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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ㅣ 케이스릴러
김시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1월
평점 :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언제나 상상력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예전에는 장르적 속성만 맞춰진 소설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장르에 상관없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감각적인 필체와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 많아 읽는 재미가 있다. 그저 무섭거나 긴장감만 주는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전개에 반전, 그리고 삶에 대한 교훈까지 두루 담겨있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소설만 읽어도 세상사가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이 책은 고즈넉이엔티에서 케이스릴러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책 중 한 권인데, '환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목에 '환 (Reborn)'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환생이라고 하면 불교의 윤회사상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꼭 종교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죽으면 다시 태어날까?' 혹은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서프라이즈나 프리한19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가끔 언급되곤 하는데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랍고 신기하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입증이 불가능하기에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상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기에 아니라고도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이 소설 속에는 전생을 기억하는 '환생아' 들이 태어나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미 몇 번의 테스트와 경험을 통해 '환생아'를 위한 여러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으며 이들의 성장과 과거의 기억이 현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국가에서 이런 아이들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한 법이 '환생아 보호법'이며 '환생아 기억보존국'이 바로 그 기관이다.
'환생아'들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 외에도 외적으로 특징 하나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바로 인중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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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아 특징-하나>
인중이 없는 아이들은 코와 입술 사이가 유난히 돌출되어 있었으며 윗입술이 말려들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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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르게 말문이 트이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정 시기 전까진 울지도, 말을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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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아 특징-두울>
생후 36개월을(3살) 기점으로 급작스럽게 말이 트인다. 그전까지는 울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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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화 시점에 이 아이들은 부모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낯선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거나 먼 과거의 일을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해 냈고 침묵을 깨고 이를 발화했다. '환생아'들은 국적, 언어, 성별에 특별한 규칙성 없이 환생했으며, 환생하는 주기도 일정치 않았다. 그래서 짧은 주기로 환생할 경우 간혹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환생아들에게도 다행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환생아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곱 살 무렵 첫 유치가 빠지면 아이들은 더 이상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후 아이들은 어지러운 꿈을 꾼 것처럼 전생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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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아 특징-세엣>
일곱 살 무렵 첫 유치가 빠지면 아이들은 전생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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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완벽한 부부이자 셀럽 부부인 지영과 석훈에게 결혼 3년차가 되던 해 아이가 생긴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온 아이! 그들의 아이 기환은 전생을 기억하는 환생아였다. 기환은 성장하면서 다른 환생아들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전생의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드디어 다섯 살이 되던 해 생일 첫 발화를 하는데, 뒤늦은 기환의 발화는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이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의 연속은 마침내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첫 발화로 내뱉은 한 단어, 그리고 그 후 아이는 자신의 발화가 맞이할 파국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한다. 지난생의 무게로 인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기환은 강요하지 않은 침묵을 한동안 이어나간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아이의 발화와 서서히 드러나는 숨겨진 과거의 진실. '환생아'를 둔 부모, 그리고 환생아로 태어나 고통받는 아이들, 환생아를 보호하기 위한 기관과 법은 과연 진정 그들을 위한 법인지 책을 읽고 판단해보길 바란다.
누군가는 인중을 '천사의 손자국'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쉿'하고 윗입술 위에 손을 대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데, 그때 남은 자국이 인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중이 없이 태어난 '환생아'들은 천사의 손길을 받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인 것이다. 다시 말해 침묵을 요구받지 않은, 과거의 무언가를 오히려 알리기 위해 과거로부터 건너온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멀지 않은 과거로부터 환생한 기환의 천형과도 같은 기억은 그의 오랜 침묵만큼이나 무겁고 아프다. 아이의 길지 않은 발화, 아이가 그린 그림을 통해서 찾아가는 진실은 생각지 못한 거대한 일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도 하다. 가난한 자, 약한 자, 선한 자 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갈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숨기고 덮어 두었던 것은 고작 임시방편의 순간일 뿐이다. 무엇으로 덮어도 썩지 않는 상태로 머물러있던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유한한 인간의 몸은 사라져버릴지라도 '환생'을 통해 생을 반복하는 '환생아'들은 어쩌면 과거의 썩지 않고 머물러 있는 죄를 반성하고 이를 묻기 위해 기억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반복되는 생, 그리고 마무리되지 않은 과거의 죄는 오랫동안 '환생'이라는 이름하에 무한히 반복된다. 모든 생이 마치 하나로 연결되듯이 끊임없이 누군가는 기억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말고 보기를 바란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누군가 묻어둔 죄를 복기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소름 돋았던 부분은 마지막 페이지의 두 줄이었다. 내가 본 두 줄의 내용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