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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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어릴 적 잡지와 신문에서 좋아하거나 관심이 가던 것들을 가위로 오려 모아두었던 스크랩북이 문득 생각났다. 비록 여기저기서 오려내어 색감이나 종이 재질 등에 일관성은 없었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들로 꽉꽉 채운 스크랩북을 지닌 것만으로도 뭔가 든든하고 뿌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저자의 '확실한 취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표지의 디자인에 실려있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그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디자인이었다.

 

표지에서는 그것 외에도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이 반영되어 있었는데, 바로 표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북 커버라는 점이다. 요즘 출간되는 책들에서는 별도의 북 커버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부러 북 커버를 굳이 덧댄 이유는 2가지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과거 일본에서 책을 구매하면 꼭 씌워주던 커버를 재현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었고, 두 번째는 저자가 오랫동안 보관할 장서에 어울릴법한 자투리 천이나 포장지를 활용해 북 커버를 만드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 그 속에서 별것 아닌 물건들을 관찰하고,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기록은 어딘가 묘하게 중독적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세세한 취향까지 파악하고 있는 친근한 옆집 누군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새 저자가 사용해 본 물건들을 검색해 보고,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떤 제품을 쓰고 있고, 내 취향은 어떤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취향을 만나면 맞아맞아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색다른 취향을 맞닥뜨리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습득하고, 이색적인 것들은 관찰하는 재미로 푹 빠져들게 된다.

 

환갑이 넘은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유쾌하고 때론 엉뚱한 면도 지니고 있는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순수하고 온전한 즐거움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자극적이거나 특별한 사건 없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에 대해 이토록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한 것을 보면 저자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깊이 관찰하고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더위를 많이 타지만 에어컨은 잘 사용하지 않고, 편지지 모으기가 취미이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을 땐 주저 없이 구매하여 쌓여있는 재고가 엄청 많다. 가급적 플라스틱은 사용하지 않으려 자제하지만 유기농에 집중하다 보면 때론 플라스틱에 대한 부분을 놓칠 때도 있다. 뜨개질은 어릴 때부터 쭉 해왔던 취미 중 하나인데 양말부터 니트, 숄, 강아지 옷까지 손으로 못 뜨는 게 없을 정도로 전문가 수준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가급적 두려고 미니멀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책장에 쌓여있는 책들은 과거보다 많이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많다. 바자회가 개최될 때마다 몇 박스씩 보내서 비우지만 이내 다시 꽉꽉 차곤한다. 곤충은 좋지만 모기만큼은 절대 용납이 안된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모기 쫓는 것에 진심을 다한다. 저자의 집 약 상자에는 세 가지 물품이 늘 구비되어 있다. 습윤밴드(기즈 파워 패드), 발진 크림(시세이도 엣스킨 에이디 크림), 안약(신오주 안약), 편지지는 물론이고 종이류에 대한 애정은 쉬이 놓기 어렵다. 취향이 반영된 종이라면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고 해도 상자 속에 고이 잘 보관해둔다. 이외에도 그녀의 청소 습관이라던가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 식기류 등을 바꾸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취향과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뭐가 다르냐며 베개는 베개고, 적당히 밥만 해먹으면 되지 밥솥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찾아 '바로 이거야!'라는 확신을 가지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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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크기의 냄비가 딱 좋다. 앞으로 또 즐거움이 늘어나겠구나 하며, 요 며칠 동안 맛있는 밥을 계속 먹고 있다.

냄비로 밥 짓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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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잉크를 넣는 게 살짝 귀찮았지만 요즘은 컨버터로 넣는 것도 못 견디게 즐겁다. 잉크병을 보고 이만큼이나 줄었구나 하며 기뻐한다.
(...)
그런 좀 귀찮은 일이 아주 즐거워졌다. 젊은 사람에 비해 남은 시간은 명백히 적은데도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즐거워지다니, 신기한 일이라며 스스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전통적인 필기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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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주름 편지지는 무늬가 여러 종류인데 무엇을 봐도 가슴이 설렌다. 어릴 때 성냥갑에 지요가미를 붙여서 소중하게 썼던 것을 떠올리며, 꺼내서 보고 슬며시 미소 짓는다.

귀여운 종이 친구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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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이 연재에 썼지만 나는 종이류를 버리는 게 너무 힘들다. 포장지는 물론이고 5센티쯤 되는 종이에 내 취향의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기만 해도 버릴 수 없다. 선물 받은 쿠키가 들어 있던 양철 상자 속에 넣어둔다.

북 커버 씌우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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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물건들은 이것저것 사용해 보며 조금씩 나에게 맞는 것들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가급적 플라스틱은 멀리하고 유기농을 사용하려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노묘의 취향이다. 습도가 높아서 잠들기 힘든 계절, 쾌적한 최고의 수면 세트가 완성되었음에도 저자는 노묘의 취향도 존중해 준다. 다카시마치지미 파자마, 삼베 시트, 삼베 이불, 삼베 침대 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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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패드를 깐 첫날 내가 기분 좋게 자고 있는 한밤중에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울더니 곧바로 뛰어 내려갔다.
(...)
왜 그럴까 하며 삼베 시트 위로 만져보니 침대 패드를 깔기 전보다는 부드럽지 않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내 마음에 든다 해도 역시 함께 침대에서 자기를 기대하는 노묘가 싫어하는 건 무시할 수 없다. 모처럼 샀는데, 하고 무척 아쉬워하며 반쯤 졸면서 침대 패드를 벗겨내고 시트를 다시 깔았다. 그러자 세 시간 뒤에 다시 고양이가 침대로 뛰어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싫어하지 않고 스핑크스 같은 자세로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벌렁 드러누워 잠들었다.

아무튼 시원하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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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유머와 위트도 엿보인다. 여기서는 저자만의 경쾌함과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져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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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라면 삼베 타월은 아무래도 주름이 잘 가는데, 그 위에 얼굴을 대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또 이 나이가 되니 피부의 복원력이 떨어져 자국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어서 그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외출할 일이 없으면 나는 어머, 큰일이네, 생각하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다.

시원함을 찾아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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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늘 사용하는 물건에 우리는 얼마나 설레는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조금 번거로워도 마음에 드는 냄비 하나로 밥 짓는 순간이 흥미롭고, 밥해 먹는 일이 즐거움으로 남는다면 이것만큼 꼭 맞는 나만의 취향이 또 있을까? 이때는 자신 있게 이 냄비 완전 내 스타일이야!!라고 자신 있게 외쳐도 된다. 나와 잘 맞는 취향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물건과 사람 사이에서도 성립한다. 나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를 주는 물건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라면 그것은 분명한 나의 '확실한 취향'의 발견이다. 저자가 서술한 방식대로 세밀하고 견고하게 자신의 취향을 들여다보자.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자세와 자신의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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