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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ㅣ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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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1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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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안온함을 주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애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이다. 누구나 꿈꾸는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현실이 되기도 하고 때론 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족의 모습은 왜 이처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제목에서부터 징글징글함과 처절함이 느껴지는 이 책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누군가의 자랑이자 행복으로 충만했던 가족! 그들이 어쩌다가 끔찍한 족쇄이자 족속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네 명의 자녀를 둔 부모는 한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남부럽지 않은 가족이었다. 아이들은 부모 속 썩이는 것 없이 각자 대학 졸업까지 무사히 잘 마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어느새 자목련이 핀 커다란 집도 새로 지으며 나름 노년의 삶을 도란도란 꿈꾸는 삶을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아내가 뇌경색이 오면서 점차 서서히 그 행복감도 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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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네 번씩 찹쌀떡을 직접 만들었다.
"찰지게 살면 좋잖아요, 삶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그리고 나중에 시험 볼 때, 한두 번 찹쌀떡 먹은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찹쌀떡을 야무지게 먹고 자란 애들이랑 상대가 되겠어요?"
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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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노인 부양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이들 가족 역시도 늙고 병든 부모를 부양하는 문제는 결코 쉬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이미 결혼하여 자신의 가족부양은 물론 직장 생활을 겸하고 있던 첫째 딸 인경과 둘째 아들 현창, 이혼으로 혼자 아들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셋째 딸 은희, 집에서는 백수 취급받으며 몇 년째 고시에서 떨어져 이제는 택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막내아들 현기는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무게만으로 이미 버겁고 힘겨운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누가 그런 부모님을 모실지에 대해서 결정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요양원에 보내자는 의견과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의견의 충돌 속에서 결국 이들을 떠맡듯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된 것은 셋째 딸 은희였다. 처음에는 형제자매에게 서운함과 괘씸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쨌든 내 부모를 모시고 이혼 후의 삶을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좋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처럼 그녀는 금방 자신의 그러한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은희의 변하는 감정 상태에서 급격한 그녀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아마 가까이에서 노부모를 모셔본 사람들은 그녀의 그러한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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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심리상태>
어쩌면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게 만든 신의 의도는 이런 걸지도 모른다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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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심리상태>
왜 매번 자신이 죄지은 것처럼 이렇게 변명을 해야 하나. 이런 구차한 말을 할 필요가 없게 차라리 엄마의 상태가 더 나빠졌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엄마를 보살피면서 김은희가 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떠올렸던 단어였다.
(...)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김은희는 한없이 반복되는 이 지옥 같은 생활이 끝나기를 바랐다.
17~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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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심리상태>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방금까지도 수백 번 생각했는데, 막상 엄마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가 된 것 같았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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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은희는 늙고 병든 부모를 가까이에서 모시며 서서히 정신적으로 병들어 간다.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룬 후 감정적으로 서서히 멀어져 간 다른 형제들이 한없이 밉고 야속한 마음만 들었다. 비꼬듯 험담만 일삼는 아버지도 미웠고 지긋지긋했다. 그저 이 상황을 탈피하고픈 마음만 가득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셋째 딸 은희를 시작으로 가족 한 명 한 명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가족이지만 다른 이는 모르는 그들의 속 사정과 마음속 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허울좋은 모양새로 잘 사는 것 같던 그들 한 명 한 명의 속 사정은 누구 하나 편안하거나 행복한 이가 없다. 가족이기에 서로를 너무 잘 알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찌르며 아픈 말들로 상처 내고 상처받으며 서로를 꺼리고 서운해하고, 갈등의 골은 점차 깊어진다. 생각했던 말들은 오히려 내뱉지 못하고, 툭툭거리며 날카로운 말들이 진심을 점차 왜곡하면서 점파 파국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부르고 이것을 풀 기회도 없이 황망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병을 앓던 어머니는 찹쌀떡이 목에 걸린 채 숨졌고, 아버지는 칼에 네 군대나 찔려 피 흘리며 돌아가셨다. 죽어가던 순간의 짧은 시간을 상기하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처절하고 황망하다. 현실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가족의 이야기라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가 힘들어하는 일이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 그 내면의 문제에 가장 깊이 있게 접근한 이야기라 더 공감이 가고 가슴이 아팠다. 가족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이들의 마지막은 아마 그들의 부모가 늙은 고아로 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그 자식들 또한 반복되리라는 것에 더 마음이 쓰인다.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끊어내고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가장 끝에 끝의 밑바닥과 적나라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 소설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에 대해 그리고 "늙고 병든 우리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들의 대화와 속마음을 통해서 각자의 입장과 대조되는 상황들을 확인할 수 있는 몇몇 구절들이 있었는데 절절히 와닿았던 몇 문장들을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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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모님께 바라는 건 그거 딱 한 가지예요.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할 필요도 없고, 걱정해 주실 필요도 없어요. 정말 자식들을 위한다면 그냥 조용히 자식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시기만 하면 돼요.”
둘째 아들 김현창 입장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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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들어가란 말보다 그 말이 더 아팠다. 그 말은 이제 관 속에 들어가라는 말이나 똑같은 거니까.
아버지 입장 (1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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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하게 했던 대사가 있어 소개해 본다. 이러한 부모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항상 맏이로서의 책임감과 막중함을 떠안고 살아야 했을 첫째의 역할과 심정을 헤아리게 하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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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언니고 누나니까 네가 챙겼어야지. 동생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너는 뭐 하고 있었어? 네가 잘해야 동생들도 잘하는 거야.
부모가 첫째 딸 김인경에게 하던 말 (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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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주지하듯 늘 들어왔던 그녀는 결국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그렇게 혼자 모든 것을 떠안는 것으로 마음을 닫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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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자신은 이 집안의 장녀이고 늘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 현기가 계속 시험에서 떨어지고, 은희가 이혼하고, 제 처의 편만 드는 현창이에게 실망하면서 이제 부모님에게는 자식 중 그녀에 대한 기대감과 자부심만 남았다. 그것마저 꺾어버릴 수는 없다는 마음 때문에 차일피일 말하는 것을 미루는 사이 더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김인경의 마음 (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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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나가는 큰딸은 누굴 도와줄 처지가 아니라 딱 봐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도 사정을 말하지 않는 큰딸이 김영춘은 섭섭했다. 늙었어도 내가 네 아버진데,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깐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해도 딸은 자신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 (1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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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문장들을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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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았다.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보이는 것마다 눈에 거슬렸다.
(...)
똑같은 꽃을 봐도 이제는 탄성이 아니라 욕을 하게 되고, 똑같은 글을 봐도 이제는 심사가 배배 꼬인 채 읽게 됐다.
아버지 마음 (1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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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보면서 이정숙은 망망대해에서 홀로 뗏목을 타고 흘러가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아내 마음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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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남편이 고맙지도 이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병이 나니까 자식들도 그러더니 이제는 남편까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싶어 침울해졌다.
아내 마음 (1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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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뛰고 있었는데 다리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벽돌 수십 장도 거뜬히 들었었는데, 겨우 플라스틱 비디오데크가 버거워 팔이 빠질 것만 같았다.
아버지 曰 (1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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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람은 눈에도 잘 안 보이는지, 젊었을 때는 잘도 피해 가던 사람과 차들이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었다. (...) 10분 거리의 길이 까딱하면 맹수한테 잡아먹히는 정글처럼 힘겨웠다.
아버지 曰 (1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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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부모 간의 관계에 대한 주옥같은 문장들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함께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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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효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본 사람들이야. 해봤으면 그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지, 기약 없는 지옥인지 아니까 그런 말 못 하지. 그래서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그게 효도보다 훨씬 더 쉽고 짧으니까. 나도 빨리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눈물 질질 흘리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할걸, 그렇게 후회하는 날이 제발 하루라도 빨리…….”
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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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생각났다. 자식은 선불이고 부모는 후불이라고. 자식은 태어날 때 이미 기쁨과 행복을 다 줘서 자식한테는 베풀기만 해도 억울하지 않는데, 부모한테는 이미 받아먹은 건 기억나지 않고, 내가 내야 할 비용만 남은 것 같아 늘 부담스러운 거라고.
1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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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부터 상처받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 문장을 말해주고 싶다. 가장 믿고 의지했기에 돌아오는 피드백이 배신과 비난이라면 이것만큼 큰 상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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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가장 응원해 줄 줄 알았던 사람이 가장 먼저 돌아섰다.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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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 안에는 많은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정말 부모님은 똑같았을까? 성인이 된 이후 왜 우리는 달라졌을까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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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똑같은 소리, 진짜 지겨워죽겠어.”
동성 빌라 시절에도 부모님은 똑같았었어. 달라진 건 그땐 우리가 그걸 지겨워하지 않았지만 이젠 지겨워한다는 거지.
1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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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삶을 공유했던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던 가족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현실의 삶과 상황이 변화하면서 때론 이것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의 구성원 중에 부모님의 병환으로 겪게 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은 많은 갈등과 피로를 불러온다. 이것들은 서운함과 원망, 죄책감, 분노를 불러오는데 이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그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드러내놓고 누구 하나 이것에 대해 말할 수 없어 침묵으로 일관한다. 저자는 그러한 심리와 삶에 대해 디테일한 구성과 스토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당신네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저자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가 어딘가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