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지 않아
스미노 요루 외 저자, 김현화 역자 / ㈜소미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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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마음 깊은 곳의 울림 <가고 싶지 않아>는 여섯 작가가 '가고 싶지 않아'라는 문장에서 시작한 여섯 편의 작품을 모은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그냥', '갑자기', '막연히' 겪는 하고 싶지 않거나 가고 싶지 않은 감정.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에 대해 서술한 각 작품들은 작가만의 시각과 색감이 도드라진다. 학교, 집, 직장, 아쿠아리움 등 일상 속에 갑자기 찾아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이유가 없기에 막연하기도 하고, 누구에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감정의 기복도 들쑥날쑥하여 종잡을 수도 없다. 대응하는 방법이나 받아들이는 방법도 제각각인데 그런 감정이 드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낸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관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그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행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혼자 감내하다 한순간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그 자체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여섯 편의 이야기에선 '가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을 공통적으로 품은 이들이 나오지만 그들의 감정이나 대응방법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여섯 가지 맛의 사탕을 먹는 기분이 든다.

 

 

▣첫번째 이야기 <포켓>

 

조스케는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리도, 진학도, 모든 것이 그저 무기력하게 다가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던 때, 소꿉친구 '안'이 애인과 헤어지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최선을 다한 관계가 끝난 후 한 달여 만에 학교에 출석한 친구 모치스기가 '완성'한 무언가를 보러 함께 간다. 그곳에서 조스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학교도 결석하고 이후 끈기 있는 열정과 노력의 완성품을 즐기는 친구의 모습에서 압도감과 충격을 받는다. 무료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이는 순간 그에게도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두번째 이야기 <네가 좋아하는/내가 미워하는 세상>

 

스물다섯 살의 보건교사이자 양호교사가 된 지 3년째인 야마모토 사야카는 정말이지 금요일의 보건실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득이다.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의 취향을 존중해 주자는 갸륵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버겁고 힘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직장을 함부로 빠질 수도, 학생에게 상처를 줄 수도 없어 꾹꾹 참고 버티던 일이 결국 들키고 만다. 자신의 취향과 업무 사이, 노력할수록 더 어긋나는 취향과 가치관은 점점 더 골이 깊어진다. 친구 사이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 겪을법한 에피소드라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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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금요일 따위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좋을 텐데···· 아니, 그러면 목요일이 주말 전날이 되는 것뿐인가·····? 짜증 나, 아 진짜 어쨌거나 ·····."

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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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말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냥 재미없지 않아?"라는 확신만 깊어졌습니다.

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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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드러내고 싶고, '대등'한 대우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와 '동일해지기'를 상대에게 바라고 있었습니다.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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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 <핑퐁 트리 스펀지>

 

로봇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벌어지는 SF 소설로, 출근을 앞둔 어느 날 출근을 도와줄 심해 생물 '핑퐁 트리 스펀지'를 닮은 로봇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에러 메시지를 표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출근길조차 도움을 받아야 하는 로봇의 에러 메시지로 출근을 미루고 긴급하게 수리를 맡기는데, 로봇회사에서는 뜻밖의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 마음과 감정이 없다고 알고 있던 로봇의 '가고 싶지 않다'라는 감정을 에러나 고장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여주는 주인공의 공감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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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별달리 뭐가 싫다든가, 몸 상태가 안 좋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기분이 내키지 않는 거요, 저는 기분이 내키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타입이거든요"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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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 그럼 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걸까요. 뭔가 제 지시 방법이 잘못되었을까요."
"아뇨"
(...)
"딱히 이유는 없는 듯합니다."
"네?"
"이유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가고 싶지 않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1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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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을 획득한 것은 조금 동료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걸 알 수 있어서 오늘은 오길 잘했다.

1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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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이야기 <어섭쇼>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여자는 불평등과 성추행 속에서 매일 반복적인 일상을 보낸다. 갑작스레 떠난 남자친구와의 이별은 그녀를 더 고립과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하는데,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랫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자주 들리는 편의점의 직원인 '어섭쇼'인것을 알게 된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금세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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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철을 타고 싶지 않다.

나는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1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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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주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한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났고,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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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이야기 <종말의 아쿠아리움>

 

결혼 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가오는 직장도 그만두고 외출을 자제하며 집에서만 생활한다. 택배기사가 올 때면 숨죽이고 있다가 물건만 쏙 들여올 만큼 타인과의 접점을 최소화하는 가오지만 자신과 잘 맞는 남편과 지내는 일상은 늘 즐겁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불안한 감정과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없는 가오에게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아이에 대한 언급은 얼핏 폭력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남편에게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 찾아간 아쿠아리움에서 그녀는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마주하며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게 된다. 이후 감정의 갈무리 끝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데쓰히로의 곁으로 돌아간다. '부모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와 '부모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하게 결혼 후 출산으로 생각하는 사회 안에서 이에 대한 욕구가 없는 이의 무기력함과 폭발적 감정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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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적어도 일을 열심히 하든가, 배우자의 버팀목이 되려고 하는 게 제대로 된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몸도 마음도 건강한데 일하는 게 싫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때려치우고 집안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금의 가오는 가키야의 애완동물이나 마찬가지지 않아?"

2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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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히로와 살아가는 삶에 열중하면서 자신에게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없다는 사실을 가오는 알아차렸다.
(...)
부모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부모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그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주변에 조금씩이라도 이해받아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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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이야기 <컴필레이션>

 

기억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새로운 친구들이 저녁을 만들어두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평일 매 저녁시간 새로운 친구들이 찾아온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함께 저녁을 먹고 게임이나 DVD를 보고 난 이후에 씻고 잠자리에 들고 나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또다시 기다리던 저녁시간이 된다. 더 이상 바라는 것도 꿈꾸는 것도 없는 주인공은 지금 이 생활이 만족스럽고 그저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규칙을 깨고 한번 방문했던 친구가 두 번, 세 번 방문하게 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에서 나가서 '진짜' 세상에서 친구가 되자는 친구의 제안에도 그녀는 안락하고 편안한 만들어진 세상이 좋다며 이를 거절한다. 그저 내일 어떤 친구가 와줄까라는 기대감과 설렘만을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주인공의 삶을 그리고 있는 SF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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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거니 보내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간다. 즉 그만큼 나는 다음 평일 밤이 애타게 기다려져서 참을 수 없는 것이다.

2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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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이런 하루하루가 이어져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멀거니 지내는 동안에 인생이 지나가 버리면 아마 그게 제일 행복할 것이다.

2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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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고 있으면 즐거워. 좋아하는 시간이 금방 찾아오고."

2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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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안돈처럼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희미하게 있을 수 있다면 더 즐거운 텐데 싶다.

2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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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새로운 친구들이 올 때마다 그녀를 히루안돈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근사한 것에 자신이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매번 아니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런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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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안돈이란?

>낮에 켜져 있는 행등, 그곳에 있어도 무의미한 것의 상징. 그런 풍경의 근사한 것에 자신이 해당하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한낮에 행등을 켜놓고 있어도 희미하게밖에 보이지 않으니 바꿔 말해 흐리멍덩한 사람을 히루안돈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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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안돈을 꿈꾸는 주인공은 진짜 세상으로 나가자는 친구에게 똑 부러지게 말한다.

"내 진짜 세계는 내가 정할게"라고.

여기에서 히루안돈은 중첩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그녀가 사는 만들어진 세상에서 그녀는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관리자들도 그녀가 탈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있고 싶은 세상을 꿈꾸며 똑 부러지게 의사를 전달하는 모습에서 흐리멍덩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 속에서 여섯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세계를 확장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어떨 때, 어떤 상황에서 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살다가 문득, 그냥 무언가 가(하)고 싶어지지 않을 때 이 책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나름대로의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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