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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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케이크를 맛보는 느낌이었다."

 

책의 느낌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위와 같은 문장으로 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8개의 단편을 읽는 내내 계속 그런 느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자른 조각 케이크, 이 케이크의 전체 모습은 어떨까를 온종일 상상하면서 각각의 단편을 읽어 내려갔다. 이 케이크들은 색깔과 맛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부분은 '고난(혹은 재난)'이라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었는데 재난이 끼어든 삶, 그 이후의 인생, 상처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방식은 '특색'을 지닌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인물, 다른 상황, 다른 배경이 보여주는 스토리들은 나를 조각난 케이크 위에 덩그러니 놓아두곤 했는데, 앞뒤 상황은 모르는 상태로 던져졌지만 특정 사건이나 굴곡점에 대한 작은 조각만으로도 이야기 속에 쉼 없이 빠져들어 갔다. 단편들 속 존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특정 사건에 집중하여 펼쳐지는 데 그래서 집중력과 열린 결말에 있어 무한 상상력을 더 발휘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은?',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을 번복하며 조각난 케이크들을 마음껏 음미했던 것 같다.

 

각자의 이야기들은 우리네 삶에서 익숙함을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고, 때론 동화 속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있었으며, 실험정신에 소망을 담은 이야기도 있었는데 읽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이 선연히 살아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떠나가는 사람들, 짙푸른 바닷속으로 추락한 여객기 속 딸의 시신을 찾기 위해 <다이버>가 된 남자의 이야기는 한동안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공허함과 먹먹함 짠내가 들썩이는 황량한 바다가 절로 그려지는 이야기였다.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개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 묶음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3세대에 걸친 한 가족의 종이책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작은방 한편에 둘러싸듯 꽉 채워진 책장, 쿰쿰한 책 냄새, 그리고 비밀스레 전해지는 종이책은 세대를 덧대어 이어지고 있었다. 넷(net)이 발달한 사회에서 금지된 종이책은 극단적 디지털화 시대의 유일한 아날로그처럼 느껴졌는데, 그 속에서 종이책은 아무런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일률적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을 입은 도구이자 기록이었다.

 

<다이버>와는 다른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폭수>에서는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보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천재 수학자 아버지가 있다. 매일 아들을 잃어버린 호수로 동전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어떤 계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그리움일까 아니면 직업적 호기심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잔잔한 호수와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내가 던진 쿼터가 펑 하고 호수에서 터지는 순간 비처럼 쏟아지는 물벼락과 흙냄새 가득한 커피향, 살짝 미소 짓고 있던 오 교수의 뒷모습, 그리고 연구실과 호수 사이에 선명하게 그려지던 무지개의 형상이 절로 그려지는 듯했다.

 

어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아바타 속 동떨어진 세계에 뚝 떨어진 것만 같던 <아일랜드>의 배경이 되는 가즈 섬은 실제 실존하는 귀여운 물고기 섬으로 밤새 아버지가 읊조리던 동화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애틀랜틱 엔딩>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들의 절박함과 공허함이 그려지는 소설이었는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상실감과 허탈감이 절로 느껴졌다. 성공한 이민자라는 꼬리표 뒤의 모습은 지저분한 뒷골목을 전전하며 매일을 주사위 던지듯 사는 삶 그 자체였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는 다리를 건너는 두 남녀가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 911테러, 동일본 대지진까지 삶을 살아가는데 '우연히' 살아남을 확률과 매일 다리를 건너듯 위태하게 이어가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우리 모두는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어딘가에 서서 다리 위를 걷는 사람이지 않을까?

 

현재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어떤 선물>은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잊은 한 대학 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읽는 동안 모두가 어김없이 얼굴의 반을 가린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오가는 모습, 약국의 한 면에 '마스크 없음'이라고 쓰여있던 글자, 그리고 비대면으로 하는 강의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대학강사가 어느 날 마스크를 깜빡 잊은 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은 잘려나간 페이지만큼이나 당황스러움을 안겨준다.

 

불행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의 고충을 안고 이겨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포기하는 사람, 혹은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사람 등 제각각 나뉘게 된다. 누구에게나 불행과 고난은 겪기 마련이고 이는 우리가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게 된다. 이 8편의 소설은 그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 겪고 난 이후의 모습, 불행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이한 건 그 불행에 잠식당해 어둡고 캄캄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듯하게 잘린 단면처럼 인생의 한 단면을 깔끔하게 도려내어 보여주는 형태로 그려진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깔끔하고 담백하게 느껴진다. 인생을 사는 것은 무언가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어딘가를 헤매며 위태로운 다리 위를 걸어가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불행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바닷속으로 뛰어든 다이버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희망 한자락을 가지고 기록하거나 싸워나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확률 게임 속에서 헤매며 살아갈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삶의 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한히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뒤 페이지에 평론가의 해설과 저자의 창작 노트가 함께 실려 있는데 책을 읽고 난 뒤 읽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와 해석, 스토리의 뒷이야기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혹은 내가 조각 케이크라고 느꼈던 것처럼 각자 떠오르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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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온다

 

26페이지 <서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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