종류도, 요리법도 다양해 취향껏 즐기는 라면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눈물과 웃음이 스며들어 있다. 소중했던 순간, 열정적인 순간, 힘든 순간 늘 함께해 주는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나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라면에 대한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늘 한켠에 든든하게 채워주고 있는 라면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자.
라면! 하면 역시 꼬들꼬들한 면발과 알싸하게 퍼지는 국물 냄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멀리에서도 라면 냄새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라면 수프가 주는 냄새는 가히 독보적이다. 별생각 없다가도 누군가 라면을 먹으면 퍼지는 라면향을 맡으면 마치 들불 번지듯 군침을 흘리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너도나도 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중독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는 라면에는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라면!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건 노래인데,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 도우너, 마이콜이 함께 불렀던 <라면과 구공탄>이 바로 그것이다. 한때 즐겨보던 만화 중 하나인데, 지금까지도 유독 이 노래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라면만큼이나 중독성을 지닌 이 노래에서 돋보이는 건 라면에 대해 서술한 가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라면의 꼬들함과 형상이 저절로 떠오른다. '라면은 이거야'라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흥이 나는 걸 보면 그 매력은 여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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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
하루에 열 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좋은라면
가루 가루 고춧가루(코러스 - 둘리, 도우너)
맛좋은 라면은 어디다 끓여?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 나네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좋은라면
만두의 친구가 찐빵이듯이
라면의 친구는 구공탄이지
그래도 라면은 맛 좋은 라면은
구멍 뚫린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
구멍 뚫린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
가루 가루 고춧가루(코러스 - 마이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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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라면! 하면 떠오르는 자신만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이 책에는 7명의 작가가 엄선한 26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에 앞서 각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공통질문을 시작으로 그들의 울고 웃었던 소중한 추억과 그들의 취향이 한껏 담겨있었다.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담겨있는 라면에 얽힌 추억담은 어딘가 나의 이야기와도 많이 닮아있었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기내에서 있었던 라면에 얽힌 이야기, 학창 시절 쉬는 시간 친구들과 나눠 먹었던 라면 이야기, 육아와 라면에 얽힌 이야기, 첫 직장이야기, 해외여행에 얽힌 라면 이야기, 아들과 라면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얽힌 이야기, 크면서 좋아하게 된 음식에 대한 추억 이야기, 아침/점심/오후/밤에 먹는 라면의 추억 이야기 등등 무수히 많은 라면 추억담들을 보며 어쩌면 라면은 삶을 대변하는 음식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삶과 인생에 녹아들어 있는 라면, 그 이야기 속에는 각자의 철학과 취향도 한껏 반영되어 있었는데 몇 문장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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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푼 덜 매운맛의 중화된 라면을 먹을 때는 무엇과 같이 먹어야 할까? 그건 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김치다. 적당히 익은 김치 한 조각과 라면 한 젓가락의 궁합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무말랭이무침을 추천하고 싶다. 정도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나지만 라면을 먹을 때에는 예외를 둔다.
신라면의 개취 (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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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먹을 때 자신만의 확고의 취향이 드러나는 문장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나의 확고한 취향도 생각해 본다. 과거에는 '신라면'에 매료되어 즐겼다면 요즘은 '진라면'이 나의 최애 라면이다. 고유의 맛을 좋아해서 라면에 계란 하나를 톡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곁반찬을 곁들이지 않고 그 자체로 라면을 즐기는 것도 좋아하지만 때론 곁반찬을 함께 먹는 것도 추천한다. 곁반찬의 종류에 따라 라면의 맛도 달라진다. 배추김치, 깍두기, 단무지에 따라 혀가 느끼는 맛과 씹는 식감의 차이가 확연히 달라진다. 저자가 언급한 무말랭이무침은 오득오득 씹는 식감이 남다르다. 그래서 씹는 식감을 느끼고 싶을 땐 무말랭이무침은 탁월한 선택이 되곤 한다. 때때로 이색적인 라면이 먹고 싶을 때는 해물을 넣어 먹기도 하고, 야채를 넣어 먹기도 한다. 토핑으로 치즈를 넣어먹으면 국물 맛이 확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라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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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꿈을 찾기 위해 산을 찾았고 새해 일출은 나를 찾는 에너지의 출발점이었다. 나는 두 번째 꿈을 향해 글을 쓰고 있다. 첫 번째 꿈이 두 번째 꿈을 위한 과정이라면 두 번째 꿈은 세 번째 꿈을 위한 과정이다. 하나씩 나아가면 언젠가 꿈을 다 이룰 것이다.
유혹의 냄새 (1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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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때론 위로와 예외가 되는 음식이 있다. 라면처럼. 자신의 인생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에 라면 냄새의 유혹은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준다. 유혹에 홀려 한입만 하던 것이 한 그릇 뚝딱한 이후 뒤늦게 후회하는 일도 발생하지만 때론 그렇게 라면 한 그릇으로 위로와 위안을 얻어 가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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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풍요로워서 간절하지 못했던 것을 점차 간절하게 즐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을 먹었던 순간으로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파리에서의 삶은 나를 변화시켰다 (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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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추억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에 100% 공감한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과 음식을 추억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도 그런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때론 직접 그 음식들을 만들어 먹으며 그 당시를 추억하곤 한다.
이처럼 라면에는 무수히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늘 나만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취향의 레시피와 더불어 라면에 얽힌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어떨까?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설렘의 시간만큼이나 가슴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