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브 플랜트>에는 세 편의 단편이 담겨있는데 각각 연애-결혼-이혼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다. 보통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식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잎맥을 가지고 있듯이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 사랑과 연애, 결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니깐'이라는 말은 어쩌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적절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도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속사정을 지닌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세 편의 단편 속에는 공통적으로 '나'와 관계가 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모두 남성의 눈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토리상 언급되는 작지만 중요한 부분들은 늘 그렇듯 일상 속에서 가볍게 넘기며 비껴간다. 그래서 그들은 정작 서로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속 깊은 마음 또한 알지 못한다. 세 단편 모두 엇나가는 서로의 감정과 생각들을 '나'라는 사람의 관점에서 관찰하듯 기록되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에 있어 '서로'는 끝끝내 이해되지 않는 타인일 뿐이다.

 

 

이 단편들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첫 번째는 관계론적 입장에서 느껴지는 복잡함이 있다. '나와 너'. '여자와 남자', '세상과 나' 가 서로 다른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뭉개듯이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관계에서 한쪽은 만족스럽지만, 다른 한쪽은 억울함과 불만족이 쌓이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생각의 대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  '초승달과 그믐달', '팜나무와 야자나무', '완벽함과 불안정함', '첫 번째 결혼 종용과 이혼 후 인내심 발휘' 등과 같은 대조되는 단어들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우울함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마치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 마주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과 불안함이 내내 공존 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헤어진다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책에 실려있는 감정 상태 때문이 아닐까?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은 덮어두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여 행동할 때, 그저 방관하는 상대방을 알아버렸을 때 우리는 '헤어짐'이나 '무관심'이라는 상태로 돌아서게 된다.

 

 


<일인칭 컷>에서 '나'의 여자친구인 '희주'는 남자친구인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혼식을 하겠다 선언하고 함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며 '나'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희주'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이때 '나'의 과거 회상을 통해 희주와 사내커플이었을 당시의 이야기가 잠깐 거론된다.

 

'나'는 왜 '희주'가 비혼식을 하고자 하는지, 사진을 왜 일인칭 컷으로 찍으려 하는지, 과거 성희롱을 겪고 난 이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표준화된 사회의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기준안에서 "평가받고 차별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나'의 모습을 통해 관습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답습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
그동안 수없이 희주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지만 희주의 눈에 보일 풍경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34페이지 中
=====

 

 

<완벽한 밀 플랜>은 '나'와 '현영'의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어딘가 늘 불안해 보이는 '현영'과 계획적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나'의 대조적인 모습은 신혼여행지에서조차 동일하게 반복되는데 이는 나의 착각 속에서 만들어진 상황들이다. '내가 그녀를 바꿀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그녀는 나와 같은 목표를 지닐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력이 더해져 진행된 그녀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손목을 긋거나, 수면제를 먹어 응급실을 가는 등)

 

내 입장에서 '내'가 완벽한 밀 플랜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현영'은 이를 망치는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나중에 '나'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게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반성하지만 이후 그들 사이에는 대화가 사라진다. 그들은 그렇게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현실을 그저 순응하는 것으로 상대를 두고 각자의 생존방식으로 살아간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휘두르고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였다. 순응이라는 이름으로 덮여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인연은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절대 묶이지 않음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연은 '정답'을 찾으려는 꼬인 실타래의 시작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혼 경력이 있는 '백현준'과 그의 꽃집에 방문하는 '이미나 차장'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러브 플랜트>는 한 번의 이혼소송을 거치면서 과거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백현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밀어붙였던 결혼 종용, 그것은 그의 오만함과 자신감, 그리고 망상에서 비롯된 어설픈 치기에서부터 시작된 행위였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믿고 있던 신념이 이혼소송을 통해서 파괴되고 깨지면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일방적 고백에 대해 공포와 분노를 느끼는 일명 "고백할 때 제발 꽃 사지 마 공포증" 을 겪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이혼 후 찾아온 '이미나 차장'에 대한 호감은 이제 과거와 달리, 율마 화분을 주는 것으로 은근한 마음만 표현하고 더 나아가진 않는다. '백현준'은 식물을 키우면서 사람과의 관계에도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미나 차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식물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배운다.

 

과거 남들이 탐하던 것을 가졌다는 우쭐함과 오만함에 사로잡혀 선택했던 결혼이 결국 이혼소송을 통해 깨지면서 '관계'에 대한 관념을 재정립을 하게 된 백현준, 그의 변화에서 배웠듯이 공식적인 연인이나 결혼이라는 타이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노력, 그리고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책임지는 행위가 더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린 감정이 우선할 때는 온전한 감정적 홀로서기를 통해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도 좋으리라.

 

=====
특히나 백현준은 이미나 차장에 대한 호감이 커질수록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이 상대방을 곤란하게 할까 두려워 더욱 행동을 조심했다.

73페이지 中
=====

 

 


가벼운 책의 무게에 비해 담겨있는 내용은 묵직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연애-결혼-이혼이라는 소재를 빌어 상대를 이해하는 것,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 타인을 존중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누구나 '내'가 가장 우선시 되겠지만 적어도 나와 너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때론 상대를 진정으로 헤아려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마음도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