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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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잃어버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오늘날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과거의 '정'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경제관념과 물질만능주의에 매료된 세상은 '인간다움'의 상실을 가져왔다. 간혹 뉴스를 통해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사례는 그래서 그런지 유독 더 반갑게 느껴진다. 여태껏 전례 없던 바이러스의 전파로 인해 한층 더 멀어진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비대면 생활로 접어든 일상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려와 염려스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과 21세기.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또 다른 급진적인 새로운 혁명기에 접어들고 있다. 초고속으로 진화하고 변화하는 물결 속에서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한때는 영화나 SF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지금 일부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지금 쓰이고 있는 공상과학 속 이야기들이 가까운 미래에 그려지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9인의 작가가 쓴 9색의 SF 단편 앤솔러지로 가까운 미래에 존재할 수 있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가상세계를 그리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스토리들이었다. 고도화된 기술력과 과학을 바탕으로 뇌와 심장 등을 이식하여 삶을 영위하는 이야기, 휴머노이드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젠더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이야기한 스토리, 감정조차도 사고파는 세상 속에서 빈부격차에 따라 경험치가 다른 세상의 이야기, 삶의 끝에 몸은 죽을지언정 정신은 다른 곳으로 옮겨와 연명해 가는 이야기, 게임과 같은 세상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그린 이야기 등 현재도 공상하듯 이야기하는 수많은 소재와 이야기들을 보다 구체화시켜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과감하고 매력적으로 쓰인 각 9가지 빛깔의 이야기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나 은연중에 염려하고 두려워하던 부분을 콕 집어 핵심을 간파당하는 느낌마저 든다.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와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신체와 도덕, 감정과 생각들마저 미래에는 국가에 저당잡혀 먹고살기 위해 그것마저 팔거나 조종당하는 삶은 끔찍하다는 생각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먹고살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팔듯 사랑의 감정을 팔고, 도덕이라는 칩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직장조차도 구할 수 없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세상,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반면, 출산율의 저하로 줄어든 인구를 대신해 개발된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와의 공생의 모습은 불편한 감정과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을 대신해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의 개요만을 따져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인공지능이 진행하는 재판의 모습(인간의 대리인), 기계의 힘을 빌려 격렬한 분쟁이나 격론 없이 원활한 의견 조율을 하도록 만드는 세상(스키마 리셋터), 휴머노이드와 나누는 우정과 양육(나와 올퓌/영원), 인공 자궁 기계를 통해 임신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든 세상의 모습(대통령의 자장가), 게임과 같은 세상 속에서 마치 인간의 자유의지 없이 짜인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미래 죽음) 이야기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리 삶의 가치관과 방식을 완전히 깨는 형태여서 새롭고 파격적이었다.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의 도입으로 분명한 장점도 엿보였지만, 한편으론 스스로 사고하고 분쟁을 서로 간의 타협 없이 인위적인 기계의 도움을 빌어 원활한 결과값만 도출해 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그리고 여성의 몫처럼 여겨졌던 임신과 출산이 남성과 기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점은 쇼킹하면서도 부정하게 사용되는 부분에서는 씁쓸하게 다가왔다. 

 

SF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려진 9가지의 이야기들은 발전된 과학기술의 장점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의 이면과 '인간다움'은 무엇이고 이를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껍데기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인간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지, 사고나 선천적 문제로 신체 중 일부를 기계로 대체했을 때 이를 인간으로 볼 수 있는지 등등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동떨어진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와 엮여있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에 흥미로운 소재들이 가득했는데 특히 가슴에 남았던 이야기는 <인간의 대리인>, <나와 올퓌>,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대통령의 자장가>가 특히 남다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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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가 없다.
나는 내가 없다.

 

15페이지 '인간의 대리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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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
나는 인간의 기능을 상실한 인간은 마땅히 죽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무뇌 변호사다.

 

29페이지 '인간의 대리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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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기억이 사라진다는 게 곧 죽음이다."
희한한 대답이었다.
(...)
메모리칩 손상은 보통 휴머노이드의 소유자가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휴머노이드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막고자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87페이지 '나와 올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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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를 혐오해서 누군가는 바이러스까지 풀었다. 그런 세상에 살아가면서 인간인 넌 뭘 했는가? 방관하는 것도 결국은...."

 

99페이지 '나와 올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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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올퓌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연인과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도 올퓌 자신이 기억을 보존하는 저장 매체로서만 존재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올퓌였어도 끝까지 한 사람의 연인으로 남고 싶었을 것 같다. 꼭 인간들처럼, 올퓌도 자신의 추억을 유일무이한 형태로 간직하고 싶었으리라.

 

104페이지 '나와 올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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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을 불때마다 남자는 다양한 감정을 체험했고 그 결과 남자는 점점 더 정서적으로 풍요롭고 안정적이며 이해심과 공감의 폭이 깊은 사람으로 발전했다. 돈을 주고 체험을 구매하여 정서적 여유와 풍족을 누리게 된 것이다.

 

172페이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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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체험이 축적되어 그들은 감정적으로 윤택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경험을 미리 판매했고, 경험 기회를 팔아버린 그들은 정서적 체험을 누릴 기회 자체가 박탈되었으며, 그 결과 감정적 성숙이 일어나지 않아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에만 몰두하는 이기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질적 빈부는 이제 공감과 연민의 빈부로 확장되었다.

 

173페이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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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고 감정적 체험을 구매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할 거라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미리 판매하게 될 거라곤. 그리하여 감정적 체험마저 상품으로 판매되는 시대가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75페이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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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럴 욕구를 느끼지 못하므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지 말지, 그것도 관심 없다. 아마 그 사람의 마음을 내 쪽에서 거절하지 않을까 싶다. 만나봤자 돈밖에 더 들까.
(...)
내가 생존하는 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검토한 결과, 굳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결론 내렸다.
(...)
나의 생존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 내가 시도한들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것, 그러므로 돈이라도 벌기 위해 팔아버리는 게 차라리 나은 것, 그것이 사랑이다.
(...)
나는 내가 겪을 미래의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176페이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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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임신: 호르몬제 투여와 함께 인공 자궁을 배 부분에 이식하는 혼합방식으로 임시로 자궁을 설치하고 인공 양수를 주입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준다.
※인공자궁: 시험관 시술을 한 뒤 배양한 수정란을 인공 자궁인 움시스에 착상하는 방식

임신과 육아가 오로지 여성의 몫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최초의 시대인 것만은 분명했다.

 

225페이지 '대통령의 자장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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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SF 스토리를 넘어 곧 다가올 미래의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라는 소재 외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기발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맛보는 재미도 있으니 참신한 소재의 SF 소설을 찾는 이들에게는 상상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소설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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