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무사 귀인별 2
이은소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전하의 곁에서 전하를 지키겠사옵니다."

 

오랜만에 읽게 된 역사 로맨스 소설이라 그런지 읽기 전부터 왠지 모르게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요즘 한동안 소설은 SF나 판타지 소설 중심으로 읽어서인지 조선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려진 소설은 새롭게 다가왔다. 구중궁궐 속에서 그려지는 암투와 궁인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이야기는 늘 그렇듯 궁금증과 흥미로움을 전해주기에, 이번에 읽게 된 <왕의 무사 귀인별>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무척 기대되었다. 배경은 조선 25대 임금 철종(이원범)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팩트 위에 허구를 얹어 일어났음직한 일들로 스토리가 짜여 있어 조선시대를 탐방하는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안김의 세력에 대항하여 백성을 위하고 사랑을 지켜나가는 원범과 별이의 성장과정과 그들이 보여주는 공존과 따뜻함은 특히 꼽을 수 있는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시작하여 단행본으로까지 이어진 이 책을 단행본으로 만나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매번 전개될 이야기에 목말라하며 다음 편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내고 내 호흡에 맞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은 단행본이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1권 중반부터는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2권까지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것에는 지루함이 없었는데, 읽다 보면 반가운 인물과 인용글외에도 대사와 가락들, 그리고 익숙한 몇몇 드라마가 떠오른다. 권력을 제대로 쓰는 법이란 무엇인지, 적대시하는 이들마저도 마음으로 품으며 악을 선으로 풀어나가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따뜻하고 선한 세상. 원범과 별이가 만들어가는 태평성대를 만나볼 수 있다. 

 

간단한 인물구조도 및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4대 왕 헌종이 승하하면서 조선의 여군이라 불리는 순원왕후 김 씨는 대왕대비가 된다. 헌종이 승하한 이후에는 이미 익종은 물론 순조도 모두 사망한 상태라 직계에선 다음 왕을 대신할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대왕대비 김 씨는 유배되어 강화에 있던 왕가의 종친 원범을 다음 대 왕위에 올린다. 이때 대왕대비 김 씨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고 이로써 모든 권력은 익종과 헌종을 거쳐 철종대까지 안김의 세력하에 머물게 된다.

 

 

역모에 연루되어 강화에 유배 온 원범과 그런 원범을 보살피며 늘 함께 했던 별이는 풋풋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원범이 별이에게 고백하기로 한 날 갑작스레 왕으로 추대되면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성으로 떠나게 되고, 별이와 이별을 하게 된다. 준비한 쌍지환 하나만을 남겨둔 채 떠난 원범을 한참을 그리다 집으로 돌아온 별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괴한의 칼에 맞아 숨을 거두기 직전의 아버지 박시명이다. 모든 것을 잊고 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아버지를 두고 민 상궁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강화를 떠난 별이는 신분을 숨기고 이름을 '소성'으로 바꾼 뒤 새로운 곳에서 삶을 살아간다.

 

원범이 용상의 주인이 되고 십수 년이 지난 후 잠행을 나온 그가 남사당패 환술을 보던 중 뱀에 물릴 뻔한 순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그를 소성이 구해주게 되면서 둘은 다시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다. 이름을 묻자 용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었던 원범은 가까운 벗인 김병운의 이름을 대는데 이때 소성은 그토록 찾던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좌근'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한평생 칼을 품고 복수할 날을 기다리던 그녀인데 어쩐지 쉽사리 칼을 휘두를 수 없던 그녀는 서서히 스며들듯 그를 마음에 담게 되면서 혼란스러움과 자책감을 느끼던 중 우연히 그가 자신이 오랫동안 그리던 오래전 헤어진 원범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한 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들의 이 만남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범과 별은 거대한 권력을 등에 지고 있는 안김 세력과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오랜시간 몇 대의 왕을 거치는 동안 핵심세력으로 국가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그들과 다르게 원범과 별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같이 아무런 권력이나 뒷배가 없다.(마치 궁안에 다른궁과 다르게 존재하는 연경당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일군 무사로서의 삶과 생활력, 그리고 선한 마음과 가치관으로 든든한 존재들과 누구보다 깊은 신의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스승이자 가족 같은 존재인 '심규', 조풍운 '강하', 김규수 '병운', 한처사 '은규' 그리고 민 상궁과 상선, 노상궁 등이다. 별과 원범이 이들과 함께 대척점에 있는 이들과 어떤 형태로 권력과 맞서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왕의 무사 귀인별>에서는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다양한 포인트들이 있는데 이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위에 언급한 거대 권력과 맞서는 선한 이들과 같은 일반적인 대조 포인트도 있지만, 이와 다른 색다른 포인트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원범과 별이의 외모와 능력에 대한 부분이다. 원범은 매끈하고 어딘가 고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해 별이는 고운 여인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로 외모가 묘사된다. 그리고 검을 쓰고 무예를 익히는 것에 있어서 어딘가 실력이 늘지 않는 원범에 비해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박시명으로부터 칼을 쓰는것은 물론 표창던지기까지 일취월장하는 별이의 모습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남녀의 모습과는 다르다. 반면 글을 쓰고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뛰어난 원범과 그의 주변인들(은규/강하/병운) 역시도 무예에 있어서는 어딘가 서툴고 부족한 면모가 보인다. 도성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별이가 직업으로 야장간에서 일했다는 것만 보아도 힘을 쓰고 거친 일들을 서슴없이 해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연약한 여성의 모습보다는 남성성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강화에서 살 때부터 무예에는 특출난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비인 박시명이 농부이자 솜씨 좋은 찬모였고, 꽃을 좋아해 꽃을 가꾸며 대장장이자 낚시꾼이며 나무꾼으로 살아왔다고 서술되어 있던 것을 보면 나름 어화둥둥 아끼는 딸로 살았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런 그녀를 도성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보여준 모습은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바지가 익숙하고 검을 다루는 게 일상이 된 모습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홀로서기를 하면서 겪은 고초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 또한 별의 삶의 바뀐 일상과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다. 이외에도 화려하고 웅장함을 자랑하는 궁안에서 소박하고 아늑한 멋을 가지고 있는 '연경당'의 모습 또한 궁과 대조되는 또 하나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박별이에서 소성으로, 소성에서 승은 상궁으로, 다시 남자 무관 박소성으로, 강화댁 별이로, 어부 아내 별이로, 마침내 박귀인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성장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별이의 변해가는 호칭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적으로 간주하고 멀리할 수도 있었던 병운을 오랜 벗으로 여기며 끝까지 신의를 지킨 점이나 궁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신의 곁에서 스승으로 가족으로 함께해 준 심규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서로 나누는 마음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불어 원범과 별이의 그릇이 제법 크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는데, 자신을 죽이려 했던 대왕대비 김 씨와 영상 김좌근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부분이었다. 또한 모든 일이 해결된 이후 궁안에서 함께 공존하는 중전과 자신을 적대시했던 김 숙의를 보듬고 품는 장면들은 두 사람의 남다른 배포와 가치관을 대신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끝까지 서로를 믿으며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걸어가는 걸음들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일들은 때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고, 망연자실한 상태에 놓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선함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공존과 연대의 방법들을 보여준다. 칼과 창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수 있는 참신한 방법을 늘 고민하고 원수마저 포용하며 백성을 위한 삶을 펼치려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원범이 그리던 필부필부의 삶을 누리며 오랫동안 함께 잘 살기를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의 끝에 외전으로 수록되어 있는 "폄우사 하일"을 통해 기록된 익종(효명세자)과 윤연심(=승려 해원)의 찬란했던 한때를 살짝 엿보는 것도 추천한다. 창덕궁에 있는 정자인 폄우사를 배경으로 한 여름 시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예쁜 이야기는 싱그러운 연심의 연정과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 연심을 어여삐 보고 '연심아'라고 불러주던 효명세자의 온화한 모습이 절로 그려지는 외전이었다.

 

 

=====
"홍시 맛이 나지 않아서 홍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어찌 홍시 맛이 나지 않느냐고 하시면 신첩은 화가 나옵니다. 전하."

드라마 <대장금>의 대사를 변용(350페이지 中)
=====

 

=====
"어둥둥 내 사랑이야.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능금을 주랴 포도를 주랴. 뒷동산 올라가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 도령 서는데 네 먹으려느냐?"

판소리 '춘향' 중 '사랑가'의 일부를 변용 (362페이지 中)
=====

 

=====
지금 이 순간을 생각했다. 모닥불은 타고, 물고기는 익어 가고, 앵두는 달고, 벗들은 웃고, 모든 것이 다 좋은 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사랑하는 별이 제 곁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감사한 밤이었다.

396페이지 中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